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어른이 된 지금도, 좋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에 저녁 초대를 거절하면서 죄책감을 느낄지 모른다. 아니면 음식점에서 혼자 밥을 먹으면서여유를 찾으려 할 때 옆 테이블 사람들의 딱하다는 듯한 시선은 더이상 받고 싶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흔히 조용하고 이지적인 사람들이 듣는 "너무 생각이 많아" 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사람들을 가리키는 또다른 단어도 있다. 사색가 - P25

내향성에 해당하지 않는 몇 가지가 있다. ‘내향성‘이라는 낱말은 은둔자나 인간 혐오자와 동의어가 아니다. 내향적인 사람이 실제로 그럴수는 있지만, 대다수는 매우 친근하다. 영어에서 가장 인간적인 구문이라 할 수 있는 "오직 연결하라 only connect!"는 뚜렷하게 내향적이었던 E. M. 포스터가 어떻게 ‘지고의 사랑‘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풀어낸 소설에 쓴 문구였다. - P33

왜 어떤 사람은 수다스러운데 어떤 사람은 말을 삼갈까? 왜 어떤 사람은 일에 파묻히는데 어떤 사람은 사무실 직원들과 생일파티를 준비할까? 왜 어떤 사람은 권한을 쓰는 데 익숙한데 어떤 사람은 지도자가 되기도 싫고 끌려가기도 싫어할까? 내향적인 사람도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외향성을 선호하는 우리의 문화는 자연적인 것일까, 아니면 사회적인 것일까? 진화론의 관점에서, 내향성이 하나의 성격 특성으로서 살아남은 이유가 반드시 있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분이 내향적이라면, 자연스럽게 끌리는 활동에 에너지를 쏟아야 할까, 아니면 로라가 협상 테이블에서 했듯이 무리를 해야 할까?
이 질문의 답을 알면 놀랄지도 모른다. - P38

카네기가 농장 소년에서 판매원으로, 다시 대중 연설 아이콘으로 변신해가는 이야기는 ‘외향성 이상‘이 부상하는 이야기와 겹친다. 카네기의 여정에는 20세기로 전환하는 시기에 임계점에 달한, 문화적 진화의 과정이 나타나 있다. 이로써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사람에게 경탄하는지, 취업 면접에서 어떻게 행동할지, 직원에게 어떤 자질을 찾을지, 짝에게는 어떻게 구애하고 아이는 어떻게 기를지 등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영향력 있는 문화역사가 워런 서스먼warren Susman에 따르면 미국은 ‘인격의 문화‘에서 ‘성격의 문화‘로 전환했고, 결코 회복하지 못할 개인적 불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다. - P46

인격의 문화에서 이상적인 자아는 진지하고, 자제력 있고, 명예로운 사람이었다. 중요한 것은 대중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가 아니라 홀로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느냐였다. ‘성격‘이라는 단어는 18세기 이전에는 영어에 존재하지 않았고, ‘좋은 성격‘이라는 개념은 20세기가 되어서야 널리 퍼졌다.
하지만 ‘성격의 문화‘를 수용한 뒤로, 미국인들은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대담하고 재미있는 이들에게 매혹되었다. 서스먼은 이를 이렇게 표현한 것으로 유명하다.
"새로운 성격의 문화에서 가장 각광받는 역할은 연기자였다. 미국인은너나 할 것 없이 ‘연기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 P46

미국인들은 이제 이웃이 아니라 낯선 이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주민‘은 ‘직원‘으로 바뀌었고, 같은 주민으로서 혹은 가족으로서 인연이 전혀 없는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역사가 롤랜드 마천드Roland Marchand는 말한다. "누구는 승진을 하는데 누구는 따돌림 당해야 하는 까닭을 이제는 다년간 형성된 편애나 케케묵은 집안싸움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점점 더 모르는 타인과 사업하고 관계하게 되는 시대에, 사람들은 첫인상을 비롯한 모든 것이 중대한 차이를 만들지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다." 미국인들은 이러한 압박에 반응하여 자기 회사의 최신 장치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팔 수있는 판매원이 되려고 노력했다. - P47

하지만 자신감 있게 보여야 할 필요를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게 한 것은 심리학에서 대두된 열등의식 inferiority complex이라는 개념이었다. 인기 언론에서 IC라는 이름으로도 통하던 열등의식은 1920년대에 빈의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 Alfred Adler가 부적응과 그 결과를 묘사하기 위해 쓴 표현이다. 아들러의 베스트셀러 『인간 본성 이해하기 Understanding Human Nature의 표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자신감이 없는가? 소심한가? 순종적인가?" 아들러는 유아와 아동이 너나 할 것 없이 열등하다고 느끼는데, 이것이 어른들과 형들 틈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상적인 성장과정을 거치는 동안 아이들은 이런 감정을 승화하여 목표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 P53

물론 ‘외향성 이상‘은 근대의 산물이 아니다. 외향성은 우리 유전자에 있다. 몇몇 심리학자는 이것이 문자 그대로 사실이라고 말한다. 그 특성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는 덜 나타나고 유럽과 아메리카에서 더 나타나는데, 이들 대륙의 후손들은 상당 부분 이주민이었다. 심리학자들은 여행하던 사람들이 집에 머무르던 사람들보다 외향적이라는 점, 그리고 그러한 특성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었다는 점이 이치에 맞는다고 설명한다. 심리학자 케네스 올슨KennethOlson은 이렇게 말한다. "성격 특성이 유전적으로 전달되므로, 신대륙으로 이주민이 물결처럼 몰려들 때마다 구대륙에 거주하는 사람들보다 더 바쁜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으로 바뀌게 된다." - P58

한 지식인은 1921년에 이렇게 썼다. "개개인의 성격을 존중하는 태도는 이제 바닥을 쳤고, 우리처럼 성격에 관해 이토록 끊임없이 떠들어대는 국가가어디에도 없다는 점은 유쾌할 정도로 아이러니하다. 우리에겐 실제로 ‘자기표현‘과 ‘자기계발‘을 위한 학교도 있지만, 그것이 뜻하는 바는 성공적인 부동산업자 같은 성격을 개발하고 표현한다는 것인 듯하다." 또 다른 평론가는 미국인들이 연예인들에게 노예처럼 관심을 갖다바치기 시작한 상황을 개탄했다. "요즘 잡지들이 무대 위, 그리고 그에 연관된 것들에 얼마나 주목하고 있는지 보면 놀랄 정도다. 고작 20년 전에는 (그러니까 인격의 시대에) 그런 주제를 다루면 상스럽다고 간주되었다. 이제는 그것들이 "사교생활의 엄청난 부분을 차지하게 되어계층을 막론하고 대화의 주제가 되고 말았다." - P60

이스트먼 코닥Eastman Kodak사의 한 고위간부는 대니얼 골먼DanielGoleman에게 말했다.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환상적인 회귀분석에 흥분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결과를 중역들에게 발표할 생각에 불쾌해진다면 말이다." (발표한다는 생각에 들뜬다면 회귀분석을 한다는 생각에 불쾌해지는 것은 괜찮은 모양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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