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덕 일기 2 :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이오덕 일기 2
이오덕 지음 / 양철북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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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못 자는 밤 - 퇴임한 날

 

42년 교직을 어쩌면 이렇게 미련도 한 올 없이

헌 옷 벗어던지듯 훌훌 벗어던지는가.

아이들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딴 곳에다 꿈을 두었던가?

아니다.

결단코 아니다.

내 사랑은 아직도 저 총총한 눈망울 반짝이는

아이들한테 가 있다.

내 꿈은 저 아이들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삶은 그대로 감옥살이 42년!

이제야 나는 풀어 놓인 한 사람의 인간

인간이 되었다.

퇴임식-

부끄러운 내 교단생활을 끝장내는 그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와 내 방에 홀로 앉아

그래도 한 방울 눈물도 없이 이렇게 태연하다는 것은

조금은 이상하구나.

산 같은 마음이 있어서인가?

하늘 같은 믿음 때문일까?

그래도 한번쯤은 큰 소리로

통곡이라도 해 봄직한데

어쩌면 목석으로 굳어진 것 아닐까?

자리에 누워도 잠이 안 온다.

쫓기고 시달린 그 많은 나날에도

밤마다 차라리 평안한 죽음을 생각하며

잠을 잘도 잤는데,

오늘 밤엔 어쩌자고 잠이 안 온다.

내일 새 학교에 입학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인가?

소풍날을 앞둔 밤의 어린이 마음인가?

얼마나 어리고 철없는 마음인가?

마구 짓밟히고 쥐어뜯기고 뿌리 뽑히는 풀 같은 어린 생명들

그들을 살리는 일 이제부터 시작되는데,

어쩌자고 잠은 안 와 들떠 있는가?

어린애같이!

 

 조그만 방에서 퇴임식을 마친 이오덕 선생님을 만난다. 학교생활을 감옥살이 42년이라고 하실만큼 답답해 하셨지만 늘 아이들 곁을 떠나지 않았던 선생님.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어요?"

 깡마른 어깨를 넘어본다. 일기 속 선생님 학교생활이 스르륵 지나간다.

 "참 많이 애쓰셨어요."

 조용히 말을 건넨다. 그리고 선생님 손을 말없이 꼭 잡아드린다. 조용히 방을 나오며 생각한다. 내가 학교를 떠나는 날, 난 "내 꿈은 아이들이다."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을까?

 

 어두웠던 우리 역사 속 온 몸으로 뜨겁게 사셨던 1978년부터 1986년까지 이오덕 선생님 일기다.

 

 *그런 짓을 해서 점수만 따고 상장만 받는 것을 목표로 학교를 경영하는 것이 가장 유능한 교장이다. (71쪽)

 

 *모두 기계가 되어 있어 학교가 교장인 내 한 사람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154쪽) 

 

 *교감 선생은 교육을 꼭 그런 장부나 물질적인 증거로 남겨 놓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교육이란 그런 게 아니래요. 교육한 표적은 그런 행사 결과를 증거로 남기는 데 있는 게 아니고 아이들 태도에 영향을 주는 데 있는 겁니다. (267쪽)

 

 *이렇게 겉모양 다듬는 것이 교육자들의 가장 긴급ㅎ고 중요한 할 일이 되어 있는 세상인데, 나는 이런 세상을 모르고, 무시하고 지냈으니, 이제 나는 이 학교에서도, 우리 교육계에서도 아무런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338쪽)

 

 아직도 그렇다. 학교 분위기가 많이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학교에 '아이들'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름만 혁신학교, 그 속에는 보여주기 위한 성과만 있는 학교도 많다. 뿌리박혀 있는 거짓교육, 일기를 살펴보면 그 뿌리가 꽤 깊다. 

 

 *지금 우리 나라의 교육은 국민학교에서부터 중고등대학에 이르기까지 시험 준비 교육으로 단편적인 지식만을 밤낮 강제로 주입하는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을 바보 만드는 교육, 병신 만드는 교육입니다. (107쪽)

 

 *사람되는 공부에는 세 가지가  필요한데 첫째, 일하는 것, 둘째, 책 읽는 것, 셋째, 생각하는 것, 이 세 가지 중 어느 한 가지도 오늘날의 일반 학교에서는 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일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책 읽지 않는 인물을 기르고 있는데, 이렇게 보면 여러분들이야말로 가장 참된 교육을 받게 되는 행복한 학생들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146쪽)

 

 마리타스 졸업식에서 그는 교육이 가야할 길을 생각한다. 그 당시도 학교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에서 새길을 보니 참 씁쓸했다. 사회를 바로 보지 못하는 이에게 건낸 선생님의 따끔한 비판은 시원했다. 지금 우리에게 회초리같은 따끔한 말을 해줄 큰 스승이 그립다.

 

 *노 양은 한참 동안 교직 초년생이 겪은 여러 가지 경험담을 얘기했다. 무슨 체육대회에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 상을 못 타서 윗사람한테 꾸중당한 일, 학력검사 성적이 나쁘다고 야단 맞은 일,... 참 너무 기가 막힌 얘기들이었다. (124쪽)

 

*정말 요즘은 훌륭한 수업을 볼 수 없다. 연구 논문이나 교육 자료 잘 쓰고 만들어 점수 따서 영전하는 사람은 있지만 수업 잘한다고 이름난 사람은 없다. (248쪽)

 

 지금 학교 선생님들은 행복할까? 지옥같은 경쟁을 뚫고 우수한 인재들이 교단에 들어선다. 행복한 꿈을 꾸며 학교에 들어서지만 그 꿈이 곧 무너진다. 무엇때문에 힘들까 생각해보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참 놀랍다. 무려 삼십년이 훌쩍 지난 이야기인데 말이다.   

 

 *버스에서 라디오방송 뉴스가 나오는데 들으니 아직도 광주 사건이 해결이 안 난 것같이 말하는 듯했다. 얼마나 피를 흘려야 이 나라가 바로잡힐는지, 막막한 느낌이다. (174쪽)

 

 일기 속에는 굵직한 역사가 곳곳에 담겨있다. 바로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도 선생님이 보고 들은 살아있는 이야기로 쓰여있다. 일기가 살아있는 역사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학교때 선배와 함께 망월동 묘역을 참배하고 충격적인 광주민주화운동 영상을 보며 토론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책 속 선생님과 함께 분노한다. 부정적인 표현, 감정표현까지도 검열을 받았던 시절, 마음이 답답해진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산다.'는 말처럼 우리나라 민주주의도 수많은 사람의 피와 눈물로 얻어냈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한다. 그렇게 얻어낸 민주주의 사회. 지금은 어떤가? 다시 답답해지지만 그 암울했던 시절도 이겨낸 우리 힘을 믿는다.

 

 *이원수 선생님은 이제 운명의 시간이 경각에 놓인 것 같으셨다. 얼굴이 부은 것이 가라앉았는데, 입을 벌리시고 누워 계시는 모습이 거의 해골만 남으신 것 같았다. ... 울음소리가 나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나만 울음이 북받쳐 엎드려 잠시 울었다. 눈물을 닦고 나서도 또 눈물이 났다. (237쪽)

 

 이오덕 선생님의 스승인 이원수 선생님도 돌아가신다. 장례식장에서 꺼이꺼이 목놓아 우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진다. 그만큼 큰 영향을 주고 믿었던 삶의 기둥이었구나 싶었다. 눈물이 난다.

 

 *나무의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이 없을까? 사람은 자기 몸 치료하는 것밖에 모른다. (300쪽)

 

 *산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밟아 죽인다는 것임을 새삼 생각해보았다. (314쪽)

 

 일기 곳곳에서 개구리 입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주고, 길잃은 비둘기를 보살펴 날려보내며, 모르게 밟아죽인 개구리를 불쌍히 여기는 선생님 모습을 본다. 아마도 이오덕 선생님 생각의 뿌리가 아닐까 싶다. 바로 사랑이다. 자연과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셨고, 아이들과 약한 이들을 사랑하셨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셨기에 그렇게 살아가시지 않았을까 싶다. 사랑. 모든 것은 이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되고 끝맺는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느낀다.   

 

 *남을 생각하고, 남을 위해 일하는 데 기쁨을 발견한 사람은 죽음도 두렵지 않다. (3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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