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살의 내가 늘 불안해서 꺽꺽거리며 견과를 부수거나 내뱉고 껍질을 내던지며 얼굴을 찡그리고 어두운 구석에 뛰어들었다가 미친 듯이 우리 안을 배회하는 원숭이라면, 그는 뚱한 얼굴로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위험한 사자였다. 분노와 상처로 부루퉁한 그 사자는 갑자기 사납게 굴다가 다음 순간에는 아주 겸손해졌고, 그러다 당당하게 굴고 다음 순간에는 파리에 시달리며 먼지 덮인 구석에 누워 있었다. - P86

어머니의 죽음은 늘 잠재한 슬픔이었다. 열세 살의 나이에는 그 슬픔을 극복할 수도, 직시할 수도, 처리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 년 후 스텔라의 죽음은 다른 개체에 달려들었다. 특히나 보호받지 못하고, 미숙하고, 방어막이 없고, 불안하고,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감에 사로잡힌 마음과 존재에. 열다섯 살의 마음과 몸은 늘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이 특정한 마음과 몸의 표면 밑에는 다른 죽음이 잠겨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이 무슨 의미를 띠는지를 충분히 의식하지 못했더라도 나는 이 년간 무의식적으로 그 의미를 흡수해 왔다. 스텔라의 말없는 비탄을 통해서, 아버지의 노골적인 비탄을 통해서, 달라지고 중단된 모든 것을 통해서. 사교적 모임과 흥겨운 놀이가 중단되었고, 세인트아이브스의 별장을 포기했고, 검은 옷을 입었고, 많은 것이 삼가졌고, 어머니의 침실 문이 잠겼다. 이 모든 것이 내마음을 바꾸어 불안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스텔라의 행복을 바라고 그 덕분에 그녀와 우리가 음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지나치게 열망하게 되었으리라. 그러다 또다시, 더욱더 믿을 수 없이, 거짓말처럼, 그 갈망이 난폭하게 기만당한 것 같았다. 아니, 바보처럼 그런 희망을 품지 말라는 폭언을 들은 것 같았다. 스텔라가 죽은 후 내가 중얼거렸던 말이 기억난다. "하지만 이건 있을 수 없어. 세상은 이렇지 않아. 이럴 수는 없어." 그 타격, 두 번째 죽음이 나를 내리쳤다. 아직 접힌 날개로 부서진 번데기 옆에 앉아 떨고 있는 몽롱한 눈의 나를. - P98

나는 이런 말을 끼워 넣으면서 지금도 해묵은 분노를 터뜨리고 있지만, 그렇더라도 세인트아이브스가 우리에게 준 순수한 기쁨은 이순간에도 눈앞에 생생히 떠오른다. 느릅나무의 레몬색 이파리, 과수원의 사과, 속삭이며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떠오르면 나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인간의 힘이 아닌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늘 작용하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빛이 은은히 타오르고, 사과는 선명한 초록색으로 변한다. 나는 온몸으로 반응한다. 하지만 어떻게? 그때 작은 올빼미가 내 창문 밑에서 딱딱거린다. 또다시 나는 반응한다. 비유적으로, 내가 말하려는 바를 어떤 이미지로 포착할 수 있겠다. 나는 감각의 물결에 떠 있는 다공성의 배이고, 보이지않는 광선에 노출된 고감도의 감광판이고…… 등등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 P111

앞선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 두 번의 죽음이 없었더라면 사실 토비는 내색은 안 했어도 그토록 진정한 마음으로 우리와 묶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 가족의 절단에 좋은 점이 (의심스럽지만) 있다면, 우리를 민감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삶의 불안정성을 의식하고, 사라진 무언가를 기억하고, 아버지가 요구하지 않았을 때 내가 느꼈듯이 어쩌다 열렬하고 어설픈 유대감에 압도된다면, 이 모든 감정을 열다섯, 열여섯, 열일곱의 나이에 발작적으로 느끼는 것이 좋은 일이라면, 만일 그렇다면……. 그런데 과연 좋은 일이었을까? 세인트아이브스에서 그랬듯이 분주하고 소란스러운 가정 생활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그것을 판단할 사람도 없고 기준도 있을 수 없는데 좋거나 낫다고 말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 낫지 않았을까? 온 가족이 평범하고 떠들썩한 일상을 영위하는 동안 가족에 둘러싸여 자기만의 은밀한 탐구와 모험을 지속해 간다면, 그 보호막이 벗겨지고 가족이라는 은신처에서 떨어져 나오고 그 은신처가 금이 가고 찢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가족을 비판하고 의심하는 것보다 좋지 않았을까? - P117

두 번의 죽음을 겪지 않고 마땅히 가족을 믿고 가족을 받아들이며 가족 안에 머물렀다면 우리는 더 큰 기회와 더 넓은 다양성과 분명 더 큰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반면에 나는 다른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이 두 죽음의 경험은 우리를 망연자실하게 만들고 피폐하게 만들었지만(내가 썼던 표현으로) 신들이 우리를 진지하게 여기고 있어서 가령 부스 가족이나 밀먼 가족 같은 사람들에게는 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일을 우리에게 주려고 의도한 것이었을까? 나는 늘 그것을 시각적으로 이렇게 표현했다. (토비가 죽은 후) 나는 (고든 광장 주위를 돌다가) 거대한 맷돌 두 개와 그 사이에 끼인 나를 보곤 했다. 그러고는 나 자신과 그것들과의 충돌을 연출하곤 했다. 만일 인생이 발광한 말처럼 뒷다리로 서서 제멋대로 발길질을 해 대는 것이라면 시달릴 수밖에 없겠다고 나는 추론하곤 했다. 그것들이 내게 삶이라는 그 귀중한 질료의 미약하고 작고 무력한 조각을 하나 주어서 내 입을 막았다고는 누구도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이를 통해 나는 인생을 극한적 실체 같은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물론 나 자신이 중요하다는 의식을 키울 수 있었다. 타인을 통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맷돌 사이에서 갈린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줄 만큼 나를 충분히 존중한 그 힘을 통해서. - P118

여러 달이 지나도록 허울만 남은 우리의 일상 이면에는 이파리가 없는 그 나무가 서 있었다. 그러나 나무는 이파리가 없는 채로 그냥 있지 않는다. 작고 붉고 차가운 싹을 내밀기 시작한다. 그 싹의 이미지를 통해 나는 비탄이나 말다툼, 숨겨지기도 분출되기도 한 짜증, 미묘한 영합을 전하고 싶다. 그것은 집안의 일상적인 생활이 다시 시작되자 아버지의 말대로 스텔라의 죽음이 우리를 더욱 결속하지 않고 우리 모두 적응을 못하고 그녀의 죽음으로 인해 비틀린 관계로 고통스럽게 빠져들었음을 입증했다. - P124

하지만 왠지 몰라도 내게는 장면을 그리는 것이 과거를 특징적으로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방법임을 알게 된다. 어떤 장면이 늘 표면에 떠올라배열되고 상징적 표상이 된다. 이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실체(리얼리티)라고 편리하게 부르는 것 위에 떠 있는 밀폐된 배라는 내 본능적 생각(이 생각은 비논리적이라서 논증을 배겨 내지 못한다.)을 확인해 준다. 어떤 순간에, 어떤 이유도 없이, 노력을 전혀 들이지 않아도, 밀폐용 물질에 금이 가고, 실체가 밀려들어 온다. 그것이 장면이다. 장면이 영속적인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파괴적인 숱한 세월을 견디고 온전히 남지못할 것이다. 장면이 실체라는 증거는 이것이다. 이처럼 장면에 빠져드는 내 성향은 글을 쓰려는 충동의 원천일까? 실체에 관한, 장면에 관한, 그리고 장면과 글쓰기의 관련성에 관한 이런 물음에 나는 답을 알지 못하고 그 물음을 세밀하게 제기할 시간도 없다. 의도한 대로 이 글을 수정해서 다시 쓰게 된다면 그 질문을 더 정확하게 제기하고 고심해서 어떤 답을 내놓을 것이다. 지금까지 써 온 모든 글(소설, 비평, 전기)에서 거의 언제나 장면을 찾아야 했으므로 내가 이 능력을 발전시켜온 것은 분명하다. 어떤 인물에 대해 쓸 때는 그들의 인생에서 대표적 장면을 찾고, 어떤 책에 대해 논평할 때는 그 저자의 시나 소설에서 그런 장면을 찾아야 한다. 이것은 같은 능력이 아닐까? - P126

아버지는 왜 여자들이 필요했을까? 철학자로서 실패했음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 실패가 그를 좀먹었다. 하지만 그의 신조, 말하자면 공적 관계에서 자신이 택한 태도 때문에 그는 칭찬을 받고 싶은 욕구를 숨겼다. 그래서 프레드 메이트랜드와 허버트 피셔의 눈에는 아버지가 순전히 자기 비하적이고 겸손하며 스스로를 터무니없이 변변찮게 평가하는 사람으로 보였다. 우리에게는 탐욕적으로 수치심 없이 찬사를 요구하며 강요했다. 그렇다면, 이처럼 억제와 욕구가 결합되어 있다면, 바네사에게 그토록 야만적으로 굴었던 까닭은 여자들이 자극을 받아 베풀어 주는 공감을 절실히 바랐기 때문일 것이다. 바네사가 노예이자 천사인 여자의 역할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아버지는 격분했고, 자신에게 필요했던 자기 연민의 흐름이 가로막히자 자기도 알지 못했던 본능이 끓어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수치스러운 본능이었다. "네 생각에는 아버지가.…..." 격렬한 분노를 터뜨린 후에 한번은 아버지가 내게 말했다. "어리석어 보이겠지."라고 말했던 것 같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를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야만적이라고 생각했지. - P131

실은 예순다섯의 나이에 아버지는 고립되고 자신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는 자기 감정을 너무 무시했거나 감추었으므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고,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경악스럽고 소름 끼칠 만큼 난폭한 분노를 드러낸 것이다. 거기에는 맹목적이고 동물적이고 야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로저 프라이는 문명이 자각을 뜻한다고 했다. 극도로 자각이 없었다는 점에서 아버지는 미개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누구도 일깨워 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고통스러워했다. 자기감옥의 벽을 통해서 깨닫는 순간은 있었다.
이 모든 것에서 나는 자기 중심벽만큼 두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생각은 집요하게 오래갔다. 그만큼 본인에게 잔인하게 해를 입히는 것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그것에 접촉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없다. - P132

조지가 서른여섯이고 내가 스무 살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에게는 연간 1000파운드의 수입이 있는 반면에 내 수입은50파운드였다. 이런 이유로 해서 그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우리 관계에 또 다른 요소도 있었다. 그의 나이와 권력 외에도 나는 아웃사이더의 감정이라고 부르게 된 감정을 느꼈다. 서커스 텐트가 약간 벌어진 곳에 서서 안을 들여다보는 집시나 아이가 느낄 법한 감정이었다. 나는하이드파크 게이트의 응접실에서 한창 무르익는 사교 파티를 바라보았다. 조지는 큰 굴렁쇠를 뛰어넘는 곡예사 같았다. 그를 바라보며 나는 공포와 찬탄을 느꼈을 것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부장적 사교 파티가 우리 응접실에서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 거기에는 물론 다양한 구성원들이 있었다. 바네사와 나는 거기 참여하라는 요구를 받지 않았다. 오로지 남성 친지들이 이채로운 지적 게임을 다양하게 펼칠 때 경탄하고 박수치라는 요구를 받았을 뿐이다. - P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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