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 딕
허먼 멜빌 지음, 김석희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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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 모임을 앞두고, 2시간 전에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난 후, 다른 책을 뒤적이기도 애매해서 글을 남긴다.. 마지막 책장을 넘긴 후에 찾아오는 여운을 조금이나마 간직해두기 위해서다..

 

주말 밤을 꼬박 새며 모비 딕을 읽었다..

이 책을 같이 읽기로 한 것을 몇 번이고 후회하며, 책장을 한장씩 넘겼다..

흥미로운 도입부를 지나, 1/3을 지날 때쯤 되면 갑자기 템포가 느려진다.. 그리고 말 그대로 고래와 포경선에 대한 온갖 백과사전의 세계가 펼쳐진다.. 독서가 탄력을 잃기 시작하는 타이밍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소 지루해지는 그 대목에도 <고래의 흰색>이나 에이해브 선장이 스페인 금화를 내깃돈으로 걸면서 적막을 깨는 장면들과 같은 흥미진진한 장들이 숨어 있다.)

예전에 읽기 위해 펼쳤을 때도 아마 이쯤에서 그만 두었던 것 같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기면, 아마 스터브가 처음으로 고래를 죽이고, 그 현란한 <고래 해체쇼>가 펼쳐지는 장부터 인 것 같지만, 그때부터 소설은 점차 긴박감을 뛰기 시작한다.. 작가의 유머 코드도 되살아난다.. 그리고 후반부에 이르면 가히 저자가 그려내는 서사에 압도당하는 것이다.. 가히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자연이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이 독자를 엄습해온다..

 

만약, 매일 한 두 장씩 읽을 수 있다면 가장 현명한 독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각박한 세상에서 매일 정처없이 모비 딕을 한 두 장씩 읽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마감 기한을 정해놓고 이 책을 읽는 것 역시 매우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역시 <모비 딕>은 매일 조금씩 읽어나가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아래 리뷰어의 누군가의 말처럼 <무인도>에서-하지만 무인도라면 매일 생계를 걱정해야 하니, 모비 딕을 차분하게 읽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아니, <양로원>에서 읽는다면 최적의 작품이리라.. 하지만 양로원에 들어갈 나이가 되어도 책장을 넘기면서 이렇게 가슴이 뛰려나..

 

어쨌거나, 이 작품은 소설이 아니라-이라기보다, 하나의 <세계>다. 진부하게 말한다면, 19세기 근대소설의 문법을 산산조각낸, 동시에 누구보다 먼저 20세기를 예비했던 작품이다. 멜빌은 망망한 바다 한 가운데에서 고독하게 하나의 세계를 창조했다. 가히 경이롭다. 로빈슨 크루소가 고독한 근대 부르주아의 합리성을 상징화한 인물이라면, 에이허브는 고독한 근대 부르주아의 광기를 발산하는 인물이다.. 기나긴 항해 끝에 모비 딕과 마주하는 결말부는 리어왕보다 더 웅장하고 비극적이다..

 

서가에 다시 꽂히겠지만, 언젠가, 아마 무더운 어느날 밤, 다시 불려나올 몇 안 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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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 2024 노벨경제학상 수상작가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최완규 옮김, 장경덕 감수 / 시공사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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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처음 <반품>시킨 책.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모순일 수 있다는 최소한의 의심조차 없이 자본(?) 민주주의를 찬양하고 있다. 탐욕스런 미국 시장자본주의가 남미 독재를 선택/지원했다는 사실에는 눈을 감고 싶나보다. 제도 이전에 정치경제학적 이해의 중요성을 절감. 아, 역시 시공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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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펜 2017-11-29 0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모순?
자본주의의 부산물로 이 세상에 태어난게 민주주의이며 민주주의를 만들어낸 장본인들은 상공업으로 부를 쌓은 상인들이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위해 왕에게서 권력을 빼았아 입법, 행정, 사법으로 분활시키면서 만들어진건데 모순이라니...
지금의 민주주의가 그리스 시대의 민주주의라고 착각하시는듯...

생쥐스뜨 2017-11-29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물론 그런 ‘견해‘도 있지요.. ‘견해‘와 ‘역사적 사실‘은 구분하셨으면 합니다.. 18세기 부르주아의 혁명성은 19세기 이후 좌우를 막론한 모든 역사가가 인정했던 것이고.. 동시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모순일 수 있다는 것은 19세기 민주주의 정치에서 서구의 역사가 이미 경험한 사실이지요.. 자유와 평등이 모순일 수 있는 것처럼.. 모순이다와 모순일 수 있다는 다르고.. 또 ‘모순‘은 ‘다르다‘가 아닙니다.. 댓글을 다실 때는 약간의 ‘예의‘를 부탁드립니다.. 이것도 자유민주주의의 ‘공론장‘이 만들어낸 에티켓이니..
 
유동하는 공포 산책자 에쎄 시리즈 2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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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사회>를 넘어 <호러국가>의 한 복판에서 책을 읽는다. <이것이 국가인가>라는 물음은 틀렸다. 이번 참사는 <이것이 국가였다!>는 것을 애써 피해왔던 우리 사회에 도래한 파국이다. 신자유주의 통치성에 대한 통렬한 비판 없는 특별법은 유명무실하다. 호러국가에서 어떻게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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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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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계에서도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이 이제는 무의미해진 듯 하다. 꼼꼼한 독서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 그런데 오늘의 젊은 소설가들은 왜 <그림자>에 그렇게 매료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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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테로토피아
미셀 푸코 지음, 이상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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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은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역사를 갖는다. 서구의 중세, 그것은 국지화의 공간을 구성했고, 17세기에서는 연장延長이, 그리고 오늘날에는 배치emplacement가 연장을 대체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규정 자체는 <말과 사물>의 저자, 즉 에피스테메의 이론가 푸코 특유의 구도이다.. 정말 구체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따져보면 많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지만, 또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매혹적인 논리..

 

그리고 배치가 지배하는 공간 속에서 푸코는 현재적 배치의 중력장에서 자유로운 <바깥의 공간>espace du dehors을 상정한다. 우리가 그것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것에 의해 우리 자신의 바깥으로 이끌리는 공간, 바로 우리의 삶, 시간, 역사가 침식화되어가는 공간, 우리를 주름지게 만들고 부식시키는 공간, 즉 그 자체로 <불균질한 공간>말이다.. 이 공간들은 어떤 면에서는 다른 모든 배치들과 관계를 맺지만, 동시에 그것들에 어긋난다. 거기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유토피아>다. 하지만 유토피아는 근본적으로, 그리고 본질적으로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다른 하나가 바로 본 책(강의)의 주제인<헤테로토피아>다. 그 공간은 사회 제도 그 자체 안에 디자인되어 있는, 현실적인 장소, 실질적인 장소이면서 일종의 反배치이자, 실제로 현실화된 유토피아적 장소이자, 우리가 사는 공간에 신화적이고 실제적인 이의제기contestations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푸코는 헤테로토피아의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거울이라는 메타포를 제시한다. 거울, 그것은 장소 없는 장소라는 점에서 유토피아이다(거울 안에서 나는 내가 없는 곳에 있는 나를 본다). 하지만 거울이 실제로 존재하는 한, 그리고 내가 차지하는 자리에 대해 그것이 일종의 재귀 효과를 지니는 한 그것은 헤테로토피아이다. 왜냐하면 거울은 내가 거울 안의 나를 바라보는 순간, 내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를,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동시에 절대적으로 비현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서어 푸코는 그답지 않은 친절함으로 헤테로토피아의 원리를 차근차근 제시한다(저서가 아닌 강의가 갖는 힘이기도 하다). 번호를 매겨 정리해본다면,

(1) 헤테로토피아는 어느 사회에나 있다. 문제는 생물학적 헤테로토피아, 위기의 헤테로토피아는 점점 사라지고 일탈의 헤테로토피아가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는 것.

(2) 시간이 흐름에 따라 기존의 헤테로토피아는 완전히 흡수되거나 소멸되기도 하고, 새롭게 조직되기도 한다.

(3) 헤테로토피아는 양립불가능한/할수밖에 없는 여러 공간들을 실제의 한 장소에 겹쳐놓는다. 정원이 그러하고, 소설 역시 그러하다.

(4) 헤테로토피아는 시간의 독특한 분할과 연결된다. 그것은 묘지, 도서관과 같은 영원성의 양식이기도 하고, 축제, 시장, 마을의 공터와 같은 한시성의 양식이기도 하다.

(5) 헤테헤토피아는 언제나 그것을 주변 환경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열림과 닫힘의 체계를 갖는다.

(6) 헤테로토피아는 나머지 공간에 대해 어떤 기능을 갖는다. 한펴으로 그것은 과거의 <매음굴>과 같이 환상공간을, 다른 한편으로 <식민지>와 같이 완벽하고 주도면밀하고 정돈된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하다.

 

푸코가 그의 첫 저서 광기의 역사 첫 장에서 제시한 <광인들의 배>는 헤테로토피아의 한 원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급자족적이고 자기 폐쇄적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자유롭지만 바다의 무한성에 숙명적으로 내맡겨져 있는, 장소 없는 장소이자 떠다니는 공간의 조각인 배의 이미지를 떠올려보라. 혹은 아이들이 기원의 몽상과 위반의 쾌락 속에서 파고들기 좋아하는 부모의 <침대>를 떠올려도 좋다. 드페르는 바로 그 침대에서 곤잘레스-토레스의 <무제Untitled>라는 작품이 표현하고 있는 침대, 그리고 어쩌면 연인 푸코와 자신이 사랑을 나누었을 그 침대를 상기한다. 그것은 역자의 말처럼 <애도>mourning의 다른 이름인지도 모른다

 

푸코는 왜 1966년이라는 시점에서 헤테로토피아라는 이미지/실천을 도입한 것일까. 한 가지 가능한 대답. 유토피아의 결안에서 펼쳐지는 지배 담론에 고랑을 파기. 공간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배 권력에 맞서 일종의 대항공간을 만들어내기. 드페르가 지적하듯이 이미 1960년대 후반부터 푸코는 도시연구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1972년부터는 가타리가 주도한 제도교육 및 연구센터Cerfi와 더불어 병원과 같은 집합시설에 대한 계보학적 접근이나 1800년에서 1850년 사이의 주거양식에 대한 분석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이미 이 시기부터 주거 공간은 행정적이고 정치적인 개입의 대상이 되었고, 주거 양식은 질병, 일자리, 상수도, 전기, 통풍시설 등의 가정화, 그리고 공공장소와 관련된 법제화의 발전들의 교차점에서 구축되었다는 것이 연구팀들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이후의 저작인 <감시와 처벌>의 패러다임인 파놉티콘Panopticon 역시 이러한 <건축 기계들architectures machines>을 탐구하면서부터였다

 

권력들의 독특한 역사를 정관사 권력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공간들의 역사라고 한다면, “권력의 비-장소는 무한한 헤테로토피아적 지대들의 중심에 놓여 있게 된다라는 슬로건 아래, 이탈리아의 아우토노미아 운동은 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을 수용한다. 하지만 헤테로토피아가 바로 자유나 해방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푸코가 여러 번 강조한 것처럼, 자유의 행사를 보장하는 것은 결코 사물의 구조/질서에 내재할 수 없다. 자유의 보장은 자유일 뿐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해방기계liberating machine>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배 권력의 의지가 관철되는 것처럼 보이는 건축과 도시공학 역시 얼마든지 자유의 무기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사회에서 푸코가 언급한 배의 이미지를 헤테로토피아의 한 표상으로 상상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이미 세월호는 자본에 의해, 그리고 여기에 기생하며 또 한편으로 공조하고 협상하는 행정 권력들에 의해 포섭된배이다. 따라서 문제는 개념의 이해가 아니라 그것의 수용, 그리고 전투를 위한 실천적 무기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헤테로토피아라는 상상력은 또 어떤 방식으로 수용되고 이용use될 수 있을까. , 지금부터의 사유는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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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별은 하나를 빼서 네 개를 줬다.. 그것은 이 책의 가격 때문이다.. 푸코의 책이 나왔으니 살 수밖에 없는 독자들을 감안한 가격이리라(이번에는 감사하게도 세미나 공동구매로 받았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 내용이 훌륭하더라도, 저작이 아닌 번역서에 현재의 가격을 책정한 것은 아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물가를 고려했을 때, 현재의 가격이 <정상>이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책이 다른 책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쎈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어쨌거나 이 책은 푸코의 저작이기에 앞서 강연집인 것이다.. 아무리 번역이 훌륭하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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