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념무상으로 수프와 토마토를 먹었다. 매일매일 같은 음식을 먹는다.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던 중 치매 관련 방송이 나왔다. "엄마가 같은 음식만 만들어먹을 때 처음으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어이쿠, 깜짝이야. - P143

"넌 피부에 주름이 하나도 없네. 좀 만져보자" 라며 변태 할아범처럼 굴었다. 나에게도 이처럼 젊은 시절이 있었던가. 청춘이란 자신의 젊음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너도 머지않아 나처럼 되겠지, 아, 고소하다. 그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처음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 사람처럼 흥분하며 사랑스러운 침대 위로 쓰러졌다. - P151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꽃 한 송이의 생명조차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아는 것이라고는 나 자신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죽는다는 사실이다. - P182

나는 일평생 같은 실수를 반복해온 듯하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아아, 이런 게 정신병이다. - P187

"나는 ‘날 도대체 왜 낳았어?‘라는 말도 들었어. 중학생이나 할 법한 소리잖아. 정말로 화가 나."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런 다음 다 함께 웃었다. "있잖아, 인생이란 이렇게 하찮은 일이 쌓여가는 것일까?" 너무도 우스꽝스러운 나머지 바닥을 구르며 웃었지만, 왠지 기분이 상쾌해지지 않았다. - P194

우리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방금 나온 사람이 또 나왔는데도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이 사람, 이 사람!" "아아, 이름 뭐더라?" "잊어버렸어. 진짜 답답하네, 1초 만에 까먹다니."
이제 곧 일흔인 우리가 적령기의 정치인을 품평한다. "저런 늙은이는 싫어." "머리숱도 적은데 뭐 하러 저렇게 앞부분만 넘겨 빗은 거람." "넌 어때?" "싫어, 싫어." 서민의 즐거움입니다. - P226

OO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굉장한 미모다. 하지만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다.
드라마를 보는 동안 나는 화사한 마음을 모조리 ○○에게 쏟아부었다. 그러면서 나는 한 살을 더 먹었다.
설날이 되었다. 올해의 화사한 마음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 정하기 위해 기력을 쥐어짰다.
마음을 정한 사람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까먹었다. 게다가 요즘 젊은 남자는 모두 똑같이 생겼다.
똑같이 생겼으니 이름을 구별할 수 없다. 여자들 얼굴도 완전히 판박이라서 남자보다도 더 구별하기 어렵다. 아아, 나는 이제 시대에 뒤처졌다. - P229

"어이, 마리코, 저거." "저거라고 하면 뭔지 몰라." "저거 말이야, 저거." "아, 모른다니까." 이렇게 대화하거나, "마리코, 저거 좀 집어줘" "응" 이런 식으로 말할 때도 있다.
저거, 그거, 저쪽, 이쪽, 대명사의 연발이다.
동년배끼리 모이면 이거, 그거, 저거, 오해, 착각, 반쯤 죽은 사람들의 모임이 된다. - P230

"몇 년이나 남았나요?" "호스피스에 들어가면 2년 정도일까요." "죽을 때까지 돈은 얼마나 드나요?" "1천만 엔." "알겠어요. 항암제는 주시지 말고요, 목숨을 늘리지도 말아주세요. 되도록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럭키, 나는 프리랜서라 연금이 없으니 아흔까지 살면 어쩌나 싶어 악착같이 저금을 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근처 재규어 대리점에 가서, 매장에 있던 잉글리시 그린의 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거 주세요." 나는 국수주의자라서 지금껏 오기로라도 절대 외제 차를 타지 않았다.
배달된 재규어에 올라탄 순간 ‘아, 나는 이런 남자를 평생 찾아다녔지만 이젠 늦었구나‘라고 느꼈다. 시트는 나를 안전히 지키겠노라 맹세하고 있다. 쓸데없는 서비스는 하나도 없었고 마음으로부터 신뢰감이 저절로 우러났다. 마지막으로 타는 차가 재규어라니 나는 운이 좋다. - P2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