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앓던 사촌은 내게 편지를 보내 의사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주었다. 의사가 적절하다고 여기는 정도보다 내 사촌이 더 많이 질문하자, 의사는 그녀가 치료를 "통제하려 한다"고 비난했으며 "통제를 맡는" 사람은 자신이라고 잘라 말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드물지 않으며 남성 환자보다는 여성 환자에게 더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해야 할 질문은 누가 통제하느냐가 아니라 통제라는 것이 존재하느냐다. 질병을 겪으며 배운 교훈 하나는, 통제의 주체가 나 자신이든 의사들이든 통제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릴 때 더 편하고 만족스러웠다는 것이다. 몸을 통제하고자 하기보다는 몸이 얼마나 경이로운지 인식하길, 나는 의료인과 아픈사람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 P96

우울함이 그 상황에서 아픈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의료진이든 가족이나 친구든 그런식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울증에 걸리라고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순간들엔 꽤 깊은 우울증도 질병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 P105

병이 나면 아픈 사람은 의료진과 가족과 친구들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신이 의존하는 모든 사람이 명랑한 태도를 높이 평가할 때 아픈 사람은 에너지를 끌어모아 명랑해 보이려고 애쓸 수밖에 없다. 자신은 부정하고 싶지 않거나 부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고 해도, 아픈 사람은 주변 사람들이 부정을 원하고 필요로 한다고 느낀다. 아픈 사람 자신은 부정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이 부정할 때 거기에 맞춰주게 되는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일어나고 있는 일을 부정할 때 자신도 함께 부정하는 것이 아픈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거래처럼 보일 수 있다.
- P109

의료진이 정말로 도움을 주고자 했다면 우리가 편하게 응답할 수 있는 환경에서 물었을 것이다. 입원 환자 병실 안에 간호사들과 우리만 있었을 때 간호사들은 병력을 적는 서류에있는 질문만 했지 ‘심리사회적‘ 질문은 하나도 던지지 않았다. 사생활이 보장되는 병실 공간 안에서 아내와 내가 감정을 표현한다면 이때는 간호사들이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되기 때문이다. - P113

돌봄 제공자가 되길 원하는 사람, 특히 돌보는 일을 직업으로 삼길 원하는 사람은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도움이 바로 눈앞에 있다고 아픈 사람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돌아보면, 아팠을 때처럼 방어적이던 때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본 적도 없었고,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그렇게 방어막을 두르고 있던 적도 없었다. 사람들이 어느 때보다 간절히 필요했지만, 동시에 사람들에게 다치기 쉽고 가장 취약한 때이기도 했다. - P113

여기서도 다시, 내가 정답을 주지는 못한다. 줄 수 있는 것은 질문뿐이다. 아픈 사람은 자문해보길 바란다. 이 ‘거래‘를 하기 위해 얼마나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명랑한 겉모습을 보여주려다가 자기 질병을 표현하지 못하고 억누르고 있지는 않은가?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봐 두려운가? 아픈 사람의 주변인이라면 이런 질문들을 해보라. 아픈 사람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길 바라면서 신호를 주고 있지는 않은가? 아픈 사람의 행동이 당신의 행동에 반응해서 나온 것은 아닌가? 실제로는 누가 부정하고 있으며 누가 부정을 필요로 하는가? - P114

두려움과 우울은 삶의 일부다. 아플 때 겪는 ‘부정적인 감정‘이 따로 있지 않다. 살아내야 하는 경험들이 있을 뿐이다. 힘든 순간에 필요한 것은 부정이 아니라 인정이다. 아픈 사람의 고통은 치료될 수 있든 없든 인정되어야 한다. 가장 아팠던 시기에 내가 원한 반응은 "네, 우리는 당신의 고통을 압니다. 우리는 당신의 두려움을 받아들입니다"였다. - P114

커튼을 젖히고는 "맞아요, 그리고 바로 나처럼 보이게 될 거예요"라고 말하고픈 비틀린 마음이 들었다. 그 환자가 모든 세부 사항을 미리 알 필요는 없다. 하지만 뭔가 현실적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설명을 들을 권리는 있었다. 또 더 중요하게는, 앞으로 겪을 일이 사소하지 않다는 점을 확인받을 권리가 있었다. - P117

질병을 겪으며 아픈 사람이 마주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삶이 너무도 급격하게 뒤바뀔 때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는가다. 그리고 화학요법 치료는 이 어려운 문제를 더 크고 뚜렷하게 만든다. 세 차례의 치료를 받으면서 내 삶은 파괴와 회복이 오르락내리락 이어지는 괴상한 롤러코스터 같은 것이 되었다. 새로운 부작용에는 또 다른 약물이 필요했고, 어려운 일 하나가 지나가면 신경 써야 하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다. 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문제들 뒤에는 유일한 진짜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 P126

야곱이 천사와 씨름을 벌인 이야기는 내가 살아가는 데 함께하는 이야기가 되었고, 질병에 관한 나만의 신화 같은 것이 되었다. 야곱의 이야기는 아프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아프다는 것은 길고 긴 밤 내내 다친 채로 씨름하는 것이며, 해가 뜰 때까지 지지 않는다면 축복을 받는 것이다. 야곱의 이야기를 거쳐서 질병은 모험이 됐다. - P130

암이 아닌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그냥 아픈 것이지만, 암을 앓고 있는 사람들은 암과 싸운다‘. 심장 문제가 있을 때는 아무도 내가 내심장과 싸워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지만, 암을 두고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말은 "싸워야 합니다"였다. 부고란을 읽어보라. 암으로 죽는 사람들은 ‘용맹하게 전투를 벌인 후에’ 또는 ‘오랫동안 싸운 끝에 죽는다. 정부가 주도하는 암 연구 프로그램들은 암에 맞서는 ‘전쟁‘이다. 빈곤, 범죄, 약물중독을 ‘암’이라고 언급하는 신문기사들은 암을 무시무시한 타자로 여기는 사회의 태도를 반영한다. 이 타자를물리치기 위한 적절한 대응은 오직 전투뿐이다. 하지만 나는 질병을 전투를 치르듯 살아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P133

누군가의 표현처럼 ‘질병은 빌어먹을 일의 연속‘이다. 그리고 이 연속되는 일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그렇기에 전시에 사는 것 같다는 말은 그 나름대로 적절했다. - P134

우리는 암이나 종양과 싸울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은 몸의 의지를 믿고 의학에서 최대한 많은 도움을 받는 것이 전부다. 우리는 수년 동안의 의식적인 행동을 통해 몸의 의지를형성하지만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나는 우리가 건강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차 있다고 여전히 믿지만, 분명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병이 났다고 죄책감을 느낄 만큼, 아니면건강하다고 자랑스러워할 만큼 나는 전능하지 않다. 내가 할수 있는 일은 오직, 벌어지는 일을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지 계속 모색하는 것뿐이다. - P141

눈에 잘 띄며 사람들이 가장 흔히 연상하는 암의 징후는 머리칼이 빠지는 것이다. 탈모증, 말하자면 대머리는 암 자체때문이 아니라 화학요법 치료 때문에 생긴다. 모낭, 장 내벽, 잇몸을 이루는 세포는 암세포와 마찬가지로 급속하게 분화하는데, 화학요법은 세포를 정밀하게 구분해서 죽이지 않고 이런 부위의 세포도 함께 파괴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나타난다. 대머리가 된다는 것은 화학요법 치료가 잘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라는 속설이 완전히 허튼소리는 아닌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머리칼이 빠질 때 환호할 수는 없었다. - P147

가장 튼튼했던 관계조차 힘들어졌다. 아픈 사람은 질병을 겪는 동안 다른 사람들을 바로 이렇게 경험한다. 미묘하게 부정당하고 어렵게 인정받는다. - P158

나아가 고통도 부정된다. 치료 제공자들은 표현해도 괜찮은 감정이 어떤 것인지 환자에게 암시를 주고, 환자들은 의료진에게 의존하고 있으므로 암시를 받아들이곤 한다. 간호사와 의사들이 환자의 고통을 ‘훨씬 더 상태가 좋지 않은‘ 다른 누군가의 고통과 비교할 때, 환자는 자신의 경험을 부정하라는 신호를 받는다. 각 개인의 경험이 갖는 고유성은 부정된다. 상실, 몸 손상, 통증이 비교되면서 각 개인의 고통을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나타난다. ‘최악의 경우‘인 환자의 고통과 비교될 때 한 사람의 경험은 가치가 떨어진다. 이런 논리를 따라가면, 처음에는 병원 안에서 최악의 상황에 있는 사람과 비교되다가 나중에는 전 세계에서 최악의 상황에 있는사람과 비교될 수도 있을 것이고, 최악의 상황에 있는 이 한사람에게만 불편이라든지 불행, 공포, 아니면 기타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자격이 있게 될 것이다. - P160

한 환자를 다른 환자와 비교하는 의료인들은, 자신이 신체적 고통을 줄여줄 수 없다면 전문가로서 실패한 것이라는 믿음 안에 갇혀 있다. 고통이 계속될 때 이들은 위협을 느끼며, 그래서 계속되는 고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자신이 치료할 수 없는 무엇을 환자가 경험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더는 치료를 할 수 없는 때라도 여전히 돌볼 수는 있지만, 이 사실을 의사와 간호사들은 자주 잊는다. 고통이 치료될 수 있느냐와는 상관없이 고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 그것이 바로 돌봄이다. - P161

임신이나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도 마찬가지다. 삶이 ‘커리어‘로 이해될 때 이력서는 몸이 연장된 것이 되고, 이력서상의 빈틈은 조직에서는 낙인과 같다. 사람들 대부분은 직장에 다녀야 하므로, 아픈 사람이 ‘생산성‘을 자신의 가치를 재는 척도로 받아들이지 않기란 어렵다. - P163

어느 친척은 아픈 동안 캐시와 나의 삶에서 사라져버린 몇몇 사람의 행동을 변호해주려고 했다. 그들이 "멀리서 조용히 걱정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암을 마주하길 어려워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아픈 사람과 돌보는 사람 측에서 보면 ‘조용히 걱정’하는 일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 멀리 떨어져있다는 것 자체가 암이라는 질병을 다시 한 번 부정하는 일로 느껴진다. 내가 정말 위중한 상태가 된다면 의사들이 다르게 행동하길 바랐듯이, 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조금 더 많이 기대했다. 기대가 언제나 충족되지는 않았다. 관대했던 사람들은 더 너그러워졌지만 바빴던 사람들은 계속 너무 바빴다. - P165

돌보는 사람은 아픈 사람에게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노고를 자진해서 떠맡는다. 사회는 돌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돌봄 제공자는 대부분 여성일 때가 많기 때문에, 돌봄은 여성들이 직업과 승진에서 불리해지는 핵심 요인이 된다. - P168

아팠던 사람은 병을 살아낸 경험에 관해 말할 수 있지만, 돌보는 사람이 살아낸 것을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돌봄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우리 사회에는 별로 없고, 그래서 돌봄은 인정되지 못한 채로 남겨진다. - P169

사회가 두려워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병들은 언제나 성격에 관련된 이론으로 설명됐다. 암을 주제로 한 책 중에서도 대단히 분별 있고 합리적인 주장을 담고 있는 수전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은 이러한 사고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이 책에 나오는 예를 보자면, 중세 시대에는 행복한 사람은 전염병에 걸려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 중세 사람들이 전염병을 막을 수 없었듯이 우리도 암을 막을 수 없으며, 그들이 전염병을 두려워했던 만큼 우리도 암을 두려워한다. 중세 사람들은 행복이 보호책이라고 주장했고, 우리는 분노나 성, 혹은 유행 중인 다른 무엇을 억누르지 않아야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 P174

병원에서건 집에서건 아픈 사람이 분노 표현을 최상의 거래로 여기는 경우는 드물다. 의존은 질병을 앓을 때 기본적인 상태며, 아픈 사람은 자신이 의존하고 있는 이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거의 겁을 먹은 채로 행동한다. 잠시 후 끝이 뾰족한 기구를 들고 다가올 사람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일은 좋은 거래를 하기 위한 행동은 아닐 것이다. 또 기분을 상하게 하면 변기를 바로 가져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혹은 잘 자라는 인사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분노를 표현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정말로 분노를 표현하는 환자는 보통 더는 잃을 게 없다고 믿는 사람일 때가 많다. 상황도 병도 이미 바닥을 쳤기 때문이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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