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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의 첫눈이 내리고있다.

지금 시각 12월 4일 새벽 03시 02분  ... 나는 새벽을 깨우고 있다.

 

 

간밤에 내 사랑하는 가족들과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또 먹는 것이지만 삼겹살은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가 아니하고 참으로 최고 음식이다.

사랑하는 내 아내는 항상 준비가 대단하다. 

나는 마늘에고추, 상추면 된다고 우기지만 아내는 항상 버섯, 솔 ( 부추라고도 한다.) 여러 갖은 야채를 많이도 준비한다.  이렇게 준비를 많이해서 먹어야 맛이 더 좋다고 한다.  이렇게 음식 잘 하는 아내를 만난 것은 내 생애의 최고의 선물이다....

꼼꼼한 아내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털털한 나는 힘으로 하는 불판이며 휴대용버너, 삼겹살 먹을 준비를 한다.  결코 부드러운 그릇이며 세심한 것은 나를 시키지 않는다. 다 깨 먹는다고...

한가지...  소주는 항상 한병 냉동실에 넣어놓는다. ( 살짝 김이 서리 내린 것처럼 얼린 소주가 제 맛이다.)

 두 아들들의 먹성은 참으로 좋다. 음료수도 흘려가며 아내의 잔소리도 들어가며 밤이 깊어가면서,시끌 법석한 소리가 집안을 울려도 그래도 삼겹살은 하염없이 잘도 익는다.

예전에는 바짝 익힌 살짝 탄 삼겹살이 좋았는데 지금은 부드러운 삼겹살이 참으로 좋다.

상추를 펴서 먼저 밥을 넣고 삼겹살을 올리고 쌈장을 넣은 다음 마늘과 고추를 넣는다.

소주 한잔을 입안에 털어 넣은후...   "  캬~    "  를 꼭 한 번 한다.    이 소리가 나야  맛이 더나지...그리고 삼겹살을 먹으면 그 맛은 임금의 수랏상보다 더한 맛을 준다.

아내와 한잔 건배를 한후 두 아들의 먹는 모습을 보면 잘도 먹는다... 그래 내가 열심히 살아야 겠구나.  저놈들 입안에 저 맛나게 먹는 삼겹살을 먹게 해 주려면 열심히 돈을 벌어야 겠구나.... 하는 경각심도 생긴다...

 

삼겹살을 먹으면서 두런두런 아내와 세상사는 이야기 또는 요즘의 나의 일과 근황도 솔직히 일러둔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위로해주고 알아주는 나의 소중한 사람과의 대화는 삶의 최고의 할력소이다.

가족은 내가 살아가는 최고의 희망이고 행복의 처음이다.

가족 ....

세상에서 가장 긴 끈이다.  내가 살아가고 살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나 혼자만의 삶이 었다면 나는 이렇듯 세상을 열심히 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내에게는평생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싶다. 못난 나에게 와서 온갖 고생에 듬직한 아들 둘 낳아주고 맛있는 음식을 해 주는 아내는 나의 가장 소중한 존재이다. 

 

소주 한 병을 비운후 아내와 맥주로 입가심을 하면서 마무리를 짓는다. 두 아들놈들은 연신 장난이다.

나는 슬슬 취기가 올라오면서 눈이 졸리다.  오늘은 토요일.. 참으로 추운 날이었지.... 그리고 나는 아홉시도 못 되어서 일찍 잠이 든다..... 쿨쿨쿨 ...

행복은 이런 것이다.........   항상 잔잔하고 내곁에 미소를 짓는다...

 

깨었다....  아침인줄 알았다.   새벽 2시 30분 여분 ...

아내는 그때까지 잠도 안자고 내가 빌려온 톰크루즈의 우주전쟁을 보고 있다.

이 사람이 시간이 몇시인데 안자고 있냐니  오늘이 토요일이고 내일 애들 학교도 안가고  지금 창박에 첫눈이 온다고 한다.

뭐야 ... 나는 커튼을 젖혔다.   참말로 첫 눈이 소복이 온 세상을 덮쳤다.  아니 다 흰 것으로 만들었다.

나는 옷을 챙겨 입었다.

아내가 한 마디한다.  자기하고 나하고 바뀌었단다.  자기는 눈오면 눈 치우고 길 미끄러워서 여러가지로 싫은데 여자처럼 저리 눈 좋아한다고 한마디 한다.

이 사람아  첫눈 오는데 여자고 남자고 어디가 있어 ....   얼마나 좋아  나는 한 마디하고 나와 본다.

정말로 아름답게도 눈이 온 세상을 다 덮어버렸다.

참으로 이 아름다운 세상이구나...  그런데 왜들 아웅다웅 힘들게들 살아가는지.....

하얀눈을 하나 뭉쳐서 저기 나무에 던져보았다. 단 한 번에 명중이다.

저기 오르막에 차 한대가 미끄러워서 올라가지를 못하고 몇번을 오르락 내리락하다가 아예 멈추어섰다.   헛웃음이 나오고 잘 올라가기를 기도해본다.

아 그랬지 ....  그날도 이렇게 첫눈이 내렸지....

 

 

나는 또 내 열아홉살의 기억, 1989년의 기억속으로 또 떠나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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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탈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항상 여행을 떠나는 느낌을 주고는 한다.

덜컹덜컹 소리도 좋지만 통로를 지나는 곳에서의 밖의 풍경은 웬지 영화 인 듯한 느낌도 준다.

담배를 한대 피워물고 후~  하고 내뿜으면 그 담배냄새 마저도  운치를 전하는 느낌이다.

통로사이로 삶은 달걀있어요,  음료수 있어요, 시원한 맥주도 있어요~   하고 감정이 없는 듯한 아저씨의 말에는 기차에서만 볼 수있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돈이 없다.   그나마 내 몸엔 동전 몇닢도 되지 않는다.

생각이 교차한다.  이리에 내려서 친구들에게 소주도 한잔 사 달라고 하고 차비도 신세지어 내일 다시 인천으로 올라갈까?    아니면 무작정 서울까지 가 버릴까?    친구들에게 다시 찾아가서 신세를 진다는 것은 쪽 팔리겠지....    아니야... 친구 좋다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차피 서울에 도착해도 열 두시가 넘을 것 같다.

서울에서 인천가는 전철이 끊기면 어느곳에서 밤을 세운다는 말이냐...  시간도 어중중 한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돈이 없음이다.   없는 탓이다.  아니 무능하고 준비하지 못한 나의 탓이다.

일단 잠을 한숨 청하자....   얼마후에 긴장한 탓인지 깨었다..

검표원들이 가끔 확인을 하고도 한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이리역을 10여분 남겨두고 있다고 한다.

무려 3시간 가까이를 온셈이다.  시간은 어느 덧 저녁 9시를 다 된 것 같다.

결단을 내렸다..   무조건 가고 보자.  쪽 팔리게 신세를 지기도 뭐하고 전철이 끊길 것 같지는 않았다.

이제 자리를 내어 주어야한다.  나이 지긋한 분이 한분 앉으신다. 나는 이제 자리가 없는 신세 ... 

담배를 피워 물었다.

올라가 보자...  기차값은 이리까지 이지만 서울역에서 어떻게 말로 떼우든 아님 담을 뛰어넘든 인천으로만 가자   그 생각 뿐이었다.    서서 가는 시간은 길고도 지루하다.

담배도 피워보고 창박을 아무리 쳐다보아도 더딘 시간은 멈추어 버린 듯 하다.

쪼그려도 앉아보고 서있기도 해 보고 이런 저런 자세로 있다 보니 몸의 피곤이 더 찾아온다.

검표원들의 눈도 피해보고 쪼그려 잠도 살짝 청해보고 서울로 가는 길은 피곤하구나.

친구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자식 차비좀 넉넉히 좀 주지...

아니 내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찌 그리 생각이 짧다는 말이냐...  비상금이라는 것도 모른다는 말이냐...   그렇게 기차는 나의 의지와는 아는지 모르는지 하염없이 가고만 있다.

삶은 판단의 연속이다. 생각의 차이가 나를 키우고 작게도 만든다.어떤 판단을 하든지 나홀로 책임을 지어야한다.

 

어느덧 기차는 서울에 진입하여 용산역을 다다르게 된다.

시간은 12시를 넘어서있었다.

스산한 날씨에 찬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오고 있었다.

기차를 많이 타보진 않았지만 웬지 플랫홈에서 더한 바람이고 낯선곳에서의 추위는 더욱 살을 에는 듯하다.   사람들이 종종 걸음으로 모두들 개찰구를 나가고 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무리들과 떨어져서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에 잠겨본다.

표받는 아저씨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여 사정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고 정문으로 나가야하나... 아니면  저 내 키보다도  2배는 훨씬 높아 보이는 저 방호벽을 넘어서 몰래 월담을 하여야하나 ..   월담하나는 자신이 있지를 않는가?  철 구조물 사이사이를 건너서 높겠지만 다리 조심하고 펄쩍 뛰면 그만이 아닌가? 

 

여러 생각에 잠기는 순간 사람들은 어느새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결정을 내렸다.

개구멍을 통과하느니 당당하게 걸어나가자...  그리고 솔직하게 말하고 이해를 구하여 정중히 사과하자..  도망치고 내 앞의 현실을 대충 살지는 말자..

 

모든 사람들이 다 나간다음 나는 아저씨에게 다가가 몇분에 걸쳐서 상황 설명과 사정을 이야기하니 아저씨는 다시는 그러지 말라면서 웃으며 나를 내보내 주셨다.

드디어 나는 서울에 온것이었다.

뛰어서 전철역으로 가보니 20여분 전에 막차는 끊어지고 말았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1시가 다 되어가고 나는 일단 용산역광장에 우뚝 선채 갈피를 잡지를 못하고 있다.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한끼만 걸러도 죽을 것 같은 내 위장은 나를 많이도 원망하는 듯 꼬르륵 소리가 났고 호주머니에는 채 200원도 안되는 동전 몇개만 있을 뿐이다. 담배도 열차에서 많이도 피워대어서 몇가피 남지도 않았다.

내 몰골이 한심해 보였다.

겉은 겉멋만 잔득 들어서 정장에 바바리코트 까지 입고 머리는 무스까지 발랐지만 나는 빛좋은 개살구 아닌가?     

저기 포장마차에 들러서 우동 한그릇을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몇천원만 있어도 저기 심야 만화방이라도 가서 대충 시간을 보내어 잠든후 첫차를 타면 될텐데 나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를 않는구나..

여관 아닌 여인숙에 갈돈도 없었다.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도 비싼 요금이었다.

정글의 세계에서 나는 기본을 가지지 못한 존재가 되었다.  돈은 약속아닌가?  내가 행하고 그 것을 취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힘을 나는 잃었다... 

 

서울에 아는이도 특별히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댓가를 치루어야만 한다....  그렇구나  댓가를 치루어야지.

저 네온사이 반짝이는 그 어떤 곳에서 나를 반기고 내가 반기면서 들어갈 곳이 없다면 나는 움추리고 이 새벽을 보내어야겠지...

용산역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쾌 사람이 된다.

오늘 밤은 여기서 보내야 하는 구나   그래 4시간 정도만 버티자.  첫차를 타고 인천으로 가는 것이다.

그 많은 시간중에서 겨우 4시간 아니냐...  난방시설이 되어있지만 추워 얼어죽을 정도도 아니고 참을만 하지도 않느냐...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참으로 한심한 내 자신이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이런 결과을 초래하는 것이다.

그 많은 삶중에서 이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따뜻한 곳도 저리도 많은데 이렇듯 초라하게 있는 것은 또 무엇이냐...   얼마나 무능력하느냐...

친구가 많이도 원망도 들었다.   자식 매정한 놈 차비줄 것이면 돈 만원 더 주었으면 이리 고생은 안하지 .. 친구를 이렇게까지 거지로 만들어서 이리 고생을 시켜야하느냐....

아니다  아니다....  다 못난 내 탓이다.  사람이란 최선의 비상금은 챙겨서 유사시를 대비하여야지 그 많던 돈 친구들과 술 퍼마시다가 다 쓴 나의 탓이다.

돈은 있고 보아야 한다.  여유있게 있어 보아야 한다. 남들도 똑같은 사람이다. 나라도 그리 되지 마라는 법은 그 어느곳에도 없다. 써보고 나서 있는 놈들을 이야기 해 보아야 한다 ?

 ( 아니다 !  있는 놈들이라고 하면 안된다.  있는 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다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지독히 고생하여 부자가 됐는데 누가 나보고 있는 놈이라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나...)

고생 단단히 해 보아야  다시는 이리 못난 꼴 안 보이지...   여러 가지 생각들이 나를 맴돌았다.

 

어른들이 그랬던가?

추운 겨울 날에는 뱃속이 허하면 안된다.  따뜻한 국물 챙겨먹고 밥 많이 묵고 다녀라...

다른 것은 다 참겠다. 하지만 이 배고픈 이 속만큼은 참지를 못하겠다.

새벽 2시가 넘고 역안은 난방시설이 없어서 을시년 스럽게도 더욱 추워졌다.

오리털 파카를 단단이도 껴입은 저 아저씨가 너무도 부럽다.

가까이에 웬 게슴치리한 눈빛을 한 아줌마가 나에게 슬며서 다가와서 조용이 이야기한다.

총각 놀다 가지 않을라우?  뭘 놀다가라는 이야기 인가?

남의 속도 모르고 염장을 지르고 있구나....   아줌마 됐어요...

인상을 팍섰다....   한시간후 또 다른 아줌마가 연애나 한번 하고 가라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시간이 이렇듯 더디게 간적이 없는 듯하다.  의자에 앉아있다가 추어서 서서 걷기도해보고 앉앗다 일어섰다  해보았지만 정말 시간은 멈추어 버린듯 하다.

마지막으로 피워버린 담배도 이제는 다 떨어졌다. 

새벽 3시를 넘어섰지만 아직도 2시간은 더 버텨내야 한다는 말인가?

옛일들을 생각도 해보고 여러 잡념의 생각에 생각을 또 하고 해 보았다.

잠을 청해 보려고 눈을 감고 아무리 있어도 추위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갈 수록 느쪄지는 것은 정말로 배가 고프다...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개장이나 해장국을 한그릇만 먹었으면 어린놈이지만 소주도 한잔만 했으면 ...  상상 속에서 나는 몇그릇을 먹었고 몇병을 비워됐는지 알 수가 없다.

새벽 4시가 넘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저기 아저씨에게 용기를 내어서 담배한가피를 얻어서 피웠다...  정말 꿀 맛 이었다.    이 추운 날씨에 이것도 불이라고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까지 필터까지 피운 듯하다.

이제 한시간만 더 버티면 된다.   한시간이다.  한시간이면 된다.....

 

그렇게 버티어서 나는 5시 20분 첫차 인천행전철에 올랐다.

차비도 없었고 차표도 없었기에 그냥 뛰어넘었다.   죄책감도 들지 않았고 미안함이나 남의 시선따위는 두려운 마음이 없었다. 누가 왜 무임승차 하냐고 묻는다 해도 이제는 모든 것에 지쳤다.

전철안은 너무도 따뜻했다.   이렇듯 따뜻한 곳은 어머니 품속 말고는 없었을 것이다.

살았다.... 나는 이제 살았다...   정말 살았다...  이런 생각이 너무도 들었다.

전철안에서 바라본 세상풍경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아 !  살다보니 이런 날도 있구나...

 

동인천역에 도착하였다.

누가 보건 말건 또 넘었다.   광장에 나오니 사람들도 없었고 아직 버스가 다니지 않았다.

아 참  택시비도 없지... 택시로 20분은 족히 가는 하는 길이었다.

누구한테 아쉬운 소리 할 수도 없다.  그래 걸어가자 ..  이제까지도 왔지 않느냐...

걸으면 한시간 조금 더 걸리지 않겠나.... 무작정 걸었다...  걷고 또 걸었다.

참으로 내 자신이 너무도 한심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상 가상  어떻게 이런일이 있을 수가....

세상에 하얀 첫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방울, 한방울 정말로 하늘에서 구멍이 난 것처럼 펑펑 너무도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낭만도 잠시 눈과 바람에 얼마나 심하고 세차게 내리는지 앞을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눈과 추위와 바람에 아 !  얼어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도 이어지는 이런 고통에 눈물이 날 것 같다.  아니 흘리고 싶었다.

이건 아니다 싶어 걸은지 30분 만에 마지막 용기를 내어서 택시를 잡아탔다. 진작에 탈 것을 ...

아저씨에게 사정얘기를 하고 회사기숙사에서 돈을 가져다 드리고 1000원 더 드린다고 했더니 아저씨 참으로 친절도 하다.   나는 그리도 열심히도 걸었던 그 길을 택시는 무슨 타임머신 이라도 되는 것처럼 금새 10분 만에 회사에 도착하였다.

자는 친구놈 깨워서 돈을 빌려서 택시비를 주었다. 

아직 어두운 시간 아침 7시가 되지 않은 아침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밤의 새벽이었고 긴하루 였다.

 

판단의 미숙으로 생긴 나의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되겠지가 만들어낸 나의 불찰이었다.

돈이라는 생활의 일부를 무시한 극악한 처방이었다.  누구도 원망 할 수가 없는 시간의 다툼이었다.

나는 제대로 돈의 위력을 실감하였고 없음에 대한 고통의 댓가를 치루어낸 내 인생에서 가장 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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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벌고자 하는 마음은 열린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생각하는 것이다. 열린 생각이라는 것은 이런 것이다. 단 한번이라도 돈이라는 것으로 고통을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거나 없음으로 인격적 모독 또는 구차함, 이질감, 눈물이 나도록 힘겨움을 당한 기분이 있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배고플 때 라면값도 없는 것이 열린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돈에서 자유롭고 싶어한다.

돈이라는 이 거대한 친구에게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느끼게 하는 이 보잘 것 없는 것에서 삶의 한 부분들이 좋아지게도 아니 생각지도 못한 인연의 사슬을 씌우기도 한다. 웃기지 않는가? 돈은 땅바닥에 떨어져 침에 묻어도 돈이요, 고급 지갑속에 고이 있어도 돈이요, 구깃거리고 노숙자의 더러운 손에서 나와도 돈이라고 하지 않는가?  돈으로 대접받는 세상에서 마음만 편하면 된다. 그저 건강만 하면 된다... 하는 사람들은 고생을 정말 더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이제 솔직해지자. 그리고 돈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고 분해을 해보자.

남과 다른 돈에 대한 철학을 가져야 돈을 벌 것이 아닌가?

돈벌고 싶다면  책을 일단 읽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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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왜 벌어야 하는가?

 

그렇게 힘들게 살아보았기 때문에, 얼마나 힘듦을 알기에, 그렇게 다시 살고 싶지 않기에 돈을 벌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다시 힘들게도 살 수가 있다.

고통을 당해보았기 때문에 다시는 그것이 싫은 것이다.

 

우리는 지인의 마음을 위로해주기 위하여 병문안을 간다.

링거를 꼳고 누워서 있는 그를 보면서 일순 안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속으로 내가 저 자림에 있지 않아 정말 다행이다....   라고 가슴을 쓸어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누어있는 당사자가 나라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넓고 깊고 무궁무진하다.경기도의 몇곳을 들러보고 대한민국을 다 돌아 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태국이나 중국을 여행해보고 세계를 다 여행했다고도 하지 못한다.

세상은 단순하다.  아니 어려우면서도 간단하다.

그것은 내가 해보면 되는 것이다.

내가 모든 일을 해보면 시간이라는 자유를 얻어야하겠지...

삶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것은 시간을 지배하는 자이다.똑같은 자유인일터인데 누구는 왜 힘이들고 누구는 왜 콧노래를 부를까?

 

시간은 돈으로른 살 수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의 자유를 얻은 이는 일과 목표를 이루었기에 더 오래 살고 건강해질 수 밖에 없다.

그들은 운동할 시간도 많고 휴식할 시간도 많으면서 좋은 음식만을 먹는다.

또한 좋은 경치속에서 좋은 공기만을 먹고 살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그리고 좋은 조건속에서 최상의 컨디션으로 일 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항상 최고급 병원에서 최고의 전문의를 만날 수 있다.

 

못된 병이 몸을 힘들어 있는데 돈이 없어 수술을 못 할 상황이라면 여기저기 융통할 곳이 없어 내 가족이 힘들어 한다면....그래도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기가 쉬을 것인가?

누군가 " 돈을 많이 번 후에도 불행했고 돈이 없었을 때에도 불행했다. 하지만 돈 많고 불행한 것이 낫다."  라는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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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정을 간다는 것은 한걸음, 한걸음  그 한걸음이 모여서  이루는 마라톤과  같은 것이다.

 

 

 

 

후배가 코치로 있는 복싱체육관을 입관한 것은 작년 11월경이었다.

복싱체육관을 선택한 것은 나만의 몇가지의 생각에 독특한  발상이었다.

새벽에 시간을 이용하여 아르바이트를 한 업체를 하였었고 정상적으로 낮동안은  나의 일을 하고 있었지만 저녁이면  먼 미래를 위하여 나만의 준비를 나름데로 충실히 하고 싶었다. 

체육관에서  런닝머신을 많이 달려 보았었다.

건강을 위하여 뛸 수도 있고 체력을 기르려 뛸 수도 있다.

런닝머신 숫자에는 몇키로를 뛰고 있다고 숫자 상으로는 나오고 있다.  하지만 뛰는 순간은 언제나 제자리 걸음이 아닌가? 

 인생이라는 장에서 목표를 위하여  내 스스로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지 않나 깊은 생각을 해 보았다.

수많은 성공학 서적과 마인드 강좌에서 나오는

"도전해보아라..!  "    " 시도해 보아라...!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  "   라고 수도 없는 표현을 하고는 한다.  너무나 통속적인 그런 말들이 웬지 싫었었다.

그렇게 노력하고 성실히 최선을 다한다면 무언가 댓가가 어느정도는 도달해야 되지 않겠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럴까 ..!     과연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말인가?

나는 인생이라는 단 한번 뿐인 마라톤에서 나는 런닝머신 앞에서 뛰는 것처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것인가?

아니면 42.195 km  를 위하여 땀으로 한걸음 한 걸음 쉼없이 전진하고 노력하는가...?

등산을 시작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나의 한걸음 한걸음이 정상을 밟는 희열을 자극한다.

코끼리를 한번에 다 먹을 수 없고 한입에 한번씩 먹다보면 서서히 다 먹을수 있다는 것처럼 나는 과연 끓임없이 얼마나 노력을 했다는 말인가?

 

살아가면서   말과 행동이 다르고 이중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을 간혹 가다가 보고는 한다. 나도 포함이겠지만  돈은 중요한것이 아니더라... 마음만 편하면... 그저 내 등뉘이고 먹고 살 걱정 안하고 살면 되지 않겠나... 하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말은  이랬다.    " 이놈의 경기가 문제야 ! "      " 대통령을 잘못뽑고 정치하는 이들이 항상 쌈 박질하니 우리같은 서민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냐 ! "    " 추석지나고 김장철이라서 더 경기가 이모양이고 장사가 안되는 것이야....  "    정말 말들도 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경기탓, 대통령 정치인탓, 겨울로 오는 초입의 어려운탓이라고 말들을 할 수도 있지만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내 탓이다.  내 노력이 부족한 탓이다. 더 열심히 하지못한 내 게으른 탓이다.  돌파구를 찾아야한다,  돈이 되는 일들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야한다. 

이러한 현실적이고 냉정한 판단을 내리고 자신을 반성하는 이들을 본적이 없다.

세상을 바꾸려 한적은 없다.  가장 쉬운 내 자신도 바꾸지 못하고 있는데...

모든 것을 쉽게 판단하고 결정짓는 자기 합리화인 것이다...

 

나에게서 수많은 돈에 대한 사연들이 많지만 이 지난3 가지 이야기는 참으로 잊혀지지도 않고 각기 다른 느낌과 아픔과 생각을 하게 만든 일 들이었다.

나는 생각의 전환이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생각의 전환은 굉장한 힘을 지니고 있다.  내 몸안의 또다른 나이자 동반자라고 생각한다. 지난 3가지 이야기는 내 삶에서 결코 잊고 싶지도 않고 나를 키운 거인같은 반성과 지혜를 주는 이야기이다. 

되돌릴 수는 없지만 나에게 깊은 반추를 상념케하는 나의 지난 이야기속으로 나는 떠나 보기로한다...

 

 

 

 

 

 

 

 

 

 

어린시절 지난이야기 1.

 

 

 

 

어린시절  동생과 나는 심부름을 하고는 했었다.

한달에 한번 정도였을 것이다. 간혹 가다가 두달에 한번 일  때도 있었고 ...

그것은 내가 살던 집과 참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시공부를 하시는 삼촌에게 김치며 여러 반찬을 가져다 주는 일이었다.

지금이야 참으로 자동차로 십여분이면 가는 길이었지만 그 예전 그 도로는 비포장에 굽이 굽이 멀기도 참으로 먼 곳이었다.  

삼촌은 마을과 두어시간 떨어진 곳, 마이산이라고 근처에 있는 이산묘라는 절에서 고시공부를 십년가까이 한 듯 하다.  시험에 합격했다는 소리는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나와 내 동생은 계절마다 반찬을 가져다주는 그 일들이 많이도 힘들었다.

 

외딴집에서 걸어나와 정류장까지 1시간을 걸어야했다.  만만찮은 무게의 반찬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게의 강도가 더해갔고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들은 언제나 지겨웠다.

늦게나마 도착한 버스를 타고 십여분을 가서는 화전마을에서 내렸다. 그 마을에서 부터는 또 한시간을 더 걸어서 들어가야만 했다. 김치며 국물이 있는 반찬은 이리저리 흔들리는 요동질에 새기도한다.

팔은 참으로 아프다.  이 쪽 팔로 조금가다 이 팔로 다시 바꾸기를 수십번 하는 내내 참으로 힘이 들다는 것은 몸으로 느꼈다.

어린마음에도 내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여야하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3시간여를 고생고생하여 삼촌있는 그곳에 도착하면 삼촌은 그리 반가운 얼굴이 아니었다.

어린조카들이 몇시간을 고생하여 땀 흘리면서 가져온 그 음식들을 그냥 당연하다는 듯이 항상 받으셨다.

그리고 이렇다할 여러 말들도 없이 동생과 나는 다시왔던 그 길로 되새김을 하듯 다시 걸어오고는 했다.

양손에 들것이 없다는 그 사실 만으로 기뻣다.

삼촌은 특별하게 차비를 준다던가..  아님 과자값을 준다는 그런 정은 없었다.

그저 그 배송이 끝나면 다시 집으로 갈일이 남았구나   하고 돌아오근 했다...   그때가 국민학교 5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버스시간이 맞지 않았을 때에는 자전거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걸어가는 길이 힘들기도 했지만 음식들이 무거워서 팔이 빠질 것 같아 어쩌면 요령이 생긴것이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도 만만치는 않았다. 족히 자전거로도 두어시간을 갔지만 길은 비포장에 울퉁불퉁하여 모난 곳에서는 넘어지는 일들도 즐비햇다.   가다보면 덥기도 했었고 허기가 져서 배가 고프기도 했었다.    그러던 언젠가 한번은 토마토밭을 지나다가 몰래 토마토를 몇개 훔쳐먹은 일이 있었다.  얼마나 급하게 먹었는지도 모르고  입안 가득 집어 넣은지 한시간만에 설사와 복통으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른다.  ( 그 이후로 나는 도마토를 싫어한다.)

그렇게 항상 고생고생하여 찾아간 삼촌에게서는 항상 따듯한 말 한마디도 그리 들은적도 없었고 돌아가면서 차비나 아이스크림 값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어린나이 였지만 참으로 싫었다.

씨...   과자값이라도 좀 주지.... 내 안에서의 솔직한 바램이었다.

어머니가 주신 차비로 가다가 아이스크림이나 사먹고 걸어가거나 아님 자전거로 가야 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내가 어려서 마음만으로 삼촌을 이해하지도 못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어렸다.

댓가를 받는 생각보다는 내가 고생한 그 부분의 따뜻한 말과 정을 느끼고 싶었다. 내가 고생한 일들을 칭찬받고 진심어린 말 한마디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고 정있는 눈빛으로 차비와 아이스크림 값으로 내 노력의 댓가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마음속으로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백번의 마음속 고마움보다 한번의 행동을 바랬다.   몇년이 흘러 내가 중학교 초기까지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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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살의 지난이야기 2.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취업을 나가서 6개월 가까이 중소기업에서 근무를 하고 취업기간을 다 채워

웠다.   취업기간내 꼭 한번 가고싶었던 곳이 있었다면 내가 몸담았던 학교였고 그때의 친구들 이었다.

지금것 살아오면서 나름데로 행복한 날들이었다지만 고교시절 만큼 열정과 힘이 있는, 철 모르고 즐거웠던 시간은 다시는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돌아가고 싶다...

이리 (익산)까지 가는 시간은 정말로 일사천리 였고 너무나 친숙한 듯한 그 도시의 향수들을 즐겼었다.

그러던중 고교때 유난히 친했던 친구와 연락이 닿았는데 이리에서 3시간여 떨어진 목포에 있노라고 모든 것을 다 책임질테니 몸만 오라는 소리에 한 달음에 목포에 갔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앞해도라는 섬으로 배를 타고 30여분을 들어갔다.

그곳에서 또 차를 타고 20여분을 또 들어갔다.

웬지 고립되어버린  세상과는 차단된 곳으로 유배를 떠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친구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듯이 나와 친구는 새벽녁까지 소주에 술잔을 기울리면서 살아온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내일부터 같이 일을 도와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섭섭치않게 일당도 조금 주겠노라는 말도 들었다.  친구 끼리 일당은 뭐하고 돌아갈 때 차비나 두둑히 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친구는 포크레인 운전을 하였었다. 나는 옆에서 도와주는 잔일을 하는 조수역할을 했었다...

당시 나는 몇천원도 남지 않은 신세였다...

 

몇일을 도와주는데  이것은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지못한 친구의 이기적인 모습들이 하나둘 보이는 것이었다. 친구의 우정으로써 데려운 것이 아니고 이 답답한 섬에서의 시간을 같이 보낼 그런 시간의 대상으로 나를 데려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같이 2년을 같이 함께했고 좋은 친구라 느꼈었지만 나는 의리라는 청춘의 가소로음을 믿고 있었던 그 당시였고 지금은 먹고 사는데 어쩌면 투쟁하는 삶 앞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나는 친구에게 짐을 느꼈나보다...  친구라는 의리로 나는 친구의 진정한 포장을 벗겨 보지는 않았던 것이다.

친구의 삶이 있듯이 나의 삶도 있었다.

이 외딴 섬에서 내가 하는 포크레인 조수일이 나의 일은 아닌 듯했고 섬의 답답한 기운이 싫었다.

나는 다시 가야만 했다.  내가 가고 싶은 인생이 있는데 정지해버린 것은 삶이었다.

그날 밤 친구와 소주한잔을 하면서 살며시 이야기를 꺼냈다.

눈치를 챘는지 웬지 서운한 기색이 보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목포까지는 데려다 줄 수는 없다고 했다.

하루에 배편이 두번있는 날도 있었지만 그날은 한번 뿐이었었고 시간이 늦어 탈수가 없었다.

다시 하루를 기다라자니 답답해서 도저히 그럴 엄두가 나지않았다.

친구에게 부탁을 했다. 저너머에서 배 (택시)를 불러 달라고 주민들이 애용하는 교통 수단이었다.

친구는 굉장히 아까워하는 듯 하다...

 

그리고 나에게 차비나 하라면서 만원을 건네는 것이었다.

만원이면 서울 까지 가는 기차비에 인천까지 가는 전철비하면 딱 맞는 금액같았다.

도저히 담배를 사거나 밥을 한끼 먹고는 갈 수가 없는 금액이었다.

야 !  친구끼리 일당을 달라고 한것도 아니고 빌려서라도 다오   내가 나중에 갑을 테니까...

친구는 돈이 없다고 했다...

나는 친구의 눈빛을 보았다.  내가 사람을 아주 잘못보았구나...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다 내 탓이다.   그래 차비주는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하더냐...

배를 타고 목포로 가는 배에서 바라본 몇일동안의 그 섬은 웬지 슬쓸해 보였다. 내마음도 차가운 바닷물처럼 처량맞는 느낌이 업습했다...

 

 

주어진 만원한장으로 배에서 내려 먼저 한일이 담배를 한갑사는 일먼저 했다.

그리고 머리속으로 머리를 굴려보았다.

허기진 배를 채우면 남는 돈은 오천원 가량...

밥을 먹지 않는다면 서울 까지는 갈 수 있지만 지금 당장 나는 배가 고프다. 다른 것은 다 참아도 배고픈 것은 잘 참지못하는 것이 내 성격이 아닌가...

그렇다면 일단은 먹고 보자... 남은 돈이라면 이리까지는 충분히 갈 수 있을 것이다. 서울까지 가려면 이리가 딱 중간지점이 아니던가...   어떻게든 되겠지.... (이것이 항상 문제였다.   무책임하고 안일한 이 생각들이 항상 문제이다. )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맛나게 국밥 한 그릇을 국물 한방울 남기지않고 깨끗이 먹어 치웠다.

맛나게 담배를 한대 물고 저멀리 몇 일있었던 그 섬을 바라보았다.  다시가고 싶지는 않은 곳이구나... 사람은 그저 사람사는 곳에 있어야한다.

나는 그렇게 목포에서 서울행 통일호 기차에 올랐다.   그때가 해가 누엿누엿 저가는 차가운겨울 그리고 내 열아홉살의 12월의 중순경이었다....  그리고 기차는 쉿소리와 요란한 바퀴소리를 내면서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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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꼭 부자가 되어야한다 !

 

 

살아가면서 정과 따뜻한 말 한마디의 힘을 절실하게 느낄 때가 간혹 있다.

그 말 한마디의 정이 어쩌면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도 있고, 지친 삶에 피로해복제가 되어 주기도 한다.

 나는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을 존중하고 싶고, 더불어 웃음이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

하지만 그 아름답고 내가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한다.

열심히들 살고 있다 하는 그 아끼는 사람들이 무언가에 쫒기는 삶을 살고는 한다.

무언가에 걱정하고, 무언가에 지친 어깨를 떨구면서 홀로인 밤에 소주잔을 기울이고는 한다.

근심어린 눈빛속에서 웃음을 기대하는 것은 위선이다.

설사 그런 눈빛속에서 웃음이 나왔다는 것 또한 멋진 용기일 것이다.

 

사랑이 내 친구를 힘들게 할 수도 있었다.

직장상사의  권위위식을 가진 빈정거리는  말 한마디가 내 친구의 하루를 망칠 수도 있었다.

친구는 쥐 죽은 듯이 세상에 순종 하듯이 살고있는데  아무 이유도 없이 시비를 거는 사람들 때문에  하소연을 하는 것을 본 적도 있었다.

여러 삶들의  홍수 속에서, 이 자본주의에 세상 속에서 살아본 내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가  돈과 얽기고 설킨  수많은 사연들 때문이었다.

 

사랑이, 사람이, 직장상사가, 경쟁관계의 사람들이 힘들게 하는 것보다  몇배로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 돈이었다.

 

돈 ...

이 돈 이라는 것은 어느덧 살기위하여 자연스럽게 숨을 쉬고있고 지금 이 순간처럼 내 몸과 친구의 곳곳에서 나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

새벽녁에 일어나기 싫은 몸을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밤늦도록 저녁도 거르면서 김밥한줄을 먹으면서 운전하게 만드는 무서운 괴물이다.

내 주위에 사랑하는 친구들이 저렇듯 아침도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출근하고, 직장상사의 그 꾸지람에도 참고 , 가족들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하나로 살고싶은데 하지못하고 쓸쓸히 걷는 가장의 지친 어깨에서 나는 느낀다.

왜 저렇듯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돈이 전부가 아니더라...

그래도 정과 행복이 가득한 세상이라고 나도 말하고싶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보험금을 타기 위하여 처자식을  생각지도 못하게 하는 청부범죄를 저지르게 마는 무서운 세상이다. 꼭 남의 나라 이야기같고  나와는 동떨어진, 머나먼 사람들 이야기같지만 엄현히 지금 현실 속에서 자행하는 일들이다.

살아가는 모든 목적의 시작과 끝이 이 돈이라는 것일까?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전 어린시절, 유독이도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남들은 그저 먹고 살만하게도 살았던 그시절..

왜 우리집만은 더 어렵게 살았나..    다른이들은 잘 사는데 왜 우리집은 잘 살지 못할까?

하는 그 생각에 나는 이담에 크면 꼭 부자가 되고 말리라...

다짐에 다짐을 더했던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꿈은 막연하다.   막연한 꿈은 가시적이고 큰 힘을 한번에 쏫는 응집된 힘이없다.

막연해서는 안된다.  구체화 적이고 기록적인, 검증이 필요한 확실한 목표설정이 필요하다.

 

 

내가 절실히 부자의 꿈을 , 큰 꿈을 이루기위한 간절한 바램을 바랬던것은 그 24살의 새벽밤 이었다.

 

군대를 제대하고 어떤 특별한 계획이나 앞길이 확 잘 될것이라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다시는 아내와 떨어져 지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만으로 자신감으로 미래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거대한 벽은  나를 순식간에 허물어 버렸다.

젊고 마냥 잘 되겠지는   여지없이 나를 비웃고 세상의 차가운 바닥의 고통을 주었다.

제대 몇달후 아내는 첫째아들을 가지게 되었다. 

임신을 하면 먹고싶은 것도 많은 법이고, 정기적으로 병원도 다녀야하는 경제적으로 돈이 상당히 필요한 시기이다.

안정된 그 어떤 것  하나 없이 직장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나는 새벽에 안산으로 인력시장, 막노동을 다녔다.    말 그대로 인력시장 이라는 그 단어 그대로였다.

봉고차에 실려 어디인지도 모르게가서 내려서 지시하는 , 힘으로만 하는 그 일들을 했었다.

웬지 내가 사람이 아니라  물건처럼, 그저 하루 일당에 사람을 판정짓는 그 느낌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한곳으로 다녔으면 덜 했을 텐대 항상 변하는 일터와 사람들은 나를 지치게 했다.

그리고 10%를 떼고 받는 그 날의 노임이 나를 평가하는듯 하여 더욱 지쳤다.

 

그러던 어느날...

일하다가 대못에 발바닥을 깊숙이  찔려 고통을 동반하는 일이 생겼다.

피를 짜내어 응급처치는 했지만 나의 그런 현실이 싫었다.

일이 끝나 친구와 함께 포장마차에 들려 지친생각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게 큰 빛을 보기도 힘들었고 그 어떤 희망도 내 앞에서 근사하게  보이지를 않았다.

그저 그 현실을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었다.

술에 취하여 나를 놓고 싶었다. 나를 포기하고 싶었다.

그날밤  자정 가까이에 월세집으로 내몸을 쉬러 들어가 보았다.

아내는 자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리 늦었느냐고...  술은 왜 요즘 자주 먹느냐고...

몇마디 하는, 아니 걱정하는 아내에게 버럭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면서 집을 나와 버렸다.

 

안양역 앞 광장에서  벤취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 보았다.

나는 정말 나쁜 놈이다.  군대3년 가까운 세월을 기다린 아내에게 , 아이를 가진 아내에게 나는 정말 몹쓸 남편이다.  많은 것을 아니해주어도 그리 큰 돈을 안가져주어도 아끼고 사랑해주어야 했는데 나는 나 자신이 힘든 것만을 생각한 힘없는 철부지 가장이었다.

그때가 내 나이 24살... 군대를 막 제대한 내가 이제 애 아버지가 된다.

나는 현실을 탈피하고 싶었다.  아니 이 현실이 어쩌면 꿈이기를 바랬다.  나는  너무 젊었다.

그렇게 많은 생각에 누워있는데 인기척이 느꼈다.

사랑하는 내 아내였다.

큰 눈에 눈물을 흘리면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왜 이곳에 와서 누워있느냐고...

힘든 당신마음 아는데, 이렇게 까지 꼭 내색을 하고 나를 힘들게해야 속이 시원하냐고...

무서운 이 새벽에 걱정이되어 여기저기 포장마차를 들러서 나를 찿아 헤메였노라고...

어느덧 배가 상당히 나온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흐느껴 울고 있었다.

 

나는 비로소 느꼈다.   그것은 비장한 마음이었다.

이제 다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힘들게 하지 않겠다.

이 벌어진 현실 또한 내가 노력하고 준비하지 못한 무능한 나의 탓이다.

이제 다시는 돈 이라는 것 때문에 내 사랑하는 사람을 눈물 흐르게 하지 않겠다.

이것은 막연한 나의 목표가 아니다.     나는 부자가 되어야 겠다.  절대 돈이 없어서 내주위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

 

그밤에 나는 아내를 껴안고 한참을 같이 울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지만 , 그 말 또한 맞는 말이지만  다시는 돈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이것만으로도 나는 부자가 되어야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나는 그 새벽의 밤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그 기억이 있기에 나는 오늘 하루도 부자가 되어야 하는 간절한 꿈에 서서히 다가 가고 있다...

 

돈이 없어 가난하게 살아 부모님께 근심을 드리는 것도 불효이다.

돈이 없어 내 형제들에게 궁핍한 생활과 안스러운 모습을 보이는 것도 미안한 일이다.

내 스스로 가난하여 사람들에게 , 나를 아는 이들에게  지쳐가는 모습과 처진 어깨도 미안한 일이다.

도움을 받는 쪽 보다,  될 수있으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 질질 끌려가지 말고 이제는 세상이라는 장에서 내가 주도하여 칼자루를 내가 휘들러야 한다. 

 

 

나는 부자가 되어야한다.   내가 아는 모든 분들도 부자가 되어야한다.

그래서 우리는 꼭 부자가 되어야한다....!

 

부자는 항상 쓰레기더미 에서 처럼 , 거친 곳에서 움추리고 있다.

우리는 그 쓰레기더미의 포장을 걷어내고 부자의 기회를 찾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진정 부자가, 자수성가하는 부자는 달라야한다.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가 되도록 노력해야하고, 고정관념을 깨고 피와 땀을 흘려야한다.

나의 가슴에는 타오르는 부자에 대한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기위한 눈물겨운 밑바닥체험과 목표를 달성하려는 그 열정이 우리를 꼭 부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꼭 부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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