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공부’는 잘 못해”
▼ ‘현대의 로마제국’은 역시 미국입니까.
“군사적으로 보나 경제적으로 보나 가장 강한 힘을 가진 것은 미국이죠. 로마 제국의 역할에 가까운 것을 기대하지만 미국은 그런 역할을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제국’이란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요. 미국이 자국만을 생각하는 것이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 국제사회에 꼭 리더가 있어야 할까요.
“사람들은 흔히 이상적으로 모두가 평등하게 유엔 같은 곳에 모여 토론을 거듭하면 세계가 좋아질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요. 하지만 그건 매우 순진한 생각이라고 봅니다. 조직이란 항상 강력한 리더가 있어야 움직입니다. 기관차를 예로 들면 차량만 늘어놓았다고 움직일 수는 없어요. 기관사가 있어야죠.”
그의 지도자론은 ‘최고지도자는 항상 유일하게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 어록에 보면 ‘역량이 뛰어난 지도자 둘을 보내는 것보다 평범한 지도자 한 사람을 보내는 것이 현장 제압에 도움이 된다’는 구절이 나온다. 국제사회의 리더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시오노씨는 일본에서는 과거 명문으로 이름높던 도립 히비야(日比谷)고교 출신입니다. 일본의 왕가나 귀족 출신들이 진학하는 가쿠슈인(學習院)대학에 진학한 것을 두고 대단히 보수적인 인물이라는 평도 있습니다.
“저는 모범생하고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당시는 졸업생의 3분의 2가 도쿄대에 갔습니다. 나머지는 ‘미야코오치’(都落ち·낙향이란 뜻으로 관청에서는 좌천을 뜻함)라 불렀지요. 저도 ‘미야코오치’입니다. 당시 교토(京都)대로 진학해 198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동창 도네가와 스스무(利根川進)도 ‘미야코오치’였습니다. 훗날 그와도 얘기했지만 당시 공부를 잘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습니다. 첫째 기억력이 좋을 것, 둘째 교사가 말하는 내용에 의심을 품지 않을 것. 그러나 저나 도네가와나 교사가 뭔가를 말하면 곧 의심을 품었죠. 그러면 더 이상 교사가 말하는 것이 귀에 들어오질 않게 되지요. 저는 기성 틀로 평가되는 제도권 시험에는 약했습니다. 반드시 떨어지는 겁니다. 이탈리아 유학 뒤에 재미삼아 본 ‘아사히신문’ 입사시험에도 떨어졌지요.”
▼ 노벨상 수상자가 동창이군요.
“제 동창은 대부분 관료, 학자, 변호사, 의사 등 일본을 이끄는 엘리트가 돼 있습니다. 그러나 전 수재형 인간을 믿지 않습니다.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으로 빠뜨린 것도 이들이지요. 그들이 성장해 사회에서 기반을 굳혀간 1960~80년대까지는 일본이 뭘 해도 성공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성공체험만 한 사람들은 머리가 굳어버립니다. 곤경에 처하면 헤쳐나갈 방도를 못 찾지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세계 정세가 급변할 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우왕좌왕한 거죠. 몇 년 전 졸업 40년 만에 동창회를 열었는데, 한 사람 빼고는 정말 재미없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대장성 관료였는데, 자신이 해온 것에 대해 뼈저리게 반성했습니다. 공식적으로 말하면 조직을 욕보이게 되니 침묵해도 사석에서 말하는 거죠.”

‘동물의 왕국’을 보라
▼ 요즘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일본도 교육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많습니다.
“교육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름이 붙은 위원회 등에서 자문해 올 때마다 저는 ‘교육에 대해 배우려거든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를 보라’고 말합니다. 어떤 동물이건 부모는 자식이 독립할 때까지는 성심성의껏 돌보고 키워주지만, 목표는 자식의 홀로서기입니다. 인간 세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부모건 학교건 빨리 잘 키워서 떠나보낼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연인이나 부부, 기업은 어떻게 잘 잡아놓을 것인지를 생각해야 하겠지만…. 요즘은 이런 각자의 역할을 알지 못한 채 마구 헷갈리는 듯합니다. 학교나 부모가 학생을 잡아놓으려 하고 기업이 인재를 떠나보내려 한다면 기본이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서 그는 한국에도 유럽이나 일본처럼 부모 밑에 기생하는 젊은이가 많냐고 물어왔다. 취업난으로 과거보다 많아지고 있다고 대답하니 그는 서른 살짜리 아들을 얼마 전 독립시켰다고 했다. 스스로 벌어서 생활할 만큼의 능력이 안 되지만 약간의 지원을 전제로 한 자신의 결단으로 그렇게 했다는 것. 걸어서 30분 거리지만 ‘따로 산다’고 강조한다. 어른들은 뭔가를 시작할 때 기반을 확실하게 닦는 게 중요하지만 젊은이의 경우는 일단 뛰어들어 움직이는 사이에 기반이 닦이는 것 같다고도 했다. 영화 관련 직업을 가진 아들은 독립한 뒤 오히려 수입이 늘고 스스로 생활을 책임질 수 있게 됐다고 한다.
“교육 논의에서 빠진 것이 부모의 가정교육입니다. 한참 전 일이지만 모 총리가 일본에 와서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대답은 ‘이탈리아에 있는 아들이 고교생이라 혼자 둘 수 없다’는 거였습니다. 아들을 세계 어디에 가도 살 수 있게 키우겠다는 다짐을 늘 염두에 뒀습니다. 혼혈이니까 더욱 그랬지요. 방학 때면 한 달씩 영국에 보내 영어를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했습니다. 대학에 갈 때 미국 대학으로 갈지, 유럽 대학으로 갈지 스스로 선택하게 했더니 본인이 유럽을 택했습니다. 독립의 조건은 매주 한 번은 반드시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 약간의 응석도 허락합니다. 세탁물은 가져와도 좋다고. 그러고는 다림질까지 싹 해서 줍니다. 아이들에게 최초로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은 어머니의 애정이고, 자식은 어머니가 맡아보는 밥상머리에서도 자랍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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