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의 병사들 - 평범했던 그들은 어떻게 괴물이 되었나
죙케 나이첼.하랄트 벨처 지음, 김태희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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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책장을 덮고나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읽어가는 내내, 그 자료의 생생한 현장성에 압도당하는, 말 그대로 살 떨리는 체험이었다..

 

전쟁이 아직 끝나지도 않은 시점에서 당시 적군인 <독일군 포로들의 도청기록>과 같은 자료수집 시스템을 구축한 영국의 역량에 대해 우선 경이로움을 표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들이 이런 인간정보를 수집한 이유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 즉 적을 이해하기 위해서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이 먼지 쌓인 자료를 영국 국립보존기록관에서 찾아낸 독일인 저자는 영국 측의 의도와는 다른 목적으로 읽어내고자 한다.. 

지난 2차대전 시기 군대가 그토록 엄청난 집단적 학살-섬멸, 박해, 제노사이드, 홀로코스트-을 자행한 원인은 무엇인가.. 

 

저자들에 따른다면, 그것은 광기도,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학살을 가능하게 한 것은 군대와 전쟁이라는 프레임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독일군 병사들의 증언들을 읽고 있노라면, 전시라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맡은 바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전쟁 노동자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때로 자신들 앞에 펼쳐진 풍경들에 두려움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도 했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집단의 규범에 따라 평시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이 엄청난 만행을 묵묵히 수행했다.. 저자의 개념을 빌린다면 <집단사고>, 그리고 <경로의존성>에 따라..

 

이를 염두에 둘 때, 사회적 범죄의 한편에는 범죄를 계획하고 예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가해자들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이런 행위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는' 방관자나 관객이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모두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즉 어떤 사람은 더 강력하고 열성적으로, 어떤 사람은 좀 더 회의적이고 무관심하게, 공동의 사회적 현실을 함께 만들어 낼 뿐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사회적 현실이 제3제국의 프레임을 이루었다.

 

<악의 평범함>(아렌트), 그리고 밀그램의 실험에 이어, 우리는 폭력의 역학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개념을 갖게 되었다.. <프레임>. 그것은 밀그램이 강조한 <사회적 관계>를 조금 더 사회문화적으로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폭력을 막기 위해서는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는 말일텐데, 그게 과연 말처럼 쉬운 일일까.. 저자들은 왜 평범했던 그들이 괴물이 되어가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줬다.. 하지만 괴물로 화하는 과정을 막을 수 있는 그 <무엇>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한 상을 제시해주지 못했다.. 오히려 그 과정 자체가 너무나 당연한natural 것처럼 느껴져서 무력감마저 들 정도이다..

 

하지만 10만 페이지가 넘는 그 자료들을 꼼꼼히 읽어가는 과정, 그리고 그 자료들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작업이야말로, 연구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프레임이 아무리 탄탄하고, 그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무리 비관적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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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마을
이시무레 미치코 지음, 서은혜 옮김 / 녹색평론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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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마타병>에 대한 기록문학의 전범. 이시무레는 자신의 언어를 통해 무녀처럼 병으로 쓰러져간 죽은 넋들을 건져올린다. 전작인 <고해정토>, 혹은 하라다 마사즈미의 <미나마타병>와 함께 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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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수치심 - 인간다움을 파괴하는 감정들
마사 너스바움 지음, 조계원 옮김 / 민음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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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판 미국사회의 감정교육(플로베르). 조금 더 압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혐오와 수치심이 노골적으로 횡행하는 한국사회에 사는 나로선, 자신들의 이념인 자유주의 체제에 적합한 <정치심리 상태>를 담보하는 공적, 법률적 문화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그들의 노력이 부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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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전과 문학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W. G. 제발트 지음, 이경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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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의 아렌트처럼, 제발트는 피해자주의에 젖은 채 자신의 과거를 애써 망각하며 살아가는 독일사회에 날선 칼날을 들이댄다. 하지만 제발트는 그 칼날이 바로 자신을 향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문체에 깊이 드리운 고독과 멜랑콜리가 이를 반증한다.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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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색의 세계사 - 새로 쓴 제3세계 인민의 역사
비자이 프라샤드 지음, 박소현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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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 베트남에 다녀왔다..

여행의 목적은 하노이, 그리고 중부의 전쟁유적지를 둘러보는 것이었다..

근 10여년만에 다시 찾은 하노이는 굉장히 활기찼고, 도시 곳곳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자본이 베트남에 투여되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이제 동남아시아의 여느 신흥국가의 대도시와 비슷해져버린 하노이를 보면서, 지금의 하노이가, 베트남이, 과거 독립전쟁과 민족해방전선에 소속되어 싸우다 죽어간 무수한 전사들이 꿈꿨던 그 곳일까 하는 의구심이 여행 내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거대한 모뉴먼트가 되어버린 호치민묘지와 전쟁기념관, <조국은 너희들의 죽음을 결코 잊지 않는다>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던 혁명열사들의 묘지, 그리고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는 다국적 대기업의 마천루들이 혼재된 공간에서, 점차 갈피를 잡기 힘들어졌다..  

중부지역(후에, 호이안, 다낭)으로 내려가면서 혼란은 점점 심해졌다.. 과거의 격전지답게 중부지방에는 어느 마을마다 <혁명열사들의 묘지>가 있었고, 그 묘지의 비석의 상당수는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것들이었다.. 무명전사의 묘지.. 당시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상징물들이다.. 그 무수한 네이팜탄과 고엽제 때문에 황폐해져버린 중부지역에 <자연>이 소생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과거 미군기지도시였던, 그리고 지금은 베트남 제 3의 도시인 다낭 곳곳에는 계급격차, 사회적 빈곤과 같은 자본주의의 모순이 산재해 있다..

 

<갈색의 세계사>의 저자는 독립전쟁, 나아가 혁명을 경험했던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이러한 풍경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노스탤지어는 국민이 국가에 완전히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을 방지하는 한 가지 수단이다. 민족주의는 "수도의 휘황찬란한 건물", 행진과 퍼레이드, 지도자들의 거대한 동상, 그리고 국민들이 보기에는 미완의 투쟁을 기념하는 각종 장식물로 축소됐다. 유럽과 북미국가들이 공화국의 자유를 지키다 죽은 무명용사들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을 중요한 장소에 세웠다면, 반식민 제 3세계 국가들은 독립투쟁에서 희생된 수백만을 기렸다. 그러나 이름 없는 인민의 벽화는 민족해방정당 지도자들의 거대한 초상화나 동상 둘레에 있었다. 민족해방투쟁을 대표하는 지도자들은 독립투쟁의 정치적 자원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 따라서 노스탤지어에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으며, 그것은 단지 맹목적인 지도부에 대한 아쉬움이 담긴 희망이나 배반당한 국민의 순진한 희망만이 아니었다.

 

실로 음울한 대목이다.. 미약하게만 보였던 제 3세계 인민들이 식민주의의 노골적인 무력 탄압에 맞서 보여준 놀라운 힘과 투쟁의 역사, 그리고 승리의 기록들을 열심히 읽고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프란츠 파농의 목소리가 그리도 절절하게 들렸던 것도, 알제리인민해방전선(FLN)에서의 투쟁의 경험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변변찮은 무기도 없었던 베트남 인민들이 압도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었던 미군과 맞서 싸울 수 있었던 데에는 독립을 향한 강렬한 열망이 물론 일차적 동기이겠지만, 전 세계의 억압받는 인민들이 자신들의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는, 그래서 자신들은 현재의 싸움을 그만 둘 수 없다는 그런 심정도 마음 한 구석에 굳건히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1950년대 후반의 알제리, 그리고 1960년대의 베트남은 제 3세계 인민들의 희망이었다.. 인종, 민족, 종교가 다른 여러 나라들이 제 3세계라는 이름으로 연대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공통된 경험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치, 경제적 연대를 넘어 <감정적 연대>였다.. <대지의 저주받은 자들>이라는 공감에서 비롯된 연대..

 

물론1966년 아바나에서 열린 첫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인민연대회의(삼대륙희의)에 당시 또 다른 혁명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콩고에 있던 체 게바라가 보낸 서한에는 그러한 연대의식에 깃들어 있는 어떤 <공허함>이 묻어나오기도 한다.. 제국주의의 총이 겨누지 않은 곳에서 연대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그의 물음은 이미 딴 마음을 품기 시작한 제 3세계 국가들에 대한 연대의 호소이기도 했다.. 이 책의 1부는 바로 그 <상상의 공동체>로서 제 3세계의 탄생과 그 초기의 열정과 시행착오의 기록이다..

"지금 베트남 인민을 향한 세계 진보세력의 연대는 원형경기장에서 검투사를 구슬리는 로마 평민들의 씁쓸한 아이러니와 닮은 데가 있다. 문제는 침략의 피해자가 이기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의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그가 죽거나 승리하는 것과 관계없이 함께 해야 한다."

 

하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더욱 통렬한 물음은 2부, 즉 그 신화적인 투쟁 이후(post)의 세계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전 인민들의 의지를 결집해서 제국주의, 식민주의와 치열하게 맞서 싸운 끝에 불가능해 보이던 승리를 거두고, 마침내 자신들만의 독립국가를 수립했던 나라들이 <왜> 독립 이후 학살과 내전, 거듭되는 군부 쿠데타, 그리고 결국에는 인민들을 탄압하는 독재정부로 귀결되고 말았는가.. 그것은 필연적인 길이었는가. 흔히 많은 보수주의 학자들은 이러한 귀결을 제 3세계 특유의 부족주의, 종교적 폐쇄주의, 그리고 합리주의의 결여와 같은 사회문화적 전통에서 찾곤 한다.. 하지만 저자가 아시아에서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아메리카에 이르는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설득력 있게 논증하고 있는 것은, 그러한 침몰이 문화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과거 제국주의가 남긴 정치경제적, 나아가 사회문화적 유산, 그리고 여전히 과거 식민지의 부에 대한 집착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 하는 제 1세계 자본의 음모, 그리고 입으로만 형제를 외치며 실제로 그들의 곤경을 외면했던 제 2세계(소련, 중국 등)의 국가-이기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제국주의의 폭력과 맞서 싸울 열정과 용기는 있었지만, 새로 수립된 국가를 설계하고 경영하는 실제적 경험/지식, 그리고 이를 실행해 나갈 기술관료들은 현저히 부족했다.. 그리고 그들은 한때는 제국주의와의 싸움을 위해 연대했던, 하지만 계급적 성격이나 새로운 국가의 비전에 대해서도 현저히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 구사회 부르주아들과 같은 내부의 적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그것은 물론 제국주의가 남긴 저주와 같은 유산이다.. 과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실무관료들이 빠져나간 자리들을 채워줄 인재들을 양성하는 데는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노회한 1세계 자본들은 결코 그들에게 그러한 시간적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운 실험과 시행착오의 혼란을 겪던 3세계 국가들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

제 3세계가 빠진 함정은 많은 부분 여기에 있었다. 투쟁의 열기로 만들어진 신생국들은 사회관계를 효과적으로 재조직하지도, 남겨진 식민지형 국가구조를 분쇄하지도 못했다. 신생국들은 구사회 계급과 손을 잡고 식민지 관료제 구조를 받아들이면서 제 3세계 의제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렸다. 제 3세계 정권이 동원해제된 국민들에게 자신들이 구상해온 바를 강요하면서 군부지배나 군사력이 일상적 질서가 됐다. 반식민 투쟁에 나섰고 제 3세계를 환영했던 인민들은 이제 신생국들에 순응하는 추종자나 무기력한 존재 또는 적으로만 여겨졌다. 그럼에도 제 3세계의 정치적 자본이 남아 있었기에, 1970년대 맞닥뜨린 전면공격이 없었더라면 제 3세계는 스스로 만든 함정을 뚫고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부채위기와 제 1세계의 세계적 재편성 정책에 제 3세계는 암살당하고 만다.

 

여기에 이들이 한때 자신들의 동지였던 공산당 세력들에게 총구를 돌리면서 빚어진 비참한 학살도 덧붙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인도네시아에서 자행된 피의 학살에 대해서는 이미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충격적인 두 편의 다큐멘터리영화 <액트 오브 킬링>, <침묵의 시선>이 한국에도 (아주 잠깐이나마, 그리고 아주 한정된 공간에서) 소개된 바 있다. 10만에서 100만이라는 이 믿을 수 없는 학살 희생자들의 수치 앞에서 순간 아연해지게 된다.. 도대체 왜 그들은 자신들의 이웃이었던 이들에게 끔찍한 학살을 자행했을까.. 저자의 분석은 이 지점에서 멈춰 있다.. 조슈아는 학살자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통해 그 심리구조를 찾아내고자 하지만, 그 역시 확실한 무엇인가를 찾아내지는 못했다.. 식민지, 그리고 반제국주의 전쟁이 낳은 공포의 문화, 냉전이라는 구조적 역학, 제 3세계 국가들의 불안한 내부정치, 종교적 갈등 등 다양한 요인들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그 상황을 풀어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이 부분은 일종의 막간극처럼 처리되는 듯한 느낌이 있다.. <함정>과 <암살>이라는 책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본다면 처리하기가 쉽지 않은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 책의 3부는, 2부의 끝부분에서 예고했던 바로 그 <암살>의 기록이다.. 1세계 자본이 주도하는 IMF 식의 세계화 공세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 채, 오히려 제 3세계 민족주의를 떠받치는 두 기둥인 자급경제와 세속적 민주주의가 모두 무너지면서, 제 3세계 국가들이 종파적 민족주의와 세계화가 기묘하게 결합하는 괴물로 변해가는 양상들이 3부의 주된 테마가 될 것이다.. 

지금의 리뷰는 2부를 마치고 3부를 읽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쓰고 있다.. 호흡을 좀 가다듬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거 한 시대가 이루어낸 민주주의의 많은 성과들이 하나둘씩 압살당하고 있는 우리네 현실 속에서 과거 제 3세계 국가들의 패배의 기록들을 읽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여전히 승리를 거듭하고 있는 적들 앞에서 벤야민은 과거로부터 희망의 불꽃을 점화할 수 있는 재능이 주어진 사람은 오로지, 죽은 사람들까지도 적으로부터 안전하지는 못하리라는 것을 투철하게 인식하고 있는 특정한 역사가뿐이라고 썼다.. 그 비참한 몰락과 패배의 기록을 읽기 전에 벤야민의 잠언을 다시금 떠올린다..

 

억눌린 자들의 전통이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교훈은, 우리들이 오늘날 그 속에서 살고 있는 <비상사태>라는 것이 예외가 아니라 상례라는 점이다. 우리는 이러한 인식에 상응하는 역사의 개념에 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진정한 비상사태를 도래시키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사실이 명약관화해질 것이고, 그리고 이를 통해 파시즘에 대한 투쟁에서 우리가 갖는 입장도 개선될 것이다. 파시즘이 승산이 있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 반대자들이 진보라는 이름을 하나의 역사적 규범으로 삼아 이를 들고 파시즘에 맞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지금 체험하고 있는 일들이 20세기에 들어선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능할 수 있다는 놀라움은 결코 철학적 놀라움이 아니다. 이러한 놀라움은, 그러한 놀라움을 생겨나게 하는 역사관이 지탱될 수 없다는 인식이 전제되지 않으면 인식의 출발점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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