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지음, 김종돈 옮김 / 노마드북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레비의 <지금이 아니면 언제?>(1982)는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보더라도 이채로운 작품이다..

여기에는 <이것이 인간인가?>(1947)로부터 <휴전>(1963), 그리고 <주기율표>(1975)로 이어지는 그의 아우슈비츠 체험에 토대한 회고가 아닌, 그 역시 가담했던, 하지만 <이것이 인간인가>의 서두에서 밝힌 것처럼 별다른 활동도 하지 못한 채 붙잡혔던 <유태인 빨치산>의 이야기가 중심 테마로 그려져 있다.. 왜 그는 자신의 마지막 작품을, 이전과 같은 아우슈비츠 체험을 담은 자전적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들었던 이야기를 토대로, 그것도 빨치산의 이야기를 쓴 것일까.. 책을 읽어가다보니 그 의문이 조금씩 풀리는 듯 하기도 했다..

 

이 책의 절창은 무엇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형집행을 기다리는 유태인 빨치산의 노래이다..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 노래가사는, 한 유태인 빨치산 대원이 나치에 체포된 후 처형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 만든 노래였다고 한다.. 그가 부르던 풀룻을 만지작거리던 특수보안사 간부는 그에게 말했다..

첫째, 빨치산은 교수형이고,

둘째, 유태인은 총살형이다. 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

 

아무 것도 선택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 교수형을 당한 후 총살형에 처해진다. 이 노래가사는 그가 마지막 소원으로 받은 30분 동안 종이에 남긴 것을, 이후 그의 부대원들이 복수한 후 되찾은 것이다.. 두 번의 처형을 앞둔 상황에서, 나의 목숨이 소중하지만, 또 내 목숨만을 바란다면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냐고 묻는, 그리고 유태인 빨치산이라는 가장 힘든 길을 선택하면서,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라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 절절해서, 잠시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에 부르는 노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전 조선인 특공대원에 대한 글(<조선인특공대원이라는 물음>)을 쓰면서, 특공으로 출격하기 직전 자신이 조선인임을 밝히고 아리랑을 불렀다는 한 청년의 내면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학문적으로) 그 내면을 읽어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물음표로 남겨두었지만, 그 특공대원의 심경을 생각하면서, 왠지 김산이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죽음을 예감하며 불렀던 <아리랑>이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노혁명가로서, 패배로 일관해온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도 결코 혁명에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김산이, 죽음을 예감하면서 불렀던 <아리랑>.. 그것은 분명 유태인 빨치산이 처형 직전 몽당연필로 종이에 남겼던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서로 연결될 수는 있어도, 조선인 특공대원의 <아리랑>과 만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부르는 노래에 깃든 처절함, 그리고 이러한 개죽음을 당해야 하는 상황을 넘어서고자 하는 힘에 대한 처절한 갈구라는 점에서는 서로 공통되는 것이 아닐까..  

 

 

 

2.

이 작품은 유태인 빨치산들이 걸었던 길La strada에 대한 기록이다.. 당시 빨치산들의 삶은 가혹했다.. 하물며 유태인 빨치산의 처지야.. 그들은 정규군뿐만 아니라 다른 빨치산 조직들에도 배척을 받았다.. 믿을 수 없는 유태인이라는 낙인은 저주처럼 그들을 따라다녔다.. 유랑은 그들의 운명이었다.. 그들은 그 운명에 괴로워하면서도, 어떤 경우는 이에 순응하면서(<유태인 풍자극>의 그 씁쓸한 풍자를 보라), 또 어떤 때는 그 운명을 거부하면서 그 길을 걸어갔다.. 그 길은 20-30년대 만주 지방을 유랑했던 조선인 빨치산들의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들의 운명은 전쟁이 끝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종전을 마음놓고 기뻐할 수도 없었다. 그들에게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적 나치는 사라졌지만, 이제 소비에트 군대가, 또 연합군 군대가 또 그들의 적이 될 지 모른다.. 그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운명이므로.. 그들을 아군으로 받아들이기는 커녕 무장해제를 명했던 소비에트 장교의 다음과 같은 선고는 유태인 빨치산의 험난한 운명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러시아의 어느 빨치산이든 모두 소비에트 빨치산 연맹에 소속되어 있다. 그런데 유태인만의 독자적인 빨치산 부대에 관해서는 아직 들은 바가 없다. 따라서 여러분들은 여기에 머무르면서 상부의 지시를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 그리 알기 바란다.

 

이후 그들의 길은 실로 유랑의 길이다.. 그 길은 레비가 아우슈비츠에서 해방된 이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겪어야 했던 또 하나의 유랑의 길(<휴전>)과도 겹쳐 있다..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팔레스타인은 정말 그들의 안식처가 될 수 있을까.. 잠정적인 목적지인 이탈리아로 향하는 기차 속에서 주인공 멘델은 자신(들)의 미래를 떠올려본다.. 그것은 이 책의 또 다른 테마인 <디아스포라>의 사유이기도 하다..

 

이제 멘델은 혼자였다. 여인도 없고 목적지도 없고 고향도 없었다. 친구들마저 모두 사라진 것일까? 아니 그건 아직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동고동락한 동지들은 살아남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동지들은 그의 공허감을 채워주었다. 열차가 어디로 가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자 고난의 여정도 모두 끝났다. 그럼 이제 그에게 무엇이 찾아올까? 그는 과연 어떤 존재로 살게 될까? 그토록 기다렸던 약속의 땅에서는 아무런 메시지도 없었다. 설령 그곳에 간다고 하더라도 고난의 전투와 행군을 다시 해야 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그의 운명이라면 마땅히 수용해야겠지만....

첫 작품에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들(여기에는 메두사의 머리를 보아버린, 가라앉은 자들, 무셀만들까지도 포함된다)의 비참한 삶을 세밀하게 묘사하면서 <이것이 인간인가>라고 외쳤던 레비가 자신의 마지막 소설을 유태인 빨치산의 이야기로 끝맺었다는 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인간의 존재의미에 대한 집요한 탐구의 궤적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레비는 일단 여기서 멈춰 섰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았을 지도 모른다.. 여행은 끝난 것일까..

 

하지만 여기서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이 세계가 가라앉은 자들과 남은 자들이라는 구도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레비는 증언자로서 그 고통스러운 길을 남은 자들이 함께 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것은 절박한 요구였다..  

 

그 절박함에 어떤 방식으로든 응답하는 것..

 

cf. 그런데 품절이라니.. 레비로의 여행을 떠나려는 독자들을 위해서라도 출판사 측이 충분한 고려를 해주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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