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원 [책으로 말 걸기]
은유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이화영 [페인트] - 읽은 책
최영희 [너만 모르는 엔딩]
다부사 에이코 [욱하는 나를 멈추고 싶다]
손흥민 [축구를 하며 생각한 것들] - 집에 있는 책
김지혜 [선량한 차별주의자] - 읽은 책 👍
한재훈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
소복이 [소년의 마음]
박상기 [옥수수 뺑소니]
정은정 [대한민국 치킨전]
우리학교 [슬기로운 미디어생활]
이종철 [까대기] - 읽은 책 👍
정세랑 [청기와주유소 씨름 기담]
공선옥 [라면은 멋있다] - 읽은 책

소년원 아이들이 독서동아리는 해서 뭐 하냐고? 책을 읽고 독서토론을 할 수준이 되냐고?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고등학교에 근무하면서 15년 이상 아이들과 책을 읽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알게 되고 믿게 된 것이 있다. 아이에게 "책으로 말을 거는" 일이 쉬우면서도 위대한 힘을 지녔다는 것, 심하게는 사람의 영혼을 뒤바꿀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책을 함께 읽은 사람들은 감정을 나누고 서로 마음을 연다. 서로를 향해 무장해제한다. 주변의 일들에 함께 물음표를 꽂아본다. 당연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는 순간이다. 장애인이 그런 대우 받는 게 정당한 거야? 여자와 남자에 대한 차별 괜찮은 거야? 나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 거야?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거야? 삶과 세상에 대해 점점 더 나은 쪽으로 생각하게 된다. - P66

수업이 끝날 무렵, 자격증 반으로 옮긴 도운이가 교실문을 빼꼼 연다. 나에게 편지를 주고 얼른 간다. 소년원에서는 자신이 수업 듣는 교실 외의 곳을 드나들면 안 되어서, 편지만 주고 후다닥 사라진 것이다. 도운이는 헤어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한 수업으로 옮겼는데 국어수업이 너무 그립다고 한다.

쉬는 시간에 잠깐 인사하러 들르면, 선생님이 환하게 웃어주셔서 기분이 좋아요.
선생님은 왠지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것 같아요.
저는 이제 다른 반 학생인데도, 간식을 챙겨놓았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를 늘 환대해주셔서 고맙습니다. - P68

도운이가 ‘환대’라는 말을 정확하게 쓴 것을 보고, 팔뚝에 약하게 소름이 끼쳤다. 특정한 말을 공유한다는 것은 말에 붙어서 오는 마음도 함께한다는 뜻이다. 도운이는 환대라는 말을 배웠다. 사람이 사람을 반갑게 맞고 정성껏 대하는 마음을 배웠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영혼이라면 아무렇게나 살지않을 것이다. 아무렇게나 살지 못할 것이다. - P69

"그럼! 너희는 무척 훌륭한 독자야! 서로 책을 읽어주면서 꼼꼼하게 작품을 읽고 많은 질문과 감상을 막 쏟아내잖아. 작가님이 자기 작품에 대한 이렇게 왕성한 반응을 보면, 아마 많이 기뻐할 거야."
"선생님, 그러면 알퐁스 도데 작가님도 모셔올 수 있으세요?"
"어…. 이분은 19세기 후반의 소설가야. 1897년에 돌아가셨다고 책날개에 나오네."
"아, 돌아가시지만 않았어도!"
"안 돌아가셨어도 모셔오기 힘들어. 프랑스 사람이야. 만약 모셔온다고 하더라도 돈도 많이 들고, 말도 안 통하고……"
생존해 있는 외국 작가의 작품은 수업시간에 되도록 읽지말아야겠다. 아이들이 책을 재미있게 읽고, 외국 작가님을 모셔오라고 하면 난감하니까.
아이들은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가장 좋아했다. - P80

"너무 고마워. 너희들 짱이다! 전국 소년원에서 독서동아리 최초야, 최초! 이렇게 열심히 써 오다니! 뭘 해도 잘할 놈들이야!"
동아리 일지를 가져온 강준이와 근철이에게 이런 칭찬을 막 날렸다. 수업이 끝나고 소년원 밖으로 나오자마자 독서동아리 일지를 얼른 꺼내 봤다. 궁금했다.

"자동차는 고장나면 고칠 수 있잖아. 나도 내 인생을 고쳐 보고 싶어."
"누구도 탓하고 싶지 않아."
"15점짜리 부모 밑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아이도 있어." - P84

"부모는 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

마음이 저릿하다. 몇 글자 안 되는 분량의 활자에…. 독서는 철저히 자기 입장에서 읽는 행위다. 이를 사무치게 느낀다. 이 문장들에 한동안 머물렀을 마음. 나야 그 삶의 맥락을 알 도리가 없는 타인이지만, 책의 어떤 손길이 소년의 마음 쓰다듬고 지나갔으리라. - P85

"다음 소설에 우리가 소년원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써주실수 있어요?"
"현수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도 이 소설을 읽었나요?"
"동주의 모델이 된 실제 인물이 있나요? 그럴 리가 없어요. 너무 비현실적인 캐릭터예요. 키는 180에, 웃음은 해맑고, 머리카락은 부드럽게 바람에 날리고, 빛이 나는, 그런 사람이 어디 있어요?" - P89

소년원의 아이들은, 찬현이처럼 가슴에 얼음덩이를 하나씩 안고 있다. 소년원에 있을 때야 위축된 마음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바깥세상에 나가면 얼음덩이 같은 마음은 수시로 고개를 들 것이다. 내가 어디 다녀왔는지 아는 거 아닌가. 내가 어디 다녀왔다고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가. 나를 경계하는건가. 나를 배제하나. 이런 마음들. 성실한 나의 모습을 타인에게 보이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 그것은 자기 마음의 문제다.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 P100

"이야기 어떠니?"
"어우, 소설에 욕이 왜 이렇게 많이 나와요?"
"욕이 많이 나와서 어땠어? 좋았어?"
"아뇨! 좋을 리가 없죠. 싫어요."
푸하하. 나는 정말 이렇게 소리 내서 웃었다. 평소 자신들이 하는 욕의 총량을 생각하면 새 발의 피일 텐데, 이 정도 분량의 욕에 분개하다니…… 웃음이 났다. 그래도 ‘욕설’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마음이라니 얼마나 다행이야. - P108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단점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욱하지 않으려면 나 자신의 ‘마음‘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적은 인상 깊은 문장은 남의 일기장을 읽는 것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아이의 마음 한복판에 별안간 서게 된 듯하다. 학교에서 전교생의 독서토론 수업을 이끌고, 몇백 명을 독서동아리에 발을 들여놓게 하고도 미처 몰랐다. 인상 깊은 문장을 쓰는 것이 마음을 들키는 결정적인 방법이라는 것말이다. 마음의 맨살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몇 글자 안 되는 문장에 가슴이 뻐근하다. - P112

요상하기도 하지. 나의 ‘미친 신남’이 멈칫거릴 때, 마음의 온도가 미지근해질 때, 그래서 시무룩해지려는 찰나, 이런 녀석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유성이는 오늘 내 마음이 미지근해질 것을 미리 알기라도 한 것처럼, 내 마음의 애愛 위에 증僧이 스멀스멀 덮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나에게 약을 처방해주었다. 그것도 ‘쎈’ 약. 처방전에 쓰여진 말은 이렇다.

"당신 애쓰는 거 우리가 알고 있으니, 좀 더 힘내서 해봐요." - P128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저자는 고정관념(편견)은 사고의 범주를 기반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예를 들어 머릿속에서 ‘소년원-불량 학생-폭력-험상궂은 인상-안 좋은 가정환경’과 같은 생각이 범주화되면서, 우리는 고정관념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소년원에서 이 범주를 벗어나는 아이를 만나면 머릿속에 저절로 물음표가 생긴다. 인상이 좋으면 이렇게 인상 좋은 애가 무슨 범죄를? 말투가 착하고 순진해도이렇게 착한 애가 무슨 잘못을? 책을 열심히 읽어도 이렇게 책을 잘 읽는 애가 어떻게 범죄를? 이런 나의 의문은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 P137

"개아리 빨면 가만 안 둔다.", 곱지 않은 말에 감동받았다. 살아가면서 이 말에 또 마음 움직일 일 있을까. - P141

일전에 한재훈 선생님의 『서당공부, 오래된 인문학의 길』을 읽으면서 머릿속이 단정해졌다. 일곱 명 이내를 유지하는 우리 공부의 규모, 획일적인 진도 없이 개별화 수업을 하는 특성, 배우고 외워서 개인별로 검사를 받는 공부 순서, 소리 내어 책을 읽는 방법, 이런 것들이 어설프게나마 서당과 비슷하다고 여겨진 까닭이다. 학생이 없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그날로 사라졌다. 서당의 훈장은 학생 수가 적어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 것이 어울린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즐겁고 성실하게 배워서 삶이 조금이라도 달라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어울린다. 소년원 서당 학생 수가 가장 적었을 때는 한 명이었다. 한 명이라도 있으니, 앞서 배운 아이가 신입생에게 시를 외우고 책을 읽는 본本을 보여줬다. 먼저 배운 학생이 육성으로 이 수업이 괜찮다는 홍보를 해주었다. 새로 들어온 아이도 자연스럽게 국어수업의 전통(?)을 알게 되었다. 학생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들쭉날쭉한 것도 이런 좋은 점이 있다. - P143

소년이 인형 토토를 들고 "레이저 발사!"라고 한 말을 철민이가 읽었을 때 우리는 웃음보가 터졌다. 요즘 한껏 무게 잡는 철민이가 ‘레이저 발사’라는 어린아이 같은 말을, 목소리 잔뜩 내리깔고 읽으니 안 웃을 수가 없다. 할머니가 죽었을 때 소년은 "할머니를 땅에 심고 왔어."라고 한다.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어린아이의 표현에 또 웃음이 터졌다.
아이들은 심드렁하게 책장을 넘긴다. 시시하고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피식 웃으면서 책장을 넘긴다. 나쁜 자식들. 내가 책 선택을 잘못했나. 소년이 바다 한가운데서 "보고 싶은 사람은 할머니예요."라고 했을 때, 철민이가 껄렁거리는 목소리로 이런다.
"설마 할머니가 바다를 헤엄쳐서 오는 건 아니겠지?"
"철민아, 궁금한가 보구나! 책장을 넘겨봐!"
책장을 넘겼다. 할머니가 두툼한 허리에 허리보다 더 두툼한 튜브를 끼고 헤엄쳐서 오고 있었다. - P148

박상기 작가의 짧은 책 『옥수수 뺑소니』를 준비했다. 손바닥만 한 크기이고, 글밥도 성기고 그림도 종종 나오는 얇은 책이다. 민우는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다른 아이들도 없이 혼자인데, 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을 5초 정도 했다. 그래,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주자. 20분 조금 넘게 걸렸다. 중간에 재채기가 한 번 나고 목이 잠길 때가 있었지만, 나름대로 실감나게 읽어주었다. ‘선글라스 개새끼‘와 같은 말은더 실감나게 읽으려고 노력했다. 중간쯤 읽다가 물어보았다.
"민우야? 샘이 읽어주니까 좋아? 이야기 재미있어?"
"예, 좋습니다. 재미있습니다."
"내가 소설 끝까지 읽어줄까?"
"아니에요. 저도 조금 읽을게요."
미안해서 그런 것 같다. 자기도 읽겠단다. 떠듬떠듬 읽기는 했지만 4페이지 정도, 민우가 읽었다. 그렇게 우리 둘이 끝까지 다 읽었다. - P153

고정관념의 뿌리는 깊고 집요하다. 그 뿌리가 내 몸의 신경 어디쯤까지 닿아 있는지 나도 알 수 없다. 아이들이 시를 잘 외울 때, 책을 잘 읽을 때, 나에게 정성 들인 편지를 건넬 때, 나의 마음은 많이 흔들렸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흔들림은 감동보다는 충격에 가까운 것이 아니었을까. 내가 지닌 고정관념과 충돌하는 데서 생긴 충격 말이다.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나는 나의 편견과 마주쳤고, 그렇게 흔들려온 봄, 여름, 가을이었다. - P179

"시간 남았는데, 철민이 시 열 편 외운 기념으로 시 외우는 거 음성 녹음할까?"
"아니요. 싫어요."
철민이가 단호하게 거절한다.
"왜? 너 목소리 멋있잖아. 나중에 집에 가면 녹음 파일 보내줄게."
"싫어요, 샘. 이런 데서 살았다는 흔적, 어디에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 - P187

일이란 돈과 시간이다.
일이란 노동이다.
일이란 동전의 양면이다.

아이들이 만든 한 줄 명언이다. 십대 후반이라는 싱그러운 나이를 생각하면, 일은 꿈을 이루고 자아를 실현하고 성취감을… 뭐 이런 말들이 나올 법하지 않나. 내 앞의 소년에게 일은 그저 힘든 노동일 뿐이다. 시간을 들여 몸을 쓰면 돈을 받는 것이다. 일은 밥을 벌기 위한 수단이다. 제법 살아본 자, 더이상 젊지 않은 자의 목소리 같다.
아, 삶의 신산함을 이미 알아버린 소년이여. - P191

"비 오는 날이면, 작은 상자는 품 안에, 큰 상자는 비닐로 싸서 옮기지만, 정작 자신의 몸은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는 택배 배달하는 이". 아무 이름 없이 오토바이를 타고 도시를 질주하며 누군가가 기다리는 ‘무엇‘을 전달하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일하는 손이다. 그리고 1970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전태일. 마디와 마디로 분절되어 있지 않다.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이들이 땀 흘린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고있는지. 일의 위험으로부터 온전한 보호를 받고 있는지. 기계가 아닌 인간의 삶을 살고 있는지. "몸도 마음도 파손" 직전의 지경에 처한 것은 아닌지. 혹 "몇 번 쓰고 버릴 거니까. 그냥 쓰라고?!"라는 목소리가 세상에 쩌렁쩌렁한 건 아닌지. 미심쩍다. 수상스럽다. - P197

"샘도 저희 때문에 배우거나 성장한 거 있으세요?"
"그럼. 너희 때문에 깨달은 것도, 반성하고 배운 것도 많지."
"하긴. 제가 몇 개 가르쳐드렸죠."
"뭘 가르쳐줬더라?"
"일단 ‘개아리 빨다’라는 말을 가르쳐드렸죠."
"아하!"
"문신을 하려면 등 중앙에 호랑이 문신을 크게 하시라는 것(수영장에 가면 사람들이 길을 내준다나 뭐라나), 그리고 욕하실 때 목소리를 깔고 크지 않은 소리로 말하면, 상대방이 겁먹을 거라는 거?" - P199

아이들이 먼저 교실에서 나가고, 내가 맨 나중에 나왔다. 나오니 철민이는 벌써 사라졌다. 나만 서운했다. 내가 느낀 서운함이 싫지는 않다. 여기에서 할 수 있는 내 역할의 최대치와 한계를 이미 여러 번에 걸쳐서 학습한 까닭이다. 대신 마음의 악수를 한다.
철민아, 지난 여름에 너를 만났을 때 네가 처음으로 외운 시가 ‘풀꽃’이었잖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심드렁하게 읽더니 네가 그랬어. 저는 한 번만 봐도 예쁜 사람이라고. 그래, 처음 만났을 때부터 너는 귀엽고 예뻤어. 세상에 나가서 네가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도 너를 그런 존재로 여겼으면 좋겠다. 한 번만 봐도 예쁜 존재. 그래서 또 만나고 싶고 오래오래 알고 지내고 싶은 사람.
혼자 걷지 말고, 서로를 어여삐 여기는 사람들과 많이 웃고, 자주 손 잡아주며 살기를 기도할게. 함께 공부한 세 계절, 여름과 가을 그리고 겨울, 철민이와 함께여서 많이 웃었다. 문신하게 되면 꼭 등 중앙에 호랑이 그림으로 할게. 욕할 일이 있으면 목소리는 반드시 낮게 깔게. 안녕.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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