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요? 눈에 보이지 않아 더 어려워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말풀이로 풀 문제는 아닌 듯해요. 사람이 동물과 다른 이유가 저번 글에서 ‘마음’과 ‘얼’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죠. 다시 생각해보니 동물에게는 ‘마음’과 ‘얼’이 없을까 궁금해져요. 우리가 모르는 세상이 있을 텐데 싶고요. 사람이 동물보다 위에 있다는 생각은 과연 맞는 말일까요? 우리가 모르는 세상 헤아리기 어렵죠.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네요. 깊은 철학이 담긴 이야기라 살면서 더 찬찬히 생각해보려고 해요. 그래도 ‘넋’과 ‘얼’ 이야기를 여기저기 듣고 본 속살을 나름 갈무리 해봐요.
먼저 ‘넋’이예요. 김수업 선생님은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넋’을 쓸 수 없다고 하셔요. 최종규님은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기운’이며 ‘넋’과 ‘얼’은 ‘살거나 죽는’것이 아니라 어떤 몸(사람)을 빌어서 이 땅에서 ‘살다’가 다른 몸으로 가서 다시 ‘살’도록 하는 숨결이라고 합니다.
국어말집에는 다음과 같이 나오지요.
*넋 [이름씨(명사)]
1) 사람의 몸에 있으면서 몸을 거느리고 정신을 다스리는 비물질적인 것. 몸이 죽어도 영원히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초자연적인 것이다.
보기> 억울한 넋을 달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넋이 나를 지켜 주는 것 같다.
2) 정신이나 마음
보기> 그 유물에는 백제의 넋이 살아 있다. 그는 여자 생각에 넋이 빠져 있다.
주로 죽은 사람에게 ‘넋’이라는 말을 1)처럼 써요. 생각해보면 죽은 사람에게만 쓰는 게 아니고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기운’이 맞는 듯해요. 살아있든 죽었든 사라지지 않는 게 ‘넋’이죠. ‘혼(魂)’이라 불리기도 해요. ‘넋’이 빠지면 몸과 마음을 다스릴 수 없으니 ‘죽은 사람과 다름 아니다.’라는 말이구요.
*넋 빠진 사람, 넋 나간 사람, 넋을 놓고 있다
그럼 ‘얼’은 무얼까요? 국어말집에는 이렇게 뜻풀이를 해놓고 있어요.
*얼 [이름씨(명사)]
1) 정신의 줏대
보기> 전통문화에는 민족의 얼이 담겨 있다. 엄마는 얼이 빠진 모습으로 쳐다봤다.
‘얼’은 ‘마음을 지키는 뼈대’예요. ‘얼’은 ‘마음’ 속에 있지만 ‘마음’과는 달라요. ‘마음’은 몸에서 비롯하지만 ‘얼’은 몸에서 나오지 않지요.
‘얼’은 ‘알’과 같은 말이에요. ‘알’은 새로운 목숨이 태어나도록 하는 씨앗입니다. 많은 짐승들이 알에서 태어나죠. 땅 위에 자라는 모든 푸나무들도 씨앗에서 자라요. 옛 신화에도 알에서 태어난 사람 이야기가 나오죠. 사람의 진짜 알맹이가 바로 ‘얼’이에요.
‘얼’은 ‘알다’라는 움직씨 몸통인 ‘알’이기도 해요. ‘알’은 ‘앎’이죠. ‘얼’은 아는 것, 알게 하는 힘이라는 뜻이에요. ‘생각’과는 달라요. 사람이 알 수 없는 저 너머 이야기를 아는 힘이죠. 보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무엇이 옳고 그른지, 제 스스로를 들여다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그런 힘이에요. ‘얼’은 몸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얼’이 있고 거기서 몸이 생겨나는 거죠. 사람이라는 목숨이 생겨나도록 열어주는 힘이며 씨앗이 바로 ‘얼’이에요.
‘얼’이 쓰인 낱말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아요.
*얼간이: 얼+간+이 → 얼이 가 버린 사람
*얼뜨기: 얼+뜨+기 → 얼이 하늘 높이 뜬 사람
*얼빙이: 얼+빈+이 → 얼이 비어 버린 사람
*얼빠졌다: 얼+빠졌다 → 얼이 사람의 마음에서 빠졌다
*얼먹다: 얼+먹다 → 놀라서 어리둥절하여지다
*얼치다: 얼+치다 → 정신을 잃어버리다
어른들이 죽으면 ‘돌아가셨다.’라고 하죠. ‘돌아갔다’는 무엇이 돌아갔다는 것일까요? 사람이 죽으면 몸은 썩어요. 몸은 땅에 묻혀 자연으로 흩어지죠. 마음도 몸에 비롯된 것이기에 자연으로 흩어져요. 하지만, 사람은 죽음을 뛰어넘어 ‘돌아가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것이 바로 ‘얼’이예요. 목숨이 시작된 곳, 하느님께로 ‘얼’은 돌아갑니다.
그럼 ‘넋’과 ‘얼’은 어떻게 다른 걸까요? 죽기 앞서 있는 게 ‘얼’이고 죽은 다음 있는 게 ‘넋’일까요? 최종규님은 이렇게 말하세요.
“넋이 있어서 ‘산 목숨’이 됩니다. ‘얼’은 뼈대와 같은 구실로 ‘넋’을 지키는 구실을 합니다. 사람은 넋이 깃들면서 새 목숨이 되고, 새 목숨이 되면 ‘생각’을 지어서 어떤 뜻을 품고, 생각을 ‘마음’에 씨앗(알)처럼 심어서 어떤 일을 합니다.”
무교에서는 넋이 깨끗해야 편안히 돌아간다고 믿죠. 그래서 제명에 죽지 못한 사람의 넋을 씻어주는 굿을 하기도 해요. 살아가며 ‘얼’에 때를 묻히고 흠을 내면 저승에 가서 ‘넋’에 묻은 때를 씻겨내는 아픔이 무지 크다고 하죠. 불교든 기독교든 천주교든 그 가르침은 다르지 않아요.
다시 사람답게 사는 길, 되새겨 봅니다.
(2015.6.2. 민들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