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동쪽 바다’는 곤란하죠”
▼ 한국에도 ‘로마인 이야기’의 독자층이 두껍습니다. 특히 오피니언 리더층이 애독하는 것으로 압니다.
“‘로마인 이야기’ 같은 어려운 책이 잘 팔린다는 것은 한국의 독자 수준을 말해주는 것 아닐까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누구나 쉽게 읽을 만한 책은 아니니까요. 그만큼 지적 수준이 높은 독자가 많다는 얘기라고 봅니다. 저는 ‘로마인 이야기’를 쓰는 15년간 다른 일은 일절 거부하고 ‘로마인 이야기’의 인세만으로 살았습니다. 일본에서 많은 작가가 하듯 문예지 등에 먼저 연재하고 그걸 모아 책으로 만든 것도 아닙니다. 온전히 독자가 내준 인세가 저의 15년 작업의 기반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책을 사서 읽어준 독자는 지난 15년간 내 작업에 참여하신 셈입니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지금까지 한국에 두 번 가보셨는데, 시오노씨가 보는 한국은 어떻습니까.
“한국에 가면 향수 같은 게 느껴집니다. 옛날 일본과 비슷하기도 하고. 그보다 더 실감하는 것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 바다가 있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바다가 지켜줘서 외부로부터 침략이 불가능했습니다. 또 도쿠가와(德川) 막부 300여 년 동안 국내도 평화로웠습니다. 그 사이 장기적인 시야에서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하고 경험을 축적할 수 있었지요. 반면 한국은 조선 400년간 자체의 영속적인 시스템을 마련하지 못하고 일시적인 대응만 해왔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바로 곁에 스스로를 세상의 중심이라 여기는 중국이 있어 항시 의식하며 살아야 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얘기가 잠시 곁으로 새나갔다. 그는 “일본해를 한국에서는 일본해라고 부르면 안 된다는데 맞느냐”고 물었다. 한국에서는 ‘동해’라고 하며, 바다의 호칭을 놓고 양국 사이 갈등이 있다고 답하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동해, 즉 ‘동쪽 바다’라니 곤란한 얘기네요. 일본에서 보자면 바다가 서쪽에 있는데도 동해라고 부르란 말인가요? 본래 인접한 지명은 국가마다 자기 식으로 부르면 되는 거 아닐까요. 가령 지중해(the Mediterranean Sea)는 로마가 유럽 남부와 아프리카 북부를 포괄하는 제국이던 시절, 그러니까 로마에 둘러싸인 바다라는 뜻으로 불리던 지명이지만 지금도 지중해입니다. 플라톤을 미국에서는 플루토라 부르고 소크라테스를 이탈리아에서는 소크라테라고 부르지만 다 알아듣습니다. 서로 편한 대로 부르면 되는 것 아닌지요.”
그는 한국과 일본 역사의 특수하고도 복잡미묘한 관계에 대해서는 별로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그와 인터뷰하는 중간중간에 이런 식의 질문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배경설명을 해줘야 했다.
한국, 지속가능한 시스템 갖춰야
▼ 한국은 중국이란 ‘강대국’에 인접해 있지만 5000년간 독자적으로 국가를 운영해왔습니다. 그러나 100년 전에도, 지금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길을 모색하는 신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샌드위치 국가’라는 유행어도 있습니다.
“한국은 요리를 봐도 그렇고, 모든 점에서 ‘낭비(쓸데없는 노력)’가 없는 것이 문제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가령 일본 요리를 보면 쓸데없는 데 공들인 것이 많습니다. 뭐 하러 이런 데 이렇게 재료와 노력을 들이나 하는 생각을 하며 먹지요. 하지만 실은 새로운 것, 창조적인 것은 이런 쓸데없는 노력에서 태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은 돈이 되지 않는 일에도 10년 앞을 생각하며 투자하고 노력을 기울입니다. 거기서 훗날 효자 노릇을 하는 것들이 생겨나지요. 그런데 한국은 그런 ‘잉여적 요소’가 잘 안 보입니다.”
이 대목에서 그는 여자 피겨 스케이트 시합을 예로 들었다. 마침 그를 만나기 이틀 전인 3월24일, 도쿄에서 세계피겨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일본의 안도 미키가 1위, 아사다 마오가 2위, 한국의 김연아가 3위를 한 대회다. 대회 첫날 김연아는 사상 최고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손에 쥘 것으로 보였지만 둘째 날 경기에서 실수를 거듭, 3위에 머물렀다.
“나는 이번 대회에서 1, 2위를 한 일본 선수들보다 김연아가 한 수 위라고 봅니다. 우아(elegant)하기 때문이죠. 여자 피겨 스케이팅에서 우아함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노력만으로 얻을 수 있는 부분도 아니지요. 다만 김연아가 쓰러지면 어떻게 될까요? 일본은 1등은 아니어도 비슷한 수준에 있는 선수가 5명쯤 있어서 한 사람이 망가지면 다른 사람이 도전합니다. 한국엔 누가 있습니까. 무언가에서 한 번 승리하는 것은 쉽지만 그걸 지키기는 어렵습니다. 시스템을 마련해야 지요. 영화건 경제건 모두 해당되는 얘기입니다.”
▼ 한국이 워낙 여유없이 살아온 탓인 듯합니다. 당장 지금도 북한 핵 문제 등 동아시아 정세가 만만치 않습니다.
“가끔 한국(북한을 포함해)은 너무 원리주의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거다’ 하면 그것밖에 모르고, 유연성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은 이탈리아인보다는 프랑스인과 닮았습니다. 요즘 프랑스는 전략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미국에 반대하면 선(善)’인 것처럼 움직이고 있지요. 결과적으로 무엇이 자신에게 유익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강박관념이랄까 원리주의는 사실 강자의 위협에서 오는 측면이 있습니다. 스스로 약하다고 느끼고 역사의 풍파에 시달릴수록 어떤 크고도 기댈 만한 원리에 집착하게 됩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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