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평범한 영웅

Manchester United, Ji-Sung Park

 

초등학교 시절, 나는 왜소한 체격 때문에

싫은 소리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축구는 체격으로 하는 게 아니다' 라고..

 

대학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다 퇴짜를 맞았다.

 

우여곡절 끝에 명지대에 어렵사리 진학했다.

 

그때까지의 내 인생은 늘 그랬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니 '깡다구' 하나로

버티는 것이었고

 

남이 보든 안보든 열심히 하는 것을

미덕인 줄 알고 살았다.

 

난 그렇게 보잘것 없는 나의 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눈에 띄지 않는

정신력 따위를 높게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부상으로 탈의실에 앉아

있던 내게 히딩크 감독님이 통역관을

데리고 다가왔다.

 

"박지성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대요.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은 다른 사람이 열 번 스무 번

축구의 천재다 신동이다 하는 소리보다

내 기분을 더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월드컵 내내 그 날 감독님이 던진

칭찬 한마디를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다.

 

그리고 월드컵에서 골을 넣었다...

 

2003년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이적

 

PSV 에인트호벤 네덜란드리그 우승

 

팀 유럽 챔피언스리그 4강 등극

 

2005년 7월 한국인 최초로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에 입단..

 

아버지 전 멘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유명한 스타가 되는걸 원하지 않아요.

 

10분 뛰는 것에도 만족할 것이고,

그 다음엔 20분,

 

그 다음엔

전반전만 뛰는 선수라도 만족할 겁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언젠가는 저도

 

반니스텔루이나

웨인루니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뛸 날이 오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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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승환 대표는
KBS 아역배우로 연예계에 데뷔해, 현재는 배우 겸 문화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다가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학교를 중퇴하고 극단 76극장에 입단했다.

<에쿠스>로 백상연기상을 수상하고 하이틴스타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던 중, 돌연 미국 유학 길에 올라 3년간의 미국 생활을 마친 뒤 귀국하여 극단 환퍼포먼스를 창단해 <루브>, <고래사냥> 등 정극과 뮤지컬을 무대에 올렸다.
1996년 ㈜PMC프로덕션을 설립해 비언어뮤지컬 <난타>를 성공시킴으로써 국내뿐 아니라 세계무대를 난타했다.
문화CEO 송승환의 꿈은 <난타>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2, 제3의 난타를 만들기 위해 그는 오늘도 도전의 페달을 밟고 있다.


 

1 : 일터를 놀이터로 생각하라.


뉴욕으로 유학을 가서 내가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선진적 작품 수준이요? 물론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같은 문화 호사보다 더 많이 자극을 준 것은 바로 생활의 발견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시는 바람에 벌어놓은 돈마저 날려버려 맨몸으로 도미한 나는 뒷골목에서 손톱깎이와 시계를 파는 노점상을 차렸더랬습니다. 한인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뒷골목에서 노점상을 했었는데, 같이 일하는 흑인 노점상들은 정말 여유롭더군요. 나는 이들에게서 삶의 여유와 관조를 배웠습니다. 여름 뙤약볕이 내리쬘 때는 파라솔을 한쪽에 세워놓고 오일을 발라가며 거리에서 여유롭게 선탠을 하면서 일합니다. 마치 피서 온 기분으로 일을 즐기는 것이지요. “Enjoy life!”그들이 여유 작작 일을 하며 내뱉은 말이 내 가슴에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 그 이후 일터를 놀이터로 생각합니다. 마음먹기 나름이라고, 그렇게 세상사를 보니 만사가 여유로워지고 즐거워지더군요. 우리 회사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말하지요. 어차피 일할 직장이고 일해야 하는 곳이라면 소가 도살장에 끌려가듯 억지로 하지 말고 즐겁게 자기 발전 동력으로 움직이라고요. 고지에 깃발 꽂듯 허걱허걱 숨가빠하며 인생을 치 달리기 보다는 차분차분 돌아보고 안단테의 속도로 지금 현재의 과정도 즐기라고요.

가량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넘어갈 때 “저 고개를 어떻게 넘어가지?” 하고 걱정과 번민을 하며 페달을 밟아야 하면 그 사람은 괴롭겠지요. “어떻게든 넘어야만 해.” 하고 사명감만으로 고개를 넘으려 해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왕이면 힘들고 골치 아픈 일일지라도 경춘가도에서 하이킹하는 기분으로 페달을 밟으십시오. 그러면 한결 경쾌해지고 즐거워지는 게 삶의 이치랍니다. 생계를 위해서만 일을 하면 불행할 뿐 아니라 오래 버티지도 못하답니다. 보람과 재미를 함께 느끼는 사람만이, 일터를 놀이터로 전환시킬 수 있는 사람만이 국가대표 급 전문가로 우뚝 설 수 있지요.


 

2 : 놀이터에서 얻은 성공


난 배우출신 CEO입니다.
경영학의 기역자도 모르고, 그 주변도 가보지 못한 내가 처음 CEO가 되니 정말 두렵기까지 하더군요. 배우와 경영자의 역할은 정말 다르니까요. 배우는 결과와 상관없이 열심히 했다는 것으로 어느 정도 성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만 CEO는 ‘최선을 다 했다’는 스스로의 평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요. 오직 잘해냈다는 성과만이 유일한 성적표니까요. 나 역시 처음엔 그 책임감이 너무 두렵고 싫었습니다. 하지만 자꾸 도전하고 해결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재미있고, 또 신나게 생각하려고 마음먹으니 즐거워지더군요.

일터를 놀이터로 생각하고 즐겁게 일하는 것 못지 않게 놀이터를 일터로 생각하는 마인드 또한 필요합니다. 내가 <난타>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관한 이야기 하나 소개할까요?

아이디어를 얻은 것은 일간지 기자와 연극인들의 술자리에서 였습니다. 한 기자가 “세계무대에서의 공연이 비언어 쪽의 공연으로 추세가 돌아서고 있다.”라고 한 말이 번개처럼 뇌리를 치더군요. 물론 다른 연극인들도 이 말을 함께 들었지요. 그들은 다만 그것을 일과 연결시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했고, 생각을 했더라도 현실로 어떻게 접목시켜야 하는지 엄두가 안 났던 것이겠지요. 나 역시 만일 자나 깨나 우리 공연의 해외 수출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지 않았더라며 그것이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여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할 때는 일만 하고, 놀 때는 놀기만 하라고 말하지만 나는 일하는 것도 노는 것처럼 즐겁게, 놀 때도 일을 염두에 두고 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기가 정말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하고 싶고, 하고 있다면 일터를 놀이터로 생각하는 인식이 필요합니다.

훌륭한 아이디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결코 아닙니다. 남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 모르지만 평소의 치열한 관심과 집중이 없다면 불가능하지요. 늘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해서 사고하는 것을 습관화하면, 어느 날 좋은 아이디어와 실행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이지요.
남들은 내가 운이 좋았다고 쉽게들 말하지만 결국 지나가는 말을 아이디어로 받아들이고, 현실의 작품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치열한 사고와 집중력입니다. 그래서 좋은 아이디어는 일터에서뿐 아니라 놀이터에서도 싹이 트지요.


 

3 :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

‘연극해서 돈 번 사람은 송승환 하나’라는 말이 한창 유행하는 등 <난타>의 상업적 성공과 국제적 성과를 인정받은 탓인지 나를 흔히들 ‘공연 계의 마이더스’라 부르더군요. 하지만 알고 보면 나도 손해 본 작품이 히트 친 작품보다 훨씬 많답니다. 다만 남들은 기억하지 못할 뿐이지요.

하지만 돈을 못 벌었다고, 기껏 밤새워 일했는데 내 인건비도 못 건졌다고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왜냐고요? 바로 내 일이 재미있고 그 수고와 손해는 고수가 되기 위한 일종의 게임비용이니까요. 나는 이 과정을 통해서 작품제작에서 무엇을 피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운 수업료를 치른 셈이죠. 또 매사 공연을 기획하고 추진할 때마다 그 작업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재미있고, 여전히 연인을 만날 때처럼 심장의 박동수가 빨라진답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집이 풍비박산이 되는 경험을 한 것도 물론 ‘한몫’ 했습니다. 대학교 때에는 연예 활동하면서 방송국과 극단을 오갔습니다. 방송국에서 번쩍거리는 수입 차를 타고 들락날락하는 부자들의 모습을 목격 했다면 연극동네에선 퉁퉁 불은 라면 한 그릇으로 끼니를 때우는 가난한 자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지요. 극과 극을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며 나는 오히려 빈부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었답니다.

지금 CEO로 있는 나는 운전기사를 두고 비싼 고급 대형차를 탑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길거리에 나앉는 처지가 되더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내가 마음껏 하고 싶었던 일을 열정을 다 바쳐 재미있게 했고 내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전문가로업적을 이뤄냈다는 보람을 느끼니까요.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열정과 아이디어의 고갈이지, 도전의 실패가 아니랍니다. 도전하지 않고 얼치기 중간에 머무르는 것보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의 원칙이지요.

참, 혹시 내가 예전에 <장학퀴즈> 출연진들과 광고모델로 나온 것 기억하나요? 많은 분들이 속으로는 ‘딴따라’인 내가 어떻게 장학퀴즈에 출전했나 궁금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인 나는 자신 있게 장학퀴즈에 출전했었지요. 물론 장원은커녕 꼴찌를 했지만요.
그때는 좀 창피하기도 했지만 도전의 씨앗이 뿌려놓은 게 유용하더군요. 몇 십 년이 지난 요즘, 그것을 기회로 CF 모델 섭외가 들어올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습니까. 아역 스타인 내가 대중에 알려진 얼굴인데 꼴찌 할 것이 두려워 장학퀴즈에 나갈 것을 지레 포기했다면 오늘 수천만 원의 CF모델 제의는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지레 스스로를 검열하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하십시오. 그것이 당장은 수확을 거두지 못하더라도, 언제 어디에서 예기치 않은 행운의 박씨를 물고 올지 모르는 법입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고 도전하십시오. 행운과 기회도 자신이 준비를 해 놓지 않으면 마중도 못한 상태에서 아쉽게 배웅을 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4 :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말라


어디에 어떻게 팔 것인가?
열정과 실패를 두려워 않는 내 도전의 동력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곰곰이 되짚어보면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선택한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아역 연기자 출신인 내가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새 출발, 연극영화가 아닌 일반학과에 진학하기로 한 것도 모험이었지요. 그렇게 어렵게 공부해 들어간 대학임에도 연극에 대한 열정 때문에 대학을 중퇴한 것도 무모하다면 무모한 선택이었습니다. 부모님도 반대하셨지만 우회로를 통해 오히려 연극을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의미 없는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잘 나가던 연예계 스타생활을 포기하고 뉴욕으로 뮤지컬 공부를 위해 유학을 떠난 것도 그렇지요. 달랑 3,000달러만 들고 떠난 미국 유학은 정말 겁 없는 선택이었지요. 만일 현실에 안주하느라, 남의 눈치를 보니라, 주위의 모든 여건이 충족되기를 기다리느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선택을 미루고 주저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오늘날의 송승환 브랜드는 결코 탄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내 선택은 당시로선 지그재그 우회 행로로 보였겠지만 결과적으로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을 확인하고 다지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만일 그 같은 도전이 없었다면 무엇을 선택했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안고 사는 아쉬운 삶을 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5 : 가슴 두근거리는 일을 하라.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그 선택에 100퍼센트 책임지십시오. 우리나라 직장인 90퍼센트 이상이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도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에 조절한다는 설문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나는 돈이나 주위의 인정 등 현실과 타협하거나 조건이 모두 갖춰지기를 기다리느라 선택의 수간을 놓치지 말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출근하러 갈 때 늘 먼동이 트기도 전에 가슴에 이슬이 맺히도록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일을 선택하길 바랍니다. 비록 그 길이 당장 멀고 힘들어 보이더라도 결국 그것이 성공인생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가슴 두근거리도록 행복한 일을 선택하는 것은 당신이 인간으로서 태어난 이상 당연한 의무이자 권리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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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컨설팅 그룹 회장 강석진 대표는
GE를 국내에 토착화시킨 일등공신으로서, 외국 기업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한국 CEO이다.
한국 기업에 투명성 제고 등 선진기업의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데 기여한 선두주자로 평가되고 있으며, GE에서 CEO로 22년간 재직한 경우는 잭 웰치 회장과 그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장수근무 경력을 자랑한다. 1981년 매출액 260억 원이던 중소기업을 20년 만인 2002년에 매출 4조원, 17개의 계열사를 거느린 중견그룹으로 성장시켰다. 2002년 퇴직 후, 현재는 중소기업과 벤처 CEO를 지원하는 CEO컨설팅 회장직을 맡고 있다. GE 재직시절에도 1년에 20일은 스케치 여행을 다녔다는 그는 취미 수준을 넘어선 프로 서양화가로 국내외에서 전시회를 여는 등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 서울종합과학대학원, 서강대학원 경영대학원 등에서 강의도 하는 쓰리잡스 CEO이다.


 

● Part 1 : 성공한 직장인과 개인적으로도 풍요로운 삶,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어하는 후배들에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후배들이 우리 국토에 한정하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젊은 주역이 되길 바랍니다. 지금 한국은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나 중대한 기로에 서 있지 않습니까. 바로 한국의 미래는 청년세대의 원대한 꿈에 달려있습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나와 잭 웰치의 여러 공통점을 뽑아 비교하더군요. 우선 GE에서 20년간 근무한 장수 CEO라는 점, 입사와 퇴직 시기가 비슷한 점 등등 말이죠. 하긴 그도 시골학교를 겨우 면한 매사추세츠대학교 출신이고 나 역시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우리 고향에서 한 발짝 벗어나보지 못한 시골 출신이지요. 그런 내가 일반인은 비행기를 타기도 어려웠던 70년대 초반부터 5대양 6대 주를 누비며 지구가 좁다고 돌아다니고, KS표(경기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을 의미)가 떨치고 있는 전문 경영인들 사이에서 현재의 위치에 오르게 된 비결이 무엇일까요.

모심고 보리밭에서 일하던 시절, 취업이 잘된다고 약학과를 덜렁 선택했다가 도저히 적응이 안 되어 경영학으로 전공을 바꾼 대학 시절, 서투른 영어로 공항에 내려 더듬더듬 의사소통을 하던 신입사원 시절 등의 추억을 오랜만에 떠올려 보았습니다. 내가 지난 삶을 행복하게 돌아볼 수 있는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이력 때문이 아니라 바로 개인적으로도 하고 싶은 일을 다하며 살아온 분에 넘치는 행복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 Part 2 : 지금 이 순간에 충실 하라


어떤 일이든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은 흘러가면 다시 올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 매 순간 정성을 다하십시오. MOT(Moment of truth : 진실의 순간)란 말처럼요. 투우사가 일거에 소의 급소를 공격해야 승부에서 이길 수 있지 않습니까. 나중에 작살을 꽂으려 미루면 소에게 주도권을 뺏겨 쫓기게 되듯이 순간순간에 충실하지 않으면 인생의 주도권을 놓치게 되지요.
지금 이곳이 유일한 기회라는 생각으로 매 순간 열정을 쏟아 부을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지금 맡은 일을 잘하면 신뢰를 얻게 되고, 그러면 길은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대학 때 나는 가난한 고학생이었고, 입주과외를 했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어떻게 연결됐는지 아십니까. 약속을 잘 지키고, 열과 성을 다하는 모습이 학생의 부모에게 강한 인상을 줘 취업으로까지 연결됐습니다. 덕분에 졸업하기가 무섭게 입사지원서 낼 필요도 없이 무역회사에 취직을 했지요.
또 다른 입주과외 가정에서는 당시 한국 최대 무역회사 사장이었던 학부모와 그곳을 방문하는 기업의 임원들을 자연스레 접하며 경영의 현장감각을 익힐 수 있었고요. 이와 같은 경험이 무역과 경영 분야의 전문가로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됐음은 물론입니다.

목표를 높게 세운 청년일수록 가볍게 지나치기 쉬운 부분이 현재의 과정을 사소하게 생각하는 점입니다. 저 멀리 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소한 일도 잘해야 한다는 점 잊지 마십시오. 현재 맡은 일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고 나중에 의미 있는 일을 맡으면 열심히 해야지 하는 것은 잘못 세워진 가정입니다.
도대체 인생에서 의미 없는 것과 의미 있는 것을 나누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장자는 이렇게 말했답니다.
“네가 서 있는 땅을 한번 내려다보아라. 너에게 쓸모 있는 땅은 지금 네 발이 딛고 서 있는 발바닥 크기만큼의 땅이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땅은 너에게 쓸모가 없다. 그러나 만약 네가 딛고 선 그 부분을 뺀 나머지 땅을 없애버린다면 과연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작은 땅 위에 서 있을 수 있겠느냐?”

맞습니다. 목표를 향해 가는 길에는 의미 없는 과정은 없습니다. 그것들은 모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무슨 일을 하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십시오. 그렇게 순간을 충실하게 살다 보면 모르는 사이에 큰 과업을 맡게 되고, 큰 과업을 성취해낼 힘이 생긴답니다. 자신과 일에 대한 자신감은 크고 위대한 일을 맡는 데서 나오는 게 아니라 현재의 일을 100퍼센트 해냈을 때 저절로 솟아나는 것입니다.


 

   ● Part 3 :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길러라


우리나라 사람이 취약한 분야가 팀워크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글로벌 시대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선 나 혼자만의 이익추구에서 벗어나 윈윈전략을 추구해야 하고, 그것을 상대방에게 설득하는 능력이 필수입니다.
글로벌 시대일수록 예스맨보다는 뛰어나고 창조적이며 자신의 주장이 확실한 인재가 필요합니다. GE가 최고기업을 유지하고 조직원이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비결도 바로 그와 같은 격의 없는 토론과 장벽 없는 분위기 때문이지요.
나는 잭 웰치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경영 회의에서 별도의 회장 석을 지정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앉아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임직원에게 강조한 것은 잭 웰치 회장의 주장을 무조건 따르지 말고 자신의 주장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설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자기 주장을 확실히 갖고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십시오. 조직 문화에서 가장 필요하고 힘든 게 바로 커뮤니케이션 능력입니다. 문제는 단번에 바꾸려고 하다가 오히려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쉽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설득하는 인내가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가령 내가 한국을 장기적 동반자로 하는 3단계 GE 사업구축 전략을 한국 정부와 GE 본사 양측에 설득하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 아십니까. 난색을 표하는 양측을 이해시키고 파트너 관계가 서로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설득하는데 1년 이상이 걸렸습니다.
그 결과 잭 웰치 전 회장의 재직시절, 전 세계 GE 경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세계화 회의에서 “한국을 글로벌화 전략 모델로 채택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GE의 한국진출은 선진적으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요. 세계화를 목표로 현지 국가와 동반자 정신으로 진출하자는 전략이 먹힌 것이지요.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대부분 실패하는 것은 자기 이익만 챙기려고 사고방식이 알게 모르게 깔려 있어서랍니다. 혼자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상호공존, 공동의식을 추구하는 정신으로 상대방을 설득하면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업무성과뿐 아니라 가치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게 최근 세계적 인재선발의 기준이랍니다. 앞으로 국내 기업에도 이와 같은 기준이 확산 될 것입니다. 결국 가치관이란 공공의 이익을 위한 팀 전체의 협동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점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능력으로 혼자만의 실적을 쌓으려는 독불장군 형 인재보다는 팀의 협력으로 성과를 낳으려는 협동 형 인재가 높이 평가 받는 기업문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분명한 주장을 하되, 부드럽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지요.


 

 ● Part 4 :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라


어디에 어떻게 팔 것인가?
정말 살면 살수록 인생은 짧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세요. 어떤 일이든 맡은 일을 좋아하고 즐기며, 모든 열정을 쏟으십시오.

내 어렸을 때 꿈은 시인, 화가, 과학자였습니다. 정작 경영자라는 꿈은 사회에 나와서 결정된 것이랍니다. 경영자로서 서양화가라는 꿈을 이룬 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지요. GE 재직 시절에도 아침엔 회사로, 퇴근 후 저녁 시간과 주말엔 화실로 두 번 출근하며 화가로서의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내 나름의 취미 생활을 가지니 그것이 오히려 경영에 +a로 작용하더군요.

문제는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입니다. 혹시 하고 싶은 두 가지의 일이 전혀 동떨어진 것이라고 해서 한 가지는 못하겠거니 하고 지레 포기하지 마십시오. 본인의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같이 할 수 있고, 오히려 시너지 효과가 발생하니까요.
내 경우 낮엔 집중적으로 경영에 몰두하고, 밤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그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니까 스트레스가 해소되어 업무 에너지가 충전되더군요. 오히려 반대되는 일이 보완되는 점이 많다고나 할까요.
깊이 파보면 예술과 경영은 서로 공통점이 많답니다. 모든 사물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봐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즉 창의력이 첫 번째 공통점이고, 두 번째는 미술이나 경영모두 집중하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세 번째는 치열한 프로 정신을 접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인재와 지식경영을 하는 현대의 성공 학 경영인들은 모두 훌륭한 종합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냐에 따라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 두세 개를 동시에 하며 인생을 즐겁게 보낼 수 있습니다.


 

 ● Part 5 : 한 우물을 파라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딜 후배들에게 한 마디 더 덧붙이고 싶은 말은 ‘한 우물을 파라’는 것입니다. 물론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면 그쪽으로 주저 없이 옮겨야겠지요.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한 업체에서 길게 근무하십시오. 이는 아무리 시대 트렌트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철칙이라는 게 내 생각입니다. 혹시 취업한 곳이 다양한 사업체를 거느리고 있어서 자신의 적성을 찾아 옮길 수 있다면 금상첨화겠지요. 연봉보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일이냐, 아니냐 입니다. 열심히 일하면 회사는 성과를 인정하게 되어 있고, 연봉과 보상은 저절로 따라오게 되어 있답니다. 몸값에 따라 일을 하지 말고, 내 역량에 따라 몸값이 따라올 것을 믿고 일하십시오. 내 이야기 하나 더 할까요. 역시 GE에 다닐 때 이야기 입니다. 세계 최대 헤드헌터사가 GE의 두 배 연봉을 준다며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습니다. 사실 여러 가지 갈등이 일더군요. 결국 사인까지 했는데 회사 측으로부터 “아무리 두 배의 연봉을 준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다. GE가 믿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는 말을 듣고 1주일간 고민하다 결국 주저앉았습니다. 대기업 취업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봅니다. 만일 경영자로 크고 싶다면 오히려 알짜 중소기업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인생 선비로서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여러 분야를 단기간에 겪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무역 분야 베테랑으로 클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취직한 직장에서 외국 바이어 만나고 수출 주문, 원자재 수입 등의 모든 업무를 서너 명의 인원이 모두 맡아서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업무는 벅찼지만 단기간에 많은 일을 내 책임하에 진행하면서 경영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지요. 만일 내가 대기업에서 일했다면 도저히 이 같은 경험을 해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젊은 세대의 선택에 따라 향후 몇 세기 동안 한국의 미래가 결정됩니다. 부디 세계를 향한 열린 마음을 갖고, 눈을 크게 뜨고 21세기의 주역이 되기 위해 힘차게 도전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병행하며 행복한 삶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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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영한인회 신우승 회장님은..

1944년에 태어나 한양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1970년 영국으로 건너가 영국 명문 리즈대학에서 재료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74년 재영과학기술자협회KSEAUK를 만들어 초대회장을 역임하는 한편, 영국 정부와 유럽 최고 과학연구소 등에서 20여 년간 연구에 몰두했다.

1988년 국제 엔지니어링 컨설팅 주식회사를 설립, 경영자문을 하면서 로열빅토리아 호텔, 밴팅크 하우스 등을 영국에서 운영하고 있다. 현재 재영교민 상공인협의회 부의장, 재영한인회장으로 일하면서 영국 내 한인교포들의 지위 향상과 유대 강화에 힘쓰고 있다. 또한 영국 내 한인유학생과 과학기술 분야 종사자와의 정보교류에 앞장서는 등 과학기술 분야 발전에도 앞장서고 있다.

 

 

● Part 1 : 자신을 차별화하라.


한국 뉴스를 통해 고국의 젊은이들이 안정성을 좇아 고시와 의대로 몰리고 있다는 소식을 보고 안타까웠습니다.

그와 같은 현상은 국가적 낭비고, 시장의 수요공급 법칙상 당연히 조만간 그 한계가 오리라고 봅니다.

 

이공계가 국내에선 찬밥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영국에선 전문분야를 떠나 논리적 마인드를 가졌다는 점에서 전방위 진출이 가능하지요.

 

나는 한국도 소득 2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인기직종에 몰리는 현상을 극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더욱 그래야겠죠. 현재의 인기직종이 10년 후에도 인기가 있으리라는 걸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판에 박은 국화빵식 사고로는 국제화 시대에 발맞추어 나갈 수 없습니다. 무리와 차별되어야지 같은 사고를 해서는 살아남기 힘듭니다.

영국 속담에 ‘Horses for courses(코스에 따라 말 종류도 선택을 달리 해야 한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경주용과 사냥용 말이 따로 있듯 사람도 각자 자기의 특기 분야가 있다는 이야기지요.

 

무엇이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찾아 최고가 되면 됩니다. 능력과 적성에 안 맞는데 우격다짐으로 주위의 강요에 따리 진로를 선택하면, 설사 그 분야에서 일을 하게 되더라도 최고에 오르기는 힘듭니다.
내 영국 친구 이야기를 하나 해드릴까요. 런던대학교 스킬랜드 교수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들은 인쇄공이 되길 원했지요.

 

대학교수 체면에 아들이 대학도 졸업하지 않고 인쇄공을 하겠다니 아마도 한국에선 통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하지만 그 아들은 적성에 안 맞는데 대학에 들어가봤자 공부 따라가기도, 그렇다고 즐기기도 힘들 것이라고 항변을 하더랍니다.

그래도 인쇄공 생활은 10년 동안 열정 바쳐서 일하면 십장은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하면서요. 결국 그 아들은 인쇄공이 됐고 지금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많이 들어본 이야기겠지만 행복은 이처럼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이 매혹되고 싶은 것을 찾아내는 것이 필수겠지요.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소개할까요. 역시 내가 아는 교수의 아들 이야기입니다. 그 교수는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자신이 그 과목에 매혹된 나머지 아들에게도 전공을 강요했지요. 아들은 화학을 싫어했지만 억지로 아버지의 명령을 따랐답니다.

그러더니 대학졸업 만찬 자리에서 “이제 아버지 소원 다 들어줬으니 다른 학과 전공하겠다.”고 폭탄 선언한 후, 언론광고 학을 전공했답니다.

나는 영국에 유학 온 1세대로서 당연히 고생이 많았습니다. 일단 외모에서 그들과 다르다 보니 늘 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현미경 속의 실험대상처럼 일거수일투족이 눈에 띄었지요.

하지만 그와 같은 일에 걱정을 하고 인종차별에 불평할 시간에 연구를 하나 더 하자는 생각으로 학업에 매달렸지요. 만일 내가 화학에 매혹되지 않았던들 그런 뒷심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혼을 팔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고 싶은 것을 찾으십시오. 그리고 그 소신을 꿋꿋하게 밀고 나가십시오. 매혹적 선택은 신생의 고비고비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을 줍니다.

반면에 남들이 모두 추구하는 가치에만 매달리면 스스로가 먼저 지치게 되어있습니다. 인생을 사는데 모두가 꼭 KS마크가 찍힌 여정을 통과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자신이 매혹되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 Part 2 : 여행을 많이 하라.

 

나는 독립심과 견문을 넓히기 위해 국내든, 국외든 여행을 많이 할 것을 적극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해외취업 등 한국인이 더 많이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봅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배낭여행을 많이 한다고 하는데, 세상 경험은 많이 할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자신만의 성공전략도 수립됩니다.

나는 그런 점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유학도 다다익선이라고 봅니다.

어떤 분은 외화유출과 일부 유학생들의 탈선을 걱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부의 문제고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이역생활을 하면 적어도 하나는 반드시 배운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독립심이 길러짐은 물론이고요.


지구촌 시대에 우물 안 개구리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젊어서부터 세계 문화를 접하면 견문이 넓어지고, 자신의 생활을 윤택하게 할 수 있습니다.

무모의 덕만 보는 삶을 영국식 표현으로 샴페인식 라이프라고 하는데 당당히 부모님의 그늘에서 벗어나십시오.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나 눈을 크게 뜨고 보십시오.

국내의 취업난을 탓하지만 말고 해외취업도 적극적으로 모색해보십시오. 국내에서 20-30대 청년 이민으로 인한 고급인력 유출을 걱정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기우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이 전 세계 각국에 퍼져 조국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이고, 정보 면에서 조국과 선진기술 정보를 연결하는 역할은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중국의 화상華商만 보더라도 그 역할이 얼마나 큰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학 실력과 전문가적 소양을 길러 해외진출을 적극 모색해보십시오.

그것이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후배들의 진로를 열어줄 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 Part 3 : 뿌리의식을 가져라


뿌리의식이 앞의 글로벌 청년이 되라는 것과 모순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일수록 필요한 것이 바로 뿌리의식이랍니다.

 

요즘 세계화 바람이 불면서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국적은 단지 패션fashion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면서요.

하지만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것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젊을 때는 모리지만 누구나 나이가 들면 조국을 그리워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살아온 과정을 지우개로 지우고, 어디서 자기가 비롯됐는지도 모르고 사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불행한 삶이지요.

미국에 있는 흑인들을 보십시오. 미국에 정착한 지 400-500년이 됐지만 지금까지 자기 뿌리를 찾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재영한인들에게 한국 문화와 얼을 심어주기 위해 한국학교 교장을 하고, 남들은 주말에 골프 치러 갈 때 휴가 기간에까지 한국학교에 정열을 바치며 애쓴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세계화 시대인 만큼 어디에서든 둥지를 틀고, 또 해외진출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고 살면서 뿌리에 대한 자긍심이 필요하다는 게 내가 30년 이국생활을 하며 느낀 결론이랍니다. 조국에 살아 오히려 못 느끼겠지만 세계를 향해 눈을 돌리는 것 못지 않게 우리 교유의 문화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자부심을 가지십시오.


 

● Part 4 : 실패는 과학적으로 분석하라


나는 과학자입니다. 새삼 왜 강조하냐고요? 삶의 프로세스도 일종의 실험과 같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입니다. 앞의 이야기가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조건이라면 지금 하는 이야기는 성공의 보편적 조건이라 할 수 있지요.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란 말은 어려서부터 자주 듣는 말입니다. 그러나 실패가 저절로 성공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떻게 해서 그런 결과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고, 또 반대로 왜 이루어지지 못했는지, 즉 실패의 요인은 무엇인지를 분석해내야 의미를 갖지요.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 그 부분을 고치기만 하면 되니까요.

 

가령 어떤 사람은 산을 오르다 길에 바위가 가로막고 있으면 힘들다고 포기한 채 내려옵니다. 실패 경험만 남긴 채 다시는 시도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돌아가서 달리 오를 길은 없나 궁리하지요. 그로선 실패 경험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을 또 하나의 경우의 수를 익힌 셈이니까요. 후회하기보다는 과거의 선택을 바탕으로 늘 최선의 결과를 모색하십시오.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겠지만 에디슨의 이야기는 유명하지 않습니까. 나폴레온 힐이 전구를 발명한 에디슨을 만나 인터뷰를 했을 때 “에디슨 선생님, 전구를 발명하려고 수천 번이나 시도했다가 실패했는데, 그 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더니 “전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습니다. 전구를 만들지 못하는 수천 가지 이유를 잇달아 발견한 것이지요.”라고 했다는 이야기 말입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과거의 성공경험에 안주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수천 번의 실패를 통해 깨달은 귀중한 성공비결일지라도, 시간과 단계에 따라 적용이 안 될 수가 있습니다.

그건데 많은 사람이 과거의 성공경험에 매달려 상황에 맞는 새로운 결정을 하길 꺼려 문제가 발생합니다.

산을 오를 때의 이야기로 비유해볼까요. 산을 오르는 전략수립은 평지, 낮은 뒷산, 높은 고산 등 모두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높은 히말라야를 오르는데 동네 뒷산에 오른 방법만 고집하면 어떻겠습니까.

과거 경험의 덫에 갇히지 않기 위해선 스스로를 끊임없이 리노베이션해야 합니다. 자신의 위치와 관점을 분명히 하고, 새로운 결정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의사결정자가 되십시오.


좋은 게 좋다고 스스로를 두루뭉술하게 판단하지 말고 칼날같이 예리하게 자신의 실패와 성공비결을 갈고 닦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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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춘 선정 최고 영향력있는 여성 순위에서 3위에 오른 '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에 독서 열풍 일으킨 주역이다.

 

윈프리는 흑인 빈민가 출신.

 

14세에 임신을 하고 20대에 마약을 하며 방황을 하면서 자칫 인생의 낙오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지만 고난을 극복하는 흑인여성들의 삶을 다룬 소설을 읽으며 성공한 여성의 대명사가 됐다.

 

자신이 책 덕분에 인생을 개척할 수 있었던 만큼 자신의 토크쇼와 잡지 등을 통해 남다른 열성을 가지고 책의 전도사로 나섰다.





책은 이처럼 한 사람의 인생을 180도 바꿔놓을 수 있는 위력을 지녔다.

역사속에서 굵은 획을 남긴 유명인들은 이같은 책의 위력을 일찌감치 활용한 사람들이다.


유럽을 평정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전쟁터에서도 말위에서 책을 읽었다는 일화를 남길 정도로 대단한 독서광이었다.

 

나폴레옹이 야심만만한 전쟁광이 아닌 '영웅'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대문호 괴테와 음악가 베토벤을 매료시켰을 정도로 빼어난 학식과 교양, 예술적 감각 때문이었다.

 

그는 1789년 감행한 이집트 원정에는 실패했지만 원정에 동행한 학술조사단과 함께 이집트 상형문자의 열쇠가 담긴 로제타석을 발굴하고 세계 시민법 제정에 큰 영향을 미친 나폴레옹 법전을 남기는 등 인류문화에 큰 공헌을 남겼다.

 

그가 52년 평생동안 읽은 책은 8000여권. 이동도서관의 원조로서 전쟁 터까지 책을 챙겼던 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에서 빌 클린턴에 이르는 현대 미국 대통령의 공통점은 모두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었다는 것이다.

 

어릴때부터 책과 가까이 한 어머니들의 열성 덕에 책을 통해 미국을 이끌어갈 역량을 일찍이 키울 수 있었다.

 

특히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다독으로 습득한 속독 습관으로 다른 대통령 들과 달리 요약본 없이 두툼한 보고서를 몽땅 읽어낸 것으로 유명하다.

21세기형 영웅으로 떠오른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바쁜 일과 중에서도 매일 밤 한 시간씩, 주말에는 두 세시간씩 책을 읽으려고 노력하고 출장 때마다 책을 꼭 챙긴다.

 

게이츠 회장은 "책은 쓸모도 있지만 애착도 느끼게 해 컴퓨터가 책을 완전히 대체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97년 게이츠도서관 재단을 설립했고 당시 연방정부외에 단일 기부자로는 최고 액을 기부했다.



국내에서도 삼성그룹의 고(故) 이병철 회장과 안철수 안철수 바이러스연 구소 대표,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도 소문난 다독가로 꼽힌다.

성공한 경영인들이 고전이나 문학 등 인문학 전공자가 많았다는 사실도 독서로 쌓는 인문학적 교양과 창조력이 경영의 핵심역량임을 보여준다.

스탠퍼드대학에서 중세사와 철학을 전공한 칼리 피오리나도 인문학적 역량을 경영에 활용하는 모범 사례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천재 과학자 아이작 뉴튼이나 발명왕 토 머스 에디슨 등은 제도권 교육에 적응하지 못해 고통을 받았지만 꾸준한 독서가 없었으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던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은 책읽기였다"고 술회했다.

 

처칠 수상은 철학 경제 정치학 등 고전독서를 통해 훗날 격조높은 문장 과 연설문을 남겼고 '세계의 위기' '제2차 세계대전'등을 저술해 정치인 으로는 극히 드물게 1953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독서를 통해 만나는 무한한 자유의 세계는 창의력과 영감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대중문화의 본산인 헐리우드에도 열렬한 독서광들이 많다.

'타이타닉'을 연출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나 '다이하드'나 '클리프행어 '등을 연출한 레니 할린 감독 등 최고의 흥행감독 등 영상문화를 주도하 고 있는 인물들은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였을 뿐 아니라 현역생활 속에서도 꾸준히 독서를 하는 것으로 정평이 높다.

 

이뿐 아니라 '벤허'의 배우 찰턴 헤스턴은 모든 출연작의 원작을 섭렵해 인물을 파악하고 나서야 연기에 나섰고 촬영장에서도 책을 놓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트루라이즈'로 유명한 여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는 책벌레로도 모자라 직접 서너권의 동화책을 출간했을 정도다.

아무리 말을 해도 지나치지 않는 독서에 대한 강조...

 

그렇지만 정작 독서의 중요성을 참실하게 인식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성공을 이끄는 쌍두마차가 있는데 세미나 참석과 독서가 바로 그것이다.

 

독서는 인생에 대한 조명도 될 수 있고, 계획도 될 수 있다. 그러한 독서를 게을리 또는 하지 않고서는 무언가 이루려는 계획이나 꿈 또한 힘든 몽상이 될 수 있음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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