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는 ‘체면 문제’에만 열중
▼ 이상주의에 치우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이는 유럽연합(EU)에서도 상당히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봅니다만.
“본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접한 나라끼리는 사이가 안 좋은 법입니다. 유럽은 무려 1000년 동안 서로 전쟁을 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쳤지요. 바로 그런 것에 대한 반성으로 ‘최소한 전쟁은 하지 말자’며 EU를 만든 겁니다. 과거 유럽 국가의 국경 근처로 가면 길이 좁아졌지만 EU 출범 이후는 길의 폭이 똑같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시아는 섬 이름이니 바다 이름, 신사참배 같은 체면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그는 아시아에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유럽연합 구성 국가들은 국가 규모나 인구, 경제규모 등이 대략 비슷합니다. 가까운 공간에 붙어 있고 자유, 평등, 인권, 민주주의라는 유럽 문명을 공유하고 있지요. 반면 아시아는 국가 크기도 인구도 제각각이고 섬과 바다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유럽처럼 체험을 통해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서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절감한 경험도, 공유하는 가치관도 거의 없죠.”
▼ 한일간 역사 문제는 전후(戰後) 60년 이상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국가별로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fact)에 대해서는 국가의 처지가 달라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좋은 예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지난해 개봉한 이오지마(硫黃島) 전투를 다룬 두 영화입니다. 적국으로서 각기 이 전투에 참여한 미국과 일본의 군인들 이야기를 두 편의 영화로 엮어냈습니다. 유럽 역사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합니다. 쉬운 일이지만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알아보는 게 먼저입니다. 역사 문제에 관해서는 지난 60년간 한국과 중국은 일본이 변명만 한다고 반발하고, 일본은 질려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제 젊은이들은 ‘대체 지난 60년간 뭘 했길래 아직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느냐’며 반발하지요. 이런 경우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상책이라고 봅니다.”
일본, 외국과 사귀는 데 서툴러
▼ 일제에 점령당한 35년이란 상처가 한국인에겐 매우 큽니다.
“이해합니다만, 한국이 역사 문제를 말할 때 지금의 일본인은 전쟁을 이끌었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일본이 전쟁에 진 것은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입니다. 누군가 제게 전쟁 책임을 묻는다면 저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살아 있는 일본인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 아닐까요.”
▼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만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일본은 외국과 사귀는 데 서툽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니까요. 민주니 자유니 하는 추상적인 것에 약한 대신 물건은 잘 만듭니다. 이런 일본이 ‘대국’ 운운하면 난 웃어버립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 정도 되는 나라죠. 서로 힘을 합해야 합니다.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서도 그렇습니다. 중국이 스스로 ‘대국’이라 하는 것도 저는 우습다고 봅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는 중국에서 오는 조직적 불법 이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타국에 폐를 끼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대국’도 있는지요? 중국이 패권을 장악하면 어떻게 될지, 역사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 중국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 듯합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중화(中華)사상을 견지했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란 거죠. 일종의 ‘대국병(病)’입니다. DNA에 각인된 민족주의에 가깝지요. 하지만 과거를 돌아봅시다. 기원전 2~3세기, 로마와 중국은 기술수준이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한 일은 서로 달랐습니다. 로마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며 속주국가에 도로를 닦고 수도를 공급하며 교류를 활성화한 반면 중국은 이만족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한쪽은 ‘열린 제국’이었고 한쪽은 ‘닫힌 제국’이었던 거죠.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고 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