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회색 인간]
박찬일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
탁경은 [사랑에 빠질 때 나누는 말들]

퇴근후 도서관 예약도서 찾으러 들렀다가 박찬일 작가 책이랑 탁경은 작가 책도 빌려옴. 회색 인간은 이미 읽었고. 박찬일 작가 책은 애들 읽으라고 해야지. 탁경은 작가 책은 애들 취향이 아니라 내가 읽어야겠다. 일본 애니메이션 같은 샤라랑~한 표지. 예쁘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책이 있는 만남, 책이 마음과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되는 만남, 이런 만남의 힘이 무르지 않다는 것을, 단단하다는 것을 머리 아닌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이 기록의 한계는 한계대로 남겨둔다. 빈 곳은 억지로 메우지 않고 구멍으로 비워둔다. 한계와 빈틈을 비집고 나오는 물음표에 의미를 두고 싶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이 나의 미미한 변화를 알아준다면, 사회에 물음표 하나 던져준다면 기쁘겠다. - P14

시를 외우며 소년이 나와 눈을 맞췄을 때 나는 조금 두려웠다. 소년의 눈빛에서 어둠을 읽어내면 어쩌나. 차가움, 무관심, 무기력을 보면 어쩌나. 이런 두려움이었다. 처음으로 나와 눈을 맞추고 시를 외운 아이는 강준이였다. 눈을 들여다본 순간 놀랐다. 눈이 아직 아이였다. 어른 아닌 소년의 눈빛이었다. 강준이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 다른 이의 눈을 보는 것이 어색한 걸까. 아니면 시를 외우다가 틀릴까봐 긴장한 걸까. - P22

"이 구절이 왜 인상 깊어?"
"지금이 저에게 그런 시간이에요. 바닥까지 추락한 시간."
아이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사람은 자신의 처지와 관점에서 책을 읽는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은 이별 이야기에 유난히 목이 멘다. 이별을 다룬 세상의 모든 노래 가사는 내 마음을 알고 쓴 것만 같다. 갇힌 사람에게는 자유의 이야기가 절절하다. 소년원에 갇힌 아이는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라고 여긴 것이다. - P24

그래, 나와 눈을 맞추고 시 스무 편을 외우게 될 늦봄 어느 날, 너와 헤어지면 좋겠다. 그 시들은 네가 살아가게 될 무수한 시간 어디쯤에서 한 번쯤은 살아나겠지. 네 입에서 살아날 시가 너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너의 사랑도 더 깊게 해주고, 삶의 고단함을 매만져주면 좋겠구나.
이별이 빨리 찾아오는 것이 기쁘고 다행스러운 관계도 있다. - P29

평상시에는 수업 시작할 때 간식을 조금 내놓으면 아이들은 별 격식 없이 잘 먹는다. 조금 전에 아침밥을 먹었을 텐데. 아침을 굶었나. 너무 잘 먹어서 이런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의아함에 이해의 약을 서둘러 뿌렸다. 그래, 입이 수시로 궁금할 때지. 더 커야 하니까. 더구나 여기에선 몸도 마음도 아쉽고 허전하니 그렇겠지. - P34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는 시기가 제각각이다. 되도록 빨리 이별하는 것이 ‘경사로운 일‘인 희한한 관계다. "너와 더 오래 국어공부 하고 싶어."라는 말은 악담이 되어버리는 별난 곳이다. 현식이와 은섭이가 다음 주에 집에 간다. 두 녀석은 오늘사회 복귀 수업에 가야 하는데, 나와의 마지막 수업이라서 일부러 왔단다. 더구나 사회 복귀 수업에서 피자를 먹을 수 있는데, 이를 포기하고 왔단다. 피자 대신 택한 국어수업이라니…… - P37

"제가 이전과 다르게 살 수 있을까요? 그게 제일 겁나요. 여기 들어오기 전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될까봐……"
이 순간, 나의 안에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겨를 없이 무너진다. 무너진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놓인 벽 아니었을까. 그 벽의 한 귀퉁이가 와르르 무너졌다. 무너진 틈으로 이 녀석의 존재가 현실의 무게로 묵직하게 전해져온다. 이 녀석이 나에게 아무 끈도 닿아 있지 않은 타인이 아니게 되었다는 신호다. - P46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의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 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 정현종, <방문객> - P46

"나는 쥬제뻬를 믿었다."

『지중해 태양의 요리사』를 읽고 명구의 마음에 남은 문장이다. 명구는 부럽다고 한다. 누군가를 믿을 수 있다는 것,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부러워했다. 최근에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을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마음을 들키는 좋은(?) 방법이다. 책 한 권을 읽고 나서 단 한 줄의 인상 깊은 문장을 쓰면, 저자의 마음이 아닌 책을 읽는 사람의 마음이 드러난다. - P48

우리는 부족할지라도 환대의 준비를 했다. 이 시간의 함께 읽기 경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언젠가 아이들이 알게 될까? 환대로 사람을 맞이하는 경험, 자신이 주체로 활동하는 경험은, 나도 타인도 소외시키지 않는 연습이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연습이다. 이런 연습이 쌓이면 삶에서 적어도 ‘나’를 소외시키지는 않을 것 같다. 막 살지 않을 것 같다. 길 밖으로 떨어지더라도 자신을 돌보며 다시 삶의 길 위에 올라서게 되지 않을까. 두 다리에 힘 주고 걸어가게 되지 않을까. - P50

"사진의 레스토랑 예쁘지? 저기가 쥬제뻬가 운영하는 시칠리아 식당의 정원이야. 야외 테이블에서 저녁 먹으면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나중에 좋아하는사람과 저기에 가게 되면, 내가 소개해서 왔다고 쥬제뻬에게 꼭 말해. 아마 더 맛있는 음식을 해줄 거야."
의도를 지닌 이야기였다. 그렇게 짐작되었다. 소년의 마음에 ‘하고 싶은 일’ 하나 만들어주고 싶은 의도. 하고 싶은 일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무작정 방치하지 않는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 돈을 모으든 공부를 하든, 어떤 노력이건 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길 안의 삶‘을 살게 된다. 박찬일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슬쩍, 작은 일 하나 보여주고 "이거 하고 싶지 않니?"라는 말을 가만히 건넨다. 그 일 하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돌보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이 마음이 소년들에게 맑은 물로 스미고 있었다. - P54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 윤동주, <별 헤는 밤>

특히 이 구절을 좋아했다.
"이 구절을 왜 좋아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잖아요. 저도 지금 겨울인 것 같은데, 제 인생에도 봄이 오면 좋겠어요. 그래서 좋아요."
아이들에게 지금은, 자기 인생의 겨울이다. 지금은 자신의 존재를 긍정할 수 없다. 스스로도 긍정할 수 없고, 대부분의 타인도 소년의 존재를 좀처럼 긍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 - P61

을 영영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내내 부정당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소년의 마음이 시에 닿게 된 것일까. 물론 소년의 처지는 윤동주 시인의 삶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러면 좀 어떠랴. 사람은 다 제각각 자신만의 사연과 맥락에서 삶의 봄도, 겨울도 만나는 것이 아닌가. 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서 백 명의 독자를 만나면 백 가지 의미를 지닌다. 백 개의 작품이 된다. - P6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