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의 오늘
졸업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학년이 올라가는 것도 내 일은 아니다. 2월이 지난다고 해서 새 학기가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이별해야 할 것도 시작해야 할 것도 보완해야 할 것도, 내겐 없다. 처음으로 아이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나는 무엇을 졸업해야 할까..., 하고 멘션을 올렸더니 어떤 분이 ‘겨울’이라고 답해주었다. 그 한 단어가 갑자기 눈물 나게 반가웠다. 삼재도 지난 지 오래고 삼년상도 지났고 지난 이년간 사업으로 진 빚도 대충 갚았다. 올해는 내게도 뭔가 터져주었음 좋겠다. 대박이나 뜻하지 않은 일회성의 행운 같은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내가 투자한 시간이 묵묵히 그러나 정직하게 운을 준비하는 과정이었기를 바란다. 이런 바람은 욕심은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어 버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나의 오늘은 어제와 다를 것이 없었건만.(봉주 5회를 듣고 쬐금 불쾌했던 마음은 풀어졌지...사람 참, 하하) 신기하게도 내가 원하는 것이 그가 원하는 것과 똑같다니 이 무슨 조화란 말인가.
내가 원하는 건 오로지 글을 쓰는 거요. 그러다가 나는 고독한 존재로 변했지요. 나한테 가장 좋은 시간은 아침 7시예요. 침대에서 간밤에 썼던 것을 다시 읽거나, 머리가 맑고 개운한 상태에서 내 마음에 드는 소설을 생각해요. 마치 어린 애들처럼.
-p99, <16인의 반란자들> 中
그나저나 이렇게 말한 작가는 누구일까요?
(힌트 : 성은 오씨요, 한국의 음식이 두개나 들어간 이름 ㅋㅋ)
#2. 그들의 오늘
이 책을 읽는 것은 어찌 보면 욕심이다. 만약 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하면 그건 ‘읽고 싶다’가 아닌 ‘가지고 싶다’일지 모른다. 성격이야 어떻든 간에 일단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 비록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은 만나보지 못했지만 이렇게 수상을 한 작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으니 말이다. 서로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잇 북, 워너비 아이템에 속한다. 이 책이 가지는 인터뷰 집으로서의 가치는 문학적 이라기보다는 여가적 이고 심층적 이라기보다는 다층적이다. 커피 한잔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 본 후 근사하게 거실 서가에 꽂아두면 금상첨화인 책이다. 폼도 나고 교양도 있어 보이고 어쩐지 나의 문학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해주는 느낌이 든다. 덮고 나서 여운도 길어 묵직하고도 알싸한 무언가가 가슴에 남아 마음을 가라앉혀준다. 반나절이면 세계 일주에 나선 저자들의 기록을 충분하게 살펴볼 수 있다.
아쉬운 게 있다면 내가 만나본 노벨 문학상 수상자는 한명도 없었다는 것인데 그들은 모두 2000년대 이후의 수상자였다. 존 맥스웰 쿠치(2003), 르 클레지오(2008), 헤르타 뮐러(2009), 마리오 바르가사 요사(2010)정도만 읽어본 나로선 부끄럽기 짝이 없었다. 어떤 작가는 아예 이름도 성도 나라도 작품도 심지어는 성별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꼭 노벨 문학상 수상자와 작품을 많이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문학적 소양이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딴에는 책 좀 읽고 글 좀 쓴다는 자의식으로 늘 괴로워하던 나였기에 그런 고민이 순간 터무니없이 우스워 졌다고 할까. 과학도 아니고 역사나 정치, 음악, 미술, 모든 내가 잘 모르는 분야가 아닌 문학인데... 문학상인데... 나는 내 무관심에 절로 발이 저렸다.
더군다나 저자들이 만난 수상자들은 이제 모두 7,80대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이다. 그들은 대부분 거짓말처럼 늙어버린 슬픔을 안고서 스스로 ‘사진을 찍을 만한 인물’이 아니라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의 젊음을 모르고 그저 이 책속의 얼굴과 표정을 작가의 이름과 일치시키며 내가 아는 사람으로 영구 저장할 것이다. 그들은 저마다 여기까지 힘들게 살아온 결과로서의 모습을 지니고 있지만 나는 그들의 인생과 작품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성공한 얼굴만 구경하게 된 것이다. 저자가 수상자들을 만나고 돌아와 책이 출간, 번역되는 세월동안 이미 운명을 달리한 작가들도 있다. 주제 사라마구와의 인터뷰는 그가 사망하기 불과 일이년 전에 이루어진 것이었고 나기브 마푸즈는 인터뷰 후 얼마 되지 않아 사망했다. 이 책의 마지막에 소개된 폴란드 시인 비슬라바 쉼보르스카는 바로 지난주에 타계했다. 기사를 찾다가 타계소식을 보고 소름이 끼치면서 목이 메이기도 했다.(그렇다면 만약 내가 이 책을 가을이나 내년쯤에 읽는다면... 그땐 또 누가...) 누가 봐도 시인이면서 “나는 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다고 말한 작가의 목소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가슴에 머리에 쿵쿵 울리는 느낌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그들은 대체 죽어서 어디로 간 것일까. 여기서 이렇게 오늘도 변함없이 아직 할 일이 많다고 해놓고선 어떻게 눈을 감을 수 있었을까. 혹시 자신의 부고를 알게 된 독자에겐 운 좋게도 독자가 가지고 있는 당신들의 작품 속으로 슬며시 박제되어 영원히 새겨진 것은 아닐까.
먼저 이 책은 16명의 수상자들을 ‘반란’이라는 테마로 묶었다는 것이 조용한 반란이라 할 수 있겠다. 저자에 의하면 수상자들을 만나보니 하나같이 문학이 아닌 다른 이유로 사회에 참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기에 그들을 반란자라 부르고 싶었다 한다. 반란자들은 전쟁이나 독재에 항거하고 환경이나 생태계 보존을 주장하고 인종차별과 여성인권에 목소리를 드높인다. 문맹퇴치, 에이즈 퇴치에 앞장선다. 대부분 종교를 믿지 않으며 특정한 이즘을 갖고 있지 않다. 이외수 식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자기파이며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인간성이다. 파리로 망명한 중국의 가오싱 젠은 ‘어떤 이즘 없이 산다는 것 그게 바로 나의 저항의 형태’라 말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스스로 어느 편에 서명하는 사람이 아니고 그저 음모자나 중개자라 말했다. 혼혈이었던 데릭 월콧은 ‘문학에는 인종적인 순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V.S 네이폴은 자신은 종교인이 아니며 다만 ‘내 삶은 글을 쓸 뿐’ 쓰는 게 자신의 종교이며 그것이 ‘존재할 수 있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높은 종교’라 칭했다. 눈과 귀가 멀어 인터뷰가 어려웠던 나기브 마푸즈에겐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지인들과의 문학모임이야 말로 종교라 여겨졌다. 그들에겐 규칙적인 글쓰기가 일상이고 종교도 사랑도 우정도 행복도 정치도 모두 글쓰기에 귀속되는 사람들이었다. 특이했던 건 남자들은 대부분 아름답고 젊고 활기차고 지적인 아내를 두고 있었지만 여자들은 독신이었다는 것. 노벨상은 남자에겐 성공이겠지만 여자에겐 보상이었을까.
그들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작가가 될 수밖에 없었거나 혹은 아주 나이가 들어서도 작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에 본 것은 대부분 전쟁과 상처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그것을 기억해야 했기 때문이다. 각기 어느 나라 어디에서였는지가 달랐을 뿐 말하는 방법은 같았다. 오에 겐자부로는 낚싯바늘에 걸린 물고기가 숨죽여 고통을 견디는 모습을 보고선 그 고통을 반영하기 위해 작가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에겐 장애인 아들이 있었고 세상과의 소통은 아들의 눈을 통해서였다. 그들은 상을 받고나서도 달라진 건 없다고 말한다. 토니 모리슨은 노벨상이 아니라 다른 어떤 상도 자신을 좋은 작가 좋은 사람으로 바꾸지 못할 거라 했다. 이탈리아의 극작가 다리오 포는 자신에게 주어진 노벨상이 권력의 부당함을 풍자한 모든 광대들을 위한 보상이라 말했다. 키가 크고 미소가 큰 오르한 파묵은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는 식당에 가고 싶지 않고 사람들을 보는 것도 싫’다고 말하는 듯 했다. 도리스 레싱은 손님이 온다는 데 (아무리 작가라지만)어떻게 그렇게까지 집안이 지저분할 수 있는지 충격이었다. 나딘 고디머의 강단 있는 표정도 인상 깊었고 월레 소잉카의 백발과 흰수염은 예술적이기까지 했다. 그는 나이지리아 민주주의 투쟁의 아이콘답게 크게 클로즈업 한 손가락엔 흡사 자신이 걸어온 길과도 같은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인터뷰엔 사진작가가 동반했기에 필히 그들의 시선과 표정이 담긴 프로필 사진과 배경사진이 담겨있다. 단정한 뒷모습도 좋았다. 나는 작가들의 사진을 보면서 자주 뭉클하던 순간을 떠올린다. 바로 작가들의 손이다. 작가들의 손을 찍는 사진작가들이 많은 것인지 비슬라바 쉼보르스카는 손이 반년 전에 부러졌다면서 정말로 손 찍는 게 끔찍하다고 말했다. 그 손으로 그들은 무엇을 해왔는가. 지금의 손은 무엇을 말하는가. 글을 쓴다는 건 손을 쓴다는 것이다. 그가 손으로 한 것은 곧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을 말하는 것이다. 의외였던 건 조정래 작가처럼 어깨가 으스러지도록 육필 원고를 고집할 줄 알았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도 컴퓨터로 글을 쓴다는 놀라운 정보였다. 컴퓨터로 작업방식을 바꾸었더니 7년에 한권에서 3년에 한 권이 되었다고.

- Wislawa Szymborska (photo by Kim Manresa) -
쉼보르스카 의 두 손은 수분이 모두 제거된 어떤 생명체의 외피와 마주하는 것 같아 한참이나 시큰했다.
유리잔을 쥐고 있는 자태에서도 단호한 근육의 힘이 느껴질 정도로 이 사진은 뇌리에 남았다.
흑백사진임에도 그 와중에 손톱은 무미건조가 아닌 분명한 컬러와 빛이 살아 있지 않은가.
그는 여성이었고 손이 예쁘게 나오길 바랐던 것이다.
첫째, 나는 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둘째, 나는 비슬라바 쉼보르스카, 즉 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셋째, 나는 정치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러면 우리 한테 남는게 뭐겠어요? 나는 당신들과 동물이나 식물에 대해서, 그리고 사랑과 우정에 대해서 조금은 얘기할 수 있어요. - p284
하지만 그녀는 시에 대해 자신에 대해 그리고 정치에 대해 결국 다 말하고 말았다.

- Gabriel García Márquez (photo by Kim Manresa) -
마르케스 의 손은 무엇보다 작으면서 바짝 깎은 손톱과 손등에 무성한 털이 인상적이었다.
남자의 손가락이라고 하기엔 다른 작가들 보다 훨씬 굵기가 작았다.
막일이나 바깥일을 전혀 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고 손이 젊고 건강한 편이었다.
저 아담하고 사실적인 손에서 마술적 리얼리즘이 그려진 것이다.
가오싱 젠은 망명한 파리에서 자유롭게 그림을 그렸다. 귄터 그라스는 책을 하나 끝내면 그 손으로 조각을 했다. 자신처럼 작가이면서 미술가인 인물들의 작품을 전시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예술이 세상을 구원하진 못해도 적어도 자기 자신은 구원할 수 있고 좋은 시가 삶의 고통을 제거해주지는 못하지만 공포를 아름다움으로 바꿀 수는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살아 남았기에 수치스러웠고 유대인이고 흑인이며 여성이며 혼혈이고 반정부주의자 였기에 박해 받았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고 유대인도 아니고 흑인도 아니고 혼혈도 아니고 데모도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나는 작가가 아니다. 그러나.
#3. 나의 내일

이것은 나의 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손에 대해 치명적인 콤플렉스가 있다. 다섯 번째 새끼손가락을 보시라. 나의 새끼 손가락은 남들보다 딱 반 마디가 짧다. 가운데 마디의 생장점이 돌연변이를 일으켰는지 그만 눌러 앉아 버렸다. 안 그래도 손가락이 짧은 편이라 거의 초등 1학년 아이 수준이다.(다행히 아이는 내 손가락보다 길다. 유전이 아니었다) 살면서 새끼 손가락을 사용할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놈의 새끼 손가락만 보면 괜한 자격지심이 드는 것이다. 무언가 신체 일부분이 제대로 다 자라지 못하고 기가 꺾였다는 둥 이 손가락으로 약속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둥 내가 혹시 나중에 작가가 되어 저들처럼 사진기자가 내 손을 찍겠다고 하면 나는 보란 듯이 주먹을 쥐리라...등등 별 시답지 않은 생각을 이어가게 된다. 한술 더 떠 무언가 일이 잘못 되었을 때 괜히 손가락이 짧아서 그랬다고 말도 안 되는 탓을 돌리곤 한다.
작가들의 손을 보면서 반사적으로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 손을 겹쳐보았다. 한마디로 그들은 어른의 위대한 작품 같은 손이고 내 손은 아직 걸음마 아기 손이었다. 내 손은 아직 이렇다 할 삶의 무늬가 새겨지지 않았고 내가 걸어온 지도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깨끗해 되려 미안 할 지경이었다. 어이없게도 이 짧은 손가락이 갑자기 사랑스러워지는 것이었다. 나는 아직 내일이 오지 않았다. 모든 걸 졸업하고 이제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많은 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저들처럼 슬며시 깍지를 끼어본다. 아직은 부드러운 마디가 한참이나 멀었지만 그래도 좋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되지 않았으니까. 이 손은 더 진하고 더 주름질 날이 한참이나 남았으니까.
덧붙임)
이 책에 나딘 고디머의 <내 인생, 단 하나 뿐인 이야기 / 2007>가 잠시 소개 되었다.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자선기금을 마련하고자 작가가 지인들에게 이야기를 부탁해 엮은 소설집이다.
<16인의 반란자들> 중에서도 몇 명이 이야기를 제공했다.
(귄터 그라스, 오에 겐자부로, 주제 사라마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그러니까 나딘 고디머 까지 다섯명이 일치한다. 이 책의 주인공과)
같이 읽어보려고 도서관에 찾아 보았더니 마침 대출중 ㅠ
생각보다 어렵다는 평이 많아 살까 말까 잠시 고민을 했다.
(누구 아시는 분 평가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