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치만 삶이란 건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건 어느 정도 결정된 거니까요. 예술가의 길이란 어느 정도 결정되어 있어요.
굳이 하나를 얘기하자면, 큰 결핍을 만나지 못한 사람은 문학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굉장히 멀리 있다는 거예요.
문학을 시작하더라도 끊임없는 결핍과 실패와 좌절과 무시, 열패감. 그 속에 있어야 하고 그걸 계속 겪어야 해요. 적당한 정도로나마 마이너리티적인 성향이나 또 고생스러운 것을 몸으로 또 정신적으로 겪었으면 합니다. 거기에 재능이 있고, 노력까지한다면 당연히 어떤 결과물이 나오겠죠. 분출하듯이. - P55

무서운 건, 아주 무서운 이야기는 자유를 얻는 데 필요한 게, 필수적인 게 겨우 ‘돈‘이었다는 사실이에요.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어느 인터뷰에서 "돈으로 자유가 보장되는 듯하다"고 말한 것 같은데 저도 그 말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어느덧 알게 되었네요. 어떤 의미에서의 자유라는 개념의 속성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을 때 어느 정도 가능한 것이고, 동시에 하기 싫은 것을 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을 의미하잖아요..
돈은, 그냥 물질이 아니라 세상을 건너는 다리가 되고,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지점에 닿을 수 있게 티켓 역할도 하고, 사람들 속으로 당당하게 외출할 수 있도록 어깨에 힘을 넣어주기도 해요.
나 혼자 단단하고 당당한 것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 P75

여행을 갈 때 꼭 가져가야 할 것을 많은 분들이 자주 묻는데, 나라면 좋은 기억 장치를 가져가겠어요. 좋은 기억 장치라는 게 기술적인 뭔가가 아니라, 무엇보다 ‘비운‘ 상태여야죠.
텅 빈 상태라 잘 들어앉거든요.
외로움이나 결핍이 있는 상태처럼, 많이 비운 상태로 가는것. 많이 소진된 상태로 가는 거요. 그래야 잘 흡수할 수 있어요.. 그럴 때일수록 웬만한 것들이 아름답고, 소소한 것들이 고맙죠. 정신적으로 결핍도 없고 영양 상태도 너무 좋은 나라면, 가서도 잘 먹고 잘 쇼핑하고 잘 쉬다 오면 그만이겠죠. 흡입할 상태 말고 흡수할 상태의 나를 데려간다면 많이 가져올 거예요. 뭐든 가지러가잖아요. 거기에 나를 다 쏟아 붓고 오는 게 여행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말이 하기 싫어서 떠난 걸 수도 있겠지만 어린왕자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낯선 이에게 말을 붙이기도 해야겠지요. 우연히 마주친 어린왕자를 놓치면 안 되니까. -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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