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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아이들 - 고침판
이오덕 엮음, 오윤 그림 / 보리 / 200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치마
아침에 언니가
옷을 내어 주었다.
꽃이 놓인 치마를
주었다.
치마는 하늘 높이
솟아오른다.
나는 막 울었다.
"그만 거지 같은 치마
입고 가라 왜"
하면서 입고 다니는
노랑 치마를 주었다.
"시도 이와 같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흉내내어 써서는 될 수 없고, 때가 묻고 몸에 착 들어맞는 자기의 생활과 말로 써야 하겠다." (175쪽)
읽어야지 하며 못읽다 이제 본다. 농촌아이들 시다. 그동안 시는 잘 꾸며서 멋진 비유로 쓰면 좋은 시인줄 알았다. 내가 그렇게 배워왔기 때문이다. 글쓰기 공부를 하며 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조금 알았지만 이 시를 보며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솔직히 마음을 울리지 않는 시도 많았다. 그건 당연할 수 있다. 내가 그 아이와 함께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하는거다. 분명한건 꾸미지 않고 자기 삶을 그대로 썼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살아있는 시다. 무언가 감동을 주려고, 이쁘게 꾸며쓰려고 애쓰면 시는 이상해진다. 나도 가끔 순간을 붙들어 시를 쓴다. 꾸며쓰지 않고 그때 마음, 장면을 그대로 옮겨보니 좋은 시가 되었다. 글과 다르게 시는 울림이 더 컸다.
제비꽃
제비꽃이 생글생글 웃는다.
제비꽃이 하늘 보고 웃는다.
제비꽃이 우예 조르크릉 피었노?
참 이뿌다.
보고 몇 번을 봐야 내용을 알게 되는 시도 많았다. 그건 바로 경상도 아이들 입말로 썼기 때문이다. 모르는 사투리는 붙임말을 보고야 이해했다. 그래도 이오덕선생님은 입말을 그대로 살려 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쓴 시들은 다 아름다운 우리말을 살려 쓴 시였다. 물론 아이들은 우리말을 살려 써야지 하며 쓴 건 아닐꺼다. 그때 쓰고 있는 말을 그대로 옮겨썼을꺼다. 지금은 말이 많이 오염됐지만 그래도 아직 아이들 말은 살아있겠지 싶다.
아이들 시 지도를 돌아보면 교과서 시, 좋은 시를 들려주거나 같이 읽고 주제를 던져줘 써보라고 했다. 운율과 비유를 가르치고 써보게 했고, 몇 가지를 바꿔 시를 쓰거나 이야기로 바꿔보는 수업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시 속에 아이들 삶이 없었다. 탁동철 선생님 말이 떠오른다. 시를 가르치는 것은 좋은 시를 쓰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좋은 시를 내 기준으로 고르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 시 속에서 아이들을 발견하고 찾아주는 것이다. 자칫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아이들 글과 시를 판단하지 않을까 늘 돌아보고 생각해야겠다.
시는 왜 쓸까? 아래와 같은 마음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내 삶을 잘 가꿀 수 있는 길이 바로 시다. 정말 시다운 시를 아이들과 함께 써보고 싶다.
"시의 마음이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마음이고, 생명의 귀중함을 생각하는 마음이고, 동정할 줄 아는 마음이고, 가난한 우리 것, 내 것을 아끼고 사랑하면서, 건강하게 일하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마음입니다." (33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