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배달의 무도’ 편은 오랜만에 마음을 움직인 뭉클한 방송이었죠. 방송 속살은 무한도전 일꾼들이 세계 곳곳 사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집밥을 전해주는 이야기예요. 아프리카 가봉 대통령 경호실장, 칠레 라면집 사장님, 미국으로 입양 간 여자군인,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까지 모두 저마다 대한민국을 가슴에 품고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어요. 입양기관에서 만난 외국인도 오래 기억에 남아요. 한국말을 들었을 때 너무 아름다워 한국을 알고 싶었다고 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오히려 우리말을 사랑하는 모습에 뿌듯하기도 하고, 그만큼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 모습도 부끄러웠어요. \
일본 ‘하시마’ 편을 볼 때는 너무 가슴이 아프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죠. 일본은 우리나라 강제징용 사실을 쏙 빼놓은 채 하시마섬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렸어요. 열여섯에 강제로 끌려가 더운 탄광 안에서 속옷 하나 입고 일하며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던 할아버지들. 그렇게 죽어가며 외쳤던 소리가 귓가에 맴돌아요.
“아이고, 배고파라... 나 쥐나서 못살겠다.”
그분들 넋을 기린 위령탑은 찾을 수 없는 외진 곳에 있었죠. 사망 기록도 모두 불태워 사라졌다는 사실을 듣고 너무 화가 났어요. 나라 잃은 서러움과 아픔을 잊지 말자고 다짐했죠. 우리도 모르게 쓰는 일본말투 부터 하나씩 뿌리 뽑고 우리말도 바로 써야겠다는 생각도 해봐요.
◉ 무한도전 - 배달의 무도(2015.8.15/8.29/9.12 방영)
1. 버릇처럼 쓰는 영국글자말
가. 3위 할 것 같은 질문 앙케트! → 3위 할 것 같은 질문 조사!
나. 아쉽, 가봉키드(?)인데 → 아쉽네, 가봉꼬마인데
다. 기부 배틀 버금가는 해외배달 배틀 → 기부 싸움 버금가는 해외배달 싸움
라. 남바원(?) 이렇게 하고 → 으뜸(엄지척) 이렇게 하고
마. 레시피 전수 완료 → 조리법(맛길잡이) 전수(넘겨주기) 완료(끝냄)
바. 스케줄상 아쉽게도 불발된 만남 → 어긋난 일정으로 아쉽게 못 만남
사. 식신 준하가 보너스로 준비하는 한국의 맛 → 먹보 준하가 덤으로 차린 한국의 맛
아. 자주 오는 듯 메뉴를 고르고 → 자주 오는 듯 음식(라면)을 고르고
자. 제가 정말 스페셜하게! → 제가 정말 특별하게!
차. 기름 온도 체크 → 기름 온도 점검
카. 동그랗게 마는 것이 포인트! → 동그랗게 마는 것이 핵심(알맹이, 고갱이)!
타. 단무지 없는 김밥 시식 타임 → 단무지 없는 김밥 맛보는 때
파. 결혼에 골인한 커플도 여럿! → 결혼에 성공한 짝도 여럿!
하. 숙자 언니의 나이스 초이스 → 숙자 언니의 멋진 선택
갸. 클래식하게 → 예스럽게
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자축하는 플래카드 →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자축하는 현수막
댜. 밝은 목소리로 말 꺼내는 일본인 가이드 → 밝은 목소리로 말 꺼내는 일본인 안내원
랴. 너무 몰아주니 커트해주는 센스! → 너무 몰아주니 잘라주는 슬기!
먀. 압도적인 고릴라의 비주얼에 난리법석 → 엄청난 고릴라 모습에 난리법석
뱌. 짧지만 임팩트 있었던 만남 3종 세트 → 짧지만 강렬했던 만남 3종 묶음
샤. 스펙타클한게 있겠지? → 더 재밌고 굉장한게 있겠지?
야. 지목해서 디스...? → 가리켜 깎아내림...?
디스는 디스리스펙트(disrespect, 무례)의 준말로 상대방의 허물을 공개적으로 공격해 망신을 주는 힙합의 하위문화를 일컬어요. [출처: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무슨 뜻인지 모르는 들온말(외래어)들이 자꾸 만들어져서 답답해요.
쟈. 박사장의 플레이팅에 이어 → 박사장의 음식놓기(음식꾸미기)에 이어 (박사장이 음식을 접시에 놓고)
요즘 음식을 다루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플레이팅’이라는 말도 많이 써요. 원래 뜻은 ‘도금, 판’이예요. 국어말집, 지식백과를 아무리 뒤져도 ‘공장 작업 기술’로 쓰이고 ‘음식을 접시에 담고 꾸미는 뜻’은 없어요. 그렇다면 ‘음식놓기’, ‘음식꾸미기’라고 하면 어떨까요?
챠. ‘잘 몰라요’ 아우라 발산 → ‘잘 몰라요’ 기품(분위기, 느낌) 드러냄
‘아우라’는 고상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뜻하며 독일어에서 유래했다고 해요. 국립국어원에서는 ‘기품’이라고 다듬어 쓰자고 했어요. 국립국어원이 다듬은 말도 중국글자말이 많네요. 아쉽죠. 더 좋은 우리말도 찾아봐야겠어요.
2. 바꿔 쓸 수 있는 중국글자말
가. 아이고, 수고해라. → 아이고, 애써라.
우리는 흔히 ‘수고하세요.’라고 인사를 잘 합니다.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버릇처럼 쓰죠. ‘수고’의 어원은 15세기 문헌에 ‘슈고’로 나와요. 이는 한자어 ‘수고(受苦)’입니다. ‘고통을 받음’이라는 뜻이죠. 지금 ‘힘을 들이고 애를 씀’이라는 뜻과 다르죠. 알고 보면 나쁜 뜻을 담고 있어 윗사람에 쓸 수 없다고 해요.
일터에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집에 갈 때 남아 있는 사람에게 “수고하세요.”라는 말보다 “먼저 가겠습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먼저 가겠습니다.”같은 인사가 좋아요. 동년배나 아랫사람에게는 “애쓰세요.”나 “애써.”라는 말도 좋겠죠. [출처: 표준 언어 예절, 국립국어원 2011]
나. 첨언, 언제 또 가봐 → 덧붙인 말, 언제 또 가봐
다. 가봉에서 절대 접할 수 없는 음식 → 가봉에서 조금도(죽어도) 맛볼 수 없는 음식
라. 제작진 호출에 다시 모인 셋 → 제작진이 불러 다시 모인 셋
마. 아드님을 예전부터 부르시던 호칭 있을까요? → 아드님을 예전부터 부르시던 별명(이름) 있을까요?
바. 단도직입 → 곧바로
사. 칠레에 거주중인 남편과 둘째 아들 → 칠레에 사는 남편과 둘째 아들
아. 멤버들 중 제일 먼저 출국하는 명수 → 구성원들 중 가장 먼저 떠나는 명수
멤버라는 말도 많이 써요. 국립국어원에서 밝힌 다듬은 말(순화어)은 회원, 구성원, 선수라고 하네요. 말이 잘 안사는 느낌도 들어 어떤 말이 좋을까 고민해봅니다. 동무들은 어떨까요?
자. 한국말 능숙한 외국인 또 등장 →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 또 나타남
차. 이건 시중에서 먹을 수 없는 맛이야 → 이건 쉽게 맛볼 수 없어.
카. 이제 마카롱 음미하러 → 이제 마카롱 맛보러
타. 매일 저녁을 먹으며 → 날마다 저녁을 먹으며
파. 착하고 매일 같이 놀아서 좋아요 → 착하고 날마다 같이 놀아서 좋아요
하. 어떻게 매일 재밌어요. → 어떻게 날마다 재밌어요.
갸. 정차 중인 차들을 상대로 영업 중 → 서 있는 차들을 상대로 영업 중
냐. 우선 칠레말로 거는 아버님 → 먼저 칠레말로 거는 아버님
댜. 치밀한 작전 설계 후 → 꼼꼼한 작전을 짠 다음
랴. 금세 아이 같은 미소가 둥실 → 금세 아이 같은 웃음이 둥실
먀. 재석이 선물하는 저녁 식사 → 재석이 선물하는 저녁 밥
뱌.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 고마운 마음을 보여주고 싶어서
샤. 때마침 자택 귀가중! → 때마침 집으로 돌아옴!
야. 떨어져 있으면서 전하지 못했던 애정 → 떨어져 있으면서 전하지 못했던 사랑
쟈. 공유할 수 있어 더 소중해진 추억 → 함께 할 수 있어 더 소중해진 추억
챠. 밀가루 옷 입은 닭고기 투하 → 밀가루 옷 입은 닭고기 넣기(퐁당)
캬. 박사장의 노고 덕에(?) 노릇노릇 잘 튀겨진 닭고기 → 박사장이 애쓴 덕에 노릇노릇 잘 튀겨진 닭고기
탸. 옆에서 항상 챙겨줄 수 없기에 → 옆에서 늘 챙겨줄 수 없기에
퍄. 저희가 주변을 알아보니 → 저희가 둘레를 알아보니
햐. 하시마 주변만 도는 배 탑승 → 하시마 둘레만 도는 배에 탐
거. 말은 서로 통하지 않지만 → 말을 서로 나눌 수(주고받을 수) 없지만
너. 한국을 통해 경호팀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 한국사람으로 경호팀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 ‘통하다’는 또 다른 글에서 자세히 다루려고 해요.
더. 애정 넘치는 동생들 → 사랑스러운(사랑 가득한) 동생들
러. 나탈리 눈에 포착된 실수 → 나탈리 눈에 들어온(잡힌) 실수
머. 변수가 많은 하시마 입도 → 변수가 많은 하시마에 들어감
버. 두 번 만에 입도하는 하시마 → 두 번 만에 들어온 하시마
서. 일본에서 지난주에 공수한 겁니다. → 일본에서 지난주에 가져온 겁니다.
어. 철근과 콘크리트 뿐인 회색섬 → 철근과 콘크리트 뿐인 잿빛섬
저. 형이 제일 그리웠을 텐데? → 형이 가장 그리웠을 텐데?
처. 기대가 컸던 만큼 大 실망 → 기대가 컸던 만큼 큰 실망
커. 속속 내오시는 어머니 → 잇달아 내오시는 어머니
터. 드디어 등장한 핵심 소스 → 드디어 나타난 알맹이(고갱이) 양념
퍼. 이제 마카롱 음미하러 → 이제 마카롱 먹으러
허. 꿀 뚜껑 맛 가미 → 꿀 뚜껑 맛 보탬
겨. 임신 중인 딸을 위한 미역국 → 임신한 딸을 위한 미역국
‘-중’이라는 말도 많이 써요. 그는 수감 중이다. 대학 재학 중에 입대했다. 그러던 중에 그가 왔다. 이런 말투는 영어 현재 진행형을 잘못 옮긴 일본 말투예요. ‘-중’ 대신 ‘가운데’를 써도 옳지 않아요.
*그를 만나 여러 가지 얘기를 하는 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 ...얘기를 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 ...얘기를 하며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3. 틀린 말
가. 좋겠다~ 아프리카에서 무슨 식사를 할까아~? → 좋겠다~ 아프리카에서 무얼 먹을까?
‘식사’는 ‘끼니로 음식을 먹음. 또는 그 음식’을 뜻해요. 무슨 음식을 먹음을 할까? 무슨 음식을 할까? 앞뒤가 안 맞아요. 아프리카에서 무얼 먹을까? 이렇게 바꿔야겠죠.
“식사하러 가시죠.”라는 말도 많이 써요. 왠지 “밥 먹으러 가시죠.”라는 말보다 높이는 말이라 느낄 수 있어요. 뿌리박힌 잘못된 생각부터 바로 잡아요. ‘식당’ 대신 ‘밥집’이라 부르면 참 푸근하고 정겹죠.
나. 리포터 완전 빙의 → 리포터로 확 바뀜
다. 완전 감동이겠지? → 정말 뭉클하겠지?
라. 완전 기대 → 정말 기대
마. 훈내 풍기며 낸 본인 아이디어 → 핏대를 세우며 낸 준하 생각
‘훈내’ 뜻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군내’라는 말은 ‘본래의 제 맛이 변하여 나는 좋지 아니한 냄새’를 뜻하는데 ‘훈내’는 ‘훈훈한 냄새’라고 짐작해봐요. 그런데 흐름을 보면 그 뜻도 어울리지 않아요.
바. 새하얀 백지 같은 비천만(?) 광희 → 새하얀 백지 같은 천만 아닌 광희
‘비천만’도 없는 말이예요. 아마도 천만 관객 영화를 못 본 광희에게 ‘천만이 아니다’ 라는 뜻으로 형돈이 말한 듯해요.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도는 이상한 말들도 이렇게 마구 말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본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4. 쓰면 안될 말
가. 정말 가슴 아프고 현실적으로 와 닿는 사연 하나를 고르게 됐습니다. → 정말 가슴 아프고 피부에 와 닿는 사연 하나를 고르게 됐습니다.
나. 바라만 봐도 감동적인 → 바라만 봐도 가슴 찡한
다. 양심적으로 → 솔직히
라. 푼타 아레나스의 이국적 건물들 사이로 → 푼타 아레나스의 다른 나라(낯선) 건물들 사이로
마. 열정적인 자기 소개 → 혼을 바친 자기 소개
바. 어떤 요리보다도 폭발적인 인기! → 어떤 요리보다도 엄청난(어마어마한) 인기!
사. 강제적으로 해내야 했던 작업 할당량 → 강제로 해내야 했던 작업 할당량
지난 글에도 ‘-적’을 쓰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버릇처럼 너무 많이 쓰고 있어 고치기가 참 어려워요. ‘-적’을 찬찬히 돌아보면 그 뒤에 아름다운 우리말이 있다는 사실 새삼 또 느껴요.
아. 신용카드가 보편화되지 않은 동네 → 신용카드가 널리 퍼지지 않은 동네
자. 대중화돼 있지 않던 양변기 → 널리 퍼지지 않던 양변기
차. 칠레에선 먹기 힘든 한국식 닭강정 → 칠레에선 먹기 힘든 한국 닭강정
카. 일본 최초 철근 콘크리트식 아파트 건설했다고 → 일본 최초 철근 콘크리트 아파트 건설했다고
타. 명수 식대로 풀어내고 온 마음 → 명수 나름대로 풀어내고 온 마음
중국글자말에 ‘–화’를 붙여서 어설픈 말을 만든다고 이오덕 선생님도 말씀하셨죠. 온난화, 일원화, 형상화, 내면화, 간소화, 무력화... 정말 많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신 쓸 수 있는 우리말은 꼭 있어요. ‘-식’도 중국말투예요. ‘-식’을 빼도 말은 아름답게 흘러요.
파. 음 스멜~ 스뎅(?) 스멜~ → 음 냄새~ 스테인리스 냄새~
스뎅은 ‘스테인리스’를 일본식 영어로 발음한 말이예요. 어린 아이들까지 보는 예능프로그램에 이런 말들이 나오면 씁쓸해요. 그동안 받았던 좋은 느낌과 뭉클함이 사라질까 걱정도 들어요. 아직도 남아있는 일본말투는 뿌리 뽑아야겠죠.
하. 선영 씨가 살아온 이야기와의 만남 → 선영 씨가 살아온 이야기와 만나
‘와의’는 어찌자리토씨(부사격조사) ‘와’에 매김자리토씨(관형격조사) ‘의’가 붙은 것인데, 지금 꽤 널리 쓰고 있지만 이것은 일본말 ‘との’를 그대로 옮긴 거예요. ‘韓國との交涉’을 옮기면 ‘한국과의 교섭’이예요. 그래서 이오덕 선생님은 ‘와(과)’는 그대로 두고 ‘의’를 붙이지 말고 움직씨를 쓰면 된다고 하셨죠. 보기를 들면 다음과 같아요. [우리 글 바로쓰기1, 128쪽]
* 노조위원장은 금일 중으로 김 회장과의 면담을 희망하고 있다.
→ 노조위원장은 오늘 안으로 김 회장과 만나길 바라고 있다.
갸. 내리자마자 멘붕 → 내리자마자 짜증
‘멘붕’은 ‘멘탈붕괴’라는 신조어로 나이든 어른도 알 정도로 널리 퍼진 말이죠. 이런 말들을 우리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처음에는 재미있게 쓰고, 젊은 사람들과 서로 소통하는 말이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런 말들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잡아먹고 있어요. 모든 느낌말을 ‘멘붕’이라는 말로 싸잡아 말하죠. 당황스럽다, 짜증난다, 화난다, 울화가 치민다, 울고 싶다, 황당하다, 놀랐다, 식은땀이 흐른다 같이 느낌말들이 참 많은데 말이죠.
살펴보니 고쳐야 할 말이 많네요. 10월 12일에는 지난 17호 글과 편지를 무한도전 김태호PD에게 보냈어요. 워낙 바쁜 일꾼들이라 그 뜻이 잘 전해질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꾸준히 보낸다면 생각은 조금이라도 해보겠죠.
(민들레처럼. 2015.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