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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만 Feynman
짐 오타비아니 지음, 이상국 옮김, 릴런드 마이릭 그림 / 서해문집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유명한 사람이 죽으면 왜 슬플까요. 지난주 스티브 잡스 사망 기사를 보고 근 일주일간 우울했습니다. 어떤 위대한 사람도 한번만 죽는 것이고, 아니 한번은 죽어야 하는 것이고 그 한 번의 죽음 앞에선 동일한 절망을 느끼리라 믿어요. 돌이켜보면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 죽을 때 비로소 내 죽음도 실감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단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았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라면 행복도 슬픔도 사랑도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지난 주 세계가 잡스의 죽음을 동시에 애도할 때 저는 한 사람의 과학자를 만났습니다. 숙연한 가운데 즐거웠습니다. 세상과 인류에 공헌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난다는 건 새삼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인만씨는 듣던 대로 농담도 잘하시는 분이더군요. 이 과학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것이 18년이나 된다는 사실이 놀랍고 감동스러웠습니다. 세상의 모든 책이란 어쩌면 모든 사람의 죽음 이후를 위해 존재하는 낯선 인연은 아닐까요.


   하지만 먼저 고백할게 있어요. 이 책을 읽기 전엔 파인만이라는 과학자와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도 몰랐답니다. 책 읽기 전엔 그저 만화로 된 위인전쯤으로 생각했죠. 만화도 좋아하지 않고 위인전은 더욱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제 우린 어느덧 독자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책들이 부담스러울 나이가 되었네요. 그뿐인가요. 과학은 물론이고 그중에 물리는 특히나 완강하게 거부하던 과목이었습니다. 과학의 하위영역인 생물, 화학, 지구과학, 물리 중 물리가 가장 싫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참 알 수 없는 것이 저는 그 싫다는 물리를 공부한 사람과 결혼을 하기까지 했어요. 그래서 물리 좋아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좀 알아요. 새로운 제품에 의심이 많고 남들 다 관심있는 대중적인 것에 관심이 없고 자기 혼자 궁금한 사실에 집요하고 어떠한 결과에 대체로 낙천적이죠. 심심하면 라디오나 컴퓨터를 잘 뜯어보고 다시 작동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아요. 한마디로 시간에 둔감한 편입니다. 지각도 잘하죠. 그러다가 우연히 옷핀 같은 것으로 잠긴 문도 가끔은 열어준답니다. 계산은 잘하는데 계산적이진 않구요. 모르겠습니다. 제가 아는 물리 공부한 사람들은 크게 성공한 분들이 아니어서 그런지 다들 건전하고 착하다(?)는 쪽으로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파인만씨는 크게 성공한 분인데도 아이같은 순수성을 잃지 않고 사신 분이더군요.


   저는 인문계였지만 수학을 잘했습니다. 계산이 딱딱 떨어질 때 마치 세상의 이치를 하나씩 깨달은 것 같은 느낌이나 누구도 못 푸는 문제를 끙끙대며 풀었을 때의 기분 같은 건 조금 알아요. 친구들이 제일 싫어하는 ‘증명’같은 단원을 가장 잘 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물리는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가르치는 선생님복도 없었습니다. 나중에 아이아빠에게 물어보니 물리하는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것을 남에게 잘 가르치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구요. 설명한다고 알아질 문제가 아니라는 말도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당연한 것을 모를 수 있느냐는 생각이 반 이상 이래요. 어떻게 이렇게 재미난 일에 관심이 없느냐고 말해요. 천재들 중에 물리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 천재들은 대개 스무살 이전에 판가름이 난다고 합니다. 천재가 되지 못한 물리학도들은 그들 천재에게 죽을 때까지 경외심을 지니고 살아간대요. 그런데 그들은 막상 그 위대한 연구들을 가르치는 데는 젬병이라고 해요. 자기 혼자 온 세상의 이치를 모두 파악했을 뿐일 경우가 많죠, 하하. 그런데 파인만은 예외인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물리공부하는 사람들은 필수적으로 파인만의 육성 강의를 찾아서 들어본다고 합니다. 물론, 무슨 뜻인지 전공자들도 다 못 알아 듣는다고 해요. 그런데 중요한 건 물리 역사상 그렇게 쉽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기만의 그림을 이용해 물리를 가르친 사람은 없다고 하네요. 천재중에서도 또 예외에 해당하는 선생님형 천재였던 거죠. 이 책의 후반부에 파인만이 자신이 개발한 다이어그램을 가지고 그 유명한 QED 강의를 하는 장면이 디테일하게 소개되어요. 학계에선 그걸 파인만 도표라고 합니다. 전공자도 아닌 저라고 그걸 이해했을 리 만무했지만 뭐랄까 비록 대가들의 이해할 수 없는 미술작품을 보았지만 가슴은 웅숭깊어지는 그런 기분이었달까요. 조금은 신비로운 자연의 이치에 쉽게 그리고 편안하게 한발짝 다가선 느낌은 확실히 들었답니다. 전혀 다른 세계의 언어지만 하나의 이미지로 다가왔습니다. 모두 이해할 순 없지만 암튼 그 모르는 것들이 아주 가까이서 우리를 움직이게 하고 있었구나.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발견하는 일은 눈물 날 만큼 아름다운 일이구나, 하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 이 책은 묘하게 물리 전개도를 보고도 따스한 체온과 훈훈한 공기가 느껴졌어요. 흔치 않은 책입니다.


   이 책에는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닐스 보어 같은 유명한 과학자와 1965년 같이 노벨상을 수상한 슈윙거도 파인만의 인생을 스치는 사람들로 등장합니다. 많은 영향을 미친 첫 번째 아내와 여동생, 아버지, 친구들 정도가 기억나네요.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고등학교 때 만나 결혼에 골인한 여자 친구 알린 이었습니다. 알린은 파인만과는 달리 철학을 공부했어요. 제 생각에 파인만이 세상이 돌아가는 규칙을 발견하는 데 희열을 느끼고 그것에 평생을 바칠 수 있었던 건 알린의 사랑과 배려, 그리고 사고방식의 영향이 컸다고 봅니다. 파인만은 알린의 철학적 질문들로부터 상대적인 관점과 그로인한 통찰력을 넓혀 갔으니까요. 알린 역시 파인만의 논리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인가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파인만에게 알린은 각자 사람마다 다른 입장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나봐요. 그녀는 파인만에게 ‘종이에 양면이 있듯 모든 문제에도 양면이 있다.’는 말을 선생님이 했다고 하죠. 그러자 파인만은 눈앞에서 종이를 길게 잘라 양끝을 이어 붙이곤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요. 이때 종이는 양면이 아니라 한 면으로 이어지는 것을 증명해 보입니다. 알린은 수업시간에 모든 문제에도 두 가지 측면이 있다는 선생님에게 파인만처럼 뫼비우스의 띠를 만들어 보이며 그 말씀도 두 가지 측면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의견을 발표해요. 이런 식으로 두 사람은 어느 한쪽도 옳거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가슴아팠던 건 파인만의 소심한 성격까지 바꾸어준 알린이 그다지 오래 살지 못하고 병마로 세상을 먼저 떠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쩐지 그 이후에 파인만이 만나는 여자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심지어는 노벨상 탈 때 옆에 있었던 두 번째 아내 이름도 기억나지 않더군요. 그 자리엔 알린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했습니다. 그리고 저와 마찬가지로 파인만도 얼마나 알린이 생각났을까를 생각하니 그만 목이 메더라구요. 예, 저는 이 책에서만큼은 파인만 자신의 죽음보다 알린의 죽음이 많이도 슬펐습니다. 어떤 위대한 인물의 가슴속에만 살아있었을 사람이지만 이야기는 이렇듯 숨겨진 사연과 감동을 복원해 내는 것이겠지요.


   파인만과 알린을 보면서 어떤 문제를 고민할 때 결국 철학과 과학은 방법만 다를 뿐 지향하는 곳은 같은 곳이 아닐까 싶더군요. 라이프니츠 같은 사람은 철학자이면서 과학자이고 수학자였잖아요. 러셀도 수학자면서 철학자였고 비트겐슈타인도 기계공학을 전공한 후 철학자가 되었다죠. 스티브 잡스도 원래 철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과학자들은 하나같이 사물들이 복잡하게 움직이며 얽혀있는 이 세상이 돌아가는 ‘규칙’, 그 신비한 법칙을 발견하고 싶어 하죠. 그 ‘규칙’을 알게 되었을 때 비로소 세상을 ‘이해’했다고 말해요. 그런데 치밀한 논리를 바탕으로 과학적인 주장을 하는 철학도 결국 끊임없는 의문을 통해 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은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저는 그러한 태도가 통찰력이라 생각하는데 제가 이 책을 덮으면서 가장 감탄한 것도 바로 파인만의 독특한 통찰력이라는 생각입니다. 고백하자면 아이 아빠와 아마 결혼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서로 너무나 다른데 이상하게도 세상을 향한 질문은 얼추 비슷했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예를 들어 사람은 왜 저마다 다르게 살았지만 공통의 아름다움에 대한 공감이 가능할까. 사랑이라는 것을 양과 질로 구분이 가능하다면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그 사랑을 어느 정도까지 측정할 수 있을까. 없다면 그 사랑 바깥에 있거나 그 사랑이 지나간 후는 가능한 것일까. 가능하지 않다면 무엇으로 자신의 사랑을 상대화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에는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의 원자폭탄 계획인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일화도 소개되어 있어요. 말년에 나사에서 챌린저 우주 왕복선 폭발의 원인을 밝혀내는 과정도 있더군요. 파인만은 전쟁이 끝나고 훗날 자신이 만든 폭탄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생각하며 생각에 잠깁니다. 파인만은 ‘독일이 폭탄을 만들지도 몰랐기 때문에 폭탄을 만들었다’고 회상해요. 처음부터 대량 살상의 무기를 계획하기 위해 참여한 것은 아니었겠죠. 하지만 국가 기밀작업에 참여하면서 ‘왜 그 일을 시작하게 됐는지 끝까지 염두에 못 둔건 도덕적인 실수’라고 결론 내려요. ‘어떤 일을 할 때 끊임없이 그 일을 하게 된 이유’를 잊어버리면 안된다고 충고합니다. 그 이후로 파인만은 어떤 국가 프로젝트도 안하게 되죠. 저는 그러한 파인만의 대외적인 업적보다는 생활 속에서 그가 질문을 시도하는 과정들이 참 신기했습니다. 예를 들어 몇 백번의 시도 끝에 금고를 열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는 과정이라든가 레스토랑에서 접시 돌리는 사람을 보고 왜 '접시의 그림이 도는 속도가 흔들리는 부분의 속도보다 느린지' 궁금해 하는 장면들이 떠오릅니다. 밥 먹으러 갔다가 재미삼아 접시의 회전운동을 분석해보는 식이죠. 궁금하니까요. 대부분 어떻게 접시를 떨어뜨리지 않고 저렇게 돌릴 수 있을까, 몇 개쯤 돌려야 접시가 깨어질까, 접시가 깨어지면 저 사람은 일당을 못 받을까, 뭐 그런 생각을 하잖아요.


   과학을 하려면 굉장한 상상력이 요구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파인만은 학생 때부터 그 많고 복잡하고 어려운 공식들을 보면 그것들이 통으로 색깔있는 무늬나 그림으로 인식되었다고 해요. 보는 방법이 다른 사람인 것이죠. 누구나 꽃을 관찰하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데 꽃을 바라보는 방법이 보통 사람의 시야와 다르다고 할까요. 이건 예술하는 사람들이 가진 능력이자 특성이기도 한데 다른 방법으로 보는 사람은 결국 다른 걸 보게 됩니다. 그 다름을 발견하고 누군가는 그림을 그리며 파인만같은 과학자는 수식을 만들고 작가들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파인만이 말하는 상상력은 우리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선물인 것이네요. 제가 무릎을 탁 치면서 파인만에게 한수 배운 상상력을 마지막으로 소개해 볼까 합니다.


   파인만은 이런 고민을 합니다.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도 아름답다고 상상할 수 있을 지 말입니다. 상상력이라는 게 볼 수 있는 것에만 해당된다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상상력이 아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우리는 누구나 하늘에 뜬 무지개를 아름답다고 말하는데 파인만은 무지개를 슬며시 과학의 전개도에 오버랩 시킵니다.



   
 
“좋아, 그러면 이 그래프도 아름다워 보일까? 여긴 좀 더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어. 우리 눈으론 주파수 분포의 정확한 모양을 볼 순 없으니까. 하지만 눈에는 무지개 그 자체가 아름다운거야. 주파수 분포를 나타내는 곡선에서 무지개를 직접 볼 때 느끼는 것과 같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정도의 상상력이 우리에게 있을까?”
 
   


    파인만은 위와 같은 주파수 분포도에서도 무지개를 감상할 때와 마찬가지의 아름다움을 발견한다면 우린 충분히 주파수 분포도를 보면서도 아름답다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기발하지 않나요? 앞서 말했듯이 수학과 과학의 모든 공식을 그림으로 인식했던 파인만이니 파인만에겐 과학을 설명하는 모든 난해한 그림들을 이 아름다움을 자극하는 상상력에서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아요. 파인만은 그 해답을 뜻밖에도 로마 바티칸 성당의 벽화에서 찾을 수 있었답니다. 성당의 천장에 웅장하게 그려진 그림들을 보고 느낀 아름다움에서 자신감을 얻었어요. 성당에는 미켈란젤로같은 대화가가 그린 그림도 있었지만 무명화가의 수준 떨어지는 작품도 있었던 것입니다. 파인만은 어떤 그림은 아름다운데 다른 그림은 그렇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런데 왜 아름답고 그렇지 않은지 그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없었지만 바로 아름답거나 그렇지 않다는 걸 느낄 순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 파인만은 현미경을 통해서도 혹은 현미경으로 보이지 않는 모든 단계에서도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감을 얻은 것입니다. 물론 파인만 자신이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모든 사람이 똑같이 느낄 순 없겠지요. 그랬기에 더욱 파인만은 자신이 본 자연 현상의 과학적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설명하기 위해 평생을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파인만의 독특한 상상력을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문학으로 바꾸어 보자면 내가 느낀 아픔과 슬픔을 전달할 수 있는 상상력이 아닐까 하구요. 파인만의 아름다움에 공감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을까요. 마찬가지로 위대한 작가들은 마찬가지의 독자들을 자신의 상상력에 공감하도록 하는 사람일테죠. 저는 파인만이 그 상상력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이고 모두가 그것을 느끼도록 자기 이론을 설파한 것이 갑자기 뭉클해지네요. 왜냐하면 위대한 사람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 내적으로 승화시켜 외적으로 발산하게 되지 않나 싶어서요. 잡스만 해도 그의 상상력은 세상이 보다 더 소통될 수 있는 패러다임을 지향하는 것이었잖아요. 하지만 잡스 개인사로 볼 땐 그다지 소통에 원만한 성향의 인물은 아니었듯이 혹시 파인만에게도 젊은 날 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환타지 같은 게 그의 상상력을 무의식적으로 지배하지 않았을까, 뭐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소견이네요. 소설이나 빡빡한 텍스트의 자서전이 아닌 고급스런 그림들속에서 파인만은 평생 기계와 연구실, 논문과 발표, 공식과 강의에 묻혀 사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자신이 제일 재미를 느끼는 공부였고 또 그냥 재미있으라고 매번 연구를 시작하는 파인만이었지만 어쩐지 한 평생 고독하고 쓸쓸해보였다고 할까요. 유머도 좋고 솔직함도 좋았지만 저는 인간 파인만이 과학이라는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으로 아름다움을 택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아름다움 너머의 운명일지도 모르죠.


   이 책. 어떤 하이라이트나 뚜렷한 결말은 없지만 잔잔한 그림과 함께 아름답게 살아간다는 것.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자기만의 상상력으로 아름답게 남긴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아름다움을 나누어 준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입니다. 과학자에게서 뜻밖에도 아름다운 인생을 배운다는 것이 신기하고 흥미롭지 않나요? 예, 저는 파인만씨를 누구보다 아름다운 과학자로 오래오래 기억하려고 합니다. 파인만씨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름다워 지듯이 저 또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은 밤입니다. 그런게 아름다운 세상이겠고 이런게 아름다운 사람이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모두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닐거예요. 그렇기에 더욱 사람과 삶이 일치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한번쯤 모두와 약속이라도 하고 싶네요. 책 한권이 선사하는 삶의 아름다움. 한 사람의 인생이 건네는 사람의 아름다움. 파인만씨, 그것이 바로 당신이 남긴 진심이기에 당신이 죽었다는 게 이리도 슬픈 이유입니다. 아마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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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1-10-14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쉽고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11-10-14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이 그래픽노블이었군요.
중학교 때 물리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서글서글한 예쁜 처녀 선생님이었어요.
그래도 난 물리는 도통 모르겠던데
같은 반 여자애 하나는 그 선생님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물리를 깨치더군요.
아무리 선생님을 좋아해도 그렇게는 안되는 것 같던데
그 아인 좀 특별하다 싶었어요.
유익한 리뷰였습니다.
한사람님 부군되시는 분도 조금은 알게구.ㅋ^^

아이리시스 2011-10-1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게도 과학고 나와서 열아홉살에 물리학과 진학한 사촌동생이 있는데, 어제 문득 그 아이 소식을 들으며(물리학이 공부를 오래 해야하고, 타인에게는 지극히 살아가는데 도움 안되는 학문으로도 비쳐서, 외삼촌이 걱정이 많으시지만! 그 아이는 여전히 20살 어린아이일 뿐이고) 저는 이과반이었는데도, 수학도 못하고, 과학에도 전혀 흥미가 없고, 물리보다는 화학이 좀 더 낫다는 부류였는데, 과학은 기초 도서도 못 읽어내는 게 못내 부끄러워지더군요. 아무도 안읽는 어려운 책만 본다고 외삼촌이 말씀하신 모양인데, 저는 그게 그냥 부러울 뿐이고. 제게 과학은 너무 멀고, 저도 파인만을 알게 된 지는 얼마 안돼요. 아무래도 시작을 잘해야 겠어요. 과학, 물리, 연구, 지적 호기심 따위가 내 안에 있을까요, 받아들일 공간이?ㅋㅋㅋ

가연 2011-10-19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잔한 글인데 내용은 깊네요. 음.. 천재들은 스무살 이전에 판가름난다는 이야기는 괜히 슬프네요ㅎㅎ 파인만은 고개를 저을 이야기 같다고 혼자서 생각해봅니다. 만약에 그가 그렇게 생각했다면 일반인들을 위한 강의를 굳이 하려고 들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고.. 그에게 중요하였던 것은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은 누구나 느낄 수 있다, 라는 이야기였을테니깐. 그러고보면 파인만은 소위 천재의 기준처럼 쓰이는 아이큐에서 125를 기록했다고 하던데.. 물론 표준편차가 얼마냐에 따라서 좀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다른 물리학자들에 비하면 낮은 아이큐라고들 하지요. 하지만.. 그는 그 아이큐라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스스로 증명해내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