4장 산문 속에서 입 다물기
오스틴 <사랑과 우정> <노생거 사원>
<노생거 사원>의 고딕소설적 특징, 다시 읽어보기

실제로 러디어드 키플링은 오스틴이 남성에게 미친 기묘한 영향력과 오스틴이 남성 문화에 얼마나 유용했는지를 검토하는 이야기를 쓴다. 그 이야기에서 싸우기 좋아하는 어느 인물은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아들을 적통 후계자로 삼았다. 그 아들의 이름은 헨리 제임스였다‘라고 주장한다. - P239

오스틴은 문화의 상징이 되었지만, 그녀가 끈질기게 보여준 자신이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불편함, 특히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부여한 협소한 위치에 대한 불만, 성적 착취의 경제학에 대한 분석은 지금도 충격적이다. 동시에 오스틴은 처음부터 자신에게는 좁은 장소 이외의 다른 어떤 곳도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녀의 패러디 전략은 부적절하지만 피할 수 없는 구조에 대항한 자신의 싸움에 대한 증언이다. - P242

여자들이 그런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이유를 오스틴은 매우 분명하게 드러낸다. 소피아와 로라는 캐런 호니가 최근에 밝혀낸 ‘과대평가된 사랑‘의 희생자들이다. 오스틴에 따르면 바로 이 점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의 성을 대표한다. 로라와 소피아는 남자의 사랑을 이해하고 오직 그것만 원하도록 격려받았기 때문에, 사랑받고 싶은 지칠 줄 모르는 욕구를 만족시키는 일에 강박적이고 무차별적으로 몰두한다. 반면 진정한 감정을 깨닫거나 다루는 능력은 없다. 그들은 남자를 ‘잡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짓도 서슴지 않을 것이며 실제로 서슴지 않는다. 반면 무지를 가장하고 겸손해야 하며 성적인 정열에는 무관심한 척해야 한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는 것말고는 타당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전통적인 생각에 대중적인 로맨스 소설이 어떻게 기여했으며, 여성에 대한 이런 억측이 ‘여성의’ 자기도취, 마조히즘, 망상의 뿌리에 어떤 방식으로 자리 잡고 있는가. 오스틴이 보여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스틴은 여성성의 사회적 정의에 대해서 이보다 더 이단적으로 도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251

클래리사나 파멜라처럼 천사 같은 본보기를 거부하면서 오스틴은 여성을 수동성과 동일시하고 남성을 공격성과 동일시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비판한다. - P252

오스틴은 감상소설이 유혹자-강간자의 역할을 정당화하기 때문에 남자들의 약탈적 충동을 부추긴다고 암시하며 리처드슨식의 난봉꾼을 비판한다. - P253

오스틴에게 여성의 가정 내 속박은 하나의 은유라기보다 실질적인 삶의 진실이고, 여성의 속박은 각각 소설 속 여성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사소한 아침 방문까지 지배하는 까다로운 예의범절에 의해 더 공고해진다. - P261

오스틴은 초기 작품 전반을 통해, 특히 「프레더릭과 엘프리다」에서 가장 재미있게, 기록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건은 청혼, 결혼식, 약혼 또는 파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무도회 준비, 사랑에 대한 환멸, 가출이라는 로맨스 소설이 퍼뜨린 생각을 조롱한다. 그러나 오스틴 자신의 소설도 근본적으로는 그런 주제에 얽매여 있다. 그것이 암시하는 바는 분명하다. 결혼은 매우 중요하다. 오스틴의 사회에서는 결혼만이 소녀들 - P264

이 자기를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모든 문제에 대한 오스틴의 침묵은 그 자체로 일종의 진술이다. 오스틴 소설에 다른 문제들이 부재한다는 사실은 소녀나 여자들의 삶이 얼마나 불충분한가를 증명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것은 여성 작가인 오스틴 자신의 결핍을 증명한다. 오스틴은 사실상 자기 예술의 한계를 스스로 천명하고 수용하는바, 이것은 예술가이자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허용된 자기표현의 형태를 전복적으로 비판하는 것을 감추기 위해서다. 어리석은 문학 구조에 대한 오스틴의 조롱은 문학과 마찬가지로 부적절한사회적 비난이 안겨주는 소외감을 분명하게 표현하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이다. - P265

오스틴은 사랑하는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두렵게도 혼자 사는 여자는 가난해지기 십상‘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오스틴은 자신의 모든 소설에서 재정 압박 때문에 결혼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무력함, 불공평한 상속법,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못한 여성들의 무지, 상속녀나 과부의 심리적인 취약성, 이용당하는 독신녀의 의존 상태, 몰두할 일이 없는 여성의 권태를 탐색한다. 이 모든 상황에 내재된 무력함은 캐서린이 뚫고 들어간영국 사회의 품위 있고 우아한 표면 뒤에 감추어진 비밀의 일부인 것이다. 오스틴의 다른 여자 주인공들처럼 캐서린은 대부분의 여성이 자기 친구인 (그 집에서 ‘이름만 안주인‘일 뿐 ‘실질적인 권력은 하나도 없는‘ [2부 13장]) 엘리너 틸니를 닮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 P280

여자 주인공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기 때문에 여자 주인공이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허구에 부자연스럽지만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여자 주인공이 되는 소녀는 미치지는 않더라도 병들 것이라고 오스틴은 암시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젊은 아가씨가 배워야 하는 몸치장, 독서, 쇼핑, 몽상에 대한 감정교육의 자연스러운 귀결을 본다. 캐서린은 이미 바스에서 친구들과 지인들이 펼치는 서로 모순되는 주장의 틈바구니에 끼여서, 마치 자신이 우울의 미친 동굴에 거주하고 있는 것처럼, ‘깨진 약속, 무너진 기둥, 사륜마차, 눈을 속이는 양탄자, 틸니 남매, 성 안의 비밀스러운 문에 대해 차례차례‘[1부 11장] 숙고한다. 물론 이후 한밤중에 사원을 배회하면서 캐서린은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찾고 있으며, 미래의 비밀을 열어줄 사라진 여성의 옛 운명을 밝혀내려 한다고 볼 수 있다. 다음 세대의 틸니 부인이 되기를 열망하는 만큼 캐서린이 죽은 틸니 부인의 모습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우리가 그녀의 환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강한 풍자적 어조 속에서도 우리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있다. 틸니 부인은 바로 그녀의 자아상이기 때문이다. - P287

이것이 바로 『노생거 사원』이 래드클리프 부인의 이야기처럼 무서운 고딕소설이 되는 이유다. 소설이 묘사하는 악은 샬럿 퍼킨스 길먼, 필리스 체슬러, 실비아 플라스 같은 서로 결이 다른 작가들이 묘사한 공포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여성이 위험에 대한 감각을 무시해야 하고, 자신의 상황에 대한 인식과 모순되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받았을 때 생기는 공포와 자기혐오인 것이다. 자신의 내면성과 확실성을 헨리의 부적절 - P290

한 판단으로 대체했음을 깨달았을 때 캐서린이 느끼는 혼란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좀 더 극적인 (더 무력화시키지는 않을지라도) 예들을 인용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캐서린을 치명적으로 혼란에 빠뜨리는 세뇌 과정은 여성에게 항상 고통스러운 굴욕감을 주고, 여성을 서서히 미치게 만들기 때문이다. 최근 플로렌스 러시는 미쳐가는 여자에 대한 잉그리드 버그먼의 유명한 영화를 은유적으로 사용하며 이 과정을 ‘가스라이팅’이라고 불렀다. - P291

해럴드 블룸은 (자신을 여성으로, 그리하여 이류로 정의한 것과 불가분하게 관련되어 있는 말)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말했지만 오스틴이 자신의 의식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준 작품은 『노생거사원』이다. 캐서린 몰런드가 독자로 남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스틴은 자신을 ‘그저‘ 이전 소설들의 해설가요 비평가로 제시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만들지 않은 소설의 집에 기꺼이 거주하고자 하는 의지를 매우 겸손하게 보여준 것이다. - P29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