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변의 보좌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이지마 이사오(飯島勳)라는 비서관의 헌신적인 보좌를 받은 반면, 아베 총리는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보좌하는 사람이 없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정치의 세계란 본래 이해관계의 이합집산이라고 하지만 역시 리더에게는 ‘인간의 매력’이란 게 작용합니다. 성실함도 그중 하나이지만 타인에게 자극을 줘야 합니다. 또 하나, 요즘은 TV정치의 시대라고 하지요. 일본의 정치가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TV에 출연해 말할 때는 브라운관 저편의 단 한 사람에게 말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수백 수천만이 보고 있다는 걸 전제로 하면 말도 제대로 안 나오고 뜻도 전달이 안 됩니다. 오직 한 사람, ‘바로 당신’에게 말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수천만명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고이즈미 총리처럼 ‘우정 민영화를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식의 발언을 할 수 있을까요?”
‘로마인 이야기’는 현대 문명에 대한 시사로 가득 차 있다. 시오노씨는 ‘로마인 이야기’를 쓰게 된 동기를 말하면서 200여 년 동안이나 넓은 지역에 걸쳐 팍스 로마나가 이뤄진 이유를 알고 싶었다고 한 바 있다. 또 그것은 로마가 왜 쇠망했는지 알고 싶다는 말과 같다고 했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흥망사’ 등 많은 로마사 관련 저술이 있는데 굳이 로마사를 쓴 이유는 동양인의 눈으로 본 로마사를 써보기 싶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지금까지 로마사는 대개 기독교도가 썼습니다. 기독교도의 시각에서 로마사를 쓰면 다신교(多神敎) 시절은 야만의 시절이고 기독교를 받아들인 이후는 문명의 세계가 됩니다. 기독교도가 쓴 로마사가 로마의 패망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왜 로마가 융성했는지에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저는 자유와 관용, 다신교에서 비롯됐다고 봅니다. 일본이나 아시아가 대부분 그렇듯 일신교(一神敎)가 아닙니다. 다신교인 사람이 바라본 로마사를 정리하고 싶었다고 할 수 있지요.”
▼ 일신교와 다신교의 차이가 역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로마의 특징은 자유와 관용입니다. 자신뿐 아니라 타자를 존중하는 태도가 다인종,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라는 문명을 가능케 한 것입니다. 그건 다신교로부터 나왔지요. 로마인은 정복당한 민족의 신조차 모두 자신들의 신으로 모셔 로마의 신은 30만에 달했습니다. 이는 자신과 다른 것에 관용적이고 수많은 융통성이 생겨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면 일신교는 나의 종교만이 옳고 남의 종교는 그르다는 생각에 기초를 두고 있지요. 로마가 멸망한 것도 기독교(일신교)를 받아들여 거기에 용해됐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종언(終焉)은 지평선 저 너머에 이슬람이 다가오는 시기와 일치합니다. 두 개의 거대한 일신교가 부딪치면서 중세가 시작됩니다.”

흥한 이유가 패망의 원인
▼ 로마의 흥성과 멸망의 원인은 결국 종교의 문제였다는 얘기군요.
“저는 ‘타인에게는 타인의 신이 있어도 되는 것 아닌가, 누구나 생을 지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고 신은 그것을 응원해줄 뿐인 것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기독교도는 인간의 생을 지배하는 것은 유일신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로마인에게는 독선, 즉 불관용으로 비쳤을 겁니다. 로마인의 눈으로 보자면 일신교의 계보는 야만입니다. 오늘날의 ‘순교(殉敎)’도 ‘성전(聖戰)’도 ‘자폭 테러’도 야만일 뿐입니다. 일신교에 의해 다신교 문명이 사라지면서 로마가 패망의 길로 치닫게 됩니다.”
▼ 역사의 흥망성쇠를 통해 읽을 수 있는 국가나 조직 융성의 요인은 무엇입니까.
“기백, 즉 스스로를 보는 긍지입니다. 가장 나쁜 예는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수단을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밖에 적이 있는데 내부 싸움에 빠져 붕괴한 아테네, 피렌체 같은 나라가 그런 예입니다. 작은 문제에 집착하면 큰 것을 놓치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일본에 나쁜 결과를 가져올 대표적인 예가 ‘좁은 의미의 내셔널리즘’입니다.”
▼ 제15권 ‘로마시대의 종언’ 말미에 ‘제행무상 성자필쇠(諸行無常 盛者必衰)’라고 쓰셨죠. 로마의 패망도 일종의 운명이었다는 생각인가요.
“한때 국가를 흥하게 만들었던 요소가 언젠가는 패망으로 이끄는 원인이 됩니다. 조직이나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줄곧 자신을 돌아보고 개혁해야 하지요. 그게 안 될 때 조직은 망하게 됩니다.”
▼ 오늘날 기독교와 이슬람이 부딪치는 양상이 ‘중세의 재(再)도래’로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요즘 세상에는 종교가 마치 기독교와 이슬람교밖에 없는 것으로 비치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그래도 기나긴 중세와 십자군전쟁,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두 번의 대전을 치르면서 자기반성의 기회를 여러 차례 가졌습니다. 그러나 이슬람은 한 번도 실패를 통한 반성의 기회가 없었지요.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슬람교에서 원리주의가 힘을 떨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원리주의는 스스로에게 의심을 품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뭔가에 실패하면 타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합니다. 그래서 더욱 무섭다고 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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