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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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에 앞서

나는 이 책을 예판으로 만났기에 벌써 책을 덮은 지 한 달이 다 되어 간다. 그때 느꼈던 개인적인 감회가 아직도 생생하다. 작가의 전작인 『개밥바라기 별』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기에 그 여운도 가시지 않았었지만 대대적인 광고나 황석영 작가라는 이름 석자의 마케팅 파워를 제쳐 두고서라도 나는 이미『강남몽』을 꼭 읽어야 할 세대라 각오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말하는 작품의 주력 타겟으로 이미 정해졌다는 사회적 요구와 암묵적 인식이 한몫 했음을 부인치 않겠다. 70년대부터 시작된 강남의 개발사와 같이 하는 나의 유소년기와 오늘날 그토록 한 많은 강남夢으로 탄생한 강남 아파트에서 7,80년대를 살아왔고 부동산 버블의 핵심요인인 학군에서도 강남의 8학군을 졸업했으며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계속 강남에서 사회생활을 했으니 마치 백화점이 무너지는 현장을 눈앞에서 목도한 목격자라도 된 듯한 증인으로서 이 작품을 숙제처럼 집어 들 수 밖에 없었던 터였다. 그렇게 작가는『강남몽』앞으로 나의 출석을 요구하였다는 생각이 들자 주사도 먼저 맞는 것이 낫겠다싶어 자진 출두를 하였던 것 같다.

책을 덮고는 마치 나의 강남주거史를 돌이켜 본 듯한 뿌듯함도 있었고, 그 시절 부모님, 친구들과의 추억이나 강남이 어디인지도 모르고 마냥 뛰어 놀던 옛날 아파트도 애틋하게 떠올랐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강남에 살았다는 것이 겉으로 보기엔 하나의 이력으로 인식되기도 했었기에 그쪽 속사정은 다 알고 있지 하는 (한번이라도 부러워 했을 사람들을 향한)우월감이나 초등학교부터, 여중고 시절을 강남학교에서 지내온 덕에 대학을 입학하고 나서도 우리끼리 출신학교를 거슬러 유치하게 오리지널을 따져가며 패거리를 만들곤 했던 포스트 강남증후군(?)에 대한 웃음 섞인 그리움 같은 것도 슬며시 피어올랐기에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으로  많은 것을 뒤돌아 보았다.

1995년 당시 삼풍 백화점 붕괴사고 바로 전날 법원에 일이 있어 백화점 지하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도너츠를 먹으며 시간을 기다리던 내가 다음날 같은 시간에 논현동 회사 사무실에서 회의를 하던 순간 붕괴소식을 듣고는 집에 돌아가 멍하니 뉴스 화면만 바라보던 그날 밤도 기억났고, 또 거짓말처럼 시간이 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자연스레 잊고 살아왔던 우리들의 오늘을 반추해보기도 하였다. 그 후에도 몇 번의 대형사고 참사가 이어진 후 유학 갔다온 직장 동료에게 한국에선 백화점에 들른 후 지하철을 타고 성수대교를 건너면 꼭 한번은 죽는다는 뼈있는 농담을 외국친구들 한테 들었다며 고개 들고 다니기 창피했다는 이야기도 이젠 추억이 되었다.

고백 하나, 타고난 바이러스

90년대 말 IMF가 터지기 전까지 우리 세대의 20대는 오렌지족과 압구정동이라는 대명사로 강남을 소비하고 성숙하지 못했던 국력에 대한 패배감을 개인적인 욕망으로 대체하려는 성향이 강했다. 강남의 탄생과 생성의 시기가 같은 1970년 즈음에 태어난 내 세대의 경우 초등학교 때부터 한반에 70명이나 되던 오전 오후반을 거쳐 80년대 컬러시대와 전두환 정권의 4S(Speed, Screen, Sports, Sex)정책에 힘입어 프로야구나 비디오 영화를 통해 취미에 눈을 뜨게 되었고, 겉으로는 두발 및 복장 자율화라는 공교육의 허울 속에서도 반공과 주입식, 획일적 교육의 억압이라는 이중성을 가장 혼란스럽게 체험한 과도기 세대였었다. 평균 대입 경쟁률이 4:1이라 한 분단(8명)에 두 명만 대학을 가는 현실이긴 했지만 청년백수가 이십대의 상징인 오늘에 비하면 그래도 우리 때의 취직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은 아니었고 좋은 일자리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쪽에서 부르짖던 운동권 친구들의 정의로와 보이던 모습에 동참하지 못했던 대다수의 소심한 우리 세대가 미덕으로 강요당한 것은 언제나 남들 하는 만큼만인 남들과 다르지 않음이었다. 학급회의 때도 건의사항에 손을 드는 것은 밉상을 부르는 일이라 인식되어 남들과 다른 생각, 다른 모습은 결코 다양성이라는 격려와 칭찬으로 조명받기 어려운 현실이었던 것이다.

마침 강남땅도 우리의 아노미적 성장기 시절에 불철주야 포크레인으로 아파트 숲을 창조하게 되었고 우리 세대가 국가적 패배감과 무늬만 자유로 보였던 이중성을 그 뿌리로 성장하여 사회인이 되었을 때엔 지금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되는 한 두개의 스펙만으로도 한 계단 위를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우리 부모님들은 바로 법적인 울타리가 형성되지 않은 시기에 이미 기득권으로 획득한 부동산이라는 재산의 강남夢을 그 결과로서 우리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신 분들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부모님의 재산을 무위로 받아 먹은 마지막 수혜자가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남들 하는 만큼은 꼭 따라잡아야 했던 우리 세대는 바로 다음 세대보다 부동산에 대한 불신과 증오만큼이나 그 믿음이 견고하다는 생각이다. 자라온 환경적인 영향으로 부동산을 추종하는 세대가 되었다고 합리화 하려는 것은 아니다. 강남을 증오하면서 그리워하는 특유의 이중성의 기원은 내가 아닌 남이 기준이 되어야 했던 그 시절 교육에 있다고 자책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인터넷과 휴대폰이 없었던 우리 시대의 꿈은 그래도 낭만적이었다고 같은 세대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보면 궁극에는 결국 2010년 오늘까지 살아온 결과로 아파트(혹시라도 강남이면 다홍치마이고)를 한 채 소유하고 있느 냐의 여부가 앞으로의 인생을 판가름 하는 하나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는 것에 씁쓸한 공감을 느끼며 강남에의 애증을 안주 삼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하곤 한다는 것이다.

이렇듯 부모님 세대의 순수했을지 모를 강남夢을 더 위악적으로 계승해온 후발 주자(우리를 포함한)들 덕에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고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도 많은 발전을 하였건만 강남에 대한 집착은 더 뿌리 깊고 강해지기만 할 뿐이었다. 우리 세대들 중에는 부모님으로부터 무조건으로 받은 전세금(전세금의 규모에 따라 지역이 달라졌지만)을 가지고 되건 안되건 꾸준히 분양권에 접근해왔고 또 운 좋게 분양권을 획득한 사람들은 자고나면 하루 아침에 억 단위가 바뀌는 신기한 강남夢을 꾼 사람들도 많다. 신기한 강남夢은 무슨 전염병과도 같아 너도나도 꾸기만 하면 보물이 될 것 같은 기대감으로 꼭 강남이 아니더라도 아파트라면 무리한 대출로 일단 집문서를 확보하는 것으로 남 따라하기의 전형을 집요하게 실천해왔다. 그렇다. 우리들 대부분은 옷집에 가서도 남들과 다른 디자인 보다 남들이 제일 많이 선택하는 스타일의 옷을 고르는 것이 한결 마음이 편하다.   

우리는 이미 태어 날때부터 강남夢 이라는 무서운 전염병에 항체는 커녕 바이러스를 지니고 세상에 등장했던 것은 아닐까. 


고백 두울, 밥은 굶어도 집은 강남으로

시간은 흘러『강남몽』도 내게 멋진 교훈으로 자리 잡으려 할 즈음 아이 때문에 친하게 지내는 언니로부터 자주 볼멘 소리를 듣게 되었다. 뉴스에선 연일 부동산 경기침체며 집값 하락과 입주 거부현상, 건설사 위기에 따른 심각한 실태를 자세히 조명하고 있었다. 곧이어 '강남'의 한 아파트 4000세대의 경우 세대 대부분은 떨어지는 집값과 대출금, 이자 등에 허덕이고 있으며 '비싼 아파트'에 살지만 '생활은 어려운', 말 그대로 '하우스 푸어(House Poor)' 신세로 전락했다는 경제관련 칼럼 메일을 받았다. 언니 역시 무리한 대출로 아파트를 구입한 처지라 네 식구 살림에 이자를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집을 내놓았으나 오다가다 물어보면 파리만 날리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3년 전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 2억이나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마련했으니 어찌보면 집문서 하나 들고 월세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하고 있는 실정이니 오히려 전세신세를 면치 못하더라도 맘 하나는 편하지 싶은 내가 부러울 지경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강남夢은 장밋빛 행복을 약속할 꿈이 아니라 미래를 덮어 씌우는 거대한 암흑의 덫이었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 실로 씁쓸하고 허탈한 꿈이 아닐 수 없었다.

충격이 컸다. 한때는 서로 집안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했던 이웃이어서가 아니었다.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세대마다 저마다의 현실에 처한 절실한 고민들이 존재 할 것이고 그 고민들은 어느 세대가 다른 세대보다 덜하고 더하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박빙의 사연인 것도 알고 있다. 사실 우리 세대는 미모를 무기로 회장님의 세컨드가 된 박선녀나, 철저하게 사리사욕에 눈이 멀었던 김진 회장, 초창기 부동산 수혜자인 한강개발의 심남수와 박기섭을 대 놓고 욕할 입장은 되지 못한다 생각한다. 그것은 강남의 랜드마크가 되어버린 몇몇 고급의 아파트를 지나갈 때나 그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패턴, 그들이 자주 들러 쇼핑한다는 백화점과 명품샵, 눈부신 아파트에서 빠져나오는 고급 외제 승용차들을 목격할 때 한번쯤은 저들이 오로지 실력과 노력만으로 획득한 자리가 아닌 운 좋게 부동산이나 주식 아니면 부모덕으로 쌓아 올린 외양적인 성공의 모습일 뿐이라 그들을 깍아 내리면서도 속으로는 늘 부러운 마음을 살짝 덮어 버리곤 했던 우리의 이중성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에 나보다 먼저 입성한 사람들을 부럽지 않은 척 했기에, 드디어 내가 입성하게 되었을 때 겉으로 좋은 척 하지 않았기에, 지금 와 그것은 헛된 꿈이었다고 말할 용기도 말하고 싶지도 않기에 아직은 괜찮은 척 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서글프다.

옳은 것이라 말은 못하겠으나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고 또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에서라면 '나도 한번' 이라는 생각에 왜 강남夢을 꿈꾸지 않았겠는가. 외제차가 스르륵 미끄러져 들어오면 주유소 아르바이트 직원들도 허리 굽히는 각도가 틀려지는 한국의 현실에선 일단 할 수만 있다면 강남에 입성하는 것이 꿈이라고 한들 누가 손가락질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그토록 어렵사리 입성한 강남에서 남들에게 보이는 성공에선 성공했으나 정작 실제 행복이라는 성공에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니 그동안 뒷짐지고 구경하는 입장인 척한 나로서는 고소하다고 해야 할 지 동정해야 할 지 사실 두 가지 상반된 감정과는 별개로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열심히 가꾸었던 강남夢이 지금에 와 이토록 서글픈 우리들의 자화상이 되었다는 현실 자체가 너무나도 화가 나고 억울하고 무망하다. 불타고 있는 심정에 기름을 붓는 꼴인지 모르겠으나 강남夢을 꾼 덕에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강남몽』의 이차 타켓으로 부전승의 자격을 이미 획득한 처지이니 출석 요구서와도 같은 이 작품을 외면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백 세엣, to be continued

강남에서도 모두 잘 살고 공부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속에서도 빈부의 격차와 학력격차는 엄연히 존재하였고 어쩌면 차라리 같은 강남에 살지 않는 것이 상대적 박탈감에서 더 자유로울 수도 있었다. 95년 당시 삼풍 백화점은 강남에 있긴 하였으나 젊은 세대가 자주 드나들던 갤러리아 백화점(당시 압구정동 한양쇼핑센터)이나 롯데백화점(당시 역삼동 그랜드 백화점)과는 사뭇 분위가 달라 주로 샤넬풍의 사모님(박선녀 부류의)들이 자주 들르는 백화점이었다. 이미 강남중에서도 더 유달리 고위 특수계층이었던 그들이 자주 방문하던 백화점이 무너졌다는 것을 보면 그 위치를 제대로 공략한 당시 이준 회장(김진 회장)의 탁월한 안목에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내 기억으로는 다른 백화점과는 달리 중앙이 시원하게 뚫린 중정 구조로 매장수가 많지도 않고 중년 대상의 고급 브랜드가 많아 언제나 붐비는 백화점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수만을 위한 공간이었기에 그나마 다른 백화점이 아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지금 생각하면 강남의 백화점 들 중 꼭 하나가 무너져야 한다면(?) 애석하게도 암묵적으로 마땅히 지목되어야 할 백화점은 아니었나 생각된다.

그렇다면 백화점이 무너짐과 동시에 같이 묻혀 버린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묻혀버린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영원히 묻혀 지는 것으로 끝나 버린 것일까. 만약 붕괴현장에서도 죽지 않고살아남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다시는 꾸지 말아야 할 강남夢 이었을까.

우선 실제로 백화점에 묻혀버린 박선녀의 꿈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면면히 이어지는 꿈이라 생각한다. 박선녀의 서울 상경 이야기는 이미 강남의 룸살롱에서 캐스팅된 것으로 알려진 어느 유명한 여배우의 경우처럼 잘 풀릴 경우 대선에 도전하는 정치인의 내조여왕으로 까지도 한 번에 올라갈 수 있는 아주 운좋은 선망적 꿈의 기회로 더 다양화 되고 있는 듯하다. 김진 회장의 경우는 단순히 개인의 욕망을 떠나 그가 걸어온 길에 우리 현대사가 질곡히 새겨져 있는 터라 나라의 운명에 따른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경우는 많지 않을지 모르나 정치권력을 이용해 자손 삼대가 누릴 만큼의 부를 축적하는 양상을 지겹도록 보아왔다. 아파트 건설회사 사장으로 암시되는 박기섭이나 심남수의 경우는 법제가 형성되기 전 초기 기득권을 대량으로 획득한 운 좋은 경우로서 오늘날에도 강남불패 신화처럼 아파트 분양권이 하나의 로또처럼 인식되는 한탕식 꿈을 계속 대량생산해 해왔다고 볼 수 있다. 홍양태나 강은촌처럼 주먹계로 대표되는 조직폭력배들은 국가의 이권사업이나 개발사업 등에서 드러나지 않게 정치와 경제권력 사이를 오가며 불법 브로커의 역할로서 더 견고하고 체계적으로 그 꿈이 변형된 형태로 이어져 온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에 비해 임정아의 부모로 등장하는 가장 하층 부류의 집 없는 서민격인 임판수와 김점순의 경우는 그들의 딸이 붕괴현장에서 기적같이 생존 하는 것으로 살아서 다시 행복에의 꿈을 지속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었기에 그들의 소박한 꿈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결국, 『강남몽』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꿈은 비록 백화점이 무너지긴 했지만 그들의 꿈도 같이 묻혀지는 것은 아니었다고 보아야 하겠다. 어쩌면 요술쟁이 지니의 램프 속으로 잠시들 숨어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기에 마법이 다시 살아나면 언제든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도덕적이든 불법적이든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꿈은 여기까지 이어졌다.

꿈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아직도 행복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는 뜻일 것이다. 몇몇 그들이 꾼 꿈의 결과가 비록 막대한 사회적 피해로 도출되었을 지라도 꿈을 꾸었던 개인만큼은 각자 자신의 행복을 간절히 소망했을 것이다. 그런데 강남夢의 꿈을 꾼 사람들의 공통점은 꿈 이전의 도덕이나 준법같은 것을 묻기 전에 모두 현재보다는 더 높이 한 계단 씩 올라가려 했다는 것에 있다. 강남이 라는 곳이 저 높은 곳에 위치했으니 당연한 결과 이겠지만 결국 그 높은 곳에서 추락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며 올라 간 것이었을까. 높이 올라갔을수록 추락하는 높이와 그 고통은 더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이미 너무 멀리 너무 높이 올라 가 있는 사람들은 추락에의 안전장치가 너무 견고해 절대로 다시는 내려올 리가 없어 보이고 꼭 나중에 끝 무렵에 억지로 막차를 탄 사람들의 경우가 발버둥 치며 추락하는 꼴이 되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깝다. 나는 어쩐지 꿈을 꾼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애초부터 부실했던 강남夢을 원망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다음호에 계속 이어질 강남夢을 꾸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인가. 아니 강남夢을 꾸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인가.

마지막 참회, 리모델링으로 리턴

꿈도 리모델링 할 수 있을까.

7,80년대 강남의 대단위 아파트들은 2000년대 들어와 고가의 건축자재와 첨단의 인테리어로 재건축되었다. 그때보다 두세 배 높이 치솟은 아파트를 볼 때면 적어도 당분간은 붕괴될 꿈으로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고가로 분양된 고급의 아파트를 손에 넣으려는 사람들의 가슴에 버티던 꿈 역시 그 옛날 강남夢과 다르지 않아 보였고 오히려 욕망의 높이는 더 아득해보였다. 묻혀 지지도 묻어 버리지도 못할 꿈이었기에 몰래 가슴에 새기고 이어나갔던 것일까. '꿈'이라는 단어처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공존하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었다. 강남夢은 과거의 꿈이기도 했지만 계속해서 이어져온 현재진행형의 꿈이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꿈이 되버리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는 이쯤에서 고백을 마치고 참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 자진이든 요구에 의해서건 우연적인 것이든 여기 모인 우리 세대들이 머리를 맞대고 묘안을 짜야 할 것만 같다. 나는 그것이 자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고 우리가 해야만 할 의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날 우리세대가 실감하던 국가적 패배감은 오늘날 세대적 패배감으로 공감대를 위치이동하면서 사실상 역전의 기회를 강남夢으로 삼으려 했음을 부인하지 않겠다. 더 이상 탈출구가 없어 보이는 막다른 골목이라는 위기감은 작가가 짚어 주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음이다. 아닌 척 뒤돌아서 가슴을 부여잡기 보다 당당히 가슴속에서 꺼내어 새로운 모습으로 재건축 하는 모습이 다음세대를 위해 우리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을까 참회해 본다.

그런데 막상 리모델링을 하려하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고 어제까지 꿈이 같다는 '경쟁자' 였다가 오늘부터 같은 꿈을 꾸는 '동반자'가 되려하니 여간 쑥쓰러운 게 아니다. 우선 리모델링 사업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그동안 강남夢을 '수단'이나 '목표'로 인식해왔던 관행에서 '가치'혹은 '열정'의 개념으로 과감한 전환이 필요함을 대전제로 하기로 한다. 우리 세대가 주로 남에게 보이는 나의 모습에 집착하며 남에게 근사하게 보이는 겉모습으로 남을 속이고 이득을 취하려 했으니 분명 수단으로서의 강남夢이었다. 또 남에게 보이는 자신의 모습에 성공에의 만족감을 얻었으니 목표로서의 강남夢이기도 했다. 이러한 우리의 꿈은 우리 아이들에게 그대로 강요되어 남에게 뒤쳐져서는 안 되는 아이들로, 정글시대에서 살아남기라는 꿈보다 해몽이 더 처절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하루종일 시발택시를 대절해 좋은 땅을 물색하던 그들의 도전정신만큼은 인정해 줄 만하지 않은가. 알몸뚱이 하나로 강남에 상경하여 타관객지에서 억척스런 생활력으로 버텨내었던 그들의 열정만은 다시 불태워 보고 싶지 않은가. 욕심 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며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려던 그들의 양심만은 기억할만하지 않은가. 그저 마음하나 편하게 살고 싶었던 그들의 소박한 꿈만큼은 소중하게 담고 싶지 않은가.

어렸을 적 장독대가 있던 뒤뜰에 하얀 나비 한 마리가 내 눈앞에서 어른거린 기억이 떠오른다. 어린마음에 너무 높지도 않고 꼭 내가 두 손을 뻗어 올려 잡을 수 있을 만큼만 높아 보였던 나비의 나풀거림이 너무나 생생했다. 몇 번이나 뒤좇아가 잡으려 했지만 애꿎은 손뼉소리만 찰랑거리던 봄날이었나 보다. 그렇다. 우리는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재발견 해야 할 것이다. 뿌리가 깊거나 꼭꼭 감추어져 있다손 치더라도 바보같은 꿈이 아니라면 다시 찾아 내어 보석같이 세공해야 할 것이다.

나는 봄날처럼 꿈을 꾸겠다. 다시 돌아와 똑똑한 꿈을 그린 후 불신이라는 동반자를 배신하여 떳떳하고 튼튼하게 가꾸고 싶다. 혹시 이루지 못할 꿈이라도 얼마든지 다음 세대가 도전할 만한 가치있는 꿈으로 남기고 싶다. 그들은 그들의 강남夢을 꾸었지만 우리의 강남夢은 우리가 꾸자. 지금 우리의 꿈이 다음 세대의 예지몽이 될 지 모른다. 그들은 남의 시선을 향한 수단과 방법을 물려주었지만 우리는 자기 스스로의 시선에 진실할 가치와 열정을 전해주자. 이렇게 약속하자고 하는 것 자체가 꿈만큼이나 벅찬 오늘, 꿈을 다시 만드는 시간을 다짐한다. 지난 강남夢에 숨겨진 가능성과 여기 모인 동세대인들의 약속과 믿음을 더해 나는 오늘밤 강남夢을 다시 한번 제대로 꾸어 보겠다. 혹시나 꿈속에서 그대 마주치게 된다면 이번엔 손 내밀어 웃어보겠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같은 꿈이라 더욱 반갑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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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11-09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동아에서 이 작품에 표절혐의에 관한 기사를 실었더군요.

삼풍백화점과 관련된 이야기는 생각할 여지를 주네요. 물론 주인장의 의도는 인지했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