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는 탈조직화하여 새로운 생활 세계와 조우하게 된다. 퇴직은 여전히 공적 존재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퇴직자가 낯선 환경에 처해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이들은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일같이 출근하던 공간이 사라지고 규칙적으로 생활했던 일과를 이제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혼란을 겪는다. 당연히 친밀하고 익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가정은 낯설게만 느껴진다. 여전히 회사와 관련된 공적 관계망 안에 있으면서도 공적 존재가 되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놓이게 된다. - P42

과거와 현재의 지위 변화는 퇴직자들이 무력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상황을 만들어 낸다. 지시를 내리고 결재를 하는 의사결정권자로서 체화되어 있는 권위적 태도는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수족이 되어 줄 부하 직원이 없는 상황에서, 일체리 속도는 더뎌질 수밖에 없다. 회사에서 직접 하지 않아도 되었던, 별것 아닌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정작 중요한 일을 발목 잡는 상황이 견딜 수 없어지는 것이다. - P60

퇴직자들은 자신에 대한 주변의 대우가 재직 당시와 달라질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달라진 대우를 실제로 경험하게 되면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 P62

퇴직자들은 공적 영역이라는 삶의 장소가 사적인 영역으로 충분히 전환되지 않은 상태에서 직장을 떠나 가정으로 돌아간다.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이들이 체화하고 있는 공적 영역의 언어, 지위, 생활 습관, 권위적 태도는 필연적으로 충돌을 야기한다. 퇴직자들이 퇴직 이후의 삶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유는 자신을 구성해 온 공적 영역의 요소들, 회사인간으로서의 특성이 한꺼번에 갈등의 원인이 되거나 무용지물이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퇴직은 그동안 자신이 가정에서 부재해 왔음을 확인하게 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 P66

고령화와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을 한국보다 먼저 겪은 일본에서는 퇴직 후 집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면서 부인의 돌봄 노동에 의존하는 퇴직자들을 일컫는 ‘젖은 낙엽落葉‘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남편의 퇴직으로 인해 배우자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은퇴 남편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보도도 있었다. - P69

상급자가 되어 갈수록 부하 직원들이 알아서 도와주는 상황에 익숙해지면서, 명령조의 언어나 정확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결국 이러한 회사인간의 커뮤니케이션방식은 가족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었다. - P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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