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새뮤얼 R. 서머스와 마이클 I. 노턴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지된 반흑인 편견이 감소했다고 대답한 백인 응답자들은 반백인 편견은 증가했다고 응답했다. 인종주의를 제로섬 게임처럼 여기는 것이다. 이 관점은 너에 대한 적대감이 줄어들면 나에 대한 적대감이 늘어난다는 제프 세션스 전법무장관의 말에 잘 압축되어 있다. 이 연구가 진행되던 당시 미국 백인들은 실제로 반백인 편견을 반흑인 편견보다 더 큰사회문제로 여겼다. 오로지 한 명을 제외한 미국 대통령 전원이 백인이고, 역사적으로 의석의 90퍼센트를 백인이 차지해왔고, 백인이 보유하는 평균 순자산이 비백인보다 10~13배 높은데도그렇게 믿었다. 사실 인종 간 소득 격차는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30년 전 중위 흑인 가구의 보유 자산은 6,800달러였으나 지금은 불과 1,700달러이며, 이에 반해 중위 백인 가구의 자산은 같은 기간 10만 2,000달러에서 11만 6,800달러로 증가했다. 자원의 축적이 너무 불균형해서 백인성이라는 인종 프로젝트는 실질적으로 백인 과두체제를 뜻한다고 철학자 린다 마틴앨코프는 표현한다. - P119

2016년은 몇 가지 요인 때문에 백인성이 가시화된 해였다. 미국에서 백인이 머지않아 소수자가 되는 인구학적 전환이 닥쳐오고 있고, 평생고용이 줄어 무력감을 느낀 일부 백인이 이민자에게 화풀이를 했으며, 퍼거슨 판결(분리하되 평등하다는 인종 분리 원칙을 확립한 1896년연방대법원 판례로 1954년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 판례에 의해 폐기되었다 - 옮긴이) 이래로 사법제도, 교육,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인종적 불의에 항거해온 흑인과 갈색인 운동가들에 대해 언론의 관심이 높아졌다. 미국 백인은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자기들도 피부색으로 표시된다고 느꼈고, 그런 방식의 노출에 대해 그들이 느끼는 바는 - 수치심이었다. - P123

2017년 2월 1일, 5세의 이란계 아이가 워싱턴 DC 덜레스 공항에서 수갑이 채워진 채로 다섯 시간이나 억류됐다. 미성년자임에도 "위협 가능성이 확인되었다"는 이유에서였다. 무슬림이 다수인 7개국 여행자의 입국을 금지한 트럼프 행정명령의 직접적인 결과였다. 그 소년은 메릴랜드주에사는 미국 시민이었는데도 당국은 상관하지 않았다. 공보 비서는 "단지 연령과 성별을 이유로 그들이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고 상정하는 것은 잘못되고 그릇된 판단"이라고 말했다. 트럼프행정부에 대한 분노는 그날따라 더욱더 생생하고 선명했다. - P125

시인으로서 나는 지금까지 시종일관 영어를 권력 투쟁을 위한 무기로 취급해왔고, 나보다 더 힘센 자를 상대로 그 무기를 휘둘렀다. 그래서 영어로 애정 표현을 하는 데에 서투르다. 집에서 나는 소리가 바깥에 들리지 않도록 늘 조심하다 보니 바깥에서 나는 소리를 안으로 들이는 법을 알지 못한다. 나는 고통과 불가분하게 뒤얽힌 사랑으로 양육된 나머지, 그 사랑을 공기 중에 일단 노출해버리면 그것이 산화되어 괜히 내가 영어로 내 가족을 배신하는 꼴이 될까 봐 두렵다. - P140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이 나라는 좌우 양편에서 정체성의 축소를 겪었다. 백인 국가주의가 발흥하자 수많은 비백인이 분노와 자존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방어하는 한편 수 세기에 걸친 백인의 비서구 문화 착취에 대해 보상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정당한 분노에서 초래된 한 가지 부작용은 예술가와 작가에게 오직 자신의 개인적인 인종적 체험만을 근거로 발언하라고 요구하는 "자기 차선 지키기" 정치였다. 그런 정치는 - 인종집단이 깔끔히 나뉘지 않고 중첩되는 삶의 복잡한 현실을 무시한채 - 인종 정체성의 순수성을 가정할 뿐만 아니라 인종 정체성을지적 재산권으로 전락시킨다. - P141

말을 이렇게 하지만, 전례도 별로 없는데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일에 관해 내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다문화적 합일성이라는 안이한 환상이나 도덕성을 과시하는 살균된 언어에 기대지 않고서 쓸 수 있을까?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관해서도 쓸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 P151

아버지의 사업이 잘 풀려서 내가 10대가 됐을 때 우리 가족은 교외 백인 거주지 내 수영장 있는 집에 살았다. 나는참새가 염소 소독제 섞인 수영장 물을 한 모금 마시러 휙내려왔다가 다시 휙 올라가는 모습을 창문으로 내다보곤 했다. 거기로 이사했다고 해서 우리 집에 감돌던 불행이 지워지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그런 고립된 생활 환경이 모종의 안도감을 주었다. 내 사춘기 불행의 원인을 분석하려면 엄마에 관해 써야하는데, 이 책에서 그 작업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고서 내 안으로 얼마나 깊이 파고들 수 있을까? 아시아계 미국인의 내러티브는 항상 엄마로 귀결되어야 하나? 시인 호아응우옌을 만났을 때 그가 내게 제일 먼저 물은 것이 "엄마에 대해 말해봐요"였다.
"좋아요." 내가 말했다. "어색함을 깨주는 질문이군요." - P164

"엄마가 아시아인이잖아요." 그가 말했다. "흥미로운 분일 것이 틀림없어요."
엄마 얘기는 일단 미루자. 그보다 아시아 여성들과 맺은 우정에 대해 먼저 쓰려고 한다. 안 그러면 엄마가 책을 아예 장악하고 이 에세이들을 전부 관통하여, 결국에는 오로지 엄마에 관한 책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 전에 나는 먼저 원한부터 풀어야겠다. 이 나라에 대해서, 이 나라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미리 정해진 대본을 안겼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엄마가 당시 망가진 상태였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어쩌다 그리됐는지는 나도 모른다. 병이 병으로 명백히 진단되지 않으면 자식이 그 멍에를 짊어진다. 이를테면 엄마가 우리 같이 죽어버리자며 차선을 급변경해서 다른 차를 받을 뻔했을 때 나는 조수석에 앉아있었던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꼈다. - P165

영진 리는 풍자극 『용비어천가』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많은 백인 남자가 아시아 여자를 사귀는 이유는 백인 여자보다 용모가 더 나은 아시아 여자를 사귈 수 있어서이다. 우리는 사귀자는 말에 쉽게 응하고 자존감도 낮기 때문이다. 저급 브랜드를 택함으로써 더 호화로운 사양을 누리는 것과도 같다. 게다가 아시아 여자는 백인 여자가 거들떠보지도 않는 백인 남자와도 데이트할 의향이 있다." - P183

에린과 나는 명미 킴이 가르치는 시 과목에 등록했다. 킴은 짧게 친 머리에 긴 검정 치마를 입어 성직자처럼 보이는 30대 후반의 객원교수였다. 첫날 교수가 침묵에 관해 강의했는데 그것이 문학사에 대한 나의 인식을 완전히 박살 냈다. 교수는 어떻게 해서 시형(poetic form)이라는 회로가 우리가 말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말하지 않는 것에 의해 충전되는지 논했다. 시라는 것은 완벽하게 형성된 구절보다는 더듬거림, 주저함을 잡아내는 그물이라고 했다. 침묵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심문이라고 했다. 홀로코스트로 가족을 잃은 유대계 시인으로서 독일어로 작품 활동을 한 파울 첼란의 경우 "그는 말을 입 밖으로 내는 일의 불가능성과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단을 찾는 작업 사이에서 방향을 잡아갔다"라고 킴은 설명했다. - P190

바로 그 점을 명미 킴이 내게 최초로 가르쳐주었다. 내가 눌변으로 여기는 부분- 내가 이중언어 사용자라는 점, 어렸을 때 영어 때문에 고생한 점 -을 역이용해 영어를 두드리고, 그것을 나의 갈등하는 의식에 가장 근접한 나만의 어휘소 목록 속으로 녹아들게 하라는 가르침이었다. - P191

이것은 그 애가 지닌 가장 한국적인 속성으로, 죽음과 생존을 동시에 격렬하게 욕망하는 충동이 서로 상쇄되지 않고 합쳐져 있었다. 그 때문에 얘와 함께 지내기가 참 괴로웠다. 헬렌은 에린과 나를맹렬히 몰아세웠고, 이 일이 일어난 것은 자기가 미술가가 되면안 된다는 하나님의 계시라고 했다. - P198

정신분석학에서는 신경을자극하는 고통은 일단 그 고통에 관해 이야기하면 신체로부터 분리된다고 본다. 고통을 명명하면, 일어났던 일에서 아픔이덜어지고, 한계가 그어지고, 그 일을 감당하고 심지어 소멸까지가능해진다. 그러나 나는 마치 말이 치유법이 아니라 남을 오염하는 독인 양, 자칫 고통을 언급했다가는 정신적 외상을 또한 번 입을 뿐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에게 트라우마를 입히게 되는 문화에서 자랐다. 이런 비밀과 수치의 문화에서성폭행을 고발할 만큼 대담한 아시아 여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현실 부정은 항상 상처에 바르는 연고가 되어주지만, 그건 국소적 요법에 불과하다. 겪은 일이 꿈에 나오거나 다른 더치명적이고 만성적인 형태로 되살아날 수 있기 때문이다. - P213

그런데 왜 나는 차의 살인 사건을 더 일찍 찾아볼 생각을 안 했지? 나도 서평을 쓸 때 차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살인 앞에 강간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삭제하지 않았나? 강간이라는 단어는 글에 손상을 가하면서 어떤 주장이든 엎어버린다. 강간을 넘어서 분석을 이어가고 이해를 도모할 방도가 없다. 그것을 직시하든지 아니면 시선을돌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의 죽음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때때로 나는 뉴스 기사에서 범죄피해자가 아시아인이면 일부러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그 사건에 주목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싫기 때문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관하기 싫다. 왜냐하면 분노속에 방치되기 싫기 때문이다. - P231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은 당신이 내 조상의 나라를 둘로 쪼개놓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어설픈 중간급 미군 장교 두 명이 1945년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를 놓고 남북한을 가르는 경계선을 자의적으로 그었고, 결과적으로 이 분단은 우리 할머니의 가족을 비롯해 수백만 가족을 갈라놓았다. 그 후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전역에서 일본군에게 투하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과 네이팜을 자유의 기치 아래 좁은 우리 땅에 투하했다. 한국전쟁과 관련해 잘 알려지지 않은 기막힌 사실 하나는 당시 한국에서 복무하며 화상 피해자를 치료했던 미국 외과 의사 데이비드 랠프 밀러드가 바로 아시아인의 눈을 서구적으로 만드는 쌍꺼풀 수술을 창시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 수술법을 한국 성노동자들에게 시술하여 미군 병사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오늘날 쌍꺼풀 수술은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성형수술이다. 내 조상의 나라는 당신이 영구적 전쟁과 초국가적 자본주의를 통해 필리핀, 캄보디아, 온두라스, 멕시코,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엘살바도르,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나라에서 저지른 살상과 자원 착취의 작은 예시에 불과하며, 이것은 주로 미국 국내 주식 투자자들의 배를 불렸다. 그러니까 나한테 은혜를 논하지 말란 말이다. - P259

[블레이드 러너 2049]는 마술적 사고가 드러나는 공상과학 영화의 한 예다. 즉 백인이 흑인과 갈색인에게 저지른그 모든 죄가 자기들에게 열 배로 되돌아올 것이 두려워서, 백인종은 절대로 몰락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얻기 위한 일종의 예방 조처로서 자신들의 몰락을 지레 상상하는 것이다. - P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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