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은 예는 ‘남색‘과 ‘수간’과 같은 특정한 성적 실천이 타 인종과 민족을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존재로 정의하기 위해 인종주의적 기표로 동원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다나카 지우라가 이러한 변태성욕의 지도속에 특별히 대만, 조선, 중국, 인도를 위치시키고 있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현실에서 식민지 확장이 진행 중인 지역들은 바로 이렇게 에로 그로한 상상력이 투사되는 장소들이 되었다. 식민지인들 역시 이러한 타자의 소비로부터 자유롭지 않았다. - P32
범죄 기사는 ‘공익적인’ 목적을 갖지만, 선정적인 측면을 부각할 수 있어 상업적인 활용도가 클 뿐 아니라 쉽게 소재를 찾아내는 것이 가능하고 필요에 따라 분량 조절도 할 수 있는 등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의 신문들은 1930년대에 억압적인 정치적 환경 속에서 강력한 검열을 받았기 때문에 정치면이나 경제면 대신 사회면의 범죄 기사와 문예면의 강화에 더욱 주력하는 경향을 보였다. - P36
시체성애가 이렇게 ‘그로테스크’한 근대소설의 중요한 소재로 채택되는 이유는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특별한 혐오감 때문이다. 법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명백히 다른 사람들에게 위해를 주지는 않지만, 너무나 혐오스럽고 지독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곧장 불법적인 행위로 지정해야만 한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표적인 성행위로 ‘시체성애‘를 지목한 바 있다. 혐오가 동물성을 숨김으로써 인간의 유한성과 취약성에서 벗어나고자하는 감정과 관련되어 있다면, 부패하고 노폐물이 된 시체는 즉각적으로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문화적 금기로 인해 시체는 특별한 성적 판타지가 투사되는 대상이 된다. - P42
이 장에서는 일본의 변태붐과 ‘에로 그로 넌센스’라는 문화적 지형을 경유해, 식민지 조선에서 대두된 기이하고 낯선 존재들에 대한 열광을 살펴보았다. 언론의 상업주의적 동기에 의해 더욱 부추겨진 낯선 존재들에 대한 관음증적 호기심은 한편으로는 인종적 타자들의 기이한 성적 실천에 대한 민족지적 관심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기형적이고 음란한 범죄’ 서사를 소비하고자 하는 문화적 실천으로 나아갔다. 이러한 소비는 정상/비정상, 규범/변태, 근대/야만과 같은 당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와의 연관성 속에서 이뤄졌다. 기괴하고 낯선 존재들을 소비하고 그로부터 쾌락을 얻는 과정은 성적 · 인종적·계급적 위계들을 오락으로 만듦으로써 지배질서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데 긴밀하게 연루되어 있었다. - P53
동료 학생들에 의한 기숙사 방 감시,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있는 화장실 구조, 교지기의 불시 순찰 등 주요섭이 제안한 방법들은 미셸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제시한 판옵티콘을 연상시킨다. 푸코는 시선의 비대칭성을 보장하는 판옵티콘의 모델이 감시당하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항상 보이는 위치에 노출되어 있으며 감시당하고 있다는 감각을 부여함으로써 감시자가 부과하는 행동의 코드를 내면화하게 만드는 ‘정상화‘의 효과를 생산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변소의 배치와 이를 통해 작동하는 시선의 효과는 단순히 ‘성적 악습’이 일어나기 어려운 환경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들로 하여금 바람직한 성규범을 내면화하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성적 악습’의 실행을 둘러싼 수치와 두려움의 감각을 신체에 새겨 넣는 역할을 한다. - P61
그리고 이렇게 단속된 전형적인 관계는 ‘자유연애‘였다. 연구참여자들은 총각과 처녀가 ‘자유연애‘를 하다 발각되었을 때 총각은 매를 맞고 처녀와 그녀의 집안 식구들은 마을 밖으로 추방을 당하는 처벌이 촌락공동체에 의해 집행되었다고 증언했다. 이러한 처벌이 금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상 자유의지와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의 존재였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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