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날들 장자크 상페의 그림 이야기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윤정임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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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오랜 독서 경험에 의하면, 독서 슬럼프 탈출에는 그래픽 노블이 제격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도서관에 책 반납하러 들른 길에 그래픽 노블을 찾아 헤맸다. 그렇게 해서 먼저 만난 책이 다비드 칼리의 <인생은 지금>이었고 그 다음이 장자크 상페의 <아름다운 날들>이었다. 3번 타자는 줌파 라히리의 얇은 책 하나. 어쩌면 예전에 이미 읽었는 지도 모르겠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내가 읽겠다는데.

 

예전에는 6명 혹은 4명 정도 앉던 널따란 책상에 홀로 앉아 책장을 넘긴다. 하긴 요즘 누가 도서관을 찾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처럼 날이 좋은 데, 도서관에 앉아 있는 것도 괴롭지 않을까. 하늘이 너무 파랬다. 곳곳에 있는 밤나무에는 밤송이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이제 곧 밤을 따러 가야 하나.

 

상페 작가의 그래픽 노블에도 나의 주말 일상 같은 모습들이 오롯하게 스며 있었다. 저자의 신간 사인회가 열린다는 공지가 붙어 있지만, 커다란 서점에는 저자 혼자 덜렁 앉아 있다.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 서점과 책을 생산해내는 노동자의 고단한 모습이 왜 그렇게 애처러워 보이던지.

 

어느 글쓰는 이는 자신의 원고 위에 앉아 열심히 손을 비비고 있는 파리를 보며, 자신의 작품이 그 정도로 매력적인가 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아무리 착각은 자유라고 한다지만, 파리 녀석이 그 작가의 작품을 알아봐줄 정도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하긴 어떤 부인은 요즘 같은 세상에 차라리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는 게 낫다고 말했던가 어쨌던가.

 

상페의 그림들은 보통 한 컷이다. 이 작가는 한 컷 속에 수많은 사연들을 담기 위해 어떤 창작의 고통을 겪었을지 궁금해졌다. 아니 어쩌면 한큐에 쓱쓱싹싹 그려냈을 지도 모르지. 모든 게 그렇지 않은가 말이다. 무언가 짜낼라고 하면 한 줄도 쓰지 못하고, 또 아무 생각 없이 일상을 관찰하다가 아이디어가 샘솟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이 세상의 모든 종류의 크리에이터들에게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그의 글과 그림들을 소비하다 보니 팬데믹 이전의 시절들이 떠올랐다. 그 시절에는 참으로 모든 게 자유로웠지. 모여서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둘러 앉아 시시콜콜한 수다를 떠는 게 어찌나 재밌었던지. 그게 내가 삶에서 유일하게 누리던 낙이기도 했었지. 누군가를 만나는 것에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작은 삶의 규제가 있었을 뿐. 하지만 지금은 모든 게 달라져 버렸다. 호구를 해결하기 위한 직장생활 외에 모든 행위들은 팬데믹의 전파를 막기 위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부디 이 엄혹한 시절이 빨리 지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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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4 20:2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 상페 라니 대단하군요~!! 저도 그래픽 노블 읽어봐야 겠군요. 레삭매냐님은 독서슬럼프가 절대 없으실거 같은데 😆

레삭매냐 2021-09-05 08:31   좋아요 3 | URL
그럴 리가요. 저도 평범한 닝겡
이랍니다 ㅋㅋ
그러니 책 읽기가 귀찮고 뭐
그럴 때도 있는 법이지요.

참 <패주> 마저 다 읽어야 하
는데 그것 참... 귀차니즘으로.

미미 2021-09-04 20:3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번에 그레픽 노블 보고나서 극뽁~!했습니당ㅎㅎ
레삭매냐님도 그럴때가 있으시다니 이것참 인간적으로 느껴지네요😳

레삭매냐 2021-09-05 08:32   좋아요 3 | URL
요즘 책보다 더 재밌는
주식에 빠져서리 그만...

이거이 성과와 실적이
바로 바로 튀나오다 보
니 책하고는 또 다른
재미를 ㅋㅋㅋ

주린이가 다 그렇죠 뭐.

붕붕툐툐 2021-09-04 22:1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독서슬럼프 탈출법을 알려주시다니~ 레삭매냐님은 역시 배우신 분~👍
팬데믹 이전의 삶에서 독서모임을 가장 그리워하시는 것도 뭔가 있어보여...흠...ㅋㅋㅋㅋㅋㅋㅋㅋ

레삭매냐 2021-09-05 08:33   좋아요 3 | URL
그 시절이 언제였나 싶을
정도랍니다.

한 달에 한 번 동지들과
모여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술도 푸면서 수다떠
는 낙에 살았었는데 이놈
의 코로나가 모든 걸 망쳐
놓았습니다.

독서슬럼프 탈출에는 그래
픽 노블과 얇다란 책들이
아주 명약이더군요 ㅋㅋㅋ

막시무스 2021-09-05 10: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래픽노블은 한번도 본 적없는데 도전해보고 싶어져요!ㅎ 즐건 휴일되십시요!

레삭매냐 2021-09-05 11:35   좋아요 1 | URL
휴일 시간 한 번 잘가고 있네요.

날도 선선하니, 이런 날엔 밤을
따러 가야 하는데 말이죠 **

그래픽 노블, 도전해 보세요.
좋습니다.

mini74 2021-09-05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페. 얼굴 빨개지는 아이 정말 좋아해요. 제가 얼굴 빨개지는 아이였거든요. ㅎㅎ

레삭매냐 2021-09-06 09:50   좋아요 1 | URL
저도 얼굴 빨개지는 아이, 정말 오래
전에 만난 책이었는데 그 책으로 상
페 샘의 팬이 되어 버린 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