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공부’는 잘 못해”
▼ ‘현대의 로마제국’은 역시 미국입니까.
“군사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은 미국이죠. 로마 제국의 역할에 가까운 것을 기대하지만 미국은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제국’이란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요. 미국이 자국만을 생각하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 국제사회에 꼭 리더가 있어야 할까요.
“사람들은 흔히 이상적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유엔 같은 곳에 모여 토론을 거듭하면 세계가 좋아질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요. 하지만 그건 매우 순진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조직이란 항상 강력한 리더가 있어야 움직입니다. 기관차를 예로 들면 차량만 늘어놓았다고 움직일 수는 없어요. 기관사가 있어야죠.”
그의 지도자론은 ‘최고지도자는 항상 유일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어록에 보면 ‘역량이 뛰어난 지도자 둘을 보내는 것보다 평범한 지도자 한 사람을 보내는 것이 현장 제압에 도움이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국제사회의 리더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시오노씨는 일본에서는 과거 명문으로 이름높던 도립 히비야(日比谷)고교 출신입니다. 일본의 왕가나 귀족 출신들이 진학하는 가쿠슈인(學習院)대학에 진학한 것을 두고 대단히 보수적인 인물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저는 모범생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시는 졸업생의 3분의 2가 도쿄대에 갔습니다. 나머지는 ‘미야코오치’(都落ち·낙향이란 뜻으로 관청에서는 좌천을 뜻함)라 불렀지요. 저도 ‘미야코오치’입니다. 당시 교토(京都)대로 진학해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동창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進)도 ‘미야코오치’였습니다. 훗날 그와도 얘기했지만 당시 공부를 잘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첫째 기억력이 좋을 것, 둘째 교사가 말하는 내용에 의심을 품지 않을 것. 그러나 저나 도네가와나 교사가 뭔가를 말하면 곧 의심을 품었죠. 그러면 더 이상 교사가 말하는 것이 귀에 들어오질 않게 되지요. 저는 기성 틀로 평가되는 제도권 시험에는 약했습니다. 반드시 떨어지는 겁니다. 이탈리아 유학 뒤에 재미삼아 본 ‘아사히신문’ 입사시험에도 떨어졌지요.”
▼ 노벨상 수상자가 동창이군요.
“제 동창은 대부분 관료, 학자, 변호사, 의사 등 일본을 이끄는 엘리트가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전 수재형 인간을 믿지 않습니다.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빠뜨린 것도 이들이지요. 그들이 성장해 사회에서 기반을 굳혀간 1960~80년대까지는 일본이 뭘 해도 성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공체험만 한 사람들은 머리가 굳어버립니다. 곤경에 처하면 헤쳐나갈 방도를 못 찾지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세계 정세가 급변할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한 거죠. 몇 년 전 졸업 40년 만에 동창회를 열었는데, 한 사람 빼고는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대장성 관료였는데, 자신이 해온 것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말하면 조직을 욕보이게 되니 침묵해도 사석에서 말하는 거죠.”

‘동물의 왕국’을 보라
▼ 요즘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교육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습니다.
“교육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름이 붙은 위원회 등에서 자문해 올 때마다 저는 ‘교육에 대해 배우려거든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를 보라’고 말합니다. 어떤 동물이건 부모는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는 성심성의껏 돌보고 키워주지만, 목표는 자식의 홀로서기입니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부모건 학교건 빨리 잘 키워서 떠나보낼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연인이나 부부, 기업은 어떻게 잘 잡아놓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겠지만…. 요즘은 이런 각자의 역할을 알지 못한 채 마구 헷갈리는 듯합니다. 학교나 부모가 학생을 잡아놓으려 하고 기업이 인재를 떠나보내려 한다면 기본이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한국에도 유럽이나 일본처럼 부모 밑에 기생하는 젊은이가 많냐고 물어왔다. 취업난으로 과거보다 많아지고 있다고 대답하니 그는 서른 살짜리 아들을 얼마 전 독립시켰다고 했다. 스스로 벌어서 생활할 만큼의 능력이 안 되지만 약간의 지원을 전제로 한 자신의 결단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 걸어서 30분 거리지만 ‘따로 산다’고 강조한다. 어른들은 뭔가를 시작할 때 기반을 확실하게 닦는 게 중요하지만 젊은이의 경우는 일단 뛰어들어 움직이는 사이에 기반이 닦이는 것 같다고도 했다. 영화 관련 직업을 가진 아들은 독립한 뒤 오히려 수입이 늘고 스스로 생활을 책임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교육 논의에서 빠진 것이 부모의 가정교육입니다. 한참 전 일이지만 모 총리가 일본에 와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대답은 ‘이탈리아에 있는 아들이 고교생이라 혼자 둘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아들을 세계 어디에 가도 살 수 있게 키우겠다는 다짐을 늘 염두에 뒀습니다. 혼혈이니까 더욱 그랬지요. 방학 때면 한 달씩 영국에 보내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습니다. 대학에 갈 때 미국 대학으로 갈지, 유럽 대학으로 갈지 스스로 선택하게 했더니 본인이 유럽을 택했습니다. 독립의 조건은 매주 한 번은 반드시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약간의 응석도 허락합니다. 세탁물은 가져와도 좋다고. 그러고는 다림질까지 싹 해서 줍니다. 아이들에게 최초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애정이고, 자식은 어머니가 맡아보는 밥상머리에서도 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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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는 ‘체면 문제’에만 열중
▼ 이상주의에 치우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 공동체 논의의 불씨가 아직 살아 있습니다. 이는 유럽연합(EU)에서도 상당히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봅니다만.
“본래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접한 나라끼리는 사이가 안 좋은 법입니다. 유럽은 무려 1000년 동안 서로 전쟁을 했습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쳤지요. 바로 그런 것에 대한 반성으로 ‘최소한 전쟁은 하지 말자’며 EU를 만든 겁니다. 과거 유럽 국가의 국경 근처로 가면 길이 좁아졌지만 EU 출범 이후는 길의 폭이 똑같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시아는 섬 이름이니 바다 이름, 신사참배 같은 체면 문제로 옥신각신하고 있으니 안타깝습니다.”
그는 아시아에 공동체가 형성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유럽연합 구성 국가들은 국가 규모나 인구, 경제규모 등이 대략 비슷합니다. 가까운 공간에 붙어 있고 자유, 평등, 인권, 민주주의라는 유럽 문명을 공유하고 있지요. 반면 아시아는 국가 크기도 인구도 제각각이고 섬과 바다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유럽처럼 체험을 통해 좀 마음에 안 들더라도 서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고 절감한 경험도, 공유하는 가치관도 거의 없죠.”
▼ 한일간 역사 문제는 전후(戰後) 60년 이상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역사에 대한 해석은 국가별로 제각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fact)에 대해서는 국가의 처지가 달라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좋은 예가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지난해 개봉한 이오지마(硫黃島) 전투를 다룬 두 영화입니다. 적국으로서 각기 이 전투에 참여한 미국과 일본의 군인들 이야기를 두 편의 영화로 엮어냈습니다. 유럽 역사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콜럼버스의 달걀’이라고 합니다. 쉬운 일이지만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는 뜻이지요.
위안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역사적 사실을 정확히 알아보는 게 먼저입니다. 역사 문제에 관해서는 지난 60년간 한국과 중국은 일본이 변명만 한다고 반발하고, 일본은 질려서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제 젊은이들은 ‘대체 지난 60년간 뭘 했길래 아직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느냐’며 반발하지요. 이런 경우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는 게 상책이라고 봅니다.”

일본, 외국과 사귀는 데 서툴러
▼ 일제에 점령당한 35년이란 상처가 한국인에겐 매우 큽니다.
“이해합니다만, 한국이 역사 문제를 말할 때 지금의 일본인은 전쟁을 이끌었던 당사자가 아니라는 것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일본이 전쟁에 진 것은 제가 초등학생이던 시절입니다. 누군가 제게 전쟁 책임을 묻는다면 저도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내가 뭘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살아 있는 일본인 대부분이 비슷한 처지 아닐까요.”
▼ 한국과 일본은 어떻게 만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일본은 외국과 사귀는 데 서툽니다. 말도 제대로 못하니까요. 민주니 자유니 하는 추상적인 것에 약한 대신 물건은 잘 만듭니다. 이런 일본이 ‘대국’ 운운하면 난 웃어버립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중’ 정도 되는 나라죠. 서로 힘을 합해야 합니다. 중국의 부상에 대비해서도 그렇습니다. 중국이 스스로 ‘대국’이라 하는 것도 저는 우습다고 봅니다. 지금도 이탈리아에서는 중국에서 오는 조직적 불법 이민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타국에 폐를 끼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대국’도 있는지요? 중국이 패권을 장악하면 어떻게 될지, 역사를 잘 들여다봐야 합니다.”
▼ 중국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지 않는 듯합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중화(中華)사상을 견지했습니다. 자신들이 세상의 중심이란 거죠. 일종의 ‘대국병(病)’입니다. DNA에 각인된 민족주의에 가깝지요. 하지만 과거를 돌아봅시다. 기원전 2~3세기, 로마와 중국은 기술수준이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한 일은 서로 달랐습니다. 로마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며 속주국가에 도로를 닦고 수도를 공급하며 교류를 활성화한 반면 중국은 이만족으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만리장성을 쌓았습니다. 한쪽은 ‘열린 제국’이었고 한쪽은 ‘닫힌 제국’이었던 거죠.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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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동쪽 바다’는 곤란하죠”
▼ 한국에도 ‘로마인 이야기’의 독자층이 두껍습니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층이 애독하는 것으로 압니다.
“‘로마인 이야기’ 같은 어려운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은 한국의 독자 수준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니까요. 그만큼 지적 수준이 높은 독자가 많다는 얘기라고 봅니다. 저는 ‘로마인 이야기’를 쓰는 15년간 다른 일은 일절 거부하고 ‘로마인 이야기’의 인세만으로 살았습니다. 일본에서 많은 작가가 하듯 문예지 등에 먼저 연재하고 그걸 모아 책으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온전히 독자가 내준 인세가 저의 15년 작업의 기반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책을 사서 읽어준 독자는 지난 15년간 내 작업에 참여하신 셈입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지금까지 한국에 두 번 가보셨는데, 시오노씨가 보는 한국은 어떻습니까.
“한국에 가면 향수 같은 게 느껴집니다. 옛날 일본과 비슷하기도 하고. 그보다 더 실감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바다가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바다가 지켜줘서 외부로부터 침략이 불가능했습니다. 또 도쿠가와(德川) 막부 300여 년 동안 국내도 평화로웠습니다. 그 사이 장기적인 시야에서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하고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지요. 반면 한국은 조선 400년간 자체의 영속적인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대응만 해왔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바로 곁에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는 중국이 있어 항시 의식하며 살아야 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얘기가 잠시 곁으로 새나갔다. 그는 “일본해를 한국에서는 일본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데 맞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동해’라고 하며, 바다의 호칭을 놓고 양국 사이 갈등이 있다고 답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동해, 즉 ‘동쪽 바다’라니 곤란한 얘기네요. 일본에서 보자면 바다가 서쪽에 있는데도 동해라고 부르란 말인가요? 본래 인접한 지명은 국가마다 자기 식으로 부르면 되는 거 아닐까요. 가령 지중해(the Mediterranean Sea)는 로마가 유럽 남부와 아프리카 북부를 포괄하는 제국이던 시절, 그러니까 로마에 둘러싸인 바다라는 뜻으로 불리던 지명이지만 지금도 지중해입니다. 플라톤을 미국에서는 플루토라 부르고 소크라테스를 이탈리아에서는 소크라테라고 부르지만 다 알아듣습니다. 서로 편한 대로 부르면 되는 것 아닌지요.”
그는 한국과 일본 역사의 특수하고도 복잡미묘한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그와 인터뷰하는 중간중간에 이런 식의 질문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배경설명을 해줘야 했다.

한국, 지속가능한 시스템 갖춰야
▼ 한국은 중국이란 ‘강대국’에 인접해 있지만 5000년간 독자적으로 국가를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나 100년 전에도, 지금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는 신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샌드위치 국가’라는 유행어도 있습니다.
“한국은 요리를 봐도 그렇고, 모든 점에서 ‘낭비(쓸데없는 노력)’가 없는 것이 문제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령 일본 요리를 보면 쓸데없는 데 공들인 것이 많습니다. 뭐 하러 이런 데 이렇게 재료와 노력을 들이나 하는 생각을 하며 먹지요. 하지만 실은 새로운 것, 창조적인 것은 이런 쓸데없는 노력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는 일에도 10년 앞을 생각하며 투자하고 노력을 기울입니다. 거기서 훗날 효자 노릇을 하는 것들이 생겨나지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잉여적 요소’가 잘 안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여자 피겨 스케이트 시합을 예로 들었다. 마침 그를 만나기 이틀 전인 3월24일, 도쿄에서 세계피겨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일본의 안도 미키가 1위, 아사다 마오가 2위, 한국의 김연아가 3위를 한 대회다. 대회 첫날 김연아는 사상 최고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손에 쥘 것으로 보였지만 둘째 날 경기에서 실수를 거듭, 3위에 머물렀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1, 2위를 한 일본 선수들보다 김연아가 한 수 위라고 봅니다. 우아(elegant)하기 때문이죠.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우아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도 아니지요. 다만 김연아가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은 1등은 아니어도 비슷한 수준에 있는 선수가 5명쯤 있어서 한 사람이 망가지면 다른 사람이 도전합니다. 한국엔 누가 있습니까. 무언가에서 한 번 승리하는 것은 쉽지만 그걸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시스템을 마련해야 지요. 영화건 경제건 모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 한국이 워낙 여유없이 살아온 탓인 듯합니다. 당장 지금도 북한 핵 문제 등 동아시아 정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가끔 한국(북한을 포함해)은 너무 원리주의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거다’ 하면 그것밖에 모르고, 유연성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은 이탈리아인보다는 프랑스인과 닮았습니다. 요즘 프랑스는 전략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미국에 반대하면 선(善)’인 것처럼 움직이고 있지요. 결과적으로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강박관념이랄까 원리주의는 사실 강자의 위협에서 오는 측면이 있습니다. 스스로 약하다고 느끼고 역사의 풍파에 시달릴수록 어떤 크고도 기댈 만한 원리에 집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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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의 보좌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라는 비서관의 헌신적인 보좌를 받은 반면, 아베 총리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보좌하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치의 세계란 본래 이해관계의 이합집산이라고 하지만 역시 리더에게는 ‘인간의 매력’이란 게 작용합니다. 성실함도 그중 하나이지만 타인에게 자극을 줘야 합니다. 또 하나, 요즘은 TV정치의 시대라고 하지요. 일본의 정치가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TV에 출연해 말할 때는 브라운관 저편의 단 한 사람에게 말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수백 수천만이 보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하면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뜻도 전달이 안 됩니다. 오직 한 사람, ‘바로 당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수천만명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고이즈미 총리처럼 ‘우정 민영화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식의 발언을 할 수 있을까요?”
‘로마인 이야기’는 현대 문명에 대한 시사로 가득 차 있다. 시오노씨는 ‘로마인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를 말하면서 200여 년 동안이나 넓은 지역에 걸쳐 팍스 로마나가 이뤄진 이유를 알고 싶었다고 한 바 있다. 또 그것은 로마가 왜 쇠망했는지 알고 싶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등 많은 로마사 관련 저술이 있는데 굳이 로마사를 쓴 이유는 동양인의 눈으로 본 로마사를 써보기 싶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지금까지 로마사는 대개 기독교도가 썼습니다. 기독교도의 시각에서 로마사를 쓰면 다신교(多神敎) 시절은 야만의 시절이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는 문명의 세계가 됩니다. 기독교도가 쓴 로마사가 로마의 패망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왜 로마가 융성했는지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유와 관용, 다신교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일본이나 아시아가 대부분 그렇듯 일신교(一神敎)가 아닙니다. 다신교인 사람이 바라본 로마사를 정리하고 싶었다고 할 수 있지요.”
▼ 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가 역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로마의 특징은 자유와 관용입니다.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존중하는 태도가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라는 문명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그건 다신교로부터 나왔지요. 로마인은 정복당한 민족의 신조차 모두 자신들의 신으로 모셔 로마의 신은 30만에 달했습니다. 이는 자신과 다른 것에 관용적이고 수많은 융통성이 생겨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일신교는 나의 종교만이 옳고 남의 종교는 그르다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지요. 로마가 멸망한 것도 기독교(일신교)를 받아들여 거기에 용해됐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종언(終焉)은 지평선 저 너머에 이슬람이 다가오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두 개의 거대한 일신교가 부딪치면서 중세가 시작됩니다.”

흥한 이유가 패망의 원인
▼ 로마의 흥성과 멸망의 원인은 결국 종교의 문제였다는 얘기군요.
“저는 ‘타인에게는 타인의 신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누구나 생을 지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신은 그것을 응원해줄 뿐인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도는 인간의 생을 지배하는 것은 유일신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로마인에게는 독선, 즉 불관용으로 비쳤을 겁니다. 로마인의 눈으로 보자면 일신교의 계보는 야만입니다. 오늘날의 ‘순교(殉敎)’도 ‘성전(聖戰)’도 ‘자폭 테러’도 야만일 뿐입니다. 일신교에 의해 다신교 문명이 사라지면서 로마가 패망의 길로 치닫게 됩니다.”
▼ 역사의 흥망성쇠를 통해 읽을 수 있는 국가나 조직 융성의 요인은 무엇입니까.
“기백, 즉 스스로를 보는 긍지입니다. 가장 나쁜 예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수단을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밖에 적이 있는데 내부 싸움에 빠져 붕괴한 아테네, 피렌체 같은 나라가 그런 예입니다. 작은 문제에 집착하면 큰 것을 놓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일본에 나쁜 결과를 가져올 대표적인 예가 ‘좁은 의미의 내셔널리즘’입니다.”
▼ 제15권 ‘로마시대의 종언’ 말미에 ‘제행무상 성자필쇠(諸行無常 盛者必衰)’라고 쓰셨죠. 로마의 패망도 일종의 운명이었다는 생각인가요.
“한때 국가를 흥하게 만들었던 요소가 언젠가는 패망으로 이끄는 원인이 됩니다. 조직이나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줄곧 자신을 돌아보고 개혁해야 하지요. 그게 안 될 때 조직은 망하게 됩니다.”
▼ 오늘날 기독교와 이슬람이 부딪치는 양상이 ‘중세의 재(再)도래’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종교가 마치 기독교와 이슬람교밖에 없는 것으로 비치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그래도 기나긴 중세와 십자군전쟁,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두 번의 대전을 치르면서 자기반성의 기회를 여러 차례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은 한 번도 실패를 통한 반성의 기회가 없었지요.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슬람교에서 원리주의가 힘을 떨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원리주의는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뭔가에 실패하면 타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래서 더욱 무섭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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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총리 말은 절반만 통역해야


▼ 지도자의 ‘말’에 초점을 맞춰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아베 총리가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협의의 강제성’이라고 한 발언 때문에 국제적으로 시끄럽습니다. 어찌 보면 미국이 ‘인권’이란 점에서 가장 반발하는 듯한데요.
“요즘 아베 총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지나치게 성심성의껏 설명하려 하는 데다, 속마음을 숨기질 못합니다. 최근의 위안부 발언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습니다. 정치가는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돼선 안 됩니다. 아랫사람들에게도 불행이지요.”
▼ 고이즈미 전 총리의 ‘원 프레이즈 정치’(One Phrase Politics)와는 정반대인 셈이죠.
“위로 갈수록 해서는 안 될 말이 많아지고, 그걸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말이 점점 더 꼬이게 됩니다. 고이즈미씨는 말을 잘 고른 편입니다. ‘원 프레이즈 정치’는 명료하게 말하되 기실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대중이란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옳은 판단을 하는 편입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엉망이 됩니다. 성심성의껏 속을 드러내는 아베 총리는 지도자보다는 남편감으로 적당하지만, 고이즈미 같은 사람이 남편이라면 고생이 많을 겁니다(웃음).”
그에 따르면 과거 일본의 정치가들은 확실한 어조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데 고이즈미 전 총리만은 사물을 확실히, 감성에 호소해 말하곤 했다.
“고이즈미씨의 특징은 단순화에 있습니다. 단순화한다는 것은 본질을 명확히 한다는 겁니다. 우정(郵政) 민영화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에 대해서는 아마 끝끝내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국민이 본 것은 이 정치인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정치가는 ‘도망갈 구멍을 찾는’ 것으로 비칩니다. 일본인이 고이즈미 총리 시절 우정 민영화를 주제로 해서 선거를 치른 것은 큰 경험이라고 봅니다. 지금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내려가는 것은 곧 뭘 좀 확실히 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반영된 때문입니다. 다들 헤매는 상황에서 지도자마저 헤매면 나라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 아베 총리에게 조언을 한다면.
“아베 총리가 고이즈미 총리를 흉내 내려 하면 안 됩니다. 천성이 다르니까요. 다만 제가 그를 보좌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총리관저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관방장관으로 아베 총리와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을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역 담당자로 유능한 사람을 기용해야 할 듯합니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대로 일일이 통역하면 외국인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절반으로 줄여서 명료하게 통역할 사람을 써야죠. 그게 일본의 국익에도 도움이 됩니다.”
통역을 잘 써야 한다는 그의 말이 기자에게는 실감나게 다가왔다. 본래 통역에겐 발언자의 말을 정확히 옮겨야 할 의무가 있을 테지만, 도쿄 특파원으로서 아베 총리의 모호한 발언을 들을 때마다 ‘저걸 영어로는 어떻게 통역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베 총리의 말을 축약해서 기사로 쓰려면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내용은 불분명하고, 얘기는 길고, 같은 말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로마인에게 일신교는 야만
▼ 두 전·현직 총리가 왜 그렇게 다를까요.
“아베는 늘 주류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총리였고 아버지가 총리 직전까지 간, 유력 정치가의 집에서 자랐죠. 늘 입만 열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로 남의 말을 들으라고 교육받고 자랐을 겁니다. 게다가 천성이 착하고 사람을 잘 믿습니다. 반면 고이즈미씨는 세습 정치인이긴 해도 늘 비주류였습니다. 역경을 딛고 선 정치가죠.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남의 이목을 끌수 있을지 늘 연구했을 겁니다. 고이즈미씨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그가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내 마음속을 잘 아느냐’며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랬지요. ‘난 1300년간 얼굴도 본 적 없는 로마의 남자들을 상대한 사람이다’라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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