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사노바의 귀향.꿈의 노벨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7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모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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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고 매혹적이다. 동시대의 프로이트가 부러워할만하다. 그가 평생을 공들여 쌓아올린 정신분석의 정수를 슈니츨러는 자유자재로 문학장에 담아낸다.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면서(있었기에) 그들은 1922년에야 처음으로 만나 긴 시간을 보낸다. 다음은 피터 게이의 <부르주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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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3년 세기의 여름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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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 직전의 섬광을 그려낸 매혹적인 책이다. 물론 아는 만큼 보인다. 츠바이크의 자서전과 <19세기 빈>, <봄의 제전> 정도를 끼고 본다면 훨씬 흥미로울 듯. 나올만한 대가들은 이 때 다 나왔다. 그에 비하면 오늘의 지성사는 얼마나 초라한가. 하지만 빛나던 유럽을 기다리는 것은 전쟁의 수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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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버린 사람들 -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사건의 기록
김효순 지음 / 서해문집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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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침묵의 시선>을 보았다..

사람들이 오지 않은 한적한 오후 시간대, 하루에 단 한 번, 그것도 단 일주일만 상영하는 영화.. 오늘이 그 마지막날이었다..

역시 바삐 일하며 살아가는 성실한 사람들은 볼 수 없는 시간대라서인지, 극장 안은 한산했다..

그리고 1시간 43분이라는 러닝타임 동안 말 그대로 지옥을 보았다..

전작 <액트 오브 킬링>이 가해자의 자기부정, 합리화를 다룬 영화라면(하지만 그 합리화는 결코 완전할 수 없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피해자 역을 맡은 살인자가 그 공포를 참아내지 못하고 구역질 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이 다큐는 피해자의 시선으로 과거의 아픈 역사를 재조명해보려는 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의 가해자들이 여전히 권좌에 앉아 있는 현실, 그리고 여전히 보이지 않는 억압과 공포가 드리워져 있는 사회에서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당한 채 살아간다.. 용기를 내어 자신의 형 람디의 죽음을 추적하며 관련자들을 찾아가는 동생 아디에게 그들은 "왜 평화로운 이 세상에서 과거의 아픈 상처를 들쑤시느냐", "그때는 어쩔 수 없었다, 잊어라"라고 말한다.. 아니, 때로는 "너같은 놈들이 숨어있는 빨갱이라며" 대놓고 위협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살인행위를 뉘우치려 하지 않으며, 자신이 한 일에 책임을 지려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웃으며 자신이 했던 살인을 무용담처럼 지껄여댄다.. 처음에는 그들 역시 자신이 한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라며 그들의 행동을 어떻게든 이해하려 하는 아디는 가해자들을 만날 때마다 절대로 넘어갈 수 없는 거대한, 굳건한 장벽과 같은 것을 실감한다..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하며, 오히려 과거의 상처를 들쑤시고 있다며 위협하는 가해자들 앞에서 아디는 점점 말을 잃어간다.. 눈물이 고인 채 멍하게 상대방을 바라보는 그의 슬픈 눈이 잊혀지지 않는다..

 

가해자/학살자는 여전히 승리를 멈추지 않고 있고 피해자는 여전히 패자로, 두 눈을 내리깔고 입을 닫은 채 살 수밖에 없는 사회.. 아니 이것도 <사회>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이게 비단 머나먼 저 동남아시아의 이야기일까..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이라는 역사적 사기극의 피해자들이었던 이들의 질곡의 삶을 그려낸 이 책(<조국이 버린 사람들>)을 읽노라면, 그것은 결코 과거의 이야기도, 그리고 머나먼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이미 서승, 서경식 선생의 글들을 통해 서씨 형제의 사건은 한국사회에도 조금이나마 알려졌지만, 우리는 그 외 수십 명의 자이니치 청년들이 과거 70년대 군부 독재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았다.. 아니 아예 관심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이 왜 일본에서 살수밖에 없었는지, 왜 한국어가 아닌 일본어를 모국어로 할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들이 70년대 풍요로운 일본 사회를 뒤로 한 채 독재의 서슬퍼런 한국사회로 유학을 왔는지, 우리 사회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비교적 자유롭게 남과 북의 사회를 바라보던 그들은 공안당국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예전 <제 5공화국>이라는 드라마에서 이학봉 역을 맡은 탤런트가 실감나게 말했던 명대사, <엮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 그들은 정말 그렇게 말도 안 되게 엮여서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이들이 별로 없었던 그들은 형무소에서 자행되는 온갖 폭력을 몸소 받아낼 수 밖에 없었다..

 

<민주화>가 되었다고 세상이 정말 좋아졌을까.. 과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시절에 만들어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들의 활동으로 그나마 우리는 과거 군부 독재시절의 폭력에 대해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적어도 법적으로 많은 이들이 다시 무죄판결을 받고 복권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잃어버린 청춘의 세월을, 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몸을 다시 되돌릴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시의 가해자들이 진정 제대로 된 사과 한 번 한 적 있었던가.. 그들은 여전히 승리자로, 권력의 상층부에 앉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침묵의 시선>을 보면서 내내 느꼈던 불편함, 역겨움, 그리고 비참함은 그 현실이 바로 우리네 삶의 어떤 부분과 너무나 닮아 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느낌이었다.. 우리네 현실이 그나마 영화 속의 그 지옥보다 나은 것이라면, 그것은 그 소름끼치는 폭력에 맞서 계속해서 말하고 또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계속 과거의 상처를 응시하고 말하는 것을 멈춰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상처를 왜 들쑤시느냐>, <가만히 있어라>라고 말하는 <양식 있는> 사람들에 맞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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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 - 우리는 왜 비현실적인 것에 주목해야 하는가
조르조 아감벤 지음, 윤병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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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산만하고 현학적이지만 <청년> 아감벤은 훨씬 친절하다. 호모 사케르 연작의 씨앗을 확인할 수도. 1, 2부에 비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유령이론, 스토아철학과 의학의 프네우마 이론의 결합을 장황히 소개하며 유령론의 계보를 추적해가는 3부는 난해하기보다는 생경하지만, 동시에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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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도련님』의 시대 1~5 (완결) 세트 - 전5권 - 혹독한 근대 및 생기 넘치는 메이지인
다니구치 지로 그림, 세키카와 나쓰오 글, 오주원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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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학교 도서관에 주문을 했더니 2주만에 책이 왔다..

음.. 일단 빌려서 읽기 시작했다..

아.. 굉장한 책이다..

역시 사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그러자니,

현암사에서 나오고 있는 소세키전집도 눈길이 가고(소세키의 소설들을 나올 때마다 한 권, 두 권 사모았더니 전집이 나오고 있다.. 이런..)

모리 오가이의 책도 <아베 일족> 한 권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이시카와 다쿠보쿠의 시집은 아무래도 마땅히 떠오르는 번역본을 찾을 수 없지만, 역시 한 권쯤은 갖고 싶고..

고토쿠 슈스이 선집도 필요하다(아주 운좋게 어제 알라딘 헌책방에 나온 매물을 잽싸게 주문했다)..

쉽지 않은 일이다..

 

스토리 만화라는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장르에 대해 식견이 없는 내가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글을 쓴 세키카와 나쓰오가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료조사를 했을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소세키, 오가이, 다쿠보쿠, 고토쿠 슈스이.. 그 이름만으로도 메이지를 대표하는 문사들이 자신의 길을 가면서 서로 만나고 엇갈리는 궤적을, 그는 그들이 남긴 일기, 그리고 편지 등을 꼼꼼히 읽어내면서 재구성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작업이다.. 물론 이들에 대한 많은 전기가 이미 출간되었기 때문에 2차 문헌들의 도움을 받았겠지만, 그래도 그 방대한 양을 다시 압축해서 한 권 한 권 만화라는 공간에 담아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작업이다.. 경의를 표한다..

 

저자는 메이지라는 시기를 도련님(봇짱)의 시대로 규정한다.. 소세키의 <도련님/봇짱>이 골계미 가득한 유머러스한 작품이 아니라, 왠지모를 우수어린 작품으로 평가하는 저자의 시각에 120프로 동의.. 왜냐하면 소세키가 그 작품에서 그려내려고 했던 것은 메이지라는 시대의 격량에 깨어질 수밖에 없는 이상주의의 한 반짝임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소세키, 오가이, 다쿠보쿠, 고토쿠 슈스이는 모두 <도련님>들이다.. 메이지를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분명 이 시대를 그린 또 하나의 명작 <바람의 검심>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세계관이 메이지에 대해 전후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신화의 반영이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연이은 공습, 그리고 패전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보면서 일본인들이 느꼈던 공통된 물음.. 왜 우리는 이런 무의미한 전쟁에 빠져들어 조국을 잿더미로 만들고 말았을까.. 어디서 우리는 잘못된 길을 가게 된 것일까.. 누군가는 <진주만 기습>을, 또 누군가는 <만주사변>을 그 기점으로 삼을 지 모르지만, 저자는 고토쿠 슈스이 등 일련의 사회주의자들의 죽음을 가져온 <대역사건>을 그 기점으로 삼는다.. 이시카와 다쿠보쿠가 <시대폐색>이라고 명명했던 그 시기를 거치면서 메이지 시대의 생기는 사라지고, 그들은 점차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나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생쥐스뜨라면 그런 모습을 보면서 <혁명이 동결되었다>고 부르짖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메이지 시대의 일본을 그만큼 신화적인 시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욕망의 한 표현이기도 하다.. 유신지사들은, 메이지를 만든 이들은 거인들이었다.. 서세동점의 가혹한 시대 속에서 동양의 작은 소국인 일본은 독립을 위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러일전쟁은 일본이라는 국가가 존속하기 위한 불가결한 싸움이었고, 동시에 백인종에 맞서 싸운 아시아인 전체의 승리이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전후 70주년 아베 담화와 그 인식에서 커다란 차이가 발견되지 않는다.. 러일전쟁이 조선을 병합하기 위한 전초전이었다는 것은 잊혀진다.. 아마 만화 1권에서 안중근이 그 정도의 비중으로밖에 그려지지 못한 것도 이러한 인식의 한계일 것이다.. 물론 그 정도의 인식이라도 보여주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역시 이 정도면 훌륭한 만화다.. 만화를 읽고 나니..

소세키의 <산시로>가 그리고 모리 오가이의 <무희>가 다시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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