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설거지도 5호 상자에나 들어가던 거다."라고 했다. 아빠도 "그래, 2호상자에는 그게 안 들어간다고. "하며 거들었다. "그건 결혼 어쩌고의 문제가 아니고요. 부모님이 요리를 해주셨으니 당연히 설거지는 밥을 먹 - P95
은 사람들이 해야 하는 거죠." 언니의 말에, 먹은 사람들 중의 하나였던 K는 조용히 일어나 싱크대의 고무장갑을 집어 들었다. K의 오빠가 빈 그릇을 싱크대 쪽으로 날랐고 설거지까지 함께 했다. 변화라면 변화였다. - P96
"사람은 뭐라도 키우게 되어 있는데." - P99
어느 밤의 도로에서 정우가 해준 말 위를 이제 안나는 흘러간다. 그 말은 겨우 한 문장 정도였지만 자꾸 불어나고 불어나 안나를 든든하게 채운다. 삶이 좋아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님을 알아. 먹구름에 가려 일몰을 볼 수 없는 날도 생기고, 애써 준비한 마음이 오해되고 버려지는 경우도 생기겠고, 삶의 타이밍이 늘 한 발 늦을 수 있고, 내 경우엔 미련도 품을 수 없을 만큼 열 발쯤늦을 때가 많고, 시간 낭비 같은 산책도 많지. 회복불가능할 정도의 일도 있고, 내가 사랑하는 세계가 훼손되고 내 속도가 흔들릴 때도 울지 않을 거 - P258
라고 말할 자신은 없는데. 그렇지만 무언가를 누군가를 아주 좋아한 힘이라는 건 당시에도 강렬하지만 모든 게 끝난 후에도 만만치 않아. 잔열이, 그온기가 힘들 때도 분명히 지지대가 될 거야. - P259
그리고 둘은 세상에 오롯한 것이란 지금 이 순간뿐인 것처럼 뜨겁게 포옹하는 거라고, 안나가 말했다. - P2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