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요즘은 어떠하십니까 - 이오덕과 권정생의 아름다운 편지
이오덕.권정생 지음 / 양철북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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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손편지를 쓰는 일이 드물다. 나도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때 가끔 쓴다. 우표를 붙여 보낸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은 편지로 소식을 주고 받았다. 이오덕 선생님은 1973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권정생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 이때부터 2002년까지 주고 받은 편지글을 모아놓았다. 이오덕 일기에도 나타나지 않은 마음과 권정생 선생님과 나눈 이야기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선생님은 찾아오시지 않아도 항상 제 곁에 계신답니다.

 

 몸이 아프고 어려운 권정생 선생님을 이오덕 선생님은 애틋이 살펴주신다. 힘들어하는 이오덕 선생님을 권 선생님은 위로해주신다. 편지글 마지막은 몸 살피라는 부탁이 늘 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편지 속에 잘 묻어난다. 사람이 진심을 다해 걱정하고 마음을 다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구나.

 

*선생님, 백번 죽었다 살아난대도, 저는 역시 가난하게 살면서 가난한 아이들 곁에 있고 싶습니다. 이대로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56쪽)

 

* 우리 자신이 햇빛을, 공기를, 물을 생산한다는 사람은 미친 사람일 것입니다.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하늘과 바람과 세계입니다. 절대 천 원짜리 지폐나 하나의 손가방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88쪽)

 

*하느님 나라는 절대 하나 되는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는 일만 송이의 꽃이 각각 그 빛깔과 모양이 다른 꽃들이 만발하여 조화를 이루는 나라입니다. 꽃의 크기가 다르고 모양이 다르고 빛깔이 달라도 그 가치만은 우열이 없는 나라입니다. (207쪽)

 

*가난한 사람만이 가장 착하게 살 수 있습니다. (233쪽)

 

*권 선생님 편지 보고, 그렇게 돈이란 걸 잊어버릴 수 있는지, 참 놀랍고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모든 물질적인 욕망을 끊어 버리는 데서 아동문학의 정신이 싹트는 것이라 봅니다. (245쪽)

 

*결국 인간은 최악의 고통에서만이 진실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이, 추운 사람이, 질병의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사람이, 결코 점잖을 수도 없고, 성스러울 수도 없고, 거룩할 수도, 인자할 수도, 위엄이나 용기도 가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232쪽)

 

 편지 곳곳에는 이오덕, 권정생 선생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가난하게 늘 세상 약한 사람 편에 서며 살아갔던 두 선생님. 그립다.

 

*지난밤 꿈엔 어머니를 뵈었어요. 언제나처럼 노동에 시달린 그 모습 그대로 다래끼에 인동꽃을 따 담고 개울물을 힘겹게 건너고 계셨어요. (242쪽)

 

*선생님, 쌀밥 먹고 고기 먹고 나면 불쌍했던 어머니 생각이 나서 더 괴롭습니다. (258쪽)

 

*선생님, 어머니께서 생전에 하시는 말씀이 항상 '사는 데까지 살자'하셨던 게 많은 위로가 됩니다. 혼자 있으니까 울고 싶을 때 실컷 웁니다. 선생님도 힘을 내세요. (291쪽)

 

*어딜 가도 무엇을 해도 누구와 같이 있어도 자꾸 목이 메고 눈물겨워집니다. 요즘처럼 울면서 지낸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께 써 놓고 못 부친 편지 함께 보냅니다. (313쪽)

 

 어머니 꿈을 꾸고 생일을 알았던 모습, 지독하게 아파 고통으로 몸부리치는 장면, 어머니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모습과 목이 메고 눈물을 흘리는 선생님 모습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 그렇게 아프고 아파서 권 선생님 동화가 슬픈가 싶다. 아프다. 나도 편지를 읽으며 아팠다.

 

 *하늘을 쳐다볼 수 있는 떳떳함만 지녔다면, 병신이라도 좋겠습니다. 양복을 입지 못해도, 장가를 가지 못해도, 친구가 없어도, 세끼보리밥을 먹고 살아도, 나는 종달새처럼 노래하겠습니다. (13쪽) 

 

 이오덕 선생님이 아파 밥을 못 드실때 권 선생님한테 전화가 와서 죽기살기로 드시라고, 오백 번 씹으면 죽보다 잘 넘어간다고 야단을 친다. 그렇게 돌아가실때까지 서로 곁에 계셨다. 권정생 선생님은 재밌게 유언장을 남기셨다. 죽은 뒤 환생한다면 스물다섯 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연애하고 싶다는 말. 웃음이 나면서도 참 슬펐다. 그러니 더 슬펐다.

 

 권선생님은 아름다운 세상에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빌며 고통스럽게 '어머니가 사시는 먼 나라'로 떠나신다. 마지막 이오덕 선생님 시와 권정생 선생님 유언장을 보고 책을 덮으며 가슴이 먹먹해져 한참을 가만히 있었다.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구나. 서로를 위로하며 이렇게 힘이 될 수 있구나. 난 이런 사람이 있을까. 난 이렇게 살고 있을까...  (2015.11.1 민들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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