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총리 말은 절반만 통역해야
▼ 지도자의 ‘말’에 초점을 맞춰봐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아베 총리가 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협의의 강제성’이라고 한 발언 때문에 국제적으로 시끄럽습니다. 어찌 보면 미국이 ‘인권’이란 점에서 가장 반발하는 듯한데요.
“요즘 아베 총리는 말을 너무 많이 합니다. 지나치게 성심성의껏 설명하려 하는 데다, 속마음을 숨기질 못합니다. 최근의 위안부 발언은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습니다. 정치가는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말에 유의해야 합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는 사람은 지도자가 돼선 안 됩니다. 아랫사람들에게도 불행이지요.”
▼ 고이즈미 전 총리의 ‘원 프레이즈 정치’(One Phrase Politics)와는 정반대인 셈이죠.
“위로 갈수록 해서는 안 될 말이 많아지고, 그걸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말이 점점 더 꼬이게 됩니다. 고이즈미씨는 말을 잘 고른 편입니다. ‘원 프레이즈 정치’는 명료하게 말하되 기실 말을 아끼는 것입니다. 대중이란 구체적으로 말해주면 옳은 판단을 하는 편입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엉망이 됩니다. 성심성의껏 속을 드러내는 아베 총리는 지도자보다는 남편감으로 적당하지만, 고이즈미 같은 사람이 남편이라면 고생이 많을 겁니다(웃음).”
그에 따르면 과거 일본의 정치가들은 확실한 어조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데 고이즈미 전 총리만은 사물을 확실히, 감성에 호소해 말하곤 했다.
“고이즈미씨의 특징은 단순화에 있습니다. 단순화한다는 것은 본질을 명확히 한다는 겁니다. 우정(郵政) 민영화가 왜 그렇게 중요하냐에 대해서는 아마 끝끝내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나 국민이 본 것은 이 정치인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확실하게 말하지 않는 정치가는 ‘도망갈 구멍을 찾는’ 것으로 비칩니다. 일본인이 고이즈미 총리 시절 우정 민영화를 주제로 해서 선거를 치른 것은 큰 경험이라고 봅니다. 지금 아베 총리의 지지율이 내려가는 것은 곧 뭘 좀 확실히 하라는 국민의 요구가 반영된 때문입니다. 다들 헤매는 상황에서 지도자마저 헤매면 나라가 우왕좌왕하게 됩니다.”
▼ 아베 총리에게 조언을 한다면.
“아베 총리가 고이즈미 총리를 흉내 내려 하면 안 됩니다. 천성이 다르니까요. 다만 제가 그를 보좌하는 사람이라면, 우선 총리관저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관방장관으로 아베 총리와는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인물을 택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통역 담당자로 유능한 사람을 기용해야 할 듯합니다. 아베 총리가 말하는 대로 일일이 통역하면 외국인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절반으로 줄여서 명료하게 통역할 사람을 써야죠. 그게 일본의 국익에도 도움이 됩니다.”
통역을 잘 써야 한다는 그의 말이 기자에게는 실감나게 다가왔다. 본래 통역에겐 발언자의 말을 정확히 옮겨야 할 의무가 있을 테지만, 도쿄 특파원으로서 아베 총리의 모호한 발언을 들을 때마다 ‘저걸 영어로는 어떻게 통역하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베 총리의 말을 축약해서 기사로 쓰려면 여간 괴로운 게 아니다. 내용은 불분명하고, 얘기는 길고, 같은 말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로마인에게 일신교는 야만
▼ 두 전·현직 총리가 왜 그렇게 다를까요.
“아베는 늘 주류였습니다. 외할아버지가 총리였고 아버지가 총리 직전까지 간, 유력 정치가의 집에서 자랐죠. 늘 입만 열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일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주로 남의 말을 들으라고 교육받고 자랐을 겁니다. 게다가 천성이 착하고 사람을 잘 믿습니다. 반면 고이즈미씨는 세습 정치인이긴 해도 늘 비주류였습니다. 역경을 딛고 선 정치가죠.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래서 어떻게 하면 남의 이목을 끌수 있을지 늘 연구했을 겁니다. 고이즈미씨에게 이런 얘기를 하니 그가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내 마음속을 잘 아느냐’며 감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랬지요. ‘난 1300년간 얼굴도 본 적 없는 로마의 남자들을 상대한 사람이다’라고(웃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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