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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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비의 <지금이 아니면 언제?>(1982)는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보더라도 이채로운 작품이다..

여기에는 <이것이 인간인가?>(1947)로부터 <휴전>(1963), 그리고 <주기율표>(1975)로 이어지는 그의 아우슈비츠 체험에 토대한 회고가 아닌, 그 역시 가담했던, 하지만 <이것이 인간인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별다른 활동도 하지 못한 채 붙잡혔던 <유태인 빨치산>의 이야기가 중심 테마로 그려져 있다.. 왜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이전과 같은 아우슈비츠 체험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그것도 빨치산의 이야기를 쓴 것일까.. 책을 읽어가다보니 그 의문이 조금씩 풀리는 듯 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절창은 무엇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유태인 빨치산의 노래이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노래가사는, 한 유태인 빨치산 대원이 나치에 체포된 후 처형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만든 노래였다고 한다.. 그가 부르던 풀룻을 만지작거리던 특수보안사 간부는 그에게 말했다..

첫째, 빨치산은 교수형이고,

둘째, 유태인은 총살형이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 교수형을 당한 후 총살형에 처해진다. 이 노래가사는 그가 마지막 소원으로 받은 30분 동안 종이에 남긴 것을, 이후 그의 부대원들이 복수한 후 되찾은 것이다.. 두 번의 처형을 앞둔 상황에서, 나의 목숨이 소중하지만, 또 내 목숨만을 바란다면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냐고 묻는, 그리고 유태인 빨치산이라는 가장 힘든 길을 선택하면서,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절절해서, 잠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부르는 노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전 조선인 특공대원에 대한 글(<조선인특공대원이라는 물음>)을 쓰면서, 특공으로 출격하기 직전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히고 아리랑을 불렀다는 한 청년의 내면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학문적으로) 그 내면을 읽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물음표로 남겨두었지만, 그 특공대원의 심경을 생각하면서, 왠지 김산이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죽음을 예감하며 불렀던 <아리랑>이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노혁명가로서, 패배로 일관해온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도 결코 혁명에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김산이, 죽음을 예감하면서 불렀던 <아리랑>.. 그것은 분명 유태인 빨치산이 처형 직전 몽당연필로 종이에 남겼던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서로 연결될 수는 있어도, 조선인 특공대원의 <아리랑>과 만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부르는 노래에 깃든 처절함, 그리고 이러한 개죽음을 당해야 하는 상황을 넘어서고자 하는 힘에 대한 처절한 갈구라는 점에서는 서로 공통되는 것이 아닐까..  

 

 

 

2.

이 작품은 유태인 빨치산들이 걸었던 길La strada에 대한 기록이다.. 당시 빨치산들의 삶은 가혹했다.. 하물며 유태인 빨치산의 처지야.. 그들은 정규군뿐만 아니라 다른 빨치산 조직들에도 배척을 받았다.. 믿을 수 없는 유태인이라는 낙인은 저주처럼 그들을 따라다녔다.. 유랑은 그들의 운명이었다.. 그들은 그 운명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떤 경우는 이에 순응하면서(<유태인 풍자극>의 그 씁쓸한 풍자를 보라), 또 어떤 때는 그 운명을 거부하면서 그 길을 걸어갔다.. 그 길은 20-30년대 만주 지방을 유랑했던 조선인 빨치산들의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전쟁이 끝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종전을 마음놓고 기뻐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적 나치는 사라졌지만, 이제 소비에트 군대가, 또 연합군 군대가 또 그들의 적이 될 지 모른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운명이므로.. 그들을 아군으로 받아들이기는 커녕 무장해제를 명했던 소비에트 장교의 다음과 같은 선고는 유태인 빨치산의 험난한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어느 빨치산이든 모두 소비에트 빨치산 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유태인만의 독자적인 빨치산 부대에 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여기에 머무르면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리 알기 바란다.

 

이후 그들의 길은 실로 유랑의 길이다.. 그 길은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이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겪어야 했던 또 하나의 유랑의 길(<휴전>)과도 겹쳐 있다..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팔레스타인은 정말 그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잠정적인 목적지인 이탈리아로 향하는 기차 속에서 주인공 멘델은 자신(들)의 미래를 떠올려본다.. 그것은 이 책의 또 다른 테마인 <디아스포라>의 사유이기도 하다..

 

이제 멘델은 혼자였다. 여인도 없고 목적지도 없고 고향도 없었다. 친구들마저 모두 사라진 것일까? 아니 그건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동고동락한 동지들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동지들은 그의 공허감을 채워주었다. 열차가 어디로 가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고난의 여정도 모두 끝났다. 그럼 이제 그에게 무엇이 찾아올까? 그는 과연 어떤 존재로 살게 될까? 그토록 기다렸던 약속의 땅에서는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다. 설령 그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고난의 전투와 행군을 다시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그의 운명이라면 마땅히 수용해야겠지만....

첫 작품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여기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보아버린, 가라앉은 자들, 무셀만들까지도 포함된다)의 비참한 삶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외쳤던 레비가 자신의 마지막 소설을 유태인 빨치산의 이야기로 끝맺었다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인간의 존재의미에 대한 집요한 탐구의 궤적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레비는 일단 여기서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았을 지도 모른다.. 여행은 끝난 것일까..

 

하지만 여기서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이 세계가 가라앉은 자들과 남은 자들이라는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레비는 증언자로서 그 고통스러운 길을 남은 자들이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은 절박한 요구였다..  

 

그 절박함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하는 것..

 

cf. 그런데 품절이라니.. 레비로의 여행을 떠나려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출판사 측이 충분한 고려를 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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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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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프리모 레비의 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정좌를 한 상태로 계속 책을 읽는다.. 왠지 안락한 소파에 앉아서 그의 책을 읽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여전히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다..

그래서 고통스럽다..

아우슈비츠라는 지옥을 헤쳐 나온 후, 그가 그렇게도 바랬던 인간으로서의 가치, 존엄성에 대한 인정 같은 것들이 점점 헌신짝처럼 내팽겨쳐지는 <사회?>에서 모른 척하며, 하루하루 비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책에 집중하는 것을 더욱 가로막는다.. 

 

<휴전La tregua>.. 그의  두 번째 작품 <휴전>이 출간된 것은 1962년이다.. (전작과 이 작품 사이에 16년의 시간이 걸린 이유는 그의 연대기에 충분한 설명이 나와 있으니 생략한다). 왜 레비는 아우슈비츠에서 자신의 고향 토리노까지 장장 8개월에 걸친 여정을 기록한 이 책에 <휴전>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일까.. "전쟁은 끝났잖아요"라는 레비의 말에 "전쟁은 늘 있는거야"라고 응수하는 모르도 나훔의 <잊을 수 없는> 대답이 있다.. 하지만 그런 일반론으로는-감히 일반론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조금 부족하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레비는 마지막 장에서, 기차가 이탈리아 국경으로 진입하면서, 힘든 귀환의 여정이 드디어 그 막을 고하는 시점에야 비로소 이야기해준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의 지도가 선명하게 보여주듯 이들을 태운 그 기차가 왜 그리도 이상한 궤적을 그렸는지-그것은 어떤 <의지>의 작동인지, 아니면 당시의 혼란이 초래한 우연적인 것인지-에 대해서는 물론 알 수 없다.

 

레오나르도와  나는 기억으로 가득한 침묵에 잠겨 있었다. 출발할 때의 인원 650명 중에 단 세 명이 돌아가고 있었다. 그 20개월 동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들을 잃었을까? 집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되찾게 될까? 우리 자신의 얼마나 많은 부분이 침식당하고 꺼져버렸을까? 돌아가는 우리는 더 풍요로워졌을까 아니면 더 가난해졌을까, 더 강해졌을까 아니면 더 공허해졌을까?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우리 집의 문턱에서, 결과가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판가름이 날 하나의 시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두려움을 가지고 그것을 미리 상상하고 있었다. 혈관 속에서, 기진맥진한 피와 함께 아우슈비츠의 독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어디에서 우리가 다시 살아나가기 위한 힘을, 버림받은 집집마다 텅 빈 둥지마다 그 주위로 아무도 없는 동안 저절로 자라나는 울타리와 장벽들을 허물기 위한 힘을 끌어올린단 말인가? 조만간, 내일 당장,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밖에 있는,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적들에 대항해서 싸움을 시작해야 할 텐데, 무슨 무기로, 무슨 기력으로, 무슨 의지로 한단 말인가? 1년간의 잔혹한 기억들에 짓눌려 우리는 공허해지고 무장해제되고 수백 년은 늙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 막 지나간 달들은 문명의 언저리를 서성이던 힘겨운 시간이었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하나의 휴전으로, 무한한 자유로움의 막간으로, 하늘이 내려준 그러나 다시는 되풀이될 수 없는 운명의 선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결코 그 잔혹한 기억들에 짓눌리지 않았다.. 귀환한 오딧세우스처럼, 그는 집으로 돌아간 다음 해(1946년) "저절로 자라나는 울타리와 장벽들을 허물기 위한 힘을 끌어올려" 초인적인 열정으로 <이것이 인간인가>를 집필한다. 그에게 아우슈비츠 경험을 쓴다는 것은 바로 <밑바닥까지 떨어진 자들>, <메두사의 머리를 보아버린 자들>, 즉 <가라앉은 자들the drowned> 대신에, 대리인으로서 말한다는 의미에서 <증언>이었다. 그리고 그 증언은 <인간으로서>를 넘어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촉발된 것이기도 하다.. 생존자인 자신들이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해자인 인간들과 같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이 주는 부끄러움.. 그래서 어떤 비평가는 이 부끄러움의 감정이 "인간으로서 부끄럽다"는 인간주의적 언표를 초월한 하나의 극한의 언표가 되며, 어떤 고유문화적 속성이 아닌, 보편적인, 굳이 말하자면 "보편"적 이상의 "보편"성을 넘어서는 무엇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물론 부끄러움을 잃어버린(후안무치)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러한 희망은 다시금 머나먼 것이 되어버렸지만.. 

 

레비는 1987년 토리노 자택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 자살인지 사고사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자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도 인간은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음을 몸소 체현했던 그가 왜 68세의 나이에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아우슈비츠를 경험하지 못한 자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그가 남긴 글 속에서 그를 항상 따라다니던 죽음의 그림자를 찾아낼 수 있을 뿐이다..

어느 때고 불현듯 엄습해오는 몸서리쳐지는 공포의 소리를.. <브스타바치>

 

간간이, 때로는 자주 때로는 드물게, 공포로 가득한 꿈이 여전히 나를 찾아왔다.

그것은 세부적으로는 다양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한 가지인, 또 다른 꿈 속에 든 꿈이다. 나는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거나 일터에 있거나 푸른 전원에 가 있다. 그러니까 외관상으로는 긴장과 고통이 없는 평온하고 느긋한 환경 속에 있다. 그럼에도 미묘하고도 깊은 불안감을, 닥쳐오는 위협에 대한 뚜렷한 느낌을 갖는다. 아닌 게 아니라 꿈이 진행되면서 조금씩 조금씩 또는 돌연히 매번 다른 식으로, 장면과 벽들과 사람들과 내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흐물흐물 해체된다. 그리고 불안감은 더욱 짙어지고 명확해진다. 모든 것은 이제 카오스로 변한다. 나만 홀로, 온통 잿빛의, 무감한 무의 한 가운데에 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항상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내가 다시 라거 안에 있고, 라거 밖에 있는 그 무엇도 진짜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가족과 꽃이 핀 자연과 집은 짧은 휴가 또는 감각들의 속임수, 곧 꿈이었다. 이제 안의 꿈, 즉 꿈 속의 꿈은, 평화의 꿈은 끝이 난다. 차갑게 계속되는 바깥의 꿈속에서 나는 익히 알려진 어떤 목소리를 듣는다. 고압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짧고 낮은 한마디다. 아우슈비츠에서 들려오는 새벽의 명령 소리, 두려워하면서 기다리는 외국어 한마디, '브스타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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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 백년 전 한국의 모든 것
이사벨라 버드 비숍 지음, 이인화 옮김 / 살림 / 199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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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비숍 여사가 구한말 한국사회에 대한 가장 냉정한 관찰자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당대 서구인이 지니던 편견과 문화상대주의적 입장이 혼재된 시선으로 그녀는 몰락해가는 한 왕조국가와 거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충실하게 기록한다. 그것은 분명 구한말 우리 자화상의 한 측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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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나의 병사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27
하비에르 세르카스 지음, 김창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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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아리엘 도르프만의 망명일기>라는 다큐를 보다가, 한때 빠져 있었던 칠레의 근현대사와 그 때 읽었던/보았던 리스트들이 다시 떠올랐다..  

 

<칠레의 밤>, <죽음과 소녀>, <칠레전투>, 그리고 또 뭐였더라..

<살라미나의 병사들>을 읽었던 것도 바로 그 시절이었다.. 그건 아무래도 비슷한 근현대사의 폭력적 경험, 그리고 왜곡된 <이행기>를 겪어야 했던 두 나라, 그리고 거기서 우리의 비슷한 근현대사를 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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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세르카스의 <살라미나의 병사들>(김창민 역, 열린 책들)은 <망각협정> 이후 현대 스페인에서 지난 전쟁을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소설에서 작중 화자인 <하비에르>(작가의 실명이기도 하다)는, 두 편의 소설집을 냈지만 소설가로서의 재능이 없음을 인정하고 소설 쓰기를 그만 둔 신문기자로 나온다.. 그는 내전 종료 60주년 기념 일환으로 공화파 시인이자 전사로서 내전에서 죽음을 당한 <안토니오 마차도>의 기사를 준비하다가 <산체스 마사스>라는 한 인물의 기이한 운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산체스 마사스>, 그는 스페인 최초의 파시스트당인 팔랑헤의 우두머리 호세 안토니오의 친구이자, 팔랑헤당의 대표적인 이데올로그, 동시에 "꽤 괜찮은 작가"였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서가에 꽂혀 있던 <스페인내전>(앤터니 비버)의 뒤에 실린 인명색인을 찾아보았다.. <호세 안토니오>, <안토니오 마차도> 항목에는 여러 페이지 수가 적혀 있다..  말 그대로 <역사의 주역>들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산체스 마사스>라는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물론 그는 허구의 인물은 아니다.. 그는 스페인 최초의 파시스트당인 팔랑헤당 건설의 초기 주역이자 뛰어난 이론가이며, 동시에 제법 훌륭한 작가였다고 한다.. 그는 스페인 내전이 막바지에 이르던 1939년 공화파 병사들에 의해 체포되어 다른 포로들과 함께 총살의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 날아오는 총알들은 그를 스쳐 지나갔고, 그는 혼란한 틈을 타 숲 속으로 숨었다.. 도망간 자들을 찾기 위해 수색대가 숲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중 한 수색대원이 그를 발견했고,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주위 병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린다. <거기 누구 있어?>절대절명의 순간.. 산체스 마사스는 체념했다.. 그 때 그 병사는 그를 계속 응시하면서 허공을 향해 힘차게 소리친다.. <아니, 여긴 아무도 없어.>  마법에 걸린 듯한 순간이 지나고.. 그는 무사히 숲을 빠져나온다.. 탈출의 여정은 험난했다..하지만 그는 공화국의 세력이 여전히 남아 있는 시골마을에서 한 농가의 도움으로 근처의 숲에 은신하게 되고, 거기서 만난 세 명의 공화국 군대 탈주병(일명  <숲 속의 친구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프랑코 군대가 마을을 접수할 때까지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난의 운명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그를 기다리고 있던 운명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 다음 스토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초기 파시즘 운동을 주도한 팔랑헤당의 이상주의는 전쟁의 와중에서 점차 현실주의에 의해 꺾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꿈꿨던 파시스트 혁명의 이상은, 또 다른 현실주의 독재자인 프랑코에 의해 갈취되고 만다.. 떼르미도르의 전야에 생쥐스뜨가 절규했던 것처럼 <혁명은 얼어붙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래된 팔랑헤 당원은 두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했다.. 하나는 자신들의 정치적 프로젝트와 새로운 정권의 프로젝트 사이에 현재 뚜렷이 존재하는 균열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모순과 공존하면서 권력의 잔칫상에서 남은 최소한의 부스러기까지 열심히 주워 모으는 것..

물론 그 두 극단 사이에는 많은 중간적 태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산체스 마사스는 결코 <혁명은 동결되었다>고 외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프랑코 체제에 착 달라붙어 과거와 단절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는 현실정치에 어느 정도 몸을 담으면서도 또 문학적 활동도 포기하지 않는 그런 애매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한 삶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그의 표현대로 <후회도 하지 않고, 잊지도 않는> 그런 삶, 아니면 변절.. 작가는 누군가의 입을 빌려, 산체스 마사스의 전후를 <전쟁에서 이기고 문학사에서는 패배했다>고 정리한다.. 다시 말하면 산체스 마사스는 <잊힘으로써 야만적인 대학살에 대한 자신의 야만적 책임을 졌지만, 전쟁에 이기자 작가로서의 자신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소설가(보다 정확히 말하면 <신문기자>)는 아직 생존해 있던 <숲속의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산체스 마사스라는 한 개인의 일생의 전환기였을, 그 운명의 며칠간을 복원해낸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는 총살 당시 도주중이던 그를 봤으면서도 <아니 여기 없어>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던 그 병사는 누구였는지, 그리고 그는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그 이유를  밝혀내는 것이다..

신문기자가 그 병사를(정확히 말하면 그 병사로 추정되는/혹은 자기 스스로 그 병사일 거라고 미루어 짐작해버린 그 병사를) 찾아내기까지의 과정은 생략한다.. 그것은 아주 <우연>이었으니까.. 어쨌거나 그는 살아 있었다.. 카탈루니아의 선반공 출신인 그는 공화국의 병사로 참전, 공화국의 몰락 이후에는 프랑스로 건너가 1944년까지 외인부대의 일원으로 파시즘과 맞서 싸우며, 노르망디 상륙작전, 파리 수복 전투에도 참전한다.. 8년에 걸친 전쟁에서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살아남지만, 마지막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결국 제대해서 현재는 프랑스 정부의 연금을 받으며 프랑스의 한 복지시설에서 홀로 살고 있다.. 소설가는 그 병사를 만나기 위해 그 복지시설로 찾아간다..

당신은 산체스 마사스를 알고 있습니까..
당시 당신은 총살현장에 있었지요..
당신은 왜 그 때 산체스 마사스를 살려줬나요..

신문기자는 왜 그 병사를 찾아내려고 했을까.. 내전 종료 6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영웅>을 찾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 병사를 찾고자 하는 기자를 설득하는 한 동료 소설가(그는 저 유명한 <칠레의 밤>을 썼던 그 라틴 아메리카 작가인 <볼라뇨>이다)의 말처럼, 그 결말은 차라리 <픽션>으로 처리하는 것이 나았을 지도 모른다.. <현실은 항상 우리를 배신하니까, 현실에게 시간을 주지 않고 현실을 먼저 배신하는 겁니다. 실제의 그 병사는 당신을 실망시킬 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꾸며내는 게 낫지요. 꾸며 낸 사람이 실제 사라모다 더 사실적이고말고요>. 혹은 자신을 찾아온 기자에게 어이 없이 웃으며 말하는 그 병사의 말처럼, 그런 영웅은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웅들은 죽거나 살해될 때 영웅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진정한 영웅들은 전쟁에서 태어나 전쟁에서 죽지요. 살아 있는 영웅은 없소이다, 젊은 양반. 모두 다 죽었어요, 죽었어, 죽었다고..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이 산체스 마사스를 살려준 그 병사임을 부인한다.. 하지만 이제 그 사실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소설가 역시 역사적 진실은 확인하기 어렵다는 <라쇼몽>식의 진부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 소설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파시즘>에 맞서 자신의 조국인 스페인에서, 그리고 그 이후에는 프랑스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병사들의 전후가 아니었을까.. 그 젊은 병사들은 대다수가 전장에서 사라져갔다.. 살아남은 병사들의 일부는 <영웅>이 되었을 지도 모르지만, 나머지들은 대부분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그리고 조국 스페인으로부터 버림받고, 프랑스의 어느 한 복지시설에서 쓸쓸히 노년을 보내는 한 스페인 병사는 소설가에게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내가 1936년에 전선을 향해 나설 때 다른 청년들도 함께 갔었소. .. 아주 젊었지요. 거의 애들이었어요, 나처럼 말이죠. ... 그들과 함께 전쟁을 했어요. 두 개의 전쟁을 함께요. 스페인 내전과 다른 전쟁을 말입니다. 비록 두 전쟁이 다 똑같은 것이었지만. 그러네 그들 중에 살아남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모두 죽었지요. ... 정말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전부 죽었습니다. 죽었어요. 죽었어. 모두 다. 어느 누구 하나 이 세상의 좋은 것을 맛보지도 못했어요. 어느 누구도 자기만의 여자를 가져보지 못했어요.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서너 살쯤 되던 어느 일요일 아침, 햇살이 가득한 침실에 자기 아내와 누워 있는 침대로 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그 황홀함을 그 누구도 맛보지 못했단 말입니다....
나는 가끔 그 친구들 꿈을 꿉니다. 그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지요. 모두들 그 때 모습 그대로 농담을 하면서 내게 인사를 건네요. 그때처럼 여전히 젊지요. 그들에겐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까요. 내게 왜 자기들하고 같이 있지 않느냐고 물어요. 마치 내가 그들을 배신한 듯이요. 내가 정말 있을 곳은 거기였으니까요. 아니면 내가 그들 중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 듯 말이죠..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아세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고요. 그들이 왜 죽었는지, 왜 아내와 아이와 햇살 가득한 방을 가지지 못했는지, 그 이유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도, 그리고 내 친구들이 싸워준 그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더더욱 기억을 하지 않습니다. ..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이해하시겠지요. 그렇지요? 아! 하지만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두를 기억합니다.

예전 어떤 글(내 젊은 시절의 많은 부분을 '앗아갔던')을 쓰면서 <그들 병사의 죽음을 국가가 회수하는 방식의 문제성>에 대해 계속 비판했던 나로서는 가슴이 턱 막히는 대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죽음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는 어떻게 죽은 자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일까.. 야스쿠니를 비판하는 대다수의 <진보적> 논자들의 기본적 관심은 그들 병사들의 죽음을 기념하고 현창하는 <국가장치>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을 위해 그들 역시 병사들의 죽음을 다시 한 번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파시스트 이데올로그로서 산체스 마사스의 전후의 삶과 한 공화파 무명용사의 전후의 삶을 이추적하고 복원하면서, 소설가는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일까.. 물론 그것은 작품이 던지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내 글도 여기까지다.. 하지만 이 작품의 결말만큼은 잠깐 짚고 넘어가고 싶다..인터뷰가 끝나고 스페인행 야간열차를 타기 위해, 작별인사를 건네는 소설가와 무명용사(마리예스)의 마지막 장면은, 이 소설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그리고 과거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식을 그려낸 보기 드문 결말이다.. 

<자, 조만간 또 오시길 바랍니다> 미라예스씨가 말했다..
<또 오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요?>
<뭐든지 말씀하세요>
신호등 불빛을 쳐다보면서 그가 말했다.
<누군가와 포옹해 본 지가 아주 오래됐소>
나는 미라예스씨의 지팡이가 보도에 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우람한 팔이 나를 쥐어짜는 느낌이 들었고, 나의 팔은 겨우 그의 몸을 감쌀 수 있었다. 내가 아주 작고 연약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약 냄새, 여러 해 동안 갇혀 있는 사람의 냄새, 삶은 채소 냄새, 무엇보다도 노인의 냄새가 났다. 난 그것이 영웅들의 불행한 냄새라는 것을 알았다.

 cf. 소설의 역자는 <미라예스가 끝까지 자신이 산체스 마사스를 살려준 병사인지 아닌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고 썼다. 하지만 이 소설가는 그가 바로 99% 그임을 알려주는 확실한 <장치> 하나를 숨겨놓았다.. 그걸 찾아보는 재미도 나름 쏠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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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edu1004 2022-12-23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리뷰의 마지막 부분을(미라예스가 ‘그‘임을 알려주는 장치에 대한) 읽고 방금 덮은 살라미나의 병사들을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뭔지 모르겠다가 최근에 다시 한 번 읽었습니다. 제가 찾은 미라예스가 ‘그‘임을 알려주는 장치는 이렇습니다.
볼라뇨는 미라예스가 그 캠핑장에서 미라예스가 여자친구와 맞춰서 추던 노래의 제목이 ‘스페인을 향한 탄식‘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 하비에르는 미라예스에게 그 일화를 말하면서 바로 그 노래가 ‘스페인을 향한 탄식‘이라고 하더군요. 이것 말고는 찾지를 못했습니다.
너무 오래된 글이라 확인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선생님께서 찾으신 장치는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이 부분은 사실 책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크게 상관은 없는 것 같지만요.
더불어 쓰시는 글들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생쥐스뜨 2022-12-21 1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오랜만에 이 책을 다시 펼쳐보았네요.. 기억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 때는 그렇게 확신했었는데(그래서 99%라고 썼었는데), 지금은 그 수치를 좀 줄여야 할 것 같아요. 네, 제가 읽은 것과 정확히 맞습니다. <스페인을 향한 탄식>.. 7년 전에 이 책을 읽을 때는 그 노래야말로 확실한 <장치>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흔들리네요ㅎㅎ. 어쨌든 <마들렌>과 같은 글을 보내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daedu1004 2022-12-23 15:31   좋아요 0 | URL
답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오랜만의 기쁨이었습니다. 사회 분위기도 많이 좋지 않은데 날도 많이 춥네요. 부디 연말연시 잘 보내시기를 기원합니다.
 
슬픈 미나마타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달팽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번역서들 중에서는 가끔씩 소리 소문 없이 세상에 나와 잊혀져버리는 책들이 있다. 이시무레 미치코石牟礼道子의 <苦海淨土わが水俣病>(<슬픈 미나마타>, 김경인 옮김, 달팽이, 2007)도 그런 책들 중 하나이다. 내가 이 책의 소재를 알게 된 계기는 <歴史学研究> 569(1987) 특집 <과거를 향하는 마음>에 실린 타키자와 히데키滝沢秀樹의 글 <民衆史方法関連して>에서였다. 민중사의 시각에서 일본사회의 원()과 한국사회의 한()이라는 감정을 비교하면서, 민중들의 원한을 억압해온 일본사회의 문제, 그리고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풀이>라는 행위의 의미를 고찰했던 이 글은 전후 일본 사회의 감정의 구조structure of feelings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당시의 내게 매우 흥미롭고 신선한 시각을 준 텍스트로 기억된다. 이시무레 미치코의 세계는 이 글의 말미에 잠깐 소개되고 있었다. 메이지 이래로 일본 사회의 분노나 원한은 끊임없이 억압되어 왔지만, 결코 그것은 소멸되지 않고 전후에도 계속 터져 나온다, 이시무레 미치코의 일련의 작품들은 바로 그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60년대 일본 사회의 고도자본주의화에 경종을 울린 대표적인 공해병, <미나마타병>을 테마로, 미나마타 지역의 공동체에 장기간 거주하면서(이시무레 자신이 그 인근 지역 출신이기도 하다) 조사 취재한 기록문학작품으로, 그녀가 써내려간 미나마타 연작의 첫 번째 책이기도 하다.

이시무레가 그려내는 미나마타병 환자들의 증상은 처참함 그 자체다. 깨끗한 바다에서 바다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던 그토록 건강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손이 저리기 시작하더니, 걸음을 잘 못 걷고(무도병 증세), 경기를 일으키다가 속속 죽어나가는 것이다.

 

심지어 수은에 중독된 어패류를 먹지 않은 신생아들마저 선천성 미나마타병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에 그들은 종종 젓가락을 떨어뜨리거나 문지방이나 미닫이에 걸려 넘어지거나 해서 버릇없는아이들로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버릇없는> 행동조차 아예 볼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그 아이들은 시각, 청각 등 감각이 모두 없어지고, 깊고도 조용한 잠 속으로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태반 속의 아기의 경우 어머니의 체내에 있는 오염물질의 중독으로부터 보호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학적 상식이었기 때문에, 신생아들의 경우는 미나마타병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의 증상이 미나마타병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그 아이들 중 누군가가 죽어야 했고, 그 죽은 아이의 시체가 해부되어야 했다. 하나의 증상이 질병으로 공적으로 인식되기까지의 <잔인함>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이는 보상금을 둘러싼 인정투쟁의 가장 비극적인 양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가능한 보상금을 주지 않으려는 회사 측의 의도 때문에, 말 그대로 가장 취약한 상황에 처해있던 아이들은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누군가 빨리 한 명이 죽기를 기다리고 있어야만(그래서 그 아이가 해부대 위에 올라가 그들의 뇌와 장기가 미나마타병에 의해 침식되었음을 '과학적'으로 검증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미나마타병 자체가 당시로서는 전혀 원인을 알 수 없는 희귀병이었기 때문에, 그 증상과 원인을 '학문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인정투쟁을 위한 '증거'가 확보되기까지의 십여 년의 세월 동안 많은 주민들이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죽어나가고, 그 기간에도 공장은 계속해서 폐수를 방류했다는 사실에까지 이르면, 啞然해지지 않을 수 없다.

그 보상금이라는 것 역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미나마타병(정확히는 증상) 발병 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공장 측은 아직 병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인 1959년 서둘러 환자모임과 '위로금' 계약을 체결하는데, 계약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이는 회사 측의 성실한 의무수행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책임을 미연에 회피하려는 책략임이 너무나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이의 생명 연간 3만 엔

어른의 생명 연간 10만 엔

사망자의 생명 30만 엔

장례비 2만 엔

물가가 오르자 19644월에 생명의 가격이 조금 올라서

아이의 생명 연간 5만 엔

그 아이가 20세가 되면 8만 엔

25세가 되면 10만 엔

중증의 어른이 되면 115천 엔

(환자호조회)은 장래에 미나마타병이 갑(공장)의 공장 배수에서 기인한 것이 밝혀져도 새로운 보상요구는 일절 하지 않기로 한다.

 

이시무레는 아이 생명 연간 3만 엔, 어른 생명 연간 10만 엔이라는 바로 이것이 일본국 1950년대의 인권사상이 등에 붙이고 다니던 가격표라고 말한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구절은 아직 미나마타병이 공장의 폐수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이 밝혀지지 않았던 그 시절, 회사는 장래에 미나마타병이 공장의 배수에서 기인한 것이 밝혀져도 새로운 보상요구는 일절 하지 않기로 한다는 조항이다. 말 그대로 이 조항을 붙임으로써, 병 때문에 생계를 꾸릴 수 없어 당장 한 푼이 아쉬운 가난한 어부들에게 말도 안 되는 액수의 위로금’(배상도 아니고, 심지어 보상도 아닌 위로금이다. 1965년 한일 협정 당시 일본으로부터 받은 돈의 명칭이 떠오르지 않는가. 배상도 아니고 심지어 보상도 아닌 독립 축하금’. 실로 동일한 논리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협박처럼 들이대면서 자신들이 나중에 감당해야 할 책임을 미연에 회피해버렸던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회사는 자체 내 실험을 통해 폐수가 미나마타병의 직접적 증상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실험결과를 숨기고 공표하지 않았다.

 

결국, 미나마타병은 60년대로 접어들면서 일본 사회가 풀어나가야 할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의학진과 사회운동가들이 대거 미나마타로 몰려오면서, 그리고 1965년 니가타에서 제 2의 미나마타병이 발병, 사회적으로 문제가 확산되기 시작하면서, 1968, 최초 발병이 있은 지 15년 만에 마침내 공해병으로 정식 인정된다(하지만 이미 그보다 6년 전인 1962년 구마모토대학 의학부에 의해 미나마타병의 원인이 밝혀졌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며, 이미 400호 고양이 실험을 통해 그 원인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구마모토 대학의 논리에 대해 공장에서 배출된 무기수은이 왜 신체에 들어가면 유기수은으로 바뀌는지 알 수 없다며 반론을 폈던 공장 측의 행태를 더더군다나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19696(미나마타병 제 1차 소송: 미나마타의 29세대 112명이 질소공장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냄)부터 진행된 일련의 재판들에서 피해 환자 측이 승소하면서, 점차 구제의 길도 열리게 된다. <공해 피해구제법>(1974년 공해건강피해보상법으로 바뀜)이 실행된 것도 이 해(1969)이다. 앞서 언급한 1959년의 위로금계약의 경우도, 계약 성립시 계약자의 '무지'(innocence)로 인한 경우에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판결에 의해 무효가 선언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는 이미 미나마타병이 발견되고 폐수가 첫 의혹을 샀던 1956, 혹은 첫 사망자가 나왔던 57, 그도 아니라면 이후 대량의 사망자가 속출하던 59년의 시점에, 아니 그 이후라도 신속하게 대처했더라면 수많은 사상자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 회사 측의 방해와 정부의 늑장대응으로 더욱 큰 참사를 낳았다는 점이다. 이는 미나마타병이 하나의 의학적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 문제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하라다 마사즈미 교수 등의 주도로 앞서 언급한 우이 준, 구와바라 시세이 등이 매주 강사로 참여한 미나마타학이라는 강좌가 개설된 이유도 바로 이러한 질병의 사회성에 대한 자각 때문이었다.

 

또 하나, 그 동안 미나마타병 환자들은 질병이 주는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전염이나 천형등 의학적 지식의 부재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적 편견과 낙인, 또 미나마타병 논란의 여파로 회사가 철수하면 지역경제가 붕괴될 것을 우려하는 지역시민들의 시선 때문에 맘대로 고통을 호소하지도 못하는 이중의 고초를 치러야 했음을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어디 미나마타뿐이랴, 20113월 후쿠시마 방사능 누출사고 이후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것처럼 중앙과 지방의 착취-피착취 관계-왜 도쿄전력의 발전소가 간토에서 그렇게 떨어진, 오히려 도호쿠 지역에 가까운 후쿠시마에 위치해 있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러한 관계가 지역 주민들의 동의에 입각한 헤게모니적 지배 아래 작동하고 있는 현실은 근대 일본의 역사에서 끊임없이 변주되어 왔다.

 

법정에서의 승리. 하지만 미나마타병임을 어떻게 인정받을 수 있는가라는 벽이 남아있었다. 실제로 고양이가 100퍼센트 멸종된 시라누이해 연안에 살던 20만 명의 사람들 중, 미나마타병으로 인정된 환자는 2,265, 즉 기껏해야 1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미나마타병에 걸렸다고 하소연했지만, 환경청과 미나마타병 의학전문가 회의는 계속해서 이를 거부하며, 심지어 재판소의 미나마타병은 의학적이지 않다고 항소했던 것이다. 그리고 보상금을 둘러싼 난항과 환자들이 보상금을 바라는 이익집단으로 변질되어 버리는 상황 속에서 주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우리도 종종 소위 학문적글들에서 확인하지 않는가. ‘객관적 가치중립이라는 입장에서 주민들이 토해내는 일련의 목소리, 그리고 행위들을 이해관계전략'strategy이니 하는 식으로 기술하는 글들을. 과연 그들은 한없이 추락해가는 '절망의 심연', 그리고 그 심연에서 터져 나오는 '원한'이라는 감정을 최소한 이해하려는 시도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돈은 한 푼도 필요 없어. 그 대신 회사의 잘 난 사람들, 위에서부터 줄줄이 수은모액 마시라고 해. 위에서부터 차례로, 42명이 죽을 때까지. 그 부인들도 마시라고 해. 태아성 미나마타병 환자가 태어나게. 그리고 그 다음에 순서대로 69, 미나마타병에 걸리라고 해. 그러고 또 100명 정도 잠재 환자가 돼보라고 해. 그거면 충분하니까!

 

여기서 '수은모액'19685월 질소공장이 결국 미나마타병의 원인인 아세트알데히드 생산을 중지하고, 그에 부수한 유기수 폐수 100톤을 의미한다. 공장은 이 100톤의 폐수를 한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드럼통에 주입하던 중, 공장의 조합에게 들켜 저지당했고, 이후 이 유기수은모액은 죄업의 상징으로 남았다고 한다. ‘황당한이야기이기도 하고, ‘어쨌거나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당시 한국에서라면 충분히 가능한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래서 '착잡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3의 미나마타병(2의 미나마타병은 60년대 중반 일본의 니가타에서 발생했다. 지역사회의 신속한 대응과 회사와의 투쟁으로 이 사건은 '다행히' 조기에 수습되고, 또 이 지역의 운동세력 이후 미나마타 지역과 연대하면서, 미나마타 지역에 대한 보상의 길로 발전하기도 했다)이 한국에서 발생할 수 있었을 위험을 미연에 구해준 회사의 노동조합에 감사라도 해야 하는 것일까.

 

처음 책을 읽으면서,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근대 일본 사회의 민중들의 원한(み・)이라는 문제였다. 메이지시기를 거쳐 '전후'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는 민중들의 분노나 원한의 감정을 끊임없이 억압해온 사회라는 것은 이제는 일반적인 정설이다. 다시 말하면, 근대 일본이라는 윤리적세계는, 분노라는 감정을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하는”, 즉 그러한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는 것 자체를 “‘미덕에 반하는것으로 폄하하는, 그래서 ()과 한()을 잊어버리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라는 것이다. 패전 직후 일본 사회 내에서 소위 <전쟁 체험파戦争体験派>를 중심으로 분노를 망각해버린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전개된 바 있지만, 이 역시 전쟁의 그림자가 걷혀 가면서 소멸되어 버렸다. 이렇게 분노나 원한을 잊어버리는 것이 바람직한 사회에서 일본사회의 민중들은 항상 권력에 순응하며 살아왔다는 그런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그들의 원한이 어떻게 새로운 정치로 전화될 수 있는가, 그 가능성의 한 측면을 찾고 싶었던 것이 이 책을 꺼내 들게 된 이유였다. 그러나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이 책은 좋은텍스트는 아니다. 저자의 강력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체, 그리고 미나마타병이라는 실체의 압도적인 무게감에 짓눌려, 다른 생각들을 펼쳐나가는 것 자체가 곤란해지기 때문이다.

 

또한 근대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악마로서의 미나마타병에 대한 대립 항으로써, 저자가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해내고 있는 근대 이전의 미나마타 사회라는 구도 역시 '엄밀한' 의미에서 검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사회과학적인 입장에서 근대의 대립 항으로 전근대를 찬미했다는 식으로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쉽고', '가벼운' 비판이다. 왜 그녀는 지역사회 주민들, 그것도 미나마타병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고, 또 그 자신들 역시 현재의 증상에 신음하는, 혹은 이들 환자들을 보면서 자신도 언제 발병할지 모르는 처지에 두려워하는 주민들의 구술을 통해, 이런 아름다운 전근대의 세계를 그려냈을까. 오히려 이 작품은 이런 아름다운 '환상'의 세계를 그려냄으로써 이 세상에서 추방당한 채, 고해정토(苦海淨土)를 헤쳐 나가는 사람들의 <그 후それから>를 포착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저자도 스스로 밝히듯이 이 책은 사회과학도, 엄밀한 의미의 르포도 아니다. 오히려 시의 언어와 산문의 언어가 서로 만나고 겹쳐지는 흔적trace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게 나을 듯싶다.

 

이 글은 예전 어떤 잡지에 서평으로 실은 글을 (참고문헌과 인용을 포함하여) 많이 축약한 것입니다.

 

   

 

 

 

밤 되면 가장 생각나는 것은 역시, 바다야. 바다가 제일 좋았어.
봄부터 여름이 되면 바다 속에도 온갖 꽃들이 만발하지. 우리 바다는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바다 속에도 명소라는 게 있어. ‘찻잔코’에 ‘맨살여울’에 ‘검은 해협’ ‘사자섬’까지.
빙 한 바퀴 돌면 익숙해진 우리 코에도, 여름이 시작될 무렵의 바다 향기가 풀풀 풍기거든. ‘회사’ 냄새하고는 차원이 다르지.
바닷물도 흘러. 굴이며 말미잘이며 청각채며, 바닷물이 출렁이며 흐르는 곳이면 어디나 꽃들이 한들한들거리지.
그 중에서도 특히 물고기가 아름답지. 말미잘은 만발한 국화꽃 같아. 청각채는 바다 속 절벽에 잘 뻗은 가지모양을 층층이 이루고 있지.
톳은 눈이나 죽백나무 꽃가지 같아. 해초는 대숲 같고.
바다 속 풍경도 육지하고 똑같이, 봄도 가을도 여름도 겨울도 있다우. 나는 바다 속에는 반드시 용궁이 있다고 믿어. 꿈처럼 아름다울 거야. 바다에 질리거나 하는 일은 죽어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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