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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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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손편지를 쓰는 일이 드물다. 나도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때 가끔 쓴다. 우표를 붙여 보낸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편지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이오덕 선생님은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권정생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 이때부터 2002년까지 주고 받은 편지글을 모아놓았다. 이오덕 일기에도 나타나지 않은 마음과 권정생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선생님은 찾아오시지 않아도 항상 제 곁에 계신답니다.

 

 몸이 아프고 어려운 권정생 선생님을 이오덕 선생님은 애틋이 살펴주신다. 힘들어하는 이오덕 선생님을 권 선생님은 위로해주신다. 편지글 마지막은 몸 살피라는 부탁이 늘 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편지 속에 잘 묻어난다. 사람이 진심을 다해 걱정하고 마음을 다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선생님, 백번 죽었다 살아난대도, 저는 역시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아이들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대로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56쪽)

 

* 우리 자신이 햇빛을, 공기를, 물을 생산한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바람과 세계입니다. 절대 천 원짜리 지폐나 하나의 손가방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88쪽)

 

*하느님 나라는 절대 하나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일만 송이의 꽃이 각각 그 빛깔과 모양이 다른 꽃들이 만발하여 조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꽃의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빛깔이 달라도 그 가치만은 우열이 없는 나라입니다. (207쪽)

 

*가난한 사람만이 가장 착하게 살 수 있습니다. (233쪽)

 

*권 선생님 편지 보고, 그렇게 돈이란 걸 잊어버릴 수 있는지, 참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모든 물질적인 욕망을 끊어 버리는 데서 아동문학의 정신이 싹트는 것이라 봅니다. (245쪽)

 

*결국 인간은 최악의 고통에서만이 진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추운 사람이, 질병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결코 점잖을 수도 없고, 성스러울 수도 없고, 거룩할 수도, 인자할 수도, 위엄이나 용기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32쪽)

 

 편지 곳곳에는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가난하게 늘 세상 약한 사람 편에 서며 살아갔던 두 선생님. 그립다.

 

*지난밤 꿈엔 어머니를 뵈었어요. 언제나처럼 노동에 시달린 그 모습 그대로 다래끼에 인동꽃을 따 담고 개울물을 힘겹게 건너고 계셨어요. (242쪽)

 

*선생님, 쌀밥 먹고 고기 먹고 나면 불쌍했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더 괴롭습니다. (258쪽)

 

*선생님, 어머니께서 생전에 하시는 말씀이 항상 '사는 데까지 살자'하셨던 게 많은 위로가 됩니다. 혼자 있으니까 울고 싶을 때 실컷 웁니다. 선생님도 힘을 내세요. (291쪽)

 

*어딜 가도 무엇을 해도 누구와 같이 있어도 자꾸 목이 메고 눈물겨워집니다. 요즘처럼 울면서 지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께 써 놓고 못 부친 편지 함께 보냅니다. (313쪽)

 

 어머니 꿈을 꾸고 생일을 알았던 모습, 지독하게 아파 고통으로 몸부리치는 장면, 어머니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모습과 목이 메고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 모습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아프고 아파서 권 선생님 동화가 슬픈가 싶다. 아프다. 나도 편지를 읽으며 아팠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13쪽) 

 

 이오덕 선생님이 아파 밥을 못 드실때 권 선생님한테 전화가 와서 죽기살기로 드시라고, 오백 번 씹으면 죽보다 잘 넘어간다고 야단을 친다. 그렇게 돌아가실때까지 서로 곁에 계셨다. 권정생 선생님은 재밌게 유언장을 남기셨다. 죽은 뒤 환생한다면 스물다섯 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연애하고 싶다는 말. 웃음이 나면서도 참 슬펐다. 그러니 더 슬펐다.

 

 권선생님은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빌며 고통스럽게 '어머니가 사시는 먼 나라'로 떠나신다. 마지막 이오덕 선생님 시와 권정생 선생님 유언장을 보고 책을 덮으며 가슴이 먹먹해져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구나. 서로를 위로하며 이렇게 힘이 될 수 있구나. 난 이런 사람이 있을까. 난 이렇게 살고 있을까...  (2015.11.1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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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2 :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이오덕 일기 2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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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자는 밤 - 퇴임한 날

 

42년 교직을 어쩌면 이렇게 미련도 한 올 없이

헌 옷 벗어던지듯 훌훌 벗어던지는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딴 곳에다 꿈을 두었던가?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내 사랑은 아직도 저 총총한 눈망울 반짝이는

아이들한테 가 있다.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삶은 그대로 감옥살이 42년!

이제야 나는 풀어 놓인 한 사람의 인간

인간이 되었다.

퇴임식-

부끄러운 내 교단생활을 끝장내는 그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내 방에 홀로 앉아

그래도 한 방울 눈물도 없이 이렇게 태연하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하구나.

산 같은 마음이 있어서인가?

하늘 같은 믿음 때문일까?

그래도 한번쯤은 큰 소리로

통곡이라도 해 봄직한데

어쩌면 목석으로 굳어진 것 아닐까?

자리에 누워도 잠이 안 온다.

쫓기고 시달린 그 많은 나날에도

밤마다 차라리 평안한 죽음을 생각하며

잠을 잘도 잤는데,

오늘 밤엔 어쩌자고 잠이 안 온다.

내일 새 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인가?

소풍날을 앞둔 밤의 어린이 마음인가?

얼마나 어리고 철없는 마음인가?

마구 짓밟히고 쥐어뜯기고 뿌리 뽑히는 풀 같은 어린 생명들

그들을 살리는 일 이제부터 시작되는데,

어쩌자고 잠은 안 와 들떠 있는가?

어린애같이!

 

 조그만 방에서 퇴임식을 마친 이오덕 선생님을 만난다. 학교생활을 감옥살이 42년이라고 하실만큼 답답해 하셨지만 늘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았던 선생님.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깡마른 어깨를 넘어본다. 일기 속 선생님 학교생활이 스르륵 지나간다.

 "참 많이 애쓰셨어요."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리고 선생님 손을 말없이 꼭 잡아드린다. 조용히 방을 나오며 생각한다. 내가 학교를 떠나는 날, 난 "내 꿈은 아이들이다."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어두웠던 우리 역사 속 온 몸으로 뜨겁게 사셨던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이오덕 선생님 일기다.

 

 *그런 짓을 해서 점수만 따고 상장만 받는 것을 목표로 학교를 경영하는 것이 가장 유능한 교장이다. (71쪽)

 

 *모두 기계가 되어 있어 학교가 교장인 내 한 사람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154쪽) 

 

 *교감 선생은 교육을 꼭 그런 장부나 물질적인 증거로 남겨 놓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교육이란 그런 게 아니래요. 교육한 표적은 그런 행사 결과를 증거로 남기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아이들 태도에 영향을 주는 데 있는 겁니다. (267쪽)

 

 *이렇게 겉모양 다듬는 것이 교육자들의 가장 긴급ㅎ고 중요한 할 일이 되어 있는 세상인데, 나는 이런 세상을 모르고, 무시하고 지냈으니, 이제 나는 이 학교에서도, 우리 교육계에서도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338쪽)

 

 아직도 그렇다. 학교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학교에 '아이들'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름만 혁신학교, 그 속에는 보여주기 위한 성과만 있는 학교도 많다. 뿌리박혀 있는 거짓교육, 일기를 살펴보면 그 뿌리가 꽤 깊다. 

 

 *지금 우리 나라의 교육은 국민학교에서부터 중고등대학에 이르기까지 시험 준비 교육으로 단편적인 지식만을 밤낮 강제로 주입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바보 만드는 교육, 병신 만드는 교육입니다. (107쪽)

 

 *사람되는 공부에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 일하는 것, 둘째, 책 읽는 것, 셋째, 생각하는 것, 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오늘날의 일반 학교에서는 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일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책 읽지 않는 인물을 기르고 있는데, 이렇게 보면 여러분들이야말로 가장 참된 교육을 받게 되는 행복한 학생들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46쪽)

 

 마리타스 졸업식에서 그는 교육이 가야할 길을 생각한다. 그 당시도 학교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에서 새길을 보니 참 씁쓸했다. 사회를 바로 보지 못하는 이에게 건낸 선생님의 따끔한 비판은 시원했다. 지금 우리에게 회초리같은 따끔한 말을 해줄 큰 스승이 그립다.

 

 *노 양은 한참 동안 교직 초년생이 겪은 여러 가지 경험담을 얘기했다. 무슨 체육대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상을 못 타서 윗사람한테 꾸중당한 일, 학력검사 성적이 나쁘다고 야단 맞은 일,... 참 너무 기가 막힌 얘기들이었다. (124쪽)

 

*정말 요즘은 훌륭한 수업을 볼 수 없다. 연구 논문이나 교육 자료 잘 쓰고 만들어 점수 따서 영전하는 사람은 있지만 수업 잘한다고 이름난 사람은 없다. (248쪽)

 

 지금 학교 선생님들은 행복할까? 지옥같은 경쟁을 뚫고 우수한 인재들이 교단에 들어선다. 행복한 꿈을 꾸며 학교에 들어서지만 그 꿈이 곧 무너진다. 무엇때문에 힘들까 생각해보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참 놀랍다. 무려 삼십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인데 말이다.   

 

 *버스에서 라디오방송 뉴스가 나오는데 들으니 아직도 광주 사건이 해결이 안 난 것같이 말하는 듯했다. 얼마나 피를 흘려야 이 나라가 바로잡힐는지, 막막한 느낌이다. (174쪽)

 

 일기 속에는 굵직한 역사가 곳곳에 담겨있다. 바로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도 선생님이 보고 들은 살아있는 이야기로 쓰여있다. 일기가 살아있는 역사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학교때 선배와 함께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충격적인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을 보며 토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 속 선생님과 함께 분노한다. 부정적인 표현, 감정표현까지도 검열을 받았던 시절, 마음이 답답해진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는 말처럼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얻어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렇게 얻어낸 민주주의 사회. 지금은 어떤가? 다시 답답해지지만 그 암울했던 시절도 이겨낸 우리 힘을 믿는다.

 

 *이원수 선생님은 이제 운명의 시간이 경각에 놓인 것 같으셨다. 얼굴이 부은 것이 가라앉았는데, 입을 벌리시고 누워 계시는 모습이 거의 해골만 남으신 것 같았다. ...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나만 울음이 북받쳐 엎드려 잠시 울었다. 눈물을 닦고 나서도 또 눈물이 났다. (237쪽)

 

 이오덕 선생님의 스승인 이원수 선생님도 돌아가신다. 장례식장에서 꺼이꺼이 목놓아 우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만큼 큰 영향을 주고 믿었던 삶의 기둥이었구나 싶었다. 눈물이 난다.

 

 *나무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 없을까? 사람은 자기 몸 치료하는 것밖에 모른다. (300쪽)

 

 *산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밟아 죽인다는 것임을 새삼 생각해보았다. (314쪽)

 

 일기 곳곳에서 개구리 입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주고, 길잃은 비둘기를 보살펴 날려보내며, 모르게 밟아죽인 개구리를 불쌍히 여기는 선생님 모습을 본다. 아마도 이오덕 선생님 생각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바로 사랑이다. 자연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셨고, 아이들과 약한 이들을 사랑하셨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살아가시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 모든 것은 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끝맺는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느낀다.   

 

 *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일하는 데 기쁨을 발견한 사람은 죽음도 두렵지 않다.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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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아이들 - 고침판
이오덕 엮음, 오윤 그림 / 보리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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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아침에 언니가
옷을 내어 주었다.
꽃이 놓인 치마를
주었다.
치마는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나는 막 울었다.
"그만 거지 같은 치마
입고 가라 왜"
하면서 입고 다니는
노랑 치마를 주었다.

 

"시도 이와 같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흉내내어 써서는 될 수 없고, 때가 묻고 몸에 착 들어맞는 자기의 생활과 말로 써야 하겠다." (175쪽)

 

 읽어야지 하며 못읽다 이제 본다. 농촌아이들 시다. 그동안 시는 잘 꾸며서 멋진 비유로 쓰면 좋은 시인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글쓰기 공부를 하며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조금 알았지만 이 시를 보며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솔직히 마음을 울리지 않는 시도 많았다. 그건 당연할 수 있다. 내가 그 아이와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는거다. 분명한건 꾸미지 않고 자기 삶을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살아있는 시다. 무언가 감동을 주려고, 이쁘게 꾸며쓰려고 애쓰면 시는 이상해진다. 나도 가끔 순간을 붙들어 시를 쓴다. 꾸며쓰지 않고 그때 마음, 장면을 그대로 옮겨보니 좋은 시가 되었다. 글과 다르게 시는 울림이 더 컸다.

 

제비꽃

 

제비꽃이 생글생글 웃는다.
제비꽃이 하늘 보고 웃는다.
제비꽃이 우예 조르크릉 피었노?
참 이뿌다.

 

 보고 몇 번을 봐야 내용을 알게 되는 시도 많았다. 그건 바로 경상도 아이들 입말로 썼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투리는 붙임말을 보고야 이해했다. 그래도 이오덕선생님은 입말을 그대로 살려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쓴 시들은 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쓴 시였다. 물론 아이들은 우리말을 살려 써야지 하며 쓴 건 아닐꺼다. 그때 쓰고 있는 말을 그대로 옮겨썼을꺼다. 지금은 말이 많이 오염됐지만 그래도 아직 아이들 말은 살아있겠지 싶다.

 

 아이들 시 지도를 돌아보면 교과서 시, 좋은 시를 들려주거나 같이 읽고 주제를 던져줘 써보라고 했다. 운율과 비유를 가르치고 써보게 했고, 몇 가지를 바꿔 시를 쓰거나 이야기로 바꿔보는 수업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 속에 아이들 삶이 없었다. 탁동철 선생님 말이 떠오른다. 시를 가르치는 것은 좋은 시를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좋은 시를 내 기준으로 고르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 시 속에서 아이들을 발견하고 찾아주는 것이다. 자칫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아이들 글과 시를 판단하지 않을까 늘 돌아보고 생각해야겠다.

 

 시는 왜 쓸까? 아래와 같은 마음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내 삶을 잘 가꿀 수 있는 길이 바로 시다. 정말 시다운 시를 아이들과 함께 써보고 싶다.

 

"시의 마음이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고, 생명의 귀중함을 생각하는 마음이고, 동정할 줄 아는 마음이고, 가난한 우리 것, 내 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건강하게 일하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마음입니다." (3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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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일기 1 :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이오덕 일기 1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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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에서 빌려 서둘러 읽어보다 책을 사고 찬찬히 다시 읽는다. 1권은 1962년부터 1977년까지 일기다. 마치 그때로 돌아가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 있는 느낌이 들었다. 각종 공문 보고로 힘들어하고 학대받는 아이들을 보며 괴로워하는 선생님 마음, 부패한 교육현장 모습들을 자세히 말해주고 있다. 놀라운 건 내가 선생이 된 후 느낀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다.

 

 "두고 두고 생각해 보자. 어떻게 이 아이들을 키워 갈 것인가?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세계에 파고들어 가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15쪽)

 

 선생님은 늘 고민하셨다. 아이들과 함께, 아이들 속으로 어떻게 들어갈지 애쓰셨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에게 실망도 하고 화도 내신다. 소풍에서 아이들에게 점심밥을 얻어먹는 마음도 걸리고, 교실로 들어온 참새를 보고  "그럼, 모두 나가 주자!"라고 외친 아이들을 보며 뿌듯해 하시기도 한다. 아이들과 울고 웃으며 지내는 삶이 그대로 느껴진다.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이라 더 깊게 느껴진다.

 

 "아이들의 시는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생활의 표현이어야 하고, 소박하고 현실적인 감동으로 쓰여야 하는 것이다."(26쪽)

 

 "백일장 대회를 데리고 나와 엉터리 주제를 보고 걱정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냇가에 가서 놀았다. 글짓기고 시 짓기고 그 까짓 것이 다 뭘까? 천진하게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보다 더 아름다운 시가 어디 있는가?" (41쪽)

 

 요즘 학교도 다르지 않다. 교사가 대신 써서 대회에 보내기도 하고, 모범작품을 보고 그럴싸하게 쓰는 연습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 철마다 흡연예방, 과학의 날, 가정의 달, 화재예방, 각종 관공서에서 쏟아져오는 글쓰기대회가 셀 수 없다. 삶이 담겨있지 않은 글,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글들이 대부분이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직접 자기들에게 개인적으로 손해가 나면 그때는 꿈틀거린다. 그리고 저보다 약한 자에게 무섭게 덤빈다. 그러면서 일단 개인을 떠나 사회 전체, 국가 민족 전체가 해를 입을 경우는 나 모른다는 태도다. 철두철미 이기주의적이고 비인간적인 교육을 받아 온 20대, 30대의 젊은이들, 이들이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28쪽)

 

 갈수록 그렇다. 일베를 보면 그렇고, 사회문제에 무관심한 젊은이들을 봐도 그렇다. "나만 아니면 돼!"라고 외치는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이들과 학교폭력에서도 '남'은 보이지 않는다. 어찌보면 어른들, 사회, 그리고 교육이 이렇게 만든게 아닐까 싶다. 

 

 "아침 출근이 괴롭다. ... 교장, 교감의 찡그린 어룰 결코 진실이라고 할 수 없는 거짓 교육의 강요 때문이다. ...우선 아이들에게 정이 안붙는다. ...학습이고 생활이고 아이들의 세계가 너무 황폐되어 있다. " (131~132쪽)

 

 맞다. 선생들 요즘 참 힘들다. 아이도, 학부모도, 수업도, 학교도, 관리자들도 모두 다 힘들다. 무엇보다 가르치고, 아이들을 만나며 보람을 느껴야 하는데 그러기 힘들다. 어떤 선생님은 방학이 끝나자마자 방학을 기다리는 웃지 못할 모습도 있다. 아이들을 만나는 선생이 아이들에게 정이 안 붙고, 학교가 힘들다면 어찌할까? 그래서 나도 아둥바둥 공부하고 길을 찾으려 애쓴다. 이오덕 선생님도 괴로웠다. '이오덕 선생님도 참 힘드셨구나.'하고 위로받으며 힘을 낸다.

 

 "또 장학을 한다는 사람들은 진정 교육을 위해서 '1교1사육'같은 것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다." (207쪽)

 

 이 책에서 가장 와 닿는 말이다. 교육은 잘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경우가 참 많다. 아이들은 없고 실적만 있다. 나도 그런 유혹에 잘 빠진다. 남들에게 내가 잘 교육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하는 일들 많았다. 거기에는 아이들은 없었다. 돌아보면 씁쓸하다. 

 

 "그까짓 교육장들 비위 맞춰 동네 사람들 등지는 것보다 교육장 꾸중 들어도 지방 사람들이 나를 믿어주는 것이 마음 편한 것이다. 학교는 교육장이 주인이 아니다.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가 주인이어야 하니까.(330쪽)"

 

 학교 주인은 아이들이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가 있다. 수업은 안하고 쓸데없는 공문처리하는 모습, 무턱대고 비판만 하는 수업협의회, 각종 지시 명령, 통계보고 등은 요즘 학교와 다르지 않다. 아이들은 없고 행정만 있는 학교, 이제 바꿔야 한다. 혁신학교가 이런 흐름을 바꾸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아직 먼 길 같다. 충남은 이제 막 내딛고 있다. 마지막 일제고사 시험을 보며 한탄하는 선생님 모습이 떠오른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2015.04.15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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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5-04-15 0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새도 글쓰기 대회가 많은가 보네요.
왜 그런 대회는 사라지지 않을까요.
왜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아이답게 자라도록 북돋우는 길로 가려고 하지 못할까요.
뜻있는 교사만 애쓰기에는 참으로 벅차 보입니다..

민들레처럼 2015-04-15 08:40   좋아요 1 | URL
그래서 무시하고 넘기는 경우도 많아요. 힘들어도 갈 길은 가야죠. 함께 애쓰는 선생님들 보며 꿈을 그려봅니다. ^^

[그장소] 2015-04-15 09: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가 좋아할 책이라..봐야지 했는데 분위기 어둡군요..교육정책때문...ㅎㅎㅎ

민들레처럼 2015-04-15 10:11   좋아요 1 | URL
예. 옛날 잘못된 교육 현실에 부딪치며 애쓰는 이오덕 선생님 삶을 다룬 이야기예요. 그래서 조금 어둡기도 해요. ^^

[그장소] 2015-04-15 10:44   좋아요 1 | URL
그렇기도 하고..두분 나누시는 얘기 분위기또한 그러한 모양 였기에..
얼른 비켜갔어요.^^
 
백의민족이 왜 붉은 악마가 되었는가? - 이오덕 선생님이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 이오덕 교육문고 10
이오덕 지음 / 고인돌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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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은 이오덕 선생님이 마지막 남긴 말씀이다. 사서 읽어본지는 좀 됐는데, 다시 읽고 갈무리해본다.

 

 2002년 월드컵, 그 때 기억이 새록 떠오른다. 하나된 마음, 거리 응원,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뜨거웠던 그때 마음을 기억한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4강까지 올라가며 우리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했다. "대한민국!~짝짝짝 짝짝" 그 때 외침은 그동안 억눌렸던 우리 겨레가 불끈 일어선 기운찬 소리였다. 이오덕 선생님은 이런 붉은 악마를 보며 새로운 빛을 보셨다. 그리고, 스스로 바로 서는 새길을 가자고 외치신다.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사람이 올바르게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데서는, 누구든지 모두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맡아서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 즐겁게 일하면서, 한편으로 운동이나 노래나 춤 같은 것, 글쓰기 같은 것은 그런 일 속에서 함께하면서 누구든지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곧 일과 놀이와 공부가 하나로 된 삶을 즐기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쪽)"

 

 지금 모든 문제가 여기서 오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더 편하게 살려고 더 많이 돈을 벌고, 더 높은 위치에 가려고 서로를 밟고 올라서는 사회에 살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농사를 짓고 땀흘려 일을 했다. 일하고 사는게 삶 그 자체였다. 자본주의 사회로 접어들며 일은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 아닌 돈으로 바뀐다. 누구 대신 일을 해주고 돈을 받는다. 몸으로 하는 일은 하찮게 여기고 머리로 하는 일을 더 좋게 본다. 쉽게 돈을 버는 일이 좋은 직업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을 가르칠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르치려고 하는 바로 그 아이들을 아는 일이다. 아이들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 부모의 직업과 교양과 가정환경, 경제 사정, 아이의 성격과 바람과 버릇...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아내기 위해 담임교사는 학년 초 가정방문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이들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아이들이 써 놓은 글을 읽는다. 그 글에는 아이들의 삶과 마음이 잘 나타나 있다." (99쪽)

 

 난 얼만큼 아이들을 알고 다가섰나 싶다. 가정방문은 선생되고 곧 몇 번하고 난 다음 하지 못했다. 뭐가 그리 바뻤는지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는게 부담스러웠다. 겉모습만 보고 이 아이가 이렇다 생각한적도 많았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을 핑계로 대며 그럭저럭 아이들을 만나며 살았다. 아이들 마음이 담긴 글은 보지 못했다.

 

 "나라를 사랑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즐겁게 뛰어놀도록 해야 한다. 산과 들에서, 논밭에서, 온갖 풀과 나무와 짐승들과 함께 어울려 노래하면서 살아 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 땅과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203쪽)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이라는 글자 속에 있는 것이 아니다. 태극을 그려 놓은 네모난 천에 나라가 잇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바로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이다. 이 강산이다. 이 강산에서 자라나는 풀과 나무, 그리고 그 풀과 나무와 함께 살고 있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다. 그러니까 자기가 태어나서 자란 마을과 고향산천을 사랑하는 것이 나라 사랑이요 겨레 사랑이다. 이것이 나라 사랑, 겨레 사랑의 뿌리다. 이 뿌리가 없이는 어떤 나라 사랑도 겨레 사랑도 다 헛것이고 빈말이고 속임수다." (275쪽)

 

 그동안 했던 나라사랑교육이 떠오른다. 태극기를 그리고, 애국가를 외워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을까?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내가 태어나서 자란 마을과 고향산천을 사랑하는 일, 어릴 때부터 자연 속에서 즐겁게 뛰어노는 것이 나라 사랑이요 겨레 사랑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못하고 있을까?

 

 "그것은 다만 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숨 막히는 교실에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갇혀 있던 교실에서 풀려났기 때문이다. 억눌린 자리에서 풀려나 비로소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힘, 사람의 힘은 이렇게 해서 비로소 제대로 나타날 수 있다. 참되고 아름다운 것도,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재능도, 온갖 어려운 일을 이겨 내는 힘도 죄다 스스로 즐겨 하는 데서 생겨날 수 있다는 이 사실, 이 진리를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서 배워야 한다." (369쪽)

 

 아이들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배워야 한다. 마지막 두 꼭지글은 새겨두며 늘 봐야겠다. 함께 공부하는 모임에서 두 꼭지글을 읽기로 했다.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다음 모임이 기다려진다.

 

(2015.04.14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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