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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이외에는 머독 미스터리 1
모린 제닝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북피시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이 작품의 제목 『죽음 이외에는』(Except the dying) 은 에밀리 디킨슨의 시 '그녀가 살아 있었던 마지막 밤'(The Last Night That She Lived)의 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보도자료에는 해석한 부분만 나와 있어 원작을 찾아보니 이해가 더 쉬웠다. 그녀가 살아 있었던 마지막 밤에도 그녀의 죽음(죽어가는 것 자체)만을 제외한다면 일상적인 밤과 다를 바가 없었다라는 뜻, 즉 그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녀가 속한 그곳에서 그녀의 죽음 따위는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암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과연 그럴만하다고 생각하는 가에 대한 물음을 역설적으로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THE LAST night that she lived / 그녀가 살아 있었던 마지막 밤도
It was a common night / 여느 때와 같은 밤이었지
Except the dying; this to us / 다만 죽어 간다는 것, 죽음 이외에는 ; 이때문에
Made nature different / 우리가 보는 세계는 달라졌도다

결론은 물론, 과연 그렇지 않다. 모두들 그렇지 않을 것임을 이미 알고 있기에 소설 속에서 죽은 그녀의 죽음에 대한 진상과 그 의미에 대해 궁극적인 성찰을 요구 하는 것이 이 작품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책을 덮고 이 작품이 과연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에 굳이 위치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점이 들었다. 이미 편견으로 자리잡은 장르나 추리소설에 대한 섣부른 오해 때문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작품은 고전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클래식함과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배경묘사의 섬세함이 아주 탁월한 수작秀作으로 추리나 장르의 범위에 국한되기엔 그 소설적 성취가 한층 더 높아 보였다. 특히, 총 21장으로 구성된 작품에서 매장마다 보여주는 마지막 짜릿한 문장들은 안톤 체호프의 단편선을 연상케했고 공간적 시간적 정밀묘사는 <오만과 편견>이나 <어톤먼트>같은 영화를 떠올릴 정도였다. 추리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 단순한 비교를 할 수는 없겠지만 '과연 범인이 누군가'에 포커스를 향하기 보다는 '사람들은 그녀의 죽음과 어떻게 관련 되었는가' 에 무게를 두면서 주변사람들을 거쳐 과는 과정은 초긴장, 긴박감, 스릴과 같은 단어와 어울린다기 보다는 갈등, 상처, 약점, 희망과 같은 보다 상위개념을 밑바탕에 포진시킨 덕에 작품을 좇아가다 보면 어느새 범인말고도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뿌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배경은 1890년대 캐나다 토론도이다. 캐나다는 우리에게 이민으로 익숙한 나라이다. 전체인구의 다섯 명 중 한명은 이민자이며, 토론토의 노숙자 3명중 1명 역시 이민자 라는 통계가 있어 이민자의 땅이라 할 것이다. 토론토는 옛부터 영국계 캐나다의 최대 중심지였다. 바로 모린 제닝스는 영국에서 자라 토론토로 이민 온 정신과 의사 출신이었기에 1890년대 빅토리아 시대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재현하는 것은 물론, 머독형사라는 인물을 통해 주변 이웃들의 심리적인 부분까지도 밀도 있게 그려 낼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머독형사를 들여다 보자. 그는 불행하게 자라왔고 지금도 불행하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그로 고통 받던 어머니의 사고死, 지적장애자 였던 남동생과 수녀가 되어버린 여동생, 전염병으로 죽은 약혼자, 카톨릭 종교인 으로서의 갈등, 남성으로서의 욕망 등에 시달리며 별다른 희망이 없어 보이는, 순경보다는 높지만 경관이나 경감보다는 아래인 수사관으로 살아가는 인물이다. 작가는 테레즈라는 소녀가 사망한 날 이후 주변 인물들을 하나하나 쫓아가며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머독형사를 바라보기도 하고 머독형사가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라보기도 한다. 머독형사 뿐아니라 앨리스나 로즈부인같은 주변 인물들도 또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라보게끔 한다. 이 서로상호적인 객관적 거리는 어느 하나의 인물에 치우치지 않고 인물 모두를 그럴만한 사연이 있는 근거 제공에의 타당성을 부여하며 각 인물의 심리를 공정하게 간파할 수 있는 묘미를 선사한다. 여기서 머독형사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가슴아픈 가족사, 젊은 날의 실수, 사랑에의 상처를 모두 안고 있기에 사람들의 밝힐 수 없는 비밀을 밝혀가는 바로미터로 존재하게 된다. 마치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은밀한 고민을 개별적으로 상담해주듯.

창녀로 살아가는 앨리스와 에티에게는 자신도 창녀를 원했던 고객으로서 경멸감과 동시에 죄책감과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테레즈가 하녀로 일했던 로즈박사네 가족에게서는 비밀을 품고서도 외양적으로 행복한척 해야 하는 위선과 이중성을 누구보다도 먼저 알아챌 수 있었다. 시의원이라는 자리에 오르기 까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세프컷 의원의 가식적인 연설을 들으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에선 목울대가 울렁거리기도 하고, 영국의 고아원에서 온 마구간 지기 조에게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렇듯 머독형사가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 속에서 하나씩 밝혀지는 비밀은 모두 프랑계 캐나다인 이었던 외방인으로서 외롭고 연약한 열여섯 소녀 테레즈를 죽음으로 몰고간 직접, 간접적인 원인으로 밝혀진다. 로즈 부인에게는 말동무였고 조에게는 엄마같은 누나였던 테레즈의 소녀성은 창녀들에게는 질투와 시기의 대상으로서 사회지도층에게는 쾌락과 성노리개 로서 하인에게는 관음증의 대상으로서 짓밟혀져 왔음을 알게 된다. 여기서 임신한 채로 죽은 테레즈가 끝내 누구의 아이를 임신하였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어쩌면 모든 인물의 욕망의 대상으로서 그들이 준 상처를 잉태한 것은 아니었을까.

이 작품의 말미에 머독 형사가 살고 있는 키친부부네 집에 새로운 하숙인인 젊은 미망인이 이사오는 것으로 일말의 희망을 암시하는 것은 테레즈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밝혀준 댓가로서 하나의 미덕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갸우뚱하긴 했지만 영화적 결말에 익숙한 우리로선 비극 속에서 만나는 희극적 장치로 그나마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결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불우하고 연약한 소녀의 죽음은 반갑지 않다. 엊그제 한국으로 시집온 지 일주일만에 남편의 무식한 폭력으로 사망한 열아홉 베트남 처녀의 사연을 시사프로그램에서 접했다. 일차적이고 직접적인 가해자는 남편이라는 사람같지 않은 인물이겠지만 이 작품처럼 그 처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주변환경과 인물들을 추적해간다면 한사람의 죽음에는 한가지의 이유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은 한 소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의 비밀에 관한 이야기'라 할 것이다. 양파껍질처럼 한 거풀 벗겨지는 재미와 자꾸만 드러나는 속살이 꽤 탄탄하다. 비밀은 다 밝혀지고 난 다음 물론 허무하다. 밝히고 싶었고 밝혀져야 했지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한가지 알아버린 진실은 허무의 바닥에 무언가를 흩뿌리고 지나간다. 그녀가 죽어 갔기 때문에 달라진 것이다. 죽음이외에는 아무것도 다를 바 없었던 현실에서 우리의 가슴엔 모두가 알아야할 불씨하나가 오롯하게 떨어진다. 그다지 뜨겁진 않다 하겠지만 오래 두고 뭉근히 지펴야 할 것 같다.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이 누릴 혜택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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