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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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그것 참 신기하다. 오늘 회사에 거래처 갑질의 일환으로 어느 은행에서 상조회 프로그램을 팔러 왔다. 우리는 그들을 약장수라고 부른다. 정말 여러 가지인데, 우리 동료들은 단 한 번도 가입한 적이 없다. 그런 식의 영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게 나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그런 식으로 까먹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나도 이제 어느덧 나이를 먹어 부모님의 장례를 걱정할 나이가 되긴 된 모양이다. 평소라면 귀퉁으로도 들리지 않았을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걸 보면 말이다. 누구든 부모님의 상을 당하게 되면 경황이 없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상조회 서비스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면 자그마치 100여가지에 달하는 장례용품 사기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거다. 가령 예를 들면 27만원 짜리는 안동에서 만들어진 수의는 350만원으로 뻥튀기된다고 한다. 그러니 바가지 쓰기 전에 미리미리 준비하라는 말일 것이다.

 

늘상 그렇지만 이번 삼천포는 196767살의 나이로 세상을 뜨신 저자 아니 에르노의 아버지 이야기다. 하도 길에 읽다 보니 처음에 무슨 내용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아 다 읽고 나서 처음으로 돌아가 보니 교사 자격시험과 아버지가 돌아가신 장면으로 <남자의 자리>는 시작된다.

 

노동자 집안 출신의 아니 에르노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이 그들의 살아온 삶 대신 잘 나가길 바라신 모양이다. 하긴 세상의 어느 부모님들이 그렇지 않을까. 적어도 자신들보다는 잘 살길 바라지 않을까.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자본이 없는 빈민 노동자 계급에서는 오로지 양질의 교육 밖에는 길이 없다는 게 문제다. 돈이 좀 있다면 사업으로 성공할 수도 있지 않을까?

 

게다가 어려서부터 잘 나가던 딸은 사범대에 진학해서 국가의 지원과 장학금을 받으면서 잘 나가지 않았던가. 나중에 소설가로 대박을 내면서 그야말로 부르주아적인 삶을 살게 되었고.

 

한 마디로 말해 아니 에르노와 그의 돌아가신 아버지는 정반대의 삶을 사셨다. 전후 리옹의 어느 작은 마을에 상점을 낸 에르노 패밀리의 삶은 당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처럼 신산하기 짝이 없었다. 점빵겸 카페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이웃 빵집에서 자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그마치 1킬로미터를 걸으셔서 다른 빵집에 가서 빵을 사다 먹었다고 하지 않던가. 바로 그런 기개를 가진 양반이 에르노의 아버지였다.

 

대처에 나가 성공한 딸이 그로서는 얼마나 대단했을까. 하지만 환갑 즈음해서 병이 발발하면서 그렇게 기백 좋던 남자도 결국 죽음이라는 대단원으로 막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하긴 우리네 삶이 대충 그러하지 않던가.

 

<남자의 자리>의 어디에선가 만난 기억은 저항한다라는 표현이 왜 그렇게 와 닿던지. 오랜 시간들이 지나다 보니 나의 기억에 확신을 가질 수가 없게 되었다. 작가가 아마 나와는 다른 생각으로 저항하는 기억에 대한 서술을 했겠지만. 두 분의 어르신들이 아이를 맡았을 때, 구원의 순간이 도래했다던가 하는 부분이 아주 절절하게 공감이 갔다. 시간은 때로는 모든 것을 파괴하기도 하지만, 또 예전에는 미처 몰랐던 부분들을 새롭게 느끼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남자의 자리>는 종언을 고한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이번에는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차례가 된다. 아버지와의 관계와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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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6 19:3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니 에르노의 책 저는 딱 두권, 이 책하고 단순한 열정 읽어봤는데 두 책사이의 간극에 약간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

레삭매냐 2021-09-07 16:43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저도 <단순한 열정>은
정말 충격적으로 읽었던 것 같습
니다.

<단순한 열정>에 비하면 <남자의
자리>는 순한 맛이지요.
 
아무것도 없다 - 카르멘 라포렛 탄생 100주년 기념판
카르멘 라포렛 지음, 김수진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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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에 큰 상흔을 남긴 전쟁으로 지난 세기의 스페인 내전과 베트남 전쟁이 꼽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1944, 스페인 출신의 23살난 작가 카르멘 포렛은 <아무것도 없다>라는 니힐리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제목의 소설로 혜성처럼 스페인 문단을 폭격했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바로 스페인 내전이 끝난 1942년에서 1943년 사이의 스페인 바르셀로나다. 어떤 시절로 잡아도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절에 유럽은 그야말로 전화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이데올로기 때문에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스페인에는 전화가 미치지 않았다. 독재자 프랑코의 줄타기 외교의 승리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고 이제 막 고아 소녀가 된 18세 안드레아는 대학 진학을 위해 바르셀로나로 상경한다. 이러한 도식은 상당히 고전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바우 거리에 사는 안드레아의 외할머니와 앙구스티아스 이모 그리고 후안(+외숙모 글로리아)과 로만 삼촌 그리고 가정부 안토니아가 사는 대략 80년 전 스페인 막장드라마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자.

 

일단 등장인물들의 성격들이 보통이 아니다. 우선 안드레아를 옥죄는 역할을 담당한 앙구스티아스 이모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그녀는 현대 스페인 여자들에게 선택지는 결혼 아니면 수녀원이라는 대단히 프랑코일파가 좋아할 만한 그런 이분법적 사고를 지닌 여성이다. 프랑코가 인민전선 정부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바로 가톨릭 신앙에 근거한 스페인 전통 질서의 복원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모는 작고하신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헤로니모 산스와 결혼에 실패하고, 신대륙으로 건너가 성공하고 돌아온 돈 헤로니모와 다른 곳도 아닌 교회에서 밀회를 즐기지 않았다고 했던가. 이 스페인식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근거가 희박하다 보니 어디까지나 진실이고 또 거짓인지 판단할 근거가 너무 부족하다.

 

앙구스티아스는 안드레아를 붙들어 놓고는, 안드레아가 더 어렸다면 폭력까지 써가면서 훈육했을 거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내가 보기에 앙구스티아스는 스페인 사회를 중세로 돌려 버린 프랑코 총통의 대변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종류의 억압과 속박에도 저항하는 캐릭터인 안드레아는 프랑코 총통에게 패배한 스페인 민중이라고나 할까. 시골에서 자신을 억압한 사촌 언니로부터 바르셀로나로 도주했건만, 자유의 땅이라고 생각했던 바르셀로나에는 한술 더 뜨는 강적이 안드레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 처한 안드레아에게 유일한 해방구는 대학에서 만난 친구 에나였다.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의 에나 가정을 안드레아는 마냥 부러워한다. 아리바우 거리의 집에서는 뜨거운 물조차 나오지 않아 한겨울에도 찬물로 샤워를 해야 했다. 이제 막 대학시절을 시작한 청춘에게 처절한 가난은 친한 친구에게 숨기고 싶은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에나의 가정과 자신이 더부살이하고 있는 아리바우 거리의 그것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전자가 자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향이었다면, 후자는 악몽 그 자체였다. 화가를 자처하는 후안과 팜므 파탈 스타일의 외숙모 글로리아의 육박전은 일상이었다. 무능력한 가장이었던 후안은 가정폭력을 일삼았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폭력을 구사했다. 이것도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눠야 했던 동족상잔의 후유증이라고 해야 할까.

 

동생 로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프랑코가 내전에서 승리한 뒤, 로만은 그들에게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로만이 열렬한 공화주의자였다고 해서 자신의 누나 앙구스티아스의 연애편지와 일기를 훔쳐보는 일이 용납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카의 가방도 마구 뒤지지 않았던가. 도대체 이 집구석이 어찌 되려고 이러는 건지 싶을 정도다.

 

안드레아를 괴롭히던 앙구스티아스 이모가 결국 봉쇄 수도원행을 택하면서 안드레아에게는 자유가 주어지게 된다. 외할머니 댁에 더부살이하던 안드레아는 연금을 자신이 직접 수령하게 되면서 자신의 관계를 재설정하겠다고 나선다. 아리바우 패밀리들은 능력도 없으면서 그런 안드레아를 만류하고, 규모 있는 소비를 하지 못한 안드레아는 밥 사 먹을 돈이 없어 야채 삶은 물을 들이키는 궁상에 처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얼마나 실소가 나오던지.

 

나는 이 소설을 굉장히 정치적으로 읽었는데, 냉혹한 현실을 인식하지 못한 공화주의자들이 결국 내전에서 프랑코 일파에게 패배하고 독재자의 가혹한 통치를 받게 된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콩가루 같은 아리바우 가족의 모습은 내전 당시, 단결해서 프랑코 파시스트들과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분열로 자멸해 버린 인민전선의 모습이 연상됐다.

 

결국 자유를 꿈꾸던 영혼은 마드리드로 떠나게 되는 에나의 가정에 의탁해서 지긋지긋한 아리바우 거리에 이별을 고한다. 쓸쓸한 엔딩을 보면서 과연 안드레아가 마드리드로 가서 행복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리바우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자아 찾기와 행복 추구가 전적으로 에나 가족에 의존해서 가능할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코 통치 시절을 교묘하게 비판한 소설 <아무것도 없다>가 당시의 검열관들을 따돌리고 출간된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독재의 부역자들은 이 정도의 소설이라면 출간해도 체제 유지에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게 아닐까. 그 점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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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나루 2021-10-08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당선 축하해요^^

서니데이 2021-10-08 18: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새파랑 2021-10-08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축하드려요~!! 아무것도 없는게 아니었군요 ^^

그레이스 2021-10-08 19: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독서괭 2021-10-08 20: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 축하드립니다~^^

초딩 2021-10-13 09: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 축하드려요 ^^
좋은 하루 되세요~

thkang1001 2021-10-13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아름다운 날들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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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독서 경험에 의하면, 독서 슬럼프 탈출에는 그래픽 노블이 제격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들른 길에 그래픽 노블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해서 먼저 만난 책이 다비드 칼리의 <인생은 지금>이었고 그 다음이 장자크 상페의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3번 타자는 줌파 라히리의 얇은 책 하나. 어쩌면 예전에 이미 읽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내가 읽겠다는데.

 

예전에는 6명 혹은 4명 정도 앉던 널따란 책상에 홀로 앉아 책장을 넘긴다. 하긴 요즘 누가 도서관을 찾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처럼 날이 좋은 데,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것도 괴롭지 않을까. 하늘이 너무 파랬다. 곳곳에 있는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제 곧 밤을 따러 가야 하나.

 

상페 작가의 그래픽 노블에도 나의 주말 일상 같은 모습들이 오롯하게 스며 있었다. 저자의 신간 사인회가 열린다는 공지가 붙어 있지만, 커다란 서점에는 저자 혼자 덜렁 앉아 있다.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서점과 책을 생산해내는 노동자의 고단한 모습이 왜 그렇게 애처러워 보이던지.

 

어느 글쓰는 이는 자신의 원고 위에 앉아 열심히 손을 비비고 있는 파리를 보며, 자신의 작품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고 한다지만, 파리 녀석이 그 작가의 작품을 알아봐줄 정도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하긴 어떤 부인은 요즘 같은 세상에 차라리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는 게 낫다고 말했던가 어쨌던가.

 

상페의 그림들은 보통 한 컷이다. 이 작가는 한 컷 속에 수많은 사연들을 담기 위해 어떤 창작의 고통을 겪었을지 궁금해졌다. 아니 어쩌면 한큐에 쓱쓱싹싹 그려냈을 지도 모르지. 모든 게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무언가 짜낼라고 하면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또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관찰하다가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그의 글과 그림들을 소비하다 보니 팬데믹 이전의 시절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참으로 모든 게 자유로웠지. 모여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둘러 앉아 시시콜콜한 수다를 떠는 게 어찌나 재밌었던지. 그게 내가 삶에서 유일하게 누리던 낙이기도 했었지.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작은 삶의 규제가 있었을 뿐.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져 버렸다. 호구를 해결하기 위한 직장생활 외에 모든 행위들은 팬데믹의 전파를 막기 위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부디 이 엄혹한 시절이 빨리 지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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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4 2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상페 라니 대단하군요~!! 저도 그래픽 노블 읽어봐야 겠군요. 레삭매냐님은 독서슬럼프가 절대 없으실거 같은데 😆

레삭매냐 2021-09-05 08:31   좋아요 3 | URL
그럴 리가요. 저도 평범한 닝겡
이랍니다 ㅋㅋ
그러니 책 읽기가 귀찮고 뭐
그럴 때도 있는 법이지요.

참 <패주> 마저 다 읽어야 하
는데 그것 참... 귀차니즘으로.

청아 2021-09-04 2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번에 그레픽 노블 보고나서 극뽁~!했습니당ㅎㅎ
레삭매냐님도 그럴때가 있으시다니 이것참 인간적으로 느껴지네요😳

레삭매냐 2021-09-05 08:32   좋아요 3 | URL
요즘 책보다 더 재밌는
주식에 빠져서리 그만...

이거이 성과와 실적이
바로 바로 튀나오다 보
니 책하고는 또 다른
재미를 ㅋㅋㅋ

주린이가 다 그렇죠 뭐.

붕붕툐툐 2021-09-04 22: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슬럼프 탈출법을 알려주시다니~ 레삭매냐님은 역시 배우신 분~👍
팬데믹 이전의 삶에서 독서모임을 가장 그리워하시는 것도 뭔가 있어보여...흠...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9-05 08:33   좋아요 3 | URL
그 시절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랍니다.

한 달에 한 번 동지들과
모여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술도 푸면서 수다떠
는 낙에 살았었는데 이놈
의 코로나가 모든 걸 망쳐
놓았습니다.

독서슬럼프 탈출에는 그래
픽 노블과 얇다란 책들이
아주 명약이더군요 ㅋㅋㅋ

막시무스 2021-09-05 1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픽노블은 한번도 본 적없는데 도전해보고 싶어져요!ㅎ 즐건 휴일되십시요!

레삭매냐 2021-09-05 11:35   좋아요 1 | URL
휴일 시간 한 번 잘가고 있네요.

날도 선선하니, 이런 날엔 밤을
따러 가야 하는데 말이죠 **

그래픽 노블, 도전해 보세요.
좋습니다.

mini74 2021-09-05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페. 얼굴 빨개지는 아이 정말 좋아해요. 제가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거든요. ㅎㅎ

레삭매냐 2021-09-06 09:50   좋아요 1 | URL
저도 얼굴 빨개지는 아이, 정말 오래
전에 만난 책이었는데 그 책으로 상
페 샘의 팬이 되어 버린 듯 :>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
알랭 제르보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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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아버지가 애장하시던 김찬삼 선생의 한자투성이 세계일주 여행기를 보면서(심지어 종서였다!) 세계여행을 꿈을 키웠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해외여행은 지금처럼 일상이 아니라 특권이었다. 고물 오토바이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콘티키>의 저자(,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의 태평양 항해를 보고서 나도 언젠가 그곳에 가보리라고 다짐했었지. 그리고 9년 전에 누벨 칼레도니에 가면서 꿈의 한 조각을 이루기도 했었다.

 

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에 프랑스 사람 알랭 제르보는 피레크레(굴뚝새 혹은 불타는 봉우리)라는 이름의 범선을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섰다. 사실 알랭 제르보의 이름은 이번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됐다. 지금처럼 통신과 기술이 발달하여 수심을 파악하고 암초를 피하기 위한 소나나 GPS 같은 장비는 물론이고, 위성 통신 장비 하나 없이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 넓고 험한 대양 항해에 나섰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에서는 대서양과 파나마 지협을 건너는 일정은 빠지고 오롯하게 폴리네시아와 멜라네시아 등의 태평양과 인도양으나 프랑스 르아브르로 귀환하는 일정을 다루고 있다. 뒤쪽에 달린 해설에서 태평양 도서지역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의 판단처럼 나도 왠지 저자가 건방지고 무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원주민들을 성가시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아무래도 당시 시대를 고려해 볼 때, 사라져 가는 폴리네시아 각지의 문화와 풍습들을 아쉬워 하긴 했지만 서구인의 시선에서 본 오리엔탈리즘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고나 할까.

 

알랭 제르보는 이미 전설이 된 그의 항해 덕분에 들르는 곳에서마다 유명인사 대접을 받고, 각지의 유력인사들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 고집쟁이 21세기 오디세우스는 육지의 평안한 잠자리 대신 자신의 피레크레의 흔들리는 배 안에서 자는 걸 더 선호했고, 왠지 자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만 현지들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위대한 항해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어디 세상에 흠결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말이다. 배가 거의 암초에 걸려 난파되다시피 한 우베아의 환대도 인상적이었다. 섬에 사는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이방인을 환대하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개화가 된 곳일수록 이방인들을 경계하고 박대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얼마 전, 프랑스 국민예능인이라는 앙트완 씨가 한국을 방문해서 식당에서 만난 이들과 다짜고짜 쏘주 마시는 장면을 보았는데 해설을 맡은 파비앙은 프랑스 사람들은 어딜 가더라도 현지 음식 먹기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 뮌헨에 갔을 적에 아침으로 미국식 팬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말하던 미국 친구 생각이 났다. 아마 그런 점에서 알랭 제르보는 현지인에게 합격점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자의식이 강하고 타인에게 도움 받는 걸 즐기지 않는 알랭 제르보는 귀향이 다가오면서 고국 프랑스에 도착하는 대로 유명세에 시달릴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도 혐오했는데, 항해하는 동안 외로운 늑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그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싶었다.

 

조금 삐딱선을 타 보자면, 계속해서 그의 돛배가 좌초되는 위기를 겪게 되었을 때 현지 예인선이나 원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세계 일주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뱃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타인에게 도움을 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 지도 모르겠다. 이미 유명인사인 알랭 제르보를 알아본 이들은 테니스 스타였던 그와 함 게임 경기를 하고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자신들이 해보지 못한 돛배 세계일주 경험을 들어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말이다. 좀 더 현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서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겨울 바다를 항해하는 건 천하의 21세기 오디세우스라도 버거웠던 모양이다. 알랭 제르보는 캅 베르인가 하는 곳에서 조용하게 겨울을 나서 날이 따뜻해지는 봄날에 물이 차는 돛배를 띄워 귀환에 나선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알랭 제르보가 그랬던 것처럼 떠남과귀환의 반복이 아니었을까. 아예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기다리던 문명세계로 돌아왔다.

 

내 평생에 다시 한 번 남태평양에 가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9년 전 누벨 칼레도니에 가본 것으로 만족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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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9 21: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시대에 요트를 타고 폴리네시아를 일주 했다는건 대단하네요~!! 언제쯤 해외에 다시 맘 편하게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ㅜㅜ 전 타히티 가봤었는데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붕붕툐툐 2021-08-29 22:36   좋아요 3 | URL
우와 타히티! 저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인데요~ <달과 6펜스> 읽고 진짜 꼭 가야지 했는데~!

레삭매냐 2021-08-30 08:35   좋아요 2 | URL
와우 무려 타히티 !!!

그 동네에 무슨 매력이 있는지 가본
사람들은 아예 다 접고 가려고 하
는가 봅니다.

새파랑 2021-08-30 09:06   좋아요 1 | URL
제가 해외를 많이 가본건 아니지만 타히티 완전 좋더라구요~!! 언젠가 은퇴해서 이민갈수 있다면 가서 살고 싶어요 😁

붕붕툐툐 2021-08-29 2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아버님도 책을 좋아하셨나봐요?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용이 되네요~ 알랭 제보르 그 시절에 대단하긴 하네요~ 누벨 칼레도니에 가보신 것도 부러울 따름입니다. 흐엉흐엉~~

레삭매냐 2021-08-30 08:36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오래 전에 청계천 헌책방
에 가서 헌책을 낑낑 매면서 사가지
고 온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택배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

2021-08-30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30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대해 마지않던 에밀 졸라의 <패주>가 드디어 도착했다.

두말할 것 없이 바로 읽기 시작했다.

 

사전에 개전의 원인이 되는 엠스 전보사건을 필두로 해서 보불전쟁의 경과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그랬다. 그래봐야 딱히 알맞은 정보들은 없었지만.

 

영어 자료들의 문제는 역시나 인명과 지명에 대한 부분들이었다. 불어나 독일어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좀 어려웠다.

 

어쨌든 프랑스 7군단 2사단 106연대 소속으로 전선에 투입된 장 마카르 하사와 그의 분대원 모리스 르바르쇠가 총 한 방 쏘아 보지 못하고, 기세등등하게 베를린으로 당장에라도 들이닥칠 것 같았던 분위기였지만 전선에서 그들은 프로이센군은 만나 보지도 못하고 패주하기 시작했다.

 

총참모장 폰 몰스케의 지휘 아래 실시된 군제개편을 필두로 해서 잘 훈련된 50만에 달하는 정예 프로이센군들은 라인강을 건너 프랑스군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바댕게(나폴레옹 3) 휘하의 25만에 달하는 프랑스군은 신속하게 라인강을 건너 프로이센의 남과 북을 둘로 나누고 프로이센군 주력을 격멸하는 그런 작전이었는데, 1870719일 선전 포고 이래 뚜렷한 성과 없이 허송세월하면서 개전 초기의 중요한 시간들을 다 날려 먹어 버렸다.

 

젊은 시절 바람둥이로 소문났던 노쇠한 바댕게는 방광염으로 말타기도 어려웠고, 철도로 신속하게 전선으로 이동한 프로이센군에 비해 프랑스군은 전방으로 전진했다가 아군의 패퇴 소식을 듣고 파리를 지키기 위해 후방으로 전진하는 등의 소모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스스로를 무식한 농사꾼 출신으로 자처했지만, 솔페리노 전투(1859624)에도 참가했던 베테랑이었던 장 마카르 하사(39)는 분대원들을 자극하면서 패주하는 가운데서도 동료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악역도 마다하지 않는다. 25KG에 달하는 배낭과 소총마저 내버리는 그야말로 당나라 군대 같은 프랑스군의 모습은 패주 그 자체였다.

 

우리의 주인공 장 마카르는 루공-마카르 시리즈 15<대지>(1887)의 주인공으로 전작에서 땅과 사랑하는 아내 프랑수아즈를 잃었다고 한다. 모리스 르바쇠르는 1869년 변호사가 된 엘리트 선수다. 같은 분대 안에서 이 둘의 조합은 저자 에밀 졸라의 조금은 빤한 셋업이 아닌가 싶다.

 

* 78[기갑 부대] : (표준국어대사전) 전차와 장갑차를 주력으로 삼아 기동력과 화력을 높인 지상 작전 부대

 

설마 18708월의 프랑스군에게 기갑 부대가 있었다는 말은 아니겠지. 아마 프랑스군이 운용하던 흉갑기병의 오역으로 보인다.


* 84쪽 : 제피로스 -> 제피르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베를린으로!를 외치며 기세등등하던 프랑스군의 모습은 오랜 적의 추격에 지친 패잔병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제대로 싸움이나 한 번 해보고 지친 것도 아니고, 제 풀에 지친 장과 모리스들의 모습이 몰락해가는 프랑스 제2제정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소설에서 에밀 졸라가 말했다시피 뿌리까지 썩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프랑스는 외교 천재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농간에 고립되었다. 우선 크림전쟁으로 척을 진 러시아가 프랑스에 구원을 손길을 내밀 리가 없었다. 4년 전, 보오전쟁으로 7주만에 프로이센에게 무릎을 꿇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패전국에서 치욕스러운 전승 퍼레이드를 벌이겠다는 빌헬름 카이저를 막아낸 비스마르크의 은혜를 잊지 않은 오스트리아 역시 중립을 고수했다. 프랑스의 가장 큰 우방이었던 영국 역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패전은 자연의 법칙처럼 숙명적이었다는 소설의 표현이 보불전쟁 초기 프랑스군이 겪고 있던 혼란상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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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8-25 16:4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윽. 기갑부대요? 보불전쟁 때 말입니까?
유기환 씨, 그렇잖아도 눈 세모로 뜨고 목로주점 쳐다보는 동업자들이 제법 있던데 좀 신중을 기하시지않고... 아쉽네요.
뭐 얘기하신대로 용기병, 총기병, 창기병 기타등등 정도 안 되겠습니까.

레삭매냐 2021-08-25 17:26   좋아요 4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독일군 부대에 대해서는 창기병
이라고 표현했더군요.

뭐 그래도 이렇게라도 번역이
나왔으니 얼매나 다행입니까...
퀄러티에 대해서는 -


coolcat329 2021-08-25 16: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기갑부대가 뭔지 잘 모르는 저는 아 그렇구나 하고 읽었을거에요. 저 시대엔 있을 수 없는거군요.
근데 정말 빠르세요 ㅋㅋㅋ

레삭매냐 2021-08-25 17:26   좋아요 4 | URL
오늘 받아서 허겁지겁 읽고
있습니다.

시간만 낙낙하다면 바로
다 읽을 기세랍니다.

새파랑 2021-08-25 17: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열독하시는 레삭매냐님 완전 대단~!! 정말 빠르시네요. 책의 두께가 좀 있네요 🙄

레삭매냐 2021-08-25 17:27   좋아요 4 | URL
뒷 부분의 해설 빼고
본문만 706쪽이네요 -

루공마카르 총서 중에서
가장 길다고 하던가 어쩐가.

얄라알라 2021-08-25 17: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째, ˝방광염으로 말타기가 어려웠고,˝ 요런 부분이 기억 창고에 쏙쏙 바로 들어오는지.

<패주> 지난 번 올려주신 사진에서는 두께감을 못느꼈는데 실물 영접하니, 와우 벽돌의 위엄이 느껴집니다! 레삭매냐님의 거침없는 진격 독서에 저는 리뷰 기웃거리며 얹혀가는 이 부끄러움!

레삭매냐 2021-08-25 17:28   좋아요 6 | URL
제가 나름 밀덕인지라 이런 부류의
전쟁 소설을 아주 좋아해서요...

아주 제 입맛에 쩍쩍 붙는 그런 소설
입니다. 요 책을 필두로 해서 에밀
졸라 샘의 다른 책들도 시도해 보렵
니다.

이미 <돈>과 <꿈> 그리고 <작품>
시작한 건 안 비밀이랍니다.

114쪽까지 달렸습니다.

청아 2021-08-25 1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지난번 예약판매길래 잘 참았었는데 풀렸군요! 레삭매냐님 리뷰 써주시는 것 읽고 다음달에 첫구매를 다짐~♡😆

레삭매냐 2021-08-26 07:09   좋아요 1 | URL
저도 예약판매 기다리다가
풀린 거 보고서는 바로 주문 겟~!

다같이 함께 읽어 BoA요.

붕붕툐툐 2021-08-25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거침 없이 읽어나가고 계시군요! 완독 후 페이퍼도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1-08-26 07:09   좋아요 2 | URL
어젯밤에 좀 읽어 보려고
했는데 퓌곤해서 그만 쿨~!
했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달립니다.

2021-08-25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6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