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또 다른 하나의  신앙이 있다.

그 어떤 말로다 표현할수 없는 신앙 , 그것은 책이다.

독서야 말로 나의 위대한 신앙인 것이다.  세상은 어둡고 보이지 않을 때가 간혹 많이도 있다.

그러한 세상에서 빛이 되어준 감사한 나의 신앙, 신앙은 곧 힘이다.

살아가면서 피부로 느끼는 나의 미력한 힘, 이약한 힘을 키우고자 나는 항상 노력과 수고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힘은 여지 없이 한계를 내 비취이고 바닥이 난다.

 

나는 힘을 키우고 싶었다,  아니 키워야 한다.  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살아가기에는 힘이 절실히 필요하다. 사람들은  아름답고 그래도 사람냄새 나는 곳인데 천천히 더불어 살지 그래요? 할지 모르지만 내가 살아보니 그 것이 아니더라...

책은 곧  힘이요, 독서는 곧 나의 몸속에 보이지 않는 무기 이다.

 

어린시절 내 나이 16살 적인가,  형이 전주 피카디리 라는 극장에서 난생처음 극장에서 영화를 본적이 있다.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 코만도" 였다.

시골 촌놈이 의리의리한 극장에서 본 처음 영화는 오징어와 음료수로 맛있게 입으로 행복하고 눈으로 즐거운  잊을수 없는 영화이다.  특수부대를 전역하고 딸과 행복하게 산에서 살아가는 주인공에게  딸을 인질로한 적과의 1인 전쟁은 시작되었다.

산골 그 허름한 집에서는 버튼하나를 누르니 벽면에서 온통 최첨단의 무기가 진열 되어있었고 섬에 도착하여 보트에서 내린후 근육질의 온몸에 칼이며 전쟁에 사용할 무기를 장착한다.

그리고 연신 적들을 쓰러 트리고 응징하여 딸을 되찿아 가는 액션영화 이다.

나는 여기서 허구적인 영화이지만 지금 생각하니 많이 배운듯 하다.

주인공은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하였었고 그리고 언제든지 싸울수 있는 힘을 비축해  두었다는 것이다.  앞을 내다 볼수 없으니 항시 준비 하는 것이다,   힘을 비축해 두어야 삶이 고단해 질때 덜 힘이 드는 것이다.  왜 힘을 멀리서 찾으려 할까?   항시 힘과 스승이라는 두가지의얼굴로 가까이에 있는 고마운 친구 ... 그것은 책 이요,   섭렵한다면 독서가  아닐련지...

 

 

어린시절 외딴집에 살았을때 참으로 심심하기도 했고 항시 무언가 자극적인 것들이 필요했다.  소 풀을 뜯길때도 무료하고 비가 와서 가족이 같이 다 있어도 심심하고 저녁에 짐승들 먹이를 쑬때도 시간이 아니가고,  밤에 호롱불 밑에서 잠이 오지않아 뒤척일 때도 무언가가 참으로 필요했다.  그러던중  책을 접하게 되었다.   내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발견을 한것이다.

아니 황금을 발견하고 그 황금 금광 속으로 가는 길을 알아낸 것이다.

책이라면 부류를 가리지 않고 읽은듯하다. 소설, 위인전, 만화, 소년잡지,여러가지들...

그 중에서도 어린시절은 만화를 많이도 보았다.  읽고 모으는것이 취미가 되어 가히 몇백권은 되지 않았나 싶다.

어머니에게 어린놈이 공부는 하지 않고 매일 만화책에 빠져 산다고 나의 어린시절 만화책들은 소죽을 끓이는 땔감 속으로 수십권, 간혹 몇십권씩 찟겨져서 불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날은 나의 눈에서 닭똥같은 눈물이 얼마나 흘러 내렸는지 모른다.

하지만 금새 어디서 났는지 모를만큼 많이도 모아서 어머니 모르시도록 숨겨서 보고 모으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에게 또 들켜서 혼나기가 일수...

그것도 모자라서 만화책을 아예 내가 그려서 만들었다.

"  저놈이  커서 대체 뭐 댈려고 그런다냐... "

 

추운 겨울날 외딴집을 걸어 동네친구집에 가서 책을 빌려오는 그 순간은 얼마나 행복한지 돌아오는 발걸음은 매서운 겨울 바람도 비켜서 간 듯하다.   내 등뒤로 있는 무게의 책을 지고가는 그순간은 미소가 가득 드리우고 행복감이 젖은듯 콧노래가 나온다.

이녀석들이 있으니 올 겨울 방학은 문제가 없겠구나... 행복하다...

눈앞의 겨울 매서운 바람도 이겨내게금 거대한 힘이다.
 

 나는 언제나 갈증을 낸다. 그리고 항상 힘을 얻고 싶다.  책이란 숨이 막힐것 같은 사막을 가매  간절한 한방울의 물 같은 존재이다.

그 사막 한가운데에서  한방울이 아닌, 얼려서  차갑게 놓여있는 한 주전자의 물을 나는 간절히 먹고싶다.    그 절대적 힘을 가진 꼭 필요한 물을 나는 감히 내앞에 놓인 책이라 말하고 싶다...     

 

세상 모든것이 거짓과 위선을 미소 지어도 책의 양면에는  희망만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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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했다..

시골생활이 그러하듯이 조금더 가난했던것같다.

가난한것이 자랑도 아니고, 그리 부끄러운것도 아니지만 참으로 불편했던것은 사실이다.

그 힘들고 긴 가난이 어쩌면 나의 인생에서, 지금의 시점에서도 살아가는 가장 큰힘이 되지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보다 더 나빠질수없기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쌓아놓은 모든것을 다 잃는다해도

나는 벌떡일어나 어떤노동이라도 할수있는 힘과용기가  어쩌면 그어릴시절힘든삶이

오늘을 사는 나의 반석이 되지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에게 살아가는 지혜과 힘을 가르쳐준 나의스승...

 

나의형은 장남이다.

형과나는 5살 차이가난다.

바로위의 누나,  그리고  나 . 남동생, 여동생...  독수리5형제

참으로 태어나기도 나는 공평하게  모든걸가진 복받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그러하기에 집안생계나 여러 살아가는데에는 다정다감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한번도 원망해본적은없었다.

부모님은 낳아주셨다는 한가지의 이유만으로도 존경과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싶고 , 그렇게 살고싶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이세상이지만...

 

어머니와 형이 주축이되어 집안살림과 농사일을 꾸려나갔다.

천성이 항상 부지런하고 똑부러진성격에 행동으로 항상하는형이었다.

중학교시절 형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였는지 모른다.

공부에 목숨건 사람처럼 중3시절에는 가정일과 공부에 모든것을 건사람들처럼 보였다.

 

외딴집인 학교와는 자전거로 한시간이 채안걸리는 거리에있다.

오는길은 공동묘지도있었고, 가로등하나 없는 어두운길을 항상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고는했다.

그리고 집에와서도 새벽녘까지 공부한걸로 기억이된다.

코피를 흘리전 모습도 여러번 보았었다.

주말이면 항상 농사일과 저녁이면 공부에 여념이없었다.

 

형은 공부만이 이가난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인것마냥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조숙했다.

16살이면 분명히 어린나이인데 나이에 걸맞지 않았다.

눈빛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눈동자에 불이 들어있는듯 이글거리고있었다.

타오르는 그불빛을 난  여러번 본기억이 홀로든다.

 

형은 그이듬해 시골촌학교에서 전주로 유학(?)을 가게된다.

전주상고라고 지금이야 쉽게 갈수있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당시는

분명 여러사람들이 말이많을 정도로 장하다 장하다 했으니 노력의댓가는 분명 이루지않았나

생각이든다.

 

형은 그고교로의 입학이 집과의 탈출로 꿈꾸었을까? 

 

가난했다..

시골생활이 그러하듯이 조금더 가난했던것같다.

가난한것이 자랑도 아니고, 그리 부끄러운것도 아니지만 참으로 불편했던것은 사실이다.

그 힘들고 긴 가난이 어쩌면 나의 인생에서, 지금의 시점에서도 살아가는 가장 큰힘이 되지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보다 더 나빠질수없기에,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쌓아놓은 모든것을 다 잃는다해도

나는 벌떡일어나 어떤노동이라도 할수있는 힘과용기가  어쩌면 그어릴시절힘든삶이

오늘을 사는 나의 반석이 되지않았나 생각해본다.

그리고 나에게 살아가는 지혜과 힘을 가르쳐준 나의스승...

 

나의형은 장남이다.

형과나는 5살 차이가난다.

바로위의 누나,  그리고  나 . 남동생, 여동생...  독수리5형제

참으로 태어나기도 나는 공평하게  모든걸가진 복받은 사람이다.

 

아버지는 술을 굉장히 좋아하셨다.

그러하기에 집안생계나 여러 살아가는데에는 다정다감하시지는 않으셨다.

그렇지만 아버지를 한번도 원망해본적은없었다.

부모님은 낳아주셨다는 한가지의 이유만으로도 존경과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나는 지금도 믿고 싶고 , 그렇게 살고싶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이세상이지만...

 

어머니와 형이 주축이되어 집안살림과 농사일을 꾸려나갔다.

천성이 항상 부지런하고 똑부러진성격에 행동으로 항상하는형이었다.

중학교시절 형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하였는지 모른다.

공부에 목숨건 사람처럼 중3시절에는 가정일과 공부에 모든것을 건사람들처럼 보였다.

 

외딴집인 학교와는 자전거로 한시간이 채안걸리는 거리에있다.

오는길은 공동묘지도있었고, 가로등하나 없는 어두운길을 항상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도착하고는했다.

그리고 집에와서도 새벽녘까지 공부한걸로 기억이된다.

코피를 흘리전 모습도 여러번 보았었다.

주말이면 항상 농사일과 저녁이면 공부에 여념이없었다.

 

형은 공부만이 이가난을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인것마냥 최선을 다하였다.

 

그리고 조숙했다.

16살이면 분명히 어린나이인데 나이에 걸맞지 않았다.

눈빛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눈동자에 불이 들어있는듯 이글거리고있었다.

타오르는 그불빛을 난  여러번 본기억이 홀로든다.

 

형은 그이듬해 시골촌학교에서 전주로 유학(?)을 가게된다.

전주상고라고 지금이야 쉽게 갈수있을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당시는

분명 여러사람들이 말이많을 정도로 장하다 장하다 했으니 노력의댓가는 분명 이루지않았나

생각이든다.

 

형은 그고교로의 입학이 집과의 탈출로 꿈꾸었을까?
 형은 그렇게 고향을 떠나 전주로 떠나게되었다.
내기억에 많은 짐이아닌 이불보따리와 옷가지가 몇개든 작은 가방하나에...

완행버스 트렁크에 형에짐을 옮겨주었다.

멀리사라져가는 버스를보니  영원히 볼수없을것처럼 마음이 찹찹했다.

 

전주로 상경한 형은 하숙생활형편이 안되니 자취를 하게되었다.

자취방 월세를 아끼기위해서 친구한분과같은방을 쓰면서 그렇게 하나하나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집에서 도와줄형편이 아니니 형이  처할수있는 방법은 철저한 홀로서기 그것뿐이었다.

자취방월세, 학비,생활비, 여러 들어가는 일상생활비를 형 혼자 극복해나가야했다.

시골집에서 도와줄수있는것은 쌀이며 , 반찬 몇가지일뿐이다.

 

그래서 시작한 형의 홀로서기방법은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이었다.

남들처럼 하면 보수가 적기때문에 다른이들보다 더많은 신문과 우유를 돌렸다.

새벽4시부터 몇시간을 그렇게 악착같이 일을 해나갔다.

그리고 학교가 끝난후에는 또다른 아르바이트를 병행해나갔다.

 

신문배달 이라는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나는 새벽에는 안해보고 아침에만 하는신문배달을 5년 가까이 해보았지만

신문배달이라는것이 아침에 하루도 거르지않고 일관성있게하는, 날씨에 많이도 영향을 받는

쉬운일이 아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달린다는것이 운동이 될수는 있으나

운동하고 일하고는 결코 같은 부류는 아닌것같다.

 

학교생활은 학교생활데로 공부도 열심히 해야했고 상업고등학교라는 특성상

부기,주산,여러 공부와 학원생활, 그리고 밤이면 아르바이트...

마치면 집으로와 또다른 공부  (공부도 효과적으로 했던것같다. 이마에 흰천을 두르고 책상앞에는 할수있다"하면된다" 여러 글귀가보이고 잠을 깨우려고 바늘이나  여름에는 세수대야에 물가득붓고 발을 담구는등  방학때 형에 자취방을 보면 진풍경이다)도해야했고

새벽이면 신문배달에 밥도 해먹고 또싸가야지 ...내가본형은 항상 바쁘고 시간이없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형의 강한 집념과 힘은 대체 어데서 나오는것일까?

하루 3시간이상을 자지 않으면서 학교생활과 생활수단을 병행할수잇는 그강한 , 대체 강해질수있는 힘은 무엇인가?

가까이에서본 형의 가장강한 스승은 책이었다.

누가 가르쳐주지않은 냉정한 세상에서 찿을수있는 가장 큰힘이자 스승은 형에겐 책뿐이었다.  약해지는 마음을 잡기위에서 택한 가장 강한힘...

형은 강해지고저 무수한책을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항상 하는 말이있고 항상 선물한것은 책이었다.

동생아! 책을 보아라 ... 책속에 길이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도 그렇게 책을 무수히보나보다.

올해목표가 백권인데 벌써 반절은 달성한것같다.

 

형은 책도 가려서 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읽었던 책이 자기개발 마인드책과 3시간 수면법에 관련된책,

그리고 어려움속에서도 굳세게 살아가 나중에 훗날 꼭 성공한 분들의책을 ...

형이 그당시 선물했던 책중에 대우 김우중회장님에"세계는 넓고 할일은많다"가 가장 기억에남고 지금도 내책장에 소중히 소장하고있다.

 

그당시 형이 봤던책들중에 지금도 기억에 남는책은

"신념은 마술이다"  "내자신과의 싸움에 강해져라"  "3시간 수면법"

"효과적인 3시간 수면법"  "잠들어있는 나의 죽은 시간들"

여러 책들을 보면서 형이 했던말들은 절대 책은 빌려보지말고 사서봐라.

그리고 집중하고 정독하라!  좋은 책은 한번에 그치지말고 몇번이라도 읽어라.

좋은내용은 몇번이고 되세김하듯 외우듯이 읽어라,, 그리고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어라...

나는 지금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어느 한여름밤에 형이 친구분과 하는 얘기를 들은적이있다.

이내용또한 책에서 인용된이야기다.

내용인즉  세상은 마음먹기에따라서 다할수있다.

문제는 마음가짐이고  철저한 마인드다.

나를 믿지않고 , 내자신을 어떻게 극복하지못하고 세상을 살아간단말인가..

미국에서 실험을 했더란다.

밀가루를 조금씩 봉투에담고 10명에게 주었단다.

"이약은 설사약입니다"하고

잠시후 5분이경과하자 10명중 3사람이 화장실로가서 설사를 했더란다.

자신의 마음을 설사약이라고 굳게 믿었기에 몸이 스스로 반응을 한거란다.

기가막히지 않은가?

어떤상황에서도 자신을 굳게믿고 ,그러한 정신으로 살면은 하늘도 나를 도울것이요.

내자신을 사랑하고 나는 할수있다는 신념으로 살겠노라고....

다짐하는 형을 보면 참으로 멋있었다.

 

잊혀지지않는 슬픈일이있다.

인생에서 가장 혈기왕성하고 좋을때가 고등학교때이다.

고등학교의꽃은 수학여행이다.

형은 평소에는 항상 홀로서기를 하였는데 그 수학여행때만은 집에와서 돈얘기를햇다.

자존심이 강한 형이왜그런얘기를 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처럼  수학여행만은 부모님에게 뿌듯이받아 다녀오고싶은

소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것같다.

부모님께서 주시지 못하자 형은 스스로 알아서 하겠노라며 쓸쓸히 전주로향했다.

 

몇주가 흘러 형은 집에 다녀왔는데 수학여행을 잘다녀왔노라고했다.

철부지동생들은 왜 빈손이냐고 묻자 형은 돈이 없어서 선물은 못사왔다고 미안하다며

다음에는 꼭 사오마 말했다.

그리고 또 몇주가 흘렀는데 우리가족은 형이 수학여행을 가지않은것을 우연히알게되었다.

형은 거짓말을 한것이었다.

어머니께서 왜 그랬냐고 우시면서 묻자 형은 하여야할 공부도 많았고  쉬고싶었노라고 하면서 낮에는 도서관에서 밀린공부하고 밤에는 밀린책을 실컷보아서 좋았다고했다.

잠시동안 우리가족은 말없이 조용해졌다.

나는 느꼈다. 형은 갈수도있었는데 가고도 싶었는데  그수학여행이라는것또한

사치라고 느꼈지않았나 생각이든다. 자기가 처해있는 그현실속에서 분명히 그것또한 사치라고...

그렇게 고교생활은 서서히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한이 되었던지 형은 대학교나 직장생활은 생각도안해보고 접어버리고

돈벌러 군대나 가련다 하고 하사관에 지원하고 입영날짜를 기다리며

여행에관한한책들을 몇권을 구입해 정독하고 계획을 세워 전국일주를 수십일에걸쳐헤냈다...

 

나는 어린시절 형이 참으로 무서웠다.

바늘로 찔러도 피한방울 안나올것처럼 보였다.

비유가 될련지모르겠지만  쉬리의 최민식의 날카로운눈빛과

최민수의 잔잔하면서도 선이굳은 목소리로 형이 비추어졌다.

유독 바로 밑의 남동생이라서 그런지 형은나에게 신경을 많이도 써주었다.

나는 그런형이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고  결코 잡지못할 거인처럼 보였다......

 

 형은 군대에서 나는 모공업고등학교에서 생활하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글을 마치고저한다.

뭐가 그리할말이 많은지 항상 처음은 금방 끝날것같은데 쓰다보면

나도 모르게 맺지를 못하는 내자신에 웃음이 나온다...

하지만 이글을썻던 이유는 이마지막에 나오는 나의 눈물때문에

처음부터 눈물의 이야기를 쓰려고 이글을 시작하지않았나 생각해본다...

 

1988년 나는 전북이리에 있는 모 국립기계공업고등학교로 입학을 하게된다.

모기계공고는 당시우리나라에 국립으로 우리나라에서 3군데 밖에없었다.

내가 왜 이학교를 오게되었나?

나는 중학교때 공부를 그리잘하지도 못하고 항상 딴생각만하고 장난기많은 소년이었다.

공부보다는  소설책이 좋았고, 공부보다는 어머니 도와서 일하는게 더좋았다.

 

그런던중 축구를 하다가 발이 부러저 3개월을 기브스하는 사고를 당하게되었다.

학교는 가야햇고 ,친구들 놀때나 공부할때, 할것이 뭐 있나?

그래서 공부를 했고 ,순전히 할일없어서 공부했다.

그러니 성적은 당연히 올라갔었고 다리가 거의 아물무렵 또 개구장이가 되려나 했는데

재수가 없어도 그렇게없나...

또 부주의로 또 다리를 다쳐서 기브스하게되어 도합 7개월을 목발로 절름발이로 살아야했다.  정말 폭폭하고 답답했다.

그러던 와중에 형이 동생아  "우리 형편에 갈학교는 이리(지금은 익산)에있는 모국립공고밖에없다... 이것이 기회라 생각하고 죽기 살기로 공부해라!  그학교는 시험도아닌  철저한 내신성적이니까  전체학생등수 30등안에만 들어라" 

형은 절실한 심정으로 이야기했다.

그학교는 국립이라, 수험료도 안내고 기숙사도있으니 우리같이 없는 사람들은 그곳이 딱이다. 넌 몸만가면 되는거니까  한번 죽었다하고 해봐라.

난 그말만믿고 정말 열심히 했다. 아픈몸  할일이 없어 공부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형에게 처음으로 기쁨을 준것같아 참으로 기뻣다.

지금 생각해도 운이 좋았다.

 

시골 촌놈!

눈이 휘둥그래지는것은 어쩔수없었다.

답답한 시골살다가 ,일만하는 시골에 있다가 도시에 올라왔으니 어쩌랴?

하루하루가 신기하고 얼마나 좋았던지, 이리저리 많이도 돌아다녔다.

 

그러니 시골촌놈..

세상이란 곳에서 시골때가 벗겨지고 ,머리가 조금크니 살짝은 겁이 상실해지지않겠나?

형은 그렇게 고생하고,어렵게 신문배달하고 우유배달하면서 피와땀으로 살았는데

넌 그생각은 추어도 못하고  하룻강아지 마냥 그렇게 살았지.

형에 반에 반만 이라도 열심히 살았으면...

형의  처한 상황보다도 비하면 행복한 그시간을 넌 허비했지...

 

내나름데로 공부한다고 햇었다.

야간에도 했었고 ,새벽에도 해었는데  그 학교 첫번째 중간고사에서 꼴등했다.

55명 중에서 55등했다.

글쎄 나도 한다고 했는데..이럴수가?

이렇게 공부잘하는 학교였나?

아버지께서 통신표를 받아보시더니  "야 이놈아 꼴에서 첫번째는 해야지 꼴등이뭐냐?

내가 생각해도 한심하고 해라고해도 못하겠다....

 

그런던중 시간은 쉼없이가 2학년이 되어 2학기에 접어드는와중에

일요일 귀가시간을 20분어기는 일이 발생되었다.

시골집에서 막차를 타고 열심히 왔었는대도  늦은것이다.

그때가 2번제 늦은 귀가어기는 일이었는데  사감선생은 퇴사조치를 한다는것이었다.

남들은 4번도 5번도 봐주더구만...

이유는 너는 위험인물이라는것이었다.

지뢰같은 위험인물이었는데 이기회에  나가주었으면한다는것이었다.

많은 이야기가 나왔지만 소귀에 경읽기가 되엇다.

그때나는 큰사고는 치지않았지만 얼굴은 아주 불량한,세상의 때에절은 반항기가득한

소년이었던것이다.

 

형이 왔다.

군대 하사관으로 잇던 형이와서 어머니와같이 방을 얻어주었다.

철부지녀석은 딴짓거리하기가 쉬운  방을 고르려했고 형은 주인아주머니가 굉장히좋고

자취방 옆집사람들이 성실하고좋은 아주 선한 자취방으로 삭월세를 구해주셨다.

그당시 24만원! 결코작은 돈이 아니다.  한달에 2만원, 1년치 선불이었으니...

형은 박봉일 그 힘든 군대생활하면서 모은 피같은 돈을 못난동생에게 내주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꼭 한마디를 하였다.

"동생아  !   형이 좋아서 이러는게 절대 아니다.

내 너를 지금 귓뺨을 때리고싶고, 죽도록 패버리고 싶지만 난 너를 믿는다.

이제부터  새로이 시작하는 너를 믿는다.

이러고도 정신을 차리지못하면 너는 내동생이 아니다.

부디 잘살고 잘 생활해라 "

 

정말로 미안했다.

할말도없었다.. 참으로 못난 동생일 뿐이었다.

그때 느낀것이 아무리 어떤일을 해도 졸업하기전까지는 조용히 절대 형이나

가족들에게 피해나 걱정을 끼치지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몇달이 흐른 어느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돌아왔다.

자취를 하자보니 내마음처럼 혼자만 잘살고싶은데 그게 잘안되는날이있다.


 그전날 친구생일이라고 친구녀석들이 몰려와서 술마시고, 담배피우고

자취방이 아주난리 이런난리가없다.

나홀로 있을때는 정리정돈잘하고,항상 깔끔한 모습과, 형이 한번도 방 구해준이후

안와봤기에 언제올지모르는 형을 위해 준비를 해주고있었는데

이것이 무슨 전쟁터라는 말인가?

빨리 치우자.. 어서 치우자...팔을 걷어 붇이는순간

멀리서 당동딩동 ~~

누구람 ?

누구 손님인가하고  문을 열어주던 그순간 .

나는 얼어붙은줄 알았다.

세상에 형이다.

형이었다.

 

 

갑작스러운정도는 표현이 안되었다.

" 야 잘있었냐?

여기 근처 동기집이잇어 왔다가 들렸다.

잘살지  ㅎㅎㅎㅎ~~"

 

"형 ~~형 ~

잠깐만 ...

얼어붙은나는 말이 모기만하게나왔다.

 

"야 임마 !

네가 해주는 밥이나 먹고가자"하는 형은 내방문 가까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방문앞에 나뒹구는 술병들 ,,,

문을 여는순간 , 담배피우다 얼른끄고 상황을 파악하는 친구들 ..

뿌연 담배연기속에서 전쟁터가 된 방과 부엌을 보는형은 눈빛은 카리스마적인 그런눈빛도

아니었고 촉촉히 젖은 눈빛은 차라리 슬퍼보였다.

 

그어떤말로도 설명할수가없었다.

입에서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뭔가 변명이라도 해야하는데 말이 떨어지지가 않았고 그저 이순간이 꿈이었으면...

 

형도 말이없었다.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곤 다시왓던 대문으로 걸어가는것이었다.

"형!   형!  나는 뒷쫒아 나가 형을 불렀다."

묵묵히 가던형은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나를 몇초간 아무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마디만 했다.

"형   간다"

그말하는 눈빛을 지금도 잊을수없다.

그리고는 말없이 형은 걸어갔다.

조금씩 멀어지는 형을 보면서 나는 눈물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모른다.

하염없이 나오는 눈물을 주체할길이 없었다.

 

멀리 군복을 입고 쳐진 어깨를 가르며 걷는 형을 보며 눈물이 멈추질않았다.

우는 와중에도 형이 택시를 타주길바랬다.

기본요금이 600원, 이리역까지 형이 타고 가주길바랬다.

하지만 형은 걸어갔다.

나는 멀어지는 형을 보면서 울었던 기억을 지금도 잊지를 못한다.

아마 형도 그당시 나처럼 울지않았을까?

 

차라리 몇대 맞고 욕이아 싫것먹었다면 그렇게 서럽지는않았을텐대....

 

 

나는 형을 보면 언제나 

"내자신과의 싸움에 강해져라"

형이 나에게 하는말인것같다.

내자신에게 절대 지지않는 강한 내자신의 주인으로 나에게 살라고 이야기하는것같다.

힘들고 냉정한 이세상을 살아가매  다른이들에게는 지더라도 철저히 내자신에게만은

더욱더 냉정하고 강한 그 정신으로...

 

형에게는 항상 빛진느낌이다.

살아가면서 천천히 갚아야지 ...

 

형만한 아우는 없다고한다.

하지만 내마음속의 스승, 형에게 한마디여쭙고싶다.

 

형만한 아우가 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이전쟁같은 삶에서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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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권 박사.

 

이 분을 말할 때 가장 빼놓을 수 없는 표현이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다.

삶의 내공에서 우러나오는 그 내면의 기가 사람들에게 등대의 역활을 해주고 있다.

 

대한민국 0.1%안에 드는 남자.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강사로 최고의 줏가를 올리는 남자.

내가 가장 좋아하는 1인기업가. 이영권박사의 닉네임은 많다. 박사,교수,스타강사,자기계발 전문가

 

39세 임원, 조선일보 일면 톱으로 나온 사람.

아버님을 일찍 여의고 고난과 힘든 학창 대학 시절,술로 세월을 보내던 중 한 선배의 조언이 그의 일생을 바꿔놓았다.

"영권아~ 너 왜 이렇게 사냐? 글로벌 경쟁시대에 영어 하나 제대로 죽이면 성공할 수 있단다."

그후로 15시간을 영어공부에 매달려 최고의 회상에 입사하여 최고의 출세가도를 달린 사람.

1977년부터 8년간 미국에 살면서 우리 나라만 오면 왜 이렇게 내가 재수없는 나라에 태어났는가?

18,18을 왜쳤던 남자.

그가 세일즈맨, 세일즈매니저, 세일즈 팀장도 아닌 일개 자동차 세일즈맨인 <조지 브라운>이라는 사람을 멘토로 삼아 사람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준비된 사람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고기를 잡아 주는 것보다 잡는 방법을 알려주자.

 

지금보다 2시간 일찍 일어나라( 달에 10분씩 감축)

일찍 일어나는 새가 모이를 하나라도 더 많이 먹는다.

잃어 버린 시간을 찾을 있다

습관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지체되던 출근 시간을 대폭 단축할 있다

  

. 약속을 지켜라

- 신용이 생명이다. 약속시간에 30 먼저 도착하라(후광효과를

긍정적을 활용)

- 조용히 앉아 읽을 여유가 생긴다

  . 건강관리를 하라

- 매일 꾸준히 30 이상 운동 해라

 

 이미지 관리를 하라

- 자기 전에 날의 가장 잘못한 것들을 반성하라

- 미인대칭(미소 짓고 인사하고 대화하고 칭찬하라)

 . 사람관리를 하라

- 모든 일은 휴먼 네트워킹에서 비롯된다. 사람들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유지하라. 인맥관리에 편지쓰기 만큼 좋은 것은 없다.

 

. 다독하라

각계 각층의 사람과 커뮤니케이션 하려면 다양한 방면에 박식해야 한다

일주일에 적어도 , 달에 적어도 4 이상의 책을 읽어라.


 

성실(텃밭)하고 유능(씨앗)해야 한다. 공부잘하는 사람이 유능만 하면 사기꾼이다.이영권박사의 1인기업 노하우 세가지.

 

1.성실과 유능은 기본이다.

 

성실이라는 텃밭이 있어야 유능이라는 씨앗을 심을 수 있다. 공부 잘하는 유능만 한 사람은 사기꾼,정치인되기 쉽다. 성실이 기본이되 유능도 해야 한다. 고기를 잡아 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한다. 성실의 기본은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다. 아침에 방해받지 않는 1시간은 오후의 3시관과 필적한다. 부지런한 거지 없고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하나라도 더 먹는 법이다.

아침에 30분이상 운동을 하거나 명상을 하면 삶이 달라진다. 건강은 보너스로 따라온다.

남과 똑같이 하고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도둑놈 심보다.

 

2. 습관이 성공을 만드는 쇠심줄이다.

 

쇠줄을 한가닥 한가닥 꼬으면 절대 끊을 수 없는 힘을 발휘한다.

성공자들은 모두 지독한 습관의 달인들이다.

새벽을 깨우는 것도 습관이다. 약속시간 30분 일찍 가는 것도 습관이다. 늦게 오는 사람은 항상 늦다.

말이 많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편지쓰기 일기 쓰기,독서도 다 습관이다.

하기 싫지만 하는 사람이 성공한다. 절약정신도 습관이다.

 

3. 한달에 4권의 책은 꼭 읽자.

 

급하면 만화책이라도 읽어라. 읽는 습관이 중요하기 때운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사업을 하려면 박식함은 기본이다. 다독하라. 다독하면 사람이 겸손해지고 생각이 달라진다. 달라진 생각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이영권 박사가 말하는 모든 부자들의  공통점은 (이것은 1인기업가도 해당된다.원리가 비슷하기에)

 

- 빈손으로 시작했다.

- 투철한 절약정신이 있다.

-신용을 목숨같이 여긴다.

-한방은 없다.

-모든 것은 내 책임이다.

-올바른 선택과 집중을 한다.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 시간은 돈이고 금이다.

오늘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이가 그토록 바라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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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최고의 마인드를 가지고 싶은 사람, 연구하고 싶은 사람 1위는 역시

도널드 트럼프다.

 

세계 400대 재벌인 그가 1주일에 28시간 잠자고 28시간 책을 읽는다.

술과 담배는 전혀 안한다.여자를 밝히는 것도 아니다.

이 남자가 사는 법이 나는 당최 궁금하다. 책도 몇년에 한권 꼴로 나온다.

인세 수입을 얻기 위하여 그가 책을 집필할까?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다.

이 사람의 진정한 꿈과 열정을 본받고 싶다.나는 이론가를 믿지 않는다.

 

 

미국 최대의 부동산•카지노 재벌로 41세에 이미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지닌 부동산 제국의 황제가 되었다. 그는 1968년 워튼 스쿨을 졸업한 후 건설업과 임대업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곧바로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어 아파트와 호텔을 사들이고 건축과 임대, 리모델링 사업을 벌였다. 1980년대 말에는 부동산 시장이 붕괴되면서 1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채무 속에서 허덕이기도 했다.



 

 

3번의 결혼과 이혼, 지금 나이가 64세다. 하지만 지금이 최고라고 말하는 남자.

손주가 있고 27살 차이가 나는 아내와 사이에서 4살난 아들이 있는 남자.

그는 결코 평범과는 거리가 먼사람이다.

1980년 대 그는 잘 나갔다.

트럼프가 만지는 것은 무엇이든  황금이 된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부동산 불황으로 그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92억달러의 부채가 그것이다. 내인생에 큰 실패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가금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뭐냐고 묻는다. 아마도 배움이 가장 맞는 답이다.

"배움을 통해서 우리는 새로워진다. 하루중 일정 시간은 자신의 안목을 넓히는 데 써야 한다.

부자가 되려면 가장 먼저 자신에게 사랑해야 한다. 어떤 일이든 문제 해결은 열정이 90%는 해결한다.

 

나는 일주일에 28시간 자고 28시간 독서를 한다. 당신은 어떤 노력을 하는가?

 

가치란 잡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세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아예 투자하지 않는 사람, 지지 않으려 투자하는 사람, 그리고 이기기 위해 투자하는 사람이다.

 

크게 생각하라~ 크게 생각하라  제발 크게 생각하라~~

 

검증된 사람만을 믿는다. 검증되어 자신이 이룩한 제국을 차린 사람을 더 신뢰한다.

이렇게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은 그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국가에게 큰 봉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이기기 위하여 투자하는 사람, 일단 작게 시작하고 자신의 훔그라운드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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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드슬램

 



내 평생 쓸 닉네임을 정했다.

2003년에 이름이외에 쓴 필명말이다.

 

어떤 한 사람 때문이었다. 나는 이 사람이 좋았다.

1%의 가능성만 있으면 포기하지 않는다는 불굴의 신념의 사나이.

히말라야 14좌 거봉 등반,7대륙 최고봉 완등, 지구 3극점을 도보로 걸어간 사람을 이 지구에서 부르는 명칭이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는 사람을 호칭하는 말이다.

이것을 지구촌에서 2003년 5월1일  최초 달성한 사람이 있으니 한국이 낳은 최고의 사나이

산악인 방영석 대장이다. 그 순간 내 평생 닉네임 그랜드슬램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혹한 속에서

영하 5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 날카로운 빙탑, 얼음이 갈라지며 드러난 바다, 눈을 뜰 수 없이 강하게 불어대는 칼바람, 한치 앞도 파악할 수 없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북극곰, 동상으로 찢어질 듯 에는 손과 발, 식량과 장비 등 100㎏이 넘는 무거운 눈썰매를 끌고 하루도 쉬지 않고 800㎞를 걸어 그는 북위 90도에 태극기를 힘차게 꽂았다. 지도상 거리는 800㎞지만 몇 번씩 미끄러지고 돌아섰던 것을 계산하면 2000㎞는 걸었을 거란다. 상상을 초월한 최악의 조건에서 그는 홍성택·오희준·정찬일, 3명의 대원들과 함께 쾌거를 이뤘고 세계 탐험사를 새로 썼다.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후 찍은 사진에는 추위에 퉁퉁부은 얼굴에 고드름 달린 수염, 털모자 등 에스키모 영감 같았는데 직접 만나본 이 영웅은 웨이브진 긴 머리에 날렵한(?) 몸매여서 마치 뮤지션 같았다. 북극 원정으로 체중이 13㎏가 빠졌단다.

몇 걸음도 걷기 귀찮아 택시를 타고,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고, 손가락으로 리모콘만 까딱대는 귀차니스트들. 항상 ‘어떻게 하면 쉽고 편하게 사나’만 궁리하고 심지어 ‘알라딘의 램프’에 나오는 지니 같은 요정이 나타나 무엇이든 해결해주기만 바라는 게으른 종족들에겐 목숨 걸고 이뤄낸 그의 위대한 업적이 때론 ‘사서 하는 고생’이나 가학적인(?) 고행 같다.

“탐험은 제 존재이유니까요. 때론 울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 욕이 절로 나오지만 제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 목표를 세워 그걸 이뤄낸다는 쾌감은 말로 설명 못해요.”




6남매 중 장남인 그는 어릴 때 칭찬받은 기억이 없단다. 서울 남산 근처에서 자란 그가 유일하게 칭찬을 받은 것이 “산을 잘타고 나무에 잘 기어오른다”였다.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사주신 ‘김찬삼의 세계일주’란 책은 그의 영혼을 흔들었다. 탐험가가 되고싶다는 생각에 그 책을 몇 번이나 읽었다. 고등학교 때 시청앞을 지나다 동국대 산악부가 히말라야 원정에 성공해 카퍼레이드를 하는 것을 보고 산악인으로 살기로 결심했다.

동국대 입학 후 그는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산악인으로 급성장했다. 폐가 터질듯한 고산증, 언제 만년설에 묻힐지도 모르는 눈사태, 체력의 극한까지 가는 탈진의 위험을 모두 극복하고 숱한 산을 올랐고 이젠 걸어서 북극까지 정복했다.
“극한 상황들은 예상을 하고 가기 때문에 두렵지 않아요. 죽음도 별로 겁나지 않아요. 어차피 목숨은 하나뿐이고 죽고사는 건 팔자라고 생각해요. 떨어져 죽을 팔자라면 히말라야에서가 아니라 자기방 침대에서 자다가도 떨어져 죽을 거예요.

가장 무서운 건 나 자신이죠. 나를 이기는 게 제일 힘들어요. 약해지려는 자신과 타협하는 순간, 모든 게 끝이에요. 이번에도 30일 남겨놓고 식량과 연료를 절반이나 버렸어요. 그러니 살려면 빨리빨리 갈 수밖에 없죠. 그동안의 모든 실패는 내가 나와 조금씩 타협하며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었어요. 이번 그랜드슬램 달성은 내가 나를 이겨냈고 대원들이 날 믿고 따르며 모두 함께 이뤄낸 일이라 더욱 기쁘고 자랑스러워요.”

역경지수가 높아야 성공한다

그 어느때보다 힘든 요즘이지만 우리의 몸과 마음이 유난히 나약해진 것은 사실이다. 하루에도 몇 명씩 성적이 떨어졌다고, 카드 빚을 못 갚았다고, 성형수술이 잘못 되었다고, 자식에게 폐가 되기 싫다고 초등학생부터 80 노인에 이르기까지 자살을 한다. 죽지는 않아도 가족과 사회를 원망하며 이 세상을 지옥으로 여기는 이들. 또 혹시라도 도전에 실패해 겪을 좌절과 고통을 두려워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는 이가 얼마나 많은가.

박 대장이라고 성공의 달콤함만 맛보진 않았다. 숱한 실패를 경험했고 바로 눈앞에서 7명의 대원이 죽어가는 아픔을 겪었다. 당장 몇 초 후도 알 수 없는 변덕스러운 기후, 보급되지 않는 식량, 갑자기 떨어지는 체력이나 사고 등이 일상인 탐험의 세계에서 그는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했다.

“실패는 엄청난 공부고 최고의 스승이에요. 단 최선을 다한 실패여야죠. 어설픈 실패는 뭐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거든요. 성공은 실패나 역경을 얼마나 잘 극복했냐에 달려 있고 그래야 더 큰 성취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어요.”

미국의 커뮤니케이션 학자 폴 스톨츠는 ‘장애물을 기회로 전환시켜라’란 책에서 이제 IQ나 EQ보다 AQ(Adversity Quotient), 즉 역경지수가 높은 사람이 성공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경지수란 수많은 역경에도 굴복하지 않고 냉철한 현실인식과 합리적인 판단을 바탕으로 끝까지 도전해 목표를 성취하는 능력. 스톨츠 박사는 사람들을 역경에 포기하는 ‘퀴터’(Quitter), 대안 없이 안주하는 캠퍼(Camper), 그리고 모든 능력과 지혜로 기어코 시련을 정복하는 클라이머(Climber)로 분류했다. 클라이머는 자신만 역경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동료들을 격려하고 북돋우면서 함께 정복하는 이들로 박영석 대장은 가장 대표적인 클라이머다.

26세 때부터 ‘대장’을 맡아 대원들을 이끌어온 그는 자기 손에 목숨을 맡겨놓은 대원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항상 최선을 다했다. 위기에도 당황치 않고 정확한 상황판단과 역할 지시는 물론이고, 북극까지 맥주와 과일을 꽁꽁 싸서 가져가 대원들의 생일축하 파티를 열어주는 자상함, 무엇보다 자기를 버려야 대장 자격이 있단다.
박 대장은 세계인들에게 “봐라, 한국인이 이렇게 위대하고 저력 있다”고 알렸다는 자부심도 크지만 정부에 대한 섭섭함도 감추지 않았다. 등반이나 탐험 역시 국력에 좌우되는데 산악인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소홀하다는 것.

“외국에 가서 제 신분을 밝히면 금방 ‘Sir’라는 존칭을 써요.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힐라리 경도 양치기였지만 작위도 받고 영웅으로 존경받죠. 저야 복이 많아서 제가 근무하는 회사며 후원자들이 있지만 다른 산악인들은 그저 할 일 없어 산에 오르는 사람 취급받잖아요. 2년 전에 실패한 이유는 날씨 때문에 캐나다 측의 식량지원을 못받아서였는데 며칠 후 영국팀에는 전달을 해줬더라고요. 이번에 가서 물어보니 영국 정부에서 신경을 쓰고 지원을 해줬다더군요. 노벨상 타는 분야에만 지원할 게 아니죠.

IMF 이후에 주목받긴 했죠. 고통을 겪는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줘야 한다며 저같은 산악인들이 여기저기 많이 불려다니며 강의도 하고 그랬죠. 그런데 우리만 열심히 하면 뭐합니까.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연말이면 잘사는 동네의 아스팔트나 보도 블록은 다시 깐다고 뒤집잖아요. 그렇게 남은 돈 다 써야 내년 예산이 늘어난다면서요. 그 돈을 청소년가장, 독거노인들에게 쓰면 얼마나 좋아요. 수십 년 동안 반복되는 일인데 시민단체들은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어요.”




역경지수만 높은 게 아니라 표현지수도 높은 박영석 대장. 그에게 그랜드슬램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세계지도를 펼쳐보면 아직도 못 가본 곳, 탐험하지 않은 곳이 수두룩하기 때문에 가슴이 뛴다. 그러면서도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비우고 겸손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자연을 상대로 하는 일이라 욕심을 부리면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언제나 위험이 도사리고 있고, 항상 죽음과 맞서야 하는 그에게 혹시 사주나 점은 봤냐고 물었다.

“한 번도 안 봤어요. 점은 나약하고 자신 없는 사람, 그리고 나쁜 일을 많이 하고 사고친 이들이나 보는 거죠. 전 늘 ‘인명은 재천,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자기최면을 거니까 앞일도 걱정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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