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리라고 한 건 널 끼워 넣는다는 말이 아니야. 게이들은 데이트 상대를 찾는 게 더 힘들다고 말하려는 거였어. 보통남자가 여자한테 데이트 신청을 하면 최악의 결과라고 해 봤자 여자한테 비웃음을 사는 거지. 그런데 남자가 남자한테 데이트하자고 했다가는 뼈도 못 추리는 수가 있거든."
지난 1년 동안 내성정체성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두 번 한 것이 아니었다. 꼭 데이트 상대를 찾고 싶어서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런 문제를 터놓고 말할 수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했을 것이다. - P23

"만약 게이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숨기고 살지 않아도 됐다면, 그리고 서슴없이 게이임을 드러낼 수 있었다면 네가 아는 사람 중에도 네 고민을 들어 줄 사람이 많았을 거야. 게이를 한 명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어. 단지 모른다고 착각할 뿐이지." - P24

"그럼 첫 번째와 두 번째는 건너뛰어야겠네. 미성년자 관람불가거든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얘기해 주려고 했던 건 세 번째였으니까. 우리 게이들은 이 세상 모든 게이가 딱 하루만이라도 다 파란색으로 보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 했지."
내 눈은 휘둥그레졌다.
"왜요?"
"그럼 이성애자들이 자기가 아는 사람 중에는 게이가 없다고 착각하지 않을 거 아냐. 그동안 쭉 게이들에게 둘러싸여 살아왔으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잘 지냈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세상에 게이 경찰, 게이 농부, 게이 교사, 게이 군인, 게이 부모, 게이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더는 외면하지 못하게 될 거야. 우리도 드디어 숨어 살 필요가 없게 되고." - P26

수녀님이 다그쳤다. 바로 그때, 신디가 허리를 펴고 턱을 치켜들더니 심문을 끝내 버렸다.
"우린 바싹 붙어서 잠드는 걸 좋아하거든요."
별것 아닌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태연한 말투였다. 우리 행동에 아무런 잘못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 실제로 우린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숟가락을 포개어 놓은 것처럼요."
방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 사랑스러운 나의 신디! 겁쟁이인 줄만 알았던 나의 신디! 그 순간만큼 신디가 자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렇게 신디는 등을 꼿꼿하게 세우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채 우리가 성 마리아 여학교에서 보낸 시간에 종지부를 찍었다. - P47

게다가 그 순간 나는 어떤 깨달음에 온 정신이 쏠려 있었다. 다른 모든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심지어 부모님이 고른 사립 대학교에 합격하려면 꼭 필요했던 성 마리아 여학교 졸업장까지도 뒷전으로 밀려날 만큼 엄청난 깨달음이었다.
지금 신디와 나는 우리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짓을 했다고 비난을 받은 것이었다. 정말이지 그 순간까지 우리 둘 다 그런 일은 상상조차 해본적 없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해 그런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갑작스럽게 열린 가능성,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가능성에 눈을 뜨는 순간, 나는 난생 처음으로 한 여자에게 현실적인 사랑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사랑이 수녀님과 부모님에게서 인정받는 것이나 대학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간절히 수도 있음을, 심지어 세상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상관없을 만큼 절실할 수도 있음을 깨달은 것이다. 나는 놀라움과 두려움,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 P49

그랬더니 빳빳하게 다림질한 하얀 옷에 까만 앞치마를 두른그 비쩍 마른 하녀가 그러더라.
‘저 시중 못 들겠어요. 남자든 여자든 어린애든………..’
그러면서 갑자기 날 쳐다보더니 이러는 거야.
‘유대인 피가 조금이라도 섞인 것들한테는 두 번 다시 시중 못 들어요.‘
그래서……."
할머니께서는 잠시 말씀을 멈추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우린 모두 접시를 들고 부엌으로 가서 직접 음식을 덜어 먹었지. 카를 삼촌만 빼고 말이야. 그분은 그때까지 조카가 데려온 학교 친구가 유대인이라는 걸 모르셨다고 하더구나."
"독일에서 그런 일이 있었을 때 할머니가 거기 계셨단 얘기는 처음 들어요." - P56

"내가 독일에 갔던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어. 그러니까 아웃사이더가 된 기분이 어떤 건지 말하지 않아도 안단다. 편견이 어떤 건지도 말이야. 앨리슨, 너 자신에 관해서 이 할미한테 말해 줘서 고맙다. 나한테 맨 먼저 얘기해 줘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르겠구나."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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