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
김마리아, 강주룡, 정정화, 박진홍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만났을 때 놀랐던 기억은 지금도 가슴이 두근두근할 만큼 생생하다. - P5

"너는 언제부터 조선의 독립을 생각해왔는가?
"한시도 독립을 생각하지 않은 일이 없다."
"여자가 어째서 남자들과 함께 운동을 했나?"
"세상이란 남녀가 협력해야만 성공하는 것이다. 좋은 가정은 부부가 협력해서 만들어지고 좋은 나라는 남녀가 협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 P25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투사가 되었느냐 물었지요.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조선에서 어떻게 하면 투사가 안되고 살 수 있습니까? 친일 부호라면 몰라도 우리 같은 노동자는 싸우기 싫어도 싸워야 하는 게 현실이지요. 따지고 보면 기자 선생도 지금 붓으로 싸우고 있는 거 아닙니까?" - P39

"…우리는 49명 우리 파업단의 임금 감하를 크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결국은 평양의 2300명 고무공장 직공의 임금 감하의 원인이 될 것이므로 우리는 죽기로써 반대하려는 것입니다. 2300명 우리 동무의 살이 깎이지 않기 위해 내 한 몸뚱이가 죽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내가 배워서 아는 것 중에 가장 큰 지식은, 대중을 위해 싸우다 죽는 것이 명예로운 일이란 것입니다. - P48

한 아이가 태어나 첫울음을 울 때 그 아이의 일생을 누가 알겠는가. - P57

"얻고 싶었던 것을 얻었고 가고 싶었던 곳을 찾아가는 지금, 나는 그토록 갈망했던, 제 한 몸을 불살랐으나 결국 얻지 못하고 찾지 못한 채 중원에 묻힌 수많은 영혼들을 생각해야 한다. 그들을 대신해 조국에 가서 보고해야만 한다. 싸웠노라고, 조국을 위해 싸웠노라고, 나는 아들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 P73

사람들은 임신한 몸으로 가혹한 심문을 견딘 나를 보고, 독하다고 했지만, 당시 일제에 맞서 싸우는 운동가라면 누구나 그래야 했어. 다른 동지들이 도망갈 수 있도록 최대한 버티는 건 우리의 원칙이었지. 그러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잡혀서 똑같은 고통을 겪고 목숨이 위태로워지니까. 나와 함께 검거됐던 박영출 동지도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옥사하고 말았는데, 그러고 보면 정말 독한 건 그런 고문을 한 일제이건만 사람들은 우리를 보고 독하다고 하는구나.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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