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
알랭 제르보 지음, 정진국 옮김 / 파람북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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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아버지가 애장하시던 김찬삼 선생의 한자투성이 세계일주 여행기를 보면서(심지어 종서였다!) 세계여행을 꿈을 키웠다. 그 시절만 하더라도, 해외여행은 지금처럼 일상이 아니라 특권이었다. 고물 오토바이로 세계 곳곳을 누비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콘티키>의 저자(,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의 태평양 항해를 보고서 나도 언젠가 그곳에 가보리라고 다짐했었지. 그리고 9년 전에 누벨 칼레도니에 가면서 꿈의 한 조각을 이루기도 했었다.

 

지금으로부터 백여년 전에 프랑스 사람 알랭 제르보는 피레크레(굴뚝새 혹은 불타는 봉우리)라는 이름의 범선을 타고 세계 일주에 나섰다. 사실 알랭 제르보의 이름은 이번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됐다. 지금처럼 통신과 기술이 발달하여 수심을 파악하고 암초를 피하기 위한 소나나 GPS 같은 장비는 물론이고, 위성 통신 장비 하나 없이 도대체 무슨 깡으로 그 넓고 험한 대양 항해에 나섰는지 나는 그게 궁금했다.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에서는 대서양과 파나마 지협을 건너는 일정은 빠지고 오롯하게 폴리네시아와 멜라네시아 등의 태평양과 인도양으나 프랑스 르아브르로 귀환하는 일정을 다루고 있다. 뒤쪽에 달린 해설에서 태평양 도서지역에 사는 프랑스 사람들의 판단처럼 나도 왠지 저자가 건방지고 무례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원주민들을 성가시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들었다. 아무래도 당시 시대를 고려해 볼 때, 사라져 가는 폴리네시아 각지의 문화와 풍습들을 아쉬워 하긴 했지만 서구인의 시선에서 본 오리엔탈리즘의 정취가 물씬 풍겼다고나 할까.

 

알랭 제르보는 이미 전설이 된 그의 항해 덕분에 들르는 곳에서마다 유명인사 대접을 받고, 각지의 유력인사들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하지만 이 고집쟁이 21세기 오디세우스는 육지의 평안한 잠자리 대신 자신의 피레크레의 흔들리는 배 안에서 자는 걸 더 선호했고, 왠지 자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만 현지들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위대한 항해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어디 세상에 흠결이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 말이다. 배가 거의 암초에 걸려 난파되다시피 한 우베아의 환대도 인상적이었다. 섬에 사는 폴리네시아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이방인을 환대하는 풍습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개화가 된 곳일수록 이방인들을 경계하고 박대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얼마 전, 프랑스 국민예능인이라는 앙트완 씨가 한국을 방문해서 식당에서 만난 이들과 다짜고짜 쏘주 마시는 장면을 보았는데 해설을 맡은 파비앙은 프랑스 사람들은 어딜 가더라도 현지 음식 먹기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예전에 뮌헨에 갔을 적에 아침으로 미국식 팬케이크를 먹고 싶다고 말하던 미국 친구 생각이 났다. 아마 그런 점에서 알랭 제르보는 현지인에게 합격점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자의식이 강하고 타인에게 도움 받는 걸 즐기지 않는 알랭 제르보는 귀향이 다가오면서 고국 프랑스에 도착하는 대로 유명세에 시달릴 걱정이 앞선다. 그리고 그는 인터뷰도 혐오했는데, 항해하는 동안 외로운 늑대 같은 모습을 보여준 그로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싶었다.

 

조금 삐딱선을 타 보자면, 계속해서 그의 돛배가 좌초되는 위기를 겪게 되었을 때 현지 예인선이나 원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의 세계 일주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뱃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타인에게 도움을 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 지도 모르겠다. 이미 유명인사인 알랭 제르보를 알아본 이들은 테니스 스타였던 그와 함 게임 경기를 하고 그를 저녁식사에 초대해서 자신들이 해보지 못한 돛배 세계일주 경험을 들어 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 아닌가 말이다. 좀 더 현지 사람들과 적극적으로 어울리지 못하는 그의 모습에서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겨울 바다를 항해하는 건 천하의 21세기 오디세우스라도 버거웠던 모양이다. 알랭 제르보는 캅 베르인가 하는 곳에서 조용하게 겨울을 나서 날이 따뜻해지는 봄날에 물이 차는 돛배를 띄워 귀환에 나선다. 어쩌면 우리네 인생은 알랭 제르보가 그랬던 것처럼 떠남과귀환의 반복이 아니었을까. 아예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친구들과 지인들이 기다리던 문명세계로 돌아왔다.

 

내 평생에 다시 한 번 남태평양에 가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9년 전 누벨 칼레도니에 가본 것으로 만족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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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8-29 21: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시대에 요트를 타고 폴리네시아를 일주 했다는건 대단하네요~!! 언제쯤 해외에 다시 맘 편하게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ㅜㅜ 전 타히티 가봤었는데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붕붕툐툐 2021-08-29 22:36   좋아요 3 | URL
우와 타히티! 저 너무 가보고 싶은 곳인데요~ <달과 6펜스> 읽고 진짜 꼭 가야지 했는데~!

레삭매냐 2021-08-30 08:35   좋아요 2 | URL
와우 무려 타히티 !!!

그 동네에 무슨 매력이 있는지 가본
사람들은 아예 다 접고 가려고 하
는가 봅니다.

새파랑 2021-08-30 09:06   좋아요 1 | URL
제가 해외를 많이 가본건 아니지만 타히티 완전 좋더라구요~!! 언젠가 은퇴해서 이민갈수 있다면 가서 살고 싶어요 😁

붕붕툐툐 2021-08-29 22: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레삭메냐님 아버님도 책을 좋아하셨나봐요? 역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여기서도 통용이 되네요~ 알랭 제보르 그 시절에 대단하긴 하네요~ 누벨 칼레도니에 가보신 것도 부러울 따름입니다. 흐엉흐엉~~

레삭매냐 2021-08-30 08:36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오래 전에 청계천 헌책방
에 가서 헌책을 낑낑 매면서 사가지
고 온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택배로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

2021-08-30 0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8-30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