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빅브라더스, 궁금하다
어제 KBS 예능프로에서 황석영작가를 볼 수 있었다. ‘빅브라더스’라는 파일럿 프로였는데 4명의 MC중 어엿한 한자리를 차지하고 계셨던 것. 지난번 무릎팍 도사 유홍준 편에서 조선 3대 구라중 한명으로 언급된 황석영 작가는 이미 사석에서 그 입담이 유명하시다 들었다. 책과 작가가 나오는 프로치고 11시대 편성인 것은 모험적인 시도로 보였다. 아무래도 무릎팍의 하향세를 틈타 기회를 엿보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하지만 S본부 '짝'의 상승세도 만만치 않을터) 첫회 게스트는 소녀시대 유리, 티파니, 태연, 서현이었고 이들은 다른 예능에서와는 달리 그래도 진지한 답변으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다. 표방하는 프로그램 취지는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었으나 글쎄, 내용상으로는 아저씨 이상의 나이드신 분들이 소녀시대에 궁금한 점들을 맥락없이 인터뷰하는 수준에 그친 것 같다. 사실 게스트는 거의 황석영 작가인듯한 분위기가 많이 느껴졌고 무엇보다 MC들의 질문이 실망스러웠다.(면접식 질문은 좀 쌩뚱, 서현의 답변은 좋았지만) 하지만 지난번 이외수 작가, 김정운 교수를 투탑으로 하는 인문학 버라이어티 ‘야동’이라는 파일럿 프로보다는 그런대로 재미는 제공했다고 본다.(그러나 야동에서도 게스트가 소녀시대였다면 흥미는 제공했을듯) 빅브라더스가 실험에만 그치지 말고 좀 오래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는데 그럴려면 가장 시급한 것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인 듯하다.
우선 이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가장 대변해주는 상징적 존재는 단연 황석영 작가이다. 촬영장소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북카페로 유명한 홍대 카페 꼼마의 천장형 서가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즉 MC 네 사람이 잡힐 땐 고스란히 뒤에 배치된 책들이 (장시간)노출되고 있다는 것. 상당히 문학적인 뉘앙스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나같이 유난히도 책들의 제목이 눈에 팍팍 들어오는 사람은 왜 하필 저책이 작가 뒤에, 김용만 뒤에 있는 것일까 그게 더 궁금하다. 황석영 작가를 의식해서 그런지 구성상 게스트들이 만들어 보고 싶은 책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긴 했지만 스타가 아닌 청춘이라면 외려 박탈감만 느끼지 않을까 싶었다. 차라리 상투적이긴 해도 요즘 읽고 있는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를 말하는 것이(그도 없으면 좋아했던 작가, 어릴 때 읽었던 책이라도) 어떨까 싶었다. (엄청난 간접광고의 효과를 볼 것이고 태연효과, 유리효과등이 나타나겠지만 그렇게라도 책이 팔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해서)
그런데 MC 들중 송승환은 ‘난타’로 뮤지컬 한류를 이끈 어엿한 문화계인사이고 김용만 역시 예전 ‘느낌표-책을 읽읍시다’에서 공익성 강한 버라이어티를 진행한 바 있다. 조영남도 가수이긴 하지만 미술, 문학, 전시등 예술 전방위 분야에서 인텔리한 연예인의 이미지가 강한 인물이다. 이미 문화로 먹고 살면서 나름 성공을 이룬 40대 이상의 남성들이 자신과 같은 분야의 신세대를 알 수 있도록 돕는다는 발상이 썩 이해되진 않았다.
우선 신세대를 알아야 할 필요성을 누가 느끼는 것일까. 신세대를 왜 알아야 할까. 알아야 한다면 그것을 왜 누구에게 알려야 할까. 그리고 알리는 사람은 누가 되는 것이 좋을까. 소녀시대는 신세대를 알려줄 수 있는 대표적 걸그룹일까. 아니 신세대를 말하는 대표군으로 적정한 선택일까. 그들이 자신의 세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MC들이 알아낸 것은 무엇일까. 그 알아낸 바를 우리가 같이 아는 것은 어디에 도움이 될까.
소녀시대가 대답한 내용들은 서현의 연습생 친구 환희를 제외하면 거의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우리가 알고 싶은 신세대의 모습은 아니었다. 그냥 나이지긋한 아저씨들이 보기엔 마냥 이쁜 처자들의 사생활이 궁금해 이 질문, 저 질문 해보는 수준이었달까. 보아이후 한국의 아이돌들은 초등생부터 연습생 시절을 거치며 학교생활과 친구를 외면한 채 오로지 스타를 향해 혹독히 조련된 친구들이다. 나는 보아가 성인이 된 후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볼때 예전처럼 놀랍다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 그것은 그녀의 얼굴에 스쳐가는 알 수 없는 그림자, 찰나의 표정에서 감지되는 어떤 슬픔 때문이다. 완벽한 무대매너와 가창력 뒤에 자신이 버려야 했던 모든 것에 대한 외로움, 차갑게 변화된 보아의 얼굴에서 나는 상실감을 느낀다. 작가와 문화계 인사가 나와서 이들에게 새삼 뭘 물어볼 것인가. 이들을 앞장세워 한류를 수출해온 어른된 입장에서 이들의 공을 치하하기 보단 이들이 놓치고 버리고 온 것들을 위로하거나 깨우쳐 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빅브라더스가 어짜피 소녀시대처럼 젊은 나이에 성공한 게스트들을 초대해 신변잡기식 인터뷰를 이어나가는 포맷이라면 이 프로그램의 차별성은 연예가 중계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본다.
기왕 서재를 배경으로 할 거, 기왕 대작가를 모셨을 거 문학과의 만남을 시도하던지, 책이야기를 하던지, 그게 시청률이 안 될 거 같으면 그들의 고민이라도 상담을 해주던지,(아이돌로서 부족한 문화소양 함양? ㅋ, 혹은 심리치유? ) 아니면 역으로 질문을 받던지, 특정한 주제를 놓고 토론이라도 하던지 하는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황석영 작가는 지난여름 60대 문화계인사 대표격으로 ‘희망버스’를 탄 분이다. 배낭메고 청바지입고 다녀와 선배로서 김진숙에 면목이 없다며 편지형식의 후기를 쓰신 분이다. 이외수 작가가 방송에 나와 줄기차게 ‘감성’을 부르짖고, 김정운 교수가 ‘여자’를 외치고 다른 작가 분들이 ‘폭력’이나 ‘자본’, '인권', '개발'등의 개인 작품과 화두에 해당하는 이념을 대외적으로도 언행일치시키듯 좀 더 색깔있는 목소리를 내주셔도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다. 황석영 작가는 서사적인 작품과는 달리 방송에선 여간해서 자신의 페르소나를 벗지 않는 분이다. 화면상으로는 속을 전혀 알 수 없는(?) 인사에 속한다. 아마 어줍짢게 목소리를 암시하느니 아예 방송용과 비방용으로 나누어 깔끔하게 분리하시는 행보를 택하신듯하다. 그렇다고 예능에서 독자들과의 만남이나 강연식의 계몽주의를 설파하시라는 건 아니고 평소 젊은이에게 하고 싶었던 말씀은 해주셨으면 한다. 작가만이 할수 있는 조언과 배려가 돋보이길 바라는 마음은 나만의 욕심일까.
#2. 빅브라더스, 오래가자
그리고 어제 서재에선 유난히도 특정 출판사의 책이 거의 백프로였다고 본다. (문학동네가 꼼마에서 행사를 많이 하는 것도 아는 분들은 아실터 ㅋ) 그런데 황석영 작가의 <개밥바라기별>과 <낯익은 세상>은 그렇다 치고 눈에 확 띄던건 김언수 작가의 <캐비닛>이었는데 이 책이 하필 황석영 작가 바로 어깨뒤에 정면으로 배치되어 상당시간 노출되었다. <설계자들>도 다른 쪽에 있긴 했지만 그 책이 메인에 배치된게 끝까지 의아했더라는 ㅋ. 기왕 노출시켜 줄거 마치 현빈처럼 게스트중 한 명이 슬그머니 서가를 둘러보다 한권을 빼내든가 하여 그 책의 판매고나 올려줄 것이지.
<조영남과 황석영 사이 어엿한 '캐비닛'>
줌 아웃된채 훑어 보아도 상단에 문학동네 세계문학 전집이 포진되있고 중간층에 적절히 <신의 궤도>, <꽃의 나라>, <1Q84>,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같은 소설, 시집들도 보인다. 오래된 <람세스> 같은 책들도 꽃혀 있어서 흡사 내 서재인줄 알고 얼마나 반가왔던지.
나는 점점 서가에 무슨 책이 꽂혔나를 확인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는데 무슨 숨은 그림찾기 하듯 다음의 책을 발견하고 잽싸게 찾아보았다. 참 골고루 장르별로 신간이 배치되 있었다는 걸 알았고 내가 모르는 채 이토록 신간들이 세월가듯 휙휙 스쳐지나가고 있구나를 새삼 통감했다.
< MC들 뒤 서가에 꽂혀 있던 신간들>
최근에 소설에 관심이 멀어져 억지로 두어권을 읽었는데 한국소설이 아주 관념적이거나 아니면 대중적이거나 극과 극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능도 마냥 웃기기만 하고 던지는 메시지가 없으면 실패하듯 소설도 수준이 되면서 재미도 곁들이지 않으면 점점 선택을 받기 힘들어질거라는 예감이 든다. 올해는 <7년의 밤> 이후 대박소설이 나오지 않고 있는 듯한데 이건 외국소설도 마찬가지인듯하고 작년의 <덕혜옹주> 열풍과 <1Q84>의 독식에 비하면 낯설은 광경이다. 더군다나 유명인사들의 정치관련 서적들이 득세를 이루는 실정이라 올해 소설전망은 이후 김훈의 실적에 달리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하여튼 나는 TV를 보다 우연히 책을 보게 되는 현상을 바란다. TV보다 책이 더 좋을때도 있다는 걸 알게되길 바란다. 그래서 빅브라더스가 좀 오래 버텨주길 바란다. 나는 그들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여전히 감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