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해 마지않던 에밀 졸라의 <패주>가 드디어 도착했다.

두말할 것 없이 바로 읽기 시작했다.

 

사전에 개전의 원인이 되는 엠스 전보사건을 필두로 해서 보불전쟁의 경과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그랬다. 그래봐야 딱히 알맞은 정보들은 없었지만.

 

영어 자료들의 문제는 역시나 인명과 지명에 대한 부분들이었다. 불어나 독일어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좀 어려웠다.

 

어쨌든 프랑스 7군단 2사단 106연대 소속으로 전선에 투입된 장 마카르 하사와 그의 분대원 모리스 르바르쇠가 총 한 방 쏘아 보지 못하고, 기세등등하게 베를린으로 당장에라도 들이닥칠 것 같았던 분위기였지만 전선에서 그들은 프로이센군은 만나 보지도 못하고 패주하기 시작했다.

 

총참모장 폰 몰스케의 지휘 아래 실시된 군제개편을 필두로 해서 잘 훈련된 50만에 달하는 정예 프로이센군들은 라인강을 건너 프랑스군을 요격하기 시작했다. 바댕게(나폴레옹 3) 휘하의 25만에 달하는 프랑스군은 신속하게 라인강을 건너 프로이센의 남과 북을 둘로 나누고 프로이센군 주력을 격멸하는 그런 작전이었는데, 1870719일 선전 포고 이래 뚜렷한 성과 없이 허송세월하면서 개전 초기의 중요한 시간들을 다 날려 먹어 버렸다.

 

젊은 시절 바람둥이로 소문났던 노쇠한 바댕게는 방광염으로 말타기도 어려웠고, 철도로 신속하게 전선으로 이동한 프로이센군에 비해 프랑스군은 전방으로 전진했다가 아군의 패퇴 소식을 듣고 파리를 지키기 위해 후방으로 전진하는 등의 소모적인 행동을 일삼았다. 스스로를 무식한 농사꾼 출신으로 자처했지만, 솔페리노 전투(1859624)에도 참가했던 베테랑이었던 장 마카르 하사(39)는 분대원들을 자극하면서 패주하는 가운데서도 동료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악역도 마다하지 않는다. 25KG에 달하는 배낭과 소총마저 내버리는 그야말로 당나라 군대 같은 프랑스군의 모습은 패주 그 자체였다.

 

우리의 주인공 장 마카르는 루공-마카르 시리즈 15<대지>(1887)의 주인공으로 전작에서 땅과 사랑하는 아내 프랑수아즈를 잃었다고 한다. 모리스 르바쇠르는 1869년 변호사가 된 엘리트 선수다. 같은 분대 안에서 이 둘의 조합은 저자 에밀 졸라의 조금은 빤한 셋업이 아닌가 싶다.

 

* 78[기갑 부대] : (표준국어대사전) 전차와 장갑차를 주력으로 삼아 기동력과 화력을 높인 지상 작전 부대

 

설마 18708월의 프랑스군에게 기갑 부대가 있었다는 말은 아니겠지. 아마 프랑스군이 운용하던 흉갑기병의 오역으로 보인다.


* 84쪽 : 제피로스 -> 제피르

 

전쟁 초기만 하더라도, 베를린으로!를 외치며 기세등등하던 프랑스군의 모습은 오랜 적의 추격에 지친 패잔병의 모습 그 자체였다. 제대로 싸움이나 한 번 해보고 지친 것도 아니고, 제 풀에 지친 장과 모리스들의 모습이 몰락해가는 프랑스 제2제정의 그것을 연상시켰다. 소설에서 에밀 졸라가 말했다시피 뿌리까지 썩었다고 할 정도니 말이다.


프랑스는 외교 천재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농간에 고립되었다. 우선 크림전쟁으로 척을 진 러시아가 프랑스에 구원을 손길을 내밀 리가 없었다. 4년 전, 보오전쟁으로 7주만에 프로이센에게 무릎을 꿇은 오스트리아 수도 빈에서 패전국에서 치욕스러운 전승 퍼레이드를 벌이겠다는 빌헬름 카이저를 막아낸 비스마르크의 은혜를 잊지 않은 오스트리아 역시 중립을 고수했다. 프랑스의 가장 큰 우방이었던 영국 역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패전은 자연의 법칙처럼 숙명적이었다는 소설의 표현이 보불전쟁 초기 프랑스군이 겪고 있던 혼란상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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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8-25 16:49   좋아요 7 | 댓글달기 | URL
윽. 기갑부대요? 보불전쟁 때 말입니까?
유기환 씨, 그렇잖아도 눈 세모로 뜨고 목로주점 쳐다보는 동업자들이 제법 있던데 좀 신중을 기하시지않고... 아쉽네요.
뭐 얘기하신대로 용기병, 총기병, 창기병 기타등등 정도 안 되겠습니까.

레삭매냐 2021-08-25 17:26   좋아요 4 | URL
그러게나 말입니다.

독일군 부대에 대해서는 창기병
이라고 표현했더군요.

뭐 그래도 이렇게라도 번역이
나왔으니 얼매나 다행입니까...
퀄러티에 대해서는 -


coolcat329 2021-08-25 16: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기갑부대가 뭔지 잘 모르는 저는 아 그렇구나 하고 읽었을거에요. 저 시대엔 있을 수 없는거군요.
근데 정말 빠르세요 ㅋㅋㅋ

레삭매냐 2021-08-25 17:26   좋아요 4 | URL
오늘 받아서 허겁지겁 읽고
있습니다.

시간만 낙낙하다면 바로
다 읽을 기세랍니다.

새파랑 2021-08-25 17:0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열독하시는 레삭매냐님 완전 대단~!! 정말 빠르시네요. 책의 두께가 좀 있네요 🙄

레삭매냐 2021-08-25 17:27   좋아요 4 | URL
뒷 부분의 해설 빼고
본문만 706쪽이네요 -

루공마카르 총서 중에서
가장 길다고 하던가 어쩐가.

얄라알라 2021-08-25 17:15   좋아요 6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째, ˝방광염으로 말타기가 어려웠고,˝ 요런 부분이 기억 창고에 쏙쏙 바로 들어오는지.

<패주> 지난 번 올려주신 사진에서는 두께감을 못느꼈는데 실물 영접하니, 와우 벽돌의 위엄이 느껴집니다! 레삭매냐님의 거침없는 진격 독서에 저는 리뷰 기웃거리며 얹혀가는 이 부끄러움!

레삭매냐 2021-08-25 17:28   좋아요 6 | URL
제가 나름 밀덕인지라 이런 부류의
전쟁 소설을 아주 좋아해서요...

아주 제 입맛에 쩍쩍 붙는 그런 소설
입니다. 요 책을 필두로 해서 에밀
졸라 샘의 다른 책들도 시도해 보렵
니다.

이미 <돈>과 <꿈> 그리고 <작품>
시작한 건 안 비밀이랍니다.

114쪽까지 달렸습니다.

청아 2021-08-25 18: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지난번 예약판매길래 잘 참았었는데 풀렸군요! 레삭매냐님 리뷰 써주시는 것 읽고 다음달에 첫구매를 다짐~♡😆

레삭매냐 2021-08-26 07:09   좋아요 1 | URL
저도 예약판매 기다리다가
풀린 거 보고서는 바로 주문 겟~!

다같이 함께 읽어 BoA요.

붕붕툐툐 2021-08-25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거침 없이 읽어나가고 계시군요! 완독 후 페이퍼도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1-08-26 07:09   좋아요 2 | URL
어젯밤에 좀 읽어 보려고
했는데 퓌곤해서 그만 쿨~!
했습니다.

오늘부터 다시 달립니다.

2021-08-25 2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26 07:1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