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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소녀시대 ㅣ 지식여행자 1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어색한 만남, 그 후
사실 '요네하라 마리'라는 일본인을 알게 된 것은『미식견문록』이 먼저였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취재한 맛나는 음식여행에 관한 에세이쯤으로 생각하고 경쾌하게 집어 들었지만 다 덮고 나서 음식자체 라기 보다는 음식에 관련된 다양한 문화를 맛본 것으로 느껴졌다. 책의 절반이상을 차지하던 '러시아 문화'에 대한 그녀의 애정이나 음식을 소재로 하면서도 밑바탕에 평화를 기원하는 바램을 느낄 수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것의 모태가 된 그녀가 러시아어를 사용하며 교육받았다던 프라하에서의 '어린 시절'이 궁금해지기도 했다. 학교를 다니며 여섯 끼를 먹었다는 그녀의 끼니마다의 식사메뉴는 과연 그 시절이 60년대인가 싶을 정도로 호화생활과 고급메뉴였기 때문이다. 『미식견문록』의 이야기는 러시아속담에서부터 시작해 러시아 술 보드카나 케비어에 관한 사회경제적 배경, 러시아에 감자가 보급된 역사, 프라하 시절 친구들과 사먹었다던 터키사탕, 러시아 친구가 건네준 할바등에 관한 추억을 지나 그녀가 읽었다는 책, 동료나 친척들과 생긴 에피소드를 회상할 때에도 늘 러시아는 근원적인 배경으로 뚜렷이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그녀가 20년간 러시아 동시 통역사를 하면서 200번이나 러시아를 왔다 갔다 했다는 사실을 염두 해 두고서라도, 거의 러시아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녀의 사고방식과 통찰력의 기원은 일본을 넘어선 그 어딘가로 느껴졌기에 색다른 인생길을 걸어온 그녀의 실제 이야기가 궁금했던 터였다.
『프라하의 소녀시대』는 '요네하라 마리'라는 러시아를 모국어처럼 사용하는 일본인으로서 자신의 독특한 체험을 당시 만났던 동구권 유럽친구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해 줄 것으로 믿었다. '프라하'라는 다분히 낭만적으로 보이는 배경과 '소녀시대'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미식견문록』을 통해 더욱 촉발 되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7,80년대 유년기와 사춘기를 보낸 내가 기억하는 당시 소련과 동독, 동구권 유럽은 거의 올림픽과 같은 스포츠에서의 칼같은 피겨스케이팅이나 절도있는 동작의 체조선수들의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던 얼음같은 이미지가 전부였다. 체조요정 코마네치나 드라큘라의 나라이기보다는 김일성을 추종했다는 독재자 차우세스쿠 정권으로 인식되어 버린 루마니아나 주로 구기 종목에서 우리보다 머리하나는 더 커보였던 장신선수들로 우리선수들이 무릎을 꿇기도 했던 유고슬라비아, 그리고 '프라하의 봄'으로 상징되던 체코슬로바키아 역시 무시무시하던 공산주의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는 국가들이 아니었다.
1989년 대학입학과 동시에 베를린 장벽은 무너지고 성인이 된 후 유럽공산주의의 몰락, 소련의 붕괴도 한참이나 지난 오늘날엔 동유럽여행도 낭만적인 휴가상품으로 치부되고 있긴 하지만 아무래도 반공교육을 철저히 받은 세대로서 무의식중에 남아있을 적대적 감정은 동유럽 소녀들의 이야기를 향한 호기심보다 더 오래된 객관적 거리를 두려했음이다. 그렇게 호기심 반 거리감 반으로 선뜻 다가서지 못해 어정쩡한 발걸음으로 이 작품『프라하의 소녀시대』를 만나 버렸던 것 같다.
그리곤, 『프라하의 소녀시대』를 덮고 나서는 그제서야 그녀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고 '참 귀중한 기록을 남겨준 분을 잃었구나'라는 뒤늦은 애석함을 '그래도 살아 생전에 남겨주어 그나마 다행이다'라는 더 늦은 고마움으로 스스로를 달래어야 했었다. 진실로 더 할 수 없이 귀중하다고 자각했다. 더불어 내가 알고 있었던 혹은 안다고 생각하던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과 그 국적을 가진 우리와 다르지 않던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애국심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한 인간으로서 행복하고자 했다는 것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간과하고 살아왔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었다.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것은 그녀가 사망한 이후였고 벌써 3,4년이 지났다. 그녀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으며 8,90년대에 활발하게 러시아 동시 통역사라는 직업으로 이미 사회적 성공을 거둔 유명인이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러시아라는 선택은 그녀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고 당시 일본공산당 간부였었던 아버지의 행보를 따르는 것으로 시작된 운명이었다. 그녀는 1960년에서 1964년까지(아홉살에서 열네살까지) 5년간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 프라하에 있는 소비에트 학교(외교관들, 공산당 간부의 자제를 위해 소련 대사관이 운영했던 국제학교)를 다녔다. 일본 내에서의 공산주의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터라 그녀의 아버지가 프라하에 본부를 둔 국제 공산주의 운동 이론지 <평화와 사회주의 제문제>에 일본 공산당을 대표한 편집위원이었다는 사실도 무슨 빨치산의 후손을 만나는 것처럼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녀는 1995년 일본 방송사의 도움으로 소비에트 학교 시절 친하게 지낸 세 친구를 찾아 나선 것이 계기가 되어『프라하의 소녀시대』를 집필했다고 한다. 그 시절 친구들인 그리스 출신의 리챠, 루마니아 출신의 아냐, 옛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야스나를 찾아가 만나는 과정이 책의 각 챕터 후반부를 장식한다. 마치 우리로 본다면 'TV는 사랑을 싣고'에 출연한 유명인사가 그 옛날 시골마을에서의 첫사랑이나 소꿉친구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가는 눈물나는 여정이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60년대는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고 50개국에서 모인 다국적의 외국 소녀들이 머나먼 타국 프라하라는 도시의 어느 학교에 모여 모국어가 아닌 러시아어를 가지고 세계 다른 지역의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울고 웃고 화내고 즐기며, 그들만의 소녀시대를 보내었다는 것은 굉장한 특수상황의 흔치 않은 이야기임에 틀림없다. 공산주의가 사라진 지금의 프라하도 멀기만 한 내게 어쩌면 그녀가 제시한 사진 몇 장이라도 없었다면 혹시 그냥 소설 속 이야기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세 명의 친구들이 등장한다. 원제가 '거짓말쟁이 아냐의 진홍색ㆍ眞紅色 진실' 인 것을 보면 세 명 중 애국심이 남달랐던 루마니아 출신의 아냐를 통해(아냐를 찾아가며 생각을 펼치는 과정이 다른 친구들의 그것에 비해 상당히 저널리즘 적이기에)아마도 자신의 조국인 일본인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전해주려 한 것은 아닐까 싶었고 세 명의 친구에 비해선 선진국이자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이라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데올로기나 이념부분에선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녀만의 강대국 특유의 우월감을 여러 차례 느끼기도 했지만, 나는 이 책을 통해 그녀가 이야기 하고자 한 내셔널리즘(민족주의)에 관한 통찰보다는 그녀들과 같은 소녀시대를 지내온 한 인간으로서 세 친구들에게서 느낀 '소녀적 감수성'과 그를 통해 그녀들의 인생에 밑거름이 된 '문화적 다양성', 그리고 그녀들이 나눈 우정속에서 자라난 '자아의 성장'에 보다 주목하고 싶었다. 30년이 지난 후에 단순히 옛 친구에 대한 향수나 추억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그녀가 친구들을 찾아 간 것은 아니라 생각하고 오랫동안 러시아 문화를 주고 받는 역할로 살아온 그녀가 일본인이 아닌 전 세계를 향해서라면 끈질기게 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지 답을 얻고 싶었다.
자유를 향한 푸른 안테나
그리스 공산당 대표로서 프라하로 망명한 아버지를 둔 리챠는 개방적인 어머니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오빠, 핸섬한 외삼촌을 둔 말괄량이 소녀였다. 수학에는 소질이 없었지만 일찍 '성'에 눈을 뜬 리챠는 스포츠 만능에, 영화광에 배우가 꿈인 외향적 성격의 친구였다. 한번도 본적이 없었지만 쨍하고 깨질듯이 눈부신 조국 그리스의 하늘을 늘 자랑스러워했던 리챠의 감수성은 훗날 그 하늘 만큼이나 넓고 깊은 포용성으로 발전해 내적인 성장을 이룬 듯하다. 예상 밖의 진로와 이어지는 불운에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았던 리챠의 마음 한구석엔 늘 고향의 하늘을 향한 자유의지가 꼿꼿한 안테나 처럼 푸르렀기 때문이 아닐까.
독일에서는 특권계층으로 인식되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으면서도 노동자 출신의 남성과 결혼을 하였고, 학비가 무료인 사회주의 체제 덕에 교육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하며, 소련군에 반대 입장을 표명해 많은 기회를 잃었던 아버지이지만 공산주의라는 정체성만큼은 잃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를 떳떳하게 생각하며 보따리 무역상으로 전락한 아버지의 자동차 사고를 절망으로만 인식하지는 않는다. 오빠 미체스의 불운은 그동안 많은 여자를 울린 댓가로 생각하며, 다운 증후군으로 태어난 아들에게서도 행복과 감사를 느끼는 리챠는 그토록 사무치게 그리워하던 고국으로 돌아가지는 못했지만 그리스의 방송을 시청하는 것으로 오늘의 자신을 저버리지 않는다. 서독의 나우하임이라는 마을에서 터키, 그리스, 동유럽에서 온 일용 노동자들과 그의 가족을 위한 진료소를 운영하는 모습으로 만나게 된 리챠는 특유의 낙관적인 성격과 독일인, 체코인, 러시아인, 그리스인의 장단점을 모두 이해하고 다문화, 다민족의 다양성을 몸으로 체험 한 후 가장 자신답지 않았을 모습으로 자신다움을 찾아간 꽤 기특한 친구로서 그녀의 걱정을 무색케 했다. 의사라는 직업은 배우를 지망했던 리챠로선 의외의 선택으로 인식될 수도 있었겠지만, 아마도 사람들을 진료할 때 진솔함과 자유로운 사고방식, 편안함을 매력으로 환자들과 소통하고자 한 리챠의 본성은 십분 발휘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에서 기인하는 건강함과 그를 향한 그리움은 오랜 세월 어디를 가서 무슨 일을 하든 그를 그답게 할 수 있는 순수의 모티브가 되었던 것은 아닐까. 리챠가 그리워한 그리스의 하늘과 바다는 많은 이들이 손에 꼽는 베스트 여행지이기도 하다. 그리스에 갈 기회가 온다면 꼭 눈부신 하늘을 뚫어져라 보고 싶어 질 것만 같다.
이데올로기 보다 떳떳한
루마니아 공산당 대표를 아버지로 둔 아냐는 어린 나이에도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여 과장된 혁명적 표현을 쓰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과시하려는 성향의 친구였다. 똑같이 공산주의라는 지하생활을 파란만장하게 견뎌온 아버지를 두었다는 동지의식이 그녀와 아냐를 가깝게 하기도 했지만 이념으로서만 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정작 실천적인 면에서는 귀족과도 같은 부르주아적 생활과 그를 지향한 선택 및 상반되는 행보를 보여주며 훗날 재회할 때까지도 거리감과 의문점을 지울 수 없었던 친구이기도 하다.
일상에서도 쉽게 거짓말을 하는 버릇이나 과다한 형용사로 치장한 이야기 꾸며대기는 아냐가 거창하게 예찬하는 공산주의적 성향을 지녔음을 암시하기도 하지만 부모나 가족의 허황된 자랑은 유대인으로서의 아냐의 내재된 민족적 열등감을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개 이런 친구들은 거짓말 하는 사실만 빼면 학급에서 친구들에게 상냥하고 혹시나 친구들이 다치거나 위험에 빠질 때 굉장히 의협적인 행동으로 친구들의 믿음을 사곤 한다. 즉, 자신을 괴롭히는 민족적 정체성에 관련된 부분이 아닌 모든 것에는 평등적 시선을 주장해 친구들로부터 거짓말에 대한 어느 정도 관용을 미리 확보해두는 미워하기 힘든 존재 인 것이다.
아냐는 독재정권이 붕괴된 후에도 특권층의 생활을 향유했던 아버지덕에 영국으로 유학은 물론 영국인과 결혼하여 여행잡지의 편집이라는 다분히 자본주의적인 직업을 가지며 그토록 유창했던 러시아어를 까마득하게 잃어버린다. 아냐가 러시아어를 잃어버렸던 것은 그 시절 루마니아를 찬양하던 자신을 거짓말처럼 버려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궁극에는 국적이나 민족, 언어에 대한 고집보다는 현실에 맞추어 자신을 합리화 하게 된 아냐는 또다시 90프로는 영국인이라는 거짓말 속에서 자신다움을 버리는 것으로 자신다움을 찾은 친구였다. 그녀는 아냐가 프라하 시절 가장 따스한 가슴으로 기억하는 친구였기에 재회의 반가움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냐를 보며 같은 길을 택했더라면 자신을 사랑하지도 존경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는 귀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황폐한 거리의 어두움과는 달리 부쿠레슈티의 호화맨션에서 아냐의 부모님과 조우한 그녀는 유난히도 걸끄럽다고 생각되는 질문들을 마치 심문하듯이 조목조목 이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나는 이 부분에서 본의 아니게 그녀의 내셔널리즘을 엿볼 수 있었다. 아냐의 아버지를 보면서 그녀(마리)의 아버지가 꿈꾸었던 공산주의는 가짜가 아니었고 법적,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모순을 느껴 당신의 혜택을 모두 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역으로 강조하는 것 같아 마음 한구석이 짠해지기도 했고 가이드에게 사회의 변동에 자신의 운명이 놀아나는 일은 없었다고 자신있게 언급하는 부분에서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에 이은 조국과 자신의 운명에 대한 떳떳함을 의미심장하게 느낄 수 있었다. 비열한 아버지와 특권을 거절하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아냐의 오빠 미르차의 인생을 자세히 소개한 부분 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도 들어 아냐의 이야기는 어쩌면 그녀의 조국에 간접적으로 자신이 걸어 온 길에 대한 못다한 고백이자 사회적 동의를 구하는 진홍빛 사연이 아니었을까.
의연함으로 남은 하얀 우수
지금은 여러 개의 나라로 분리되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유고슬라비아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독립선언이 발단이 된 다민족 전쟁보다는 유럽 축구의 전통 강국인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를 합친 옛 국가로서의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더 친근하다.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에서 개최된 80년대 동계올림픽도 같은 맥락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보헤미안의 거리로 상징되는 '하얀도시'라는 뜻의 베오그라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던 유고슬라비아의 소녀 야스나는 천재적일 정도로 놀라운 두뇌와 어른스러움, 그림에 대한 재능으로 너무나 완벽해서 다가갈 수 없었던 친구였다. 야스나의 아버지는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체코슬로바키아 대사로 우스타시에 대항한 파르티잔 출신이었는데 사실 그녀가 야스나의 집에서 우연히 야스나의 아버지로부터 전해들은 일화는 작품 전체를 통털어 가장 뭉클한 에피소드였다. 야스나의 아버지는 그녀들의 나이일 무렵 학교에 갑자기 들이닥친 우스타시들의 검열당시 파르티잔 마크를 지니고 있던 친구를 대신해 연행된 선생님의 숭고한 희생을 계기로 파르티잔에 가담하게 되었다. 훗날 보스니아의 마지막 대통령으로서 탈출을 거부한 채 언제 폭격당할 지 알 수 없는 사라예보의 방공호에서 생활하고 있었기에 자동차 사고로 생을 마감한 리챠의 아버지나 비겁한 루마니아의 특권층으로 떳떳하지 못했던 아냐의 아버지나 지하생활을 16년 동안이나 감행했다는 그녀의 아버지와 더불어 격동의 시대에 역사와 민족, 이데올로기에 자유롭지 못했던 개인의 운명에 이념을 떠나서 인간적 연민을 느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야스나는 내전의 혼란속에서 보스니아 무슬림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외교부 통역 번역관이라는 일자리도 잃고 인간관계에서도 외면과 상처를 받지만 학생시절의 당당하던 모습 그대로 착실하게 삶을 이어간다. 깨진 다음 맛볼 슬픔이 늘어나는 것이 싫어 컵 하나도 새로 사지 않은 아스냐지만 자신다움을 감내하고 받아 들임으로써 자신다움을 의연히 지켜나갈 수 있었기에 세 명의 친구들 중에 가장 아프게 다가왔다. 여고시절 늘 1등을 놓치지 않고 모든 과목에 완벽하던 미모의 내 친구는 5공화국 시절 유명한 국회의원의 딸이기도 했고 훗날 중견 건설사 집안의 며느리도 되었지만 남편이 교통사고로 결혼한 지 1년도 안되어 사망하는 불운과 정권이 바뀌어 집안이 몰락하면서 소식이 끊겨버렸다. 시대와 환경과 조건이 다르긴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어떻게 자신다움을 지켜 나왔을 지 새삼 궁금해졌고 아마 아스냐처럼 주변에 휘둘리지 않고 꼿꼿이 그 상황을 담담히 받아 들이는 것으로 자신을 세우고 있을 것 같다는 믿음도 느껴졌다.
세 명의 친구들 중 가장 조마조마 했던 야스나를 찾아 가는 과정은 ‘명쾌하다’라는 뜻을 가진 애칭으로서의 야스나 같지는 않았다. 혹시라도 끝내 그녀가 친구를 찾지 못하게 되지는 않을까 만약 찾아가는 도중에 야스나의 불행의 소식을 접하게 되지는 않을까 내내 초조하고 긴장스러웠다. 30년 만에 소식이 끊긴 친구들의 진실을 알아가는 두려움과 비슷한 감정 때문에 “두려운 작품”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은 아니었을지.
그리고 곧 그 두려움은 조금은 더 복잡한 감정으로 확산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프라하라는 과거의 공간과 소녀시대라는 과거의 시점으로 우리를 데려다준 요네하라 마리에게 '두려움'을 느꼈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그저 회상이나 기록의 의미에서 한번의 박수로 고개를 숙이는 것 그 이상의 의무감이 무의식중에 반영된 결과가 아닐까 싶었다. 그녀는 같이 웃고 말자는 연예인도 아니고 자신의 여행에 같이 울어 달라는 리포터도 아닌 작가로서 우리에게 질문과 같은 대답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녀다운 그녀
'나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세 명의 친구들을 끝내 찾아 내고 말던 그녀를 보며 난 '그녀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그녀가 그녀로서 그녀다웠다면 그것을 느낀 나는 과연 어떤 것이 나다운 것일지 그녀를 보며 반문하게 되었다. 그녀는 서문에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접하고서야 자기를 자신답게 하고 타인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려 애쓰게 되었다 했는데 그렇다면 혹시 세 명의 친구들에 비해 가장 순탄한 길을 걸었던 그녀가 자신다움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행운의 수혜자로서 친구들을 찾아야 했던 것이 그녀 자신이 꼭 해야 할 의무와도 같은 일이라 여겨왔던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찾았던 것은 그렇게 어렵사리 다시 만나게 된 친구들은 물론이고 혹시 프라하에서의 소녀시절 그녀들 속에 있던 그녀자신의 자신다움은 아니었을까. 작품 속에는 그녀가 친구들과 재회 했을 당시 자신의 감회와 반가움만 표현되었기에 친구들이 그녀를 보며 어떠한 생각을 했을 지는 우리 몫이 되었지만 아마도 세친구들 역시 그녀를 보며 똑같이 조국을 사랑하고 많은 꿈을 가졌었던 누구보다 자신다웠을 소녀시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나답다는 것', 사실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내가 일치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확인함으로써 상처를 받게 된 시기는 거의 성인이 되고 난 후 였던 것 같다. 나다움을 한창 만들어가는 시기인 유년기, 사춘기엔 크고 작은 좌충우돌의 시행착오적 사건들로 나다움의 피와 살을 이루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격동의 시기에 나다움의 태도와 방식과 표현을 만들어간 세 명의 친구들과 그녀의 소녀시대가 참으로 진하고도 설득력있게 다가온다.
지금은 비록 고인이 되었지만 당시 세 명의 친구과 재회한 그녀는 무슨 약속을 하였을까. 그들이 나눈 시간들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고 그것은 앞으로도 영원할 것이라는 것을 서로 약속하고 싶었을지 모르겠다. 나도 그녀와 약속을 하나 하고 싶다. 나다운 나, 나이고 싶은 나를 잃지 않고 살고자 가끔은 당신을 생각하겠다고. 당신은 참 당신다웠음을 오래오래 기억하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