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오래 머물던 존 스타인벡은 말년에 미국으로 돌아와서 작은 트럭형 RV를 구해 개와 함께 미국 전역을 누비게 된다. 가기 전에 아메리카 곳곳을 둘러보고 싶었던 열망이라고 알려져 있는 그의 여정은 "Travels with Charley in Search of America"에 그려져 있다.


몇 년전에 이제는 쇠락한 농촌도시가 되어버리는 살리나스의 다운타운에 있는 그의 기념관을 간 적이 있다. 아마도 도시에서 혹은 기금으로 운영되는 듯 무척 저렴한 입장료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하게 보전이 되고 있었는데 주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가 살던 집과 작품이 무대가 되었던 곳곳이 지척임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을 받은 이 대가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학교와 교과서 바깥으로는 나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그가 떠난 발자취를 따라 언젠가 친해진 진돗개 한 녀석과 함께 떠났으면 하는 마음이다. 


로시난테로 이름을 붙이 이 트럭형 RV는 지금도 살리나스의 기념관에 전시가 되어 있어 당시 방문했을때 가장 큰 관심을 갖고 들여다본 기억이 난다.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소박하기 그저 없어 보이지만 당시에는 상당한 수준의 기술력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이런 트럭형 RV라도 펌프를 연결하면 샤워와 화장실까지 돌릴 수 있는 정도로 발전되어 있다. 스타인벡의 작품을 보면 컨템퍼러리한 미국을 볼 수 있어서 종종 뒤적거리게 된다. 지금이야 실리콘밸리의 거인들이 주류인 세상이지만 그래도 이런 대문호가 지역의 출신이라는 것이 은근히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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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을 하겠다고 잠시 회사로 나왔으나 오늘로 사흘째 더위로 잠을 설친 끝에 몸이 내켜하지 않는다. 이런 날엔 그저 걷고 줄넘기를 하는 것이 좋은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은 아침이다. 새벽 세 시부터 갑자가 돌풍이 한 시간 정도 불더니 네 시부터는 마른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다섯 시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매우 이상한 기후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닌가 싶다. 이 일대는 여름에 비가 오는 날씨가 아니다. 여름은 늘 덥지만 dry해서 더위를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날씨라서 사실 이곳에 Silicon Valley가 생겼다고 할 정도로 여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8월에 비가 내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8월 중순까지 이어진 선선한 여름, 갑자기 닥친 더운 여름에 더해서 이젠 마른 하늘에 천둥번개가 치고 8월에 비가 내리는 지경이 된 것이다. 앞으로 더 어떻게 변해갈지 두렵지 않을 수가 없다. 


실증적인 과학을 신봉하던 의사출신의 작가 코난 도일이 말년에는 심령술에 빠져들어 이를 열렬히 지지하고 전파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것이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이 또한 그런 사례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홈즈로 가장 큰 성공을 이뤘고 문학사에 길이 남은 존재가 된 저자가 실제로는 '장르'소설보다는 보다 더 진지한 문학을 추구했었다는 (그리고 사실 별로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사실 또한 재미있는 인생의 역설이 될 것이다. 홈즈로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래서 더욱 벗어나고 싶었으나 어느새 작가나 소설보다도 더 큰 존재가 되어버린 홈즈는 작가의 의지를 벗어나 지금까지도 살아서 숨쉬는 하나의 독립적인 객체가 되어버렸으니 글을 쓰고 캐릭터를 창조하는 건 작가이지만 그 후의 모든 것이 반드시 작가가 의도한대로 흘러갈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홈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고 홈즈를 창조한 배경이나 당시의 정황, 홈즈 외에도 코난 도일이 시도했던 다양한 창작에 더해, 덜 알려졌지만 상당히 성공한 제라르 준장이나 모 교수의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도 볼 수 있다. 이다혜 기자의 책에서 새끼를 친 여러 권의 책들 중 하나. 


빈 속에 몰트린을 삼킨 탓인지 팔다리가 지릿지릿하다. 의도는 운동을 하고자 한 것인데 잘못하면 이렇게 책을 정리하는 것으로 일요일에서의 사무실 일정이 끝날 수도 있겠다. 당대의 화두이자 유행이자 감옥처럼 다가오는 '집콕'이라는 단어가 제목에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COVID-19에서 야기된 격리생활의 유행을 타고 급조된 고만고만한 책이 아니다.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선생의 독서를 통해 책과 일상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 그리고 깨달음(?)이 버무려진 생활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초기작에서 소개(?)된 어린 따님이 이젠 대학생이 되었고 어쩌면 조금 더 아빠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따님을 통해 사모님과의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인 자신의 지위를 가끔 뒤엎으려는 시도가 조금 더 본격화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이런 이이제이 (비유에 대해 미리 사과를 드리지만)를 통한 쿠데타가 다음 번 책의 주 이야기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런 뻔한 꼼수보다는 계속 읍소를 통해 늙어가는 아버지의 불쌍함을 피력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지만 부부와 가족의 dynamic은 그야말로 case-by-case라서. 얼마전에 읽은 '생활'속의 독서를 표방하면서 별로였던 책이나 그 전의 비슷한 몇 권에서 얻은 실망을 만회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전편에서 지금까지 꽤 오래 gap이 있었던 덕분에 아예 작정하고 두 권으로 나뉘는 방대한 스토리를 구성한 듯, 이 책은 사건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려는 시점에서 끝난다. 세상의 모든 걸 찾을 수 있는 아마존에서 뒤져보니 9월 말이면 다음 권이 나온다고 하니 내 추측이 맞을 것이다. 이번에 러브크래프트 전작의 외전에서 소개된 앨저넌 블랙우드의 존 사일런스라는 탐정이 궁금해져서 주문한 책과 함께 미리 주문을 넣어두었다. 


원래도 사고뭉치에 온갖 일에 손가락을 담구게 되는 해리 데이빗 카퍼필드 블랙스톤 드레스덴은 복수를 위해 힘을 얻고자 Winter Court의 여왕과의 거래를 통해 Winter Knight이 되어 많은 세력들의 적일 수도 있고 동지가 될 수도 있는 존재로서 의심을 받고 있다. 거기에 그의 half brother이 하필이면 White Court의 벰파이어라는 점, 그가 이번에 엄청난 사건을 저질러버렸다는 점, 이런 모든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판을 키워가는 물고기종족, 그리고 거듭되는 침공을 통해 우리가 아는 현실세계 그 자체를 흔들어버릴 Outsider까지. 늘 버킷 가득한 사건을 끌고 다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수습을 해야할지. 


주인공이 계속 강해지고 적들은 더 복잡하고 더 강해지는 걸 보면 마치 드레곤 볼 처럼 이 시리즈도 언젠가는 끝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분석과 현학이 가득하여 '과학'적인건 맞지만 '지적'인지는 모르는 음주탐구생활. 내가 정의하는 좋은 강의의 조건은 어려운 걸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으로 이치를 깨우쳐주고, 이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지식을 넓혀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서 이야기하자면 이 책에서 제공하는 지식은 그저 지식의 나열에 가깝다고 하겠다.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만, 문과형 인간이 나에게는 정보의 나열이라는 점 외에 저자가 어떤 original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기억은 없다. 교양을 위해 읽어둘 수도 있고 의외로 즐겁게 다가올 수도 있는 주요주종에 대한 구체적인 과학적 배경이지만 그런 이유로 그다지 흥미를 갖고 engage하지는 못했음이다. 와인도 그렇고 맥주나 위스키의 세계도 무궁무진한 탐구의 영역이지만 역시 술은 일단 마시고 볼 일이지 읽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술의 유행에 대한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보고 싶다. 맥주만 해도 유행에 따라 마트의 물건이 달라지는데 한참 두꺼운 맥주가 선호되다가 요 근래 몇 년의 패턴을 보면 IPA와 라거, 그리고 더욱 엷은 맛의 발포주로 선호도가 옮겨진 것 같다. 덕분에 내가 즐기던 슈파텐이나 amber계열의 맥주는 일반마트에서는 거의 빠졌고 liquor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 내가 만들 것도 아니고 현학적으로 술자리에서 시시콜콜한 술의 구성원리를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기에.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에너지 드링크와 몰트린이 춤추는 내 머릿속과 몸의 멍함이 심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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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8-17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기상이변입니다.
여기 한국은 들으셔서 알겠지만 어마어마한 비가 내렸지요.
여름 중반까지 그런대로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에 업친데 덥친격입니다.
장마 끝나고나니 더위기승. 그나마 그동안 안 더웠다는 게 그냥저냥
위로가 됩니다. 이번 한 주 정도만 넘기면 밤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미국은 토네이도로 기억되는 나라입니다.ㅋ

transient-guest 2020-08-17 21:12   좋아요 1 | URL
여기도 계속 시원하다가 갑자기 더워지더니 정신이 없네요. 게다가 이 건기에 비가 온 걸 보면 정말 앞으로가 걱정됩니다. 이곳에는 토네이도는 없지만 지진이 늘 risk가 있네요. 아래 위로는 주말부터 산불이 나서 난리라는데 가끔 이게 바람이랑 붙으면 firenado가 옵니다.

얄라알라 2020-08-21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소중했던 전집 중 하나가 코난 도일 전집이었는데
정작 그의 생애는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말년의 급반전이 놀랍습니다

transient-guest 2020-08-21 02:27   좋아요 0 | URL
그 급반전이 어떻게 보면 무척 과학적(?)인 접근 때문이라는 건 더더욱 놀랍습니다. 즉 당시 강령술을 신봉하던 사람들 주류와 다르게 코난 도일은 과학적인 절차로 검증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에 따라 강령술은 진짜라고 믿었다고 하네요.

2020-08-21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2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집계를 보면 지난 7/25 이후로 완독한 책이 없다. 뭔가 끼적이고 싶고 주절거리고 싶은 마음에 여전히 붙잡고 있는 책 몇 권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앞서 잠깐 썰을 푼 이 책은 여전히 하루에 조금씩 읽혀지고 있다. William L. Shirer라는 걸출한 기자출신의 작가가 쓴 논픽션들 중 하나. 즐겁게 읽다가 최근에 다른 책을 붙잡기 시작하면서 잠시 진도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대충 130페이지 정도만 남은 상태. 시카고 트리뷴의 파리지역의 담당을 겨우 벗어난 저자는 약관의 나이에 특파원으로 신분이 승격(?)된 부분까지 보았다. 마침 저자가 파리에 체류할 당시는 얼마전에 힘겹게 읽은 3부작에서 다뤄진 1차 세계대전 이후의 20년대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게 따라가고 있다. 헤밍웨이, 핏츠제럴드, 제임스 조이스, 거투르드 스타인 등 지금은 전설로 남은 작가와 문인들이 문화의 향기를 찾아 파리로 (정확히는 미국의 악명높은 금주법을 피해, 강한 달러에 힘입어) 넘어온 시절, 직접 그들을 만나고 이야기해본 젊은 저자의 입장에서, 그리고 책을 쓰던 당시 의 저자의 경험과 회상을 통해 보여주니 즐겁다. 심지어 American Gothic으로 유명한 미국의 Grant Wood와도 친분이 있었기에 그가 art를 찾아 프랑스를 헤메이다가 마침내 자기만의 것, 원래 갖고 있었던, 미국중서부의 멋을 화폭에 담기 시작하면서 유명해지는 이야기를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입장에서 묘사한다. 거기에 그의 시대에는 이미 시들해진, 죽기 조금 전이지만, 이사도라 던컨을 직접 만나서 식사하고 대화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 파리를 유명하게 해주는 많은 것들, 100년 전에 생겨난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생생하다. 심지어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에서 율리시즈가 나오는 이야기를 직접 보고 들은 사람이니까. 


아직 초반부. 앞서 읽은 그의 책과 서재이야기를 보면 무척 두서없이 의식의 흐름에 따라 펼쳐지는 감이 없지 않은데, 그래서인지 이 책은 편역한 판본이라고 나온다. 이유가 무엇이든 읽기엔 나쁘지 않아서 아주 즐겁게 엊그제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비롯한 몇 권은 얼마 전에 재미있게 읽은 이다혜 기자의 책에서 새끼를 친 것이다. 언제나 책의 세계는 깊고, 넓고 끝이 없이 계속 expand하는 우주와도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뭔가 붙잡고 읽다가 밤이 오면 자는데, 자다가 깨기를 반복하니 새벽에 일어나 뛰어나가는 것이 버거워진 요즘이다. 그래도 책은 놓지 말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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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하루를 살면서 보니 벌써 중복을 지나 여름은 말복을 향하고 있다. 코로나와 트럼프의 '궁극'의 조합으로 개판인 미국의 2020년의 한복판은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남는 것이 최선이라는 각오로 헤쳐나아갈 수 밖에 없다. 아직 다섯 달이 더 남아 있지만 일단 이번 달까지는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뭔가 전기가 있을만하면 다시 주저앉는 듯함도 이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하는 것에서 만족을 찾아야 할 것이다. 


상담을 해보면 많이들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 같고 일을 하면서 대부분 과정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 같다. 결과는 당연히 잘 되어야 하지만 내가 100%를 장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서 어쩔 수 없는 면도 있다만 과정만큼은 내가 노력해서 좋게 만들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남은 건 exposure인데 딱히 떠오르는 광고수단은 없고 어느 업계나 그렇지만 이쪽도 상당히 포화상태라서 효과를 떠나서 내 존재를 알린다는 생각으로 브로셔를 제작해서 무작위로 일년에 두 번 정도 수요가 예상되는 곳에 보낼 생각이다. 기실 이건 생각보다 이상한 것이 아닌데, 대형회사들은 오히려 매우 당당하게 사건이 발생한 회사에 직접 전화를 해서 컨퍼런스를 유도하여 케이스를 따오는 것이 비일비재하니 작은 회사들이 규모에서 밀리고 없어 보일까봐 눈치를 보는 것이다. 


정상적이라면 절대로 유지될 수 없었던 부동산경기가 트럼프와 중국의 자본을 만나 지난 8년 가까이 호황을 겪었다. 그런 탓에 hot한 지역을 넘어서 외곽으로 눈을 돌려도 일단 너무 모든 것이 올랐고, 이번 코로나사태가 만든 재택근무정책으로 인해 이런 외곽이 오히려 급상승하는 걸 보고 있으니 역시 이제 머리 끝까지 다 찬 것 같다. 무작위로 돈을 빌려준 부동산경기의 끝에 온 2008년의 금융위기사태보다 더한 것이 곳 올 것 같다. 당시 가계빚으로 계산하면 3-4배가 넘는 액수가 회사들의 빚이고 트럼프가 세금을 깎아주니 열심히 빚을 내서 부동산을 사들이고 보너스로 나간 결과가 코로나를 만나 아주 크게 터질 것 같다. 새벽에 걷는 루트가 몇 개 있는데 결국은 같은 곳을 몇 군데씩 잡아놓고 다니다보니 이젠 더 버티지 못하는 듯 작은 가게들이 조금씩 문을 닫고 있다. 큰 회사들의 프렌치아즈도 일차부도를 신청한 형국이니까 더 말해 무엇하랴만.  소상공인들은 경기가 좋아도 힘들고 떨어져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7월이 한 주도 채 남지 않은 지금 문득 돌아보니 어느샌가 또 정리가 밀려버렸다. 네다섯권 정도에서 한번씩 정리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데 이렇게 많이 쌓이면 읽은 내용도 잊어버리고 책을 읽으면서 떠올린 생각도 모두 안녕이라서 딱 이 정도 수준에서 더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어쨌든 어제까지 읽은 책을 역순으로 남겨본다.


뻔한 내용의 정리가 아닐까, 다뤄지는 책들은 결국 유명한, 너무도 유명해서 어디든 이런 종류의 책에서는 한번 정도 나오는 것들이 아닐까 걱정을 했었는데. 걱정은 기우가 아니었음이다. 저자 또한 이런 걸 의식했었던지 넘치는 이런 종류의 책이야기에 한 권을 더 얹지 않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토대로 책을 이야기할 것이라고 머릿말에 밝히긴 했다. 결과적으로 몇 군데에 드물게 저자가 느낀 것, 저자의 개인사, 책의 배경이 되는 곳으로의 여행이나 방문을 버무린 이야기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짧은 글로 책 한 권을 정리한 도서목록의 소개글 같았고 특별한 무언가를 느끼거나 흥미로운 '새로운'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다. 이현우, 장정일, 금정연, 서민, 박균호 선생을 비롯해서 많은 분들의 글을 읽어왔고 앞으로도 종종 책에 대한 책을 구해서 읽겠지만,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것을 주지는 않았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 정리가 깔끔하고 책에 대한 소개가 잘 되어있기는 하지만, 간만에 신선한 책의 이야기로 회를 떠 먹는 듯한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나는 토요일 오후에 그저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다 읽었다. 책을 많은 접하지 않았고 편하게 접할 입문서로써는 나쁘지 않다.


이 책은 참 두서가 없다. 코넌 도일이 이 책을 쓰던 즈음까지 모인 장서를 정리해놓은 자신의 서재. 그 서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타나는 '마법'의 공간에서 하나씩 책과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추억하면서 책을 사고 읽는 행위에 대한 즐거움을 이야기해준다. 하지만 어떤 형식이나 정리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서재를 기준으로 하나씩 짚어가기 때문에 정신을 바짝 차려야 이 책을 즐길 수 있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작가와 책 또한 조금 머리가 아프게 할 수 있는데, 아이반호를 비롯한 걸작의 월터 스콧이나 단테와 기번까지는 그나마 알겠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고전들이 코넌 도일이 활동하는 시대를 전후로 나온 것들이 많은 탓인지 잘 아는 책은 많이 없고, 그가 언급하는 contemporary작가와 책은 지금에 와서는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책을 사랑하고 갖고 싶은 마음에 점심식사를 포기하고 그 값으로 싸게 구할 수 있는 책을 사들고 집에 와서 페이지를 넘기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낸 도락을 조금이나마 경험한 사람이라서 나 또한 지금 어린 시절, 어렵게 구한 책들을 보면서 서재란 코넌 도일의 말처럼 '마법'이 펼쳐지는 공간이라는 멋진 이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서재공간을 큰 방에 마련하고 그렇게 문을 열고 들어가면 펼쳐지는 다른 세계로의 여행과 향연을 밤 늦게 즐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비평적인 책읽기가 늘 어려운 나는 작가가 말하는 걸 쉽게 믿고 이야기에 공감하는 편이다.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 그저 즐겁게 보이고 그 뒤의 이상한 짓에는 눈이 가질 않는 건데, 그런 걸 귀신같이 잡아내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왜 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싶다. 예전에 여러 번 읽고 계속 즐겁게 하와이를 추억한 서진의 책이 그랬는데, 이번에는 그 경험으로 단련이 된 덕분인지 마냥 추억스럽거나 마냥 호기심을 갖고 이 책을 보는 대신, 읽는 내내 90일 정도를 머물면서 어떻게 책을 한 권 다 쓰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보니 전에 본 같은 시리즈에서 어떤 작가가 아이오와대학의 교환과정으로 잠깐 머물던 데모인에 대한 글을 보면서 뭐가 그리 불만이 많았을까 싶었던 기억이 난다. 

이란은 세계의 주류를 표방하는 서방세계, 정확하게는 미국과 척을 지고 사는 덕분에 아직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방문하지는 못하는 곳이다. 시스템이 굴러갈 수준의 융통성은 있지만 어쨌든 신정국가로써 술을 금지하고 자유연애도 금지하고 있는 국가라서 고대의 문화를 볼 수 있다는 걸 빼고는 크게 흥미가 가지 않는 나라인데, 테헤란이 중동의 파리로 불리던, 서방세계의 지원을 받던 부패한 팔라비왕조의 이란이 더 나은 건지, 사회를 장악한 종교세력이 나라를 다스리는 지금이 더 나은 건지 내가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잘 먹고 산다고 잘 교육을 받고 이를 통해 전제군주정을 타도할 힘이 나오는 늘 구현되는 건 아니라서. 다음에 이런 글이 나온다면 보다 더 오래 이곳을 경험하고 살아본 사람의 것이라면 좋겠다.


이런 책은 말하자면 일종의 간식처럼 어쩌다 손에 쥐고 읽어버리게 되는 책이다. SF의 팬이라서 늘 SF와 판타지는 기회가 되면 읽고는 있지만 작지만 임팩트있는 이 소설은 그렇게 아무런 기대나 생각이 없이 다른 독서에서 잠깐 쉬는 기분으로 가볍게 즐겼다. 워낙에 거장이라서 뭘 써도 잘 쓰는 이 영감님의 책은 '왕좌의 게임'이 HBO를 타고 전 세계에 퍼진 이래 출연자들을 하나씩 죽이는 것을 유행시켰던 바, 이 책에도 또한 mortality rate은 매우 높다. 세계의 시작보다 전부터 우주를 떠돌고 있는 '생명체'이자 대단한 '문명'으로 생각되는 어떤 존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를 위해 빌린 탐사선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끝은 조금은 허무하다. 얼음과 불의 노래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면 안될 텐데, 드라마가 아직 나오지 못한 여섯 번째 책의 any indication이라면 이 또한 마틴옹의 트레이드마크로 남을 것 같다. 논픽션과 소설, 문학과 개론을 뒤적거리다면 순수한 SF를 읽으니 머리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한꺼번에 모아서 정리할 '러브크래프트 전집'의 네 번째를 읽은 것 외에는 딱 네 권으로 떨어진다. 위에 한참 써갈긴 말이 바보같아지는 순간이다. 지난 번의 대청소 이후, 열심히 읽고는 있으나 많이 읽지는 못한 것을 지금 알게 되었다. 이상적이라고 써놓았으니 말인데, 딱 이렇게 네 권에서 다섯 권까지는 정리가 수월할 것 같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면 좋겠지만, 보장할 수 없는 일이다. 


책읽기는 다양하게. 특히 지겨울 때마다 여기 저기로 오갈 수 있도록 다양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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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의 업무를 처리하고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고 남은 시간은 책을 읽었다. 어제 새삼 느낀 건데, 금년엔 아직 휴가가 없었다는 사실이 그간 COVID-19으로 인한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 그리고 열자마자 다시 닫힌 gym과 hair salon과 bar, 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realize되어 무척 우울한 저녁을 보냈다. 머리가 너무 아픈 나머지 두통약을 먹었는데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아서 정량에서 한 알을 더 먹었더니 한창 밝은 밤 여덟 시가 넘은 무렵 잠에 들 수 있었다. 개운하게 다시 하루를 시작하려고 새벽에 일어났으나 여전히 아무런 의욕이 나질 않았고 하릴없이 책을 읽다가 씻고 출근했다. 


마음상태가 회사에 왔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는지라 꼭 할 일을 마친 후 메일정리를 하고 운동을 했다. 그나마 sanity를 유지시켜주는 건 술과 운동, 그리고 책인데 이 셋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안되는 것이다. 땀을 흘린 덕분에 그럭저럭 마음이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일은 하기 싫다는 이유로 남은 시간을 John Grisham의 4월신작 'Camino Wind'를 끝내는데 썼다. 


동부사람들은 이곳에서 하와이를 가듯 플로리다나 캐러비안을 다니는 것 같다. Grisham의 소설에서도 하와이는 등장하지 않지만 늘 플로리다, 캐러비안의 이런 저런 섬이 등장하는 걸 보면 꽤 쉽게 갈 수 있고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는 것 같다. 물론 하와이도 네 개의 섬이 다양한 휴양옵션을 제공하기 때문에 딱히 miss하는 건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지만 궁금하기는 하다. 


전에 읽은 'Camino Island'에서 등장한 Bay Books의 매력적인 서점주인 Bruce Cable이 이번에는 사건의 대상이 아닌 주인공이 되어 태풍과 함께 들이닥친 contract killing의 진실을 추적하는 것이 중심. 전작에서는 서점과 희귀본과 고서를 둘러싼 회색지대의 모험이었다면 이번에는 익숙한 등장인물들이 함께 살인사건에서 시작되어 그들이 handle할 수 있는 수준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한 일을 접하게 되는데, 결론은 요즘 Grisham소설에서 종종 보는 것처럼 뭐랄까, 갑작스럽게 정리되는 패턴을 그대로 따른다. 그의 예전 작품들의 수준은 보다 높고 기교도 좋았다고 생각되는데 요즘은 그 정도에는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흥미로운 뉴스나 이슈를 소설화하여 재미있게 풀어내는 실력은 여전한 것 같다. 'Brethren'이나 'Runaway Jury'같은 작품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Camino Winds'는 'Camino Island'에 이어 괜찮은 재미를 보장한다.














지난 주에 도착한 세 권을 주말에 읽어버렸다. 추리소설은 늘 즐거운데 일단 머리를 식혀주고 종종 매우 기괴하고도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두 작품은 쉽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그 와중에서 사회적인 이슈를 생각해볼 기회를 주었으니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나비 그림'은 시리즈로 나오고 있는 일본 추리소설의 아홉 번째 모음인데 사건의 해결이나 결말이 아닌 사건을 일으키는 인간의 마음 속 어둠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라서 흥미롭게 봤다. 습작과도 같은 노작과 번안의 시기에도 끊임없는 노력은 이어져왔다는 걸 볼 수 있었다는 것 또한 added bonus같은 재미가 아닌가 싶다. 지금보다는 상대적으로 모든 면에서 단순하다고 할 수도 있는 시대의 이야기지만 그만큼 작가의 머릿속에서 재창조되는 이야기의 자유도가 높은 덕분이 아닐까.















누군가 내 귀를 파준다면 그렇게 시원하고 편안할까 싶은 아베 야로의 데뷔작품 한 권. 거기에 그가 푸는 음식과 술의 썰이 가득한 두 권을 읽었다. 미국으로 치면 작은 bar라고 하겠지만 음식의 수준이나 질이 훨씬 높은 이자카야가 주무대. 여기서 갈 수 있는 이자카야를 표방하는 일본술집은 너무 비싸서 도저히 선술집이라고 할 수 없는데, 가끔은 가서 이자카야에서 마시는 흉내를 내보기는 한다. 당연히 성에 찰 리가 없다만, 그렇다고 일본이나 한국으로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가끔씩은 집에서 가벼운 안주를 준비해서 작은 잔에 맥주를 따라마실 수 밖에 없다. 이것도 슬슬 지겨워서 잘 안 하게 되었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살짝 낮잠을 자고 나서, 어슬렁거리다가 해가 지기 시작하면 동네의 작은 선술집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도 나쁘지 않겠다. 


모든 걸 지금의 눈으로 보고 해석하는 건 무리가 아닐까 하면서도 그런 시도랄까 행위도 하나의 사유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작가가 살았고 창작을 했던 시대를 바탕으로 그 사유의 최선을 다했었던 것인지 따져보는 것도 역시 나쁜 방식의 소화는 아닐 것이다. 


어린 시절 TV에서는 늘 KBS 아니면 MBC 둘 중 하나의 선택지가 전부였는데 어인 일이었는지는 몰라도 한 채널에서는 꼭 남자애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가, 다른 채널에서는 여자애들을 대상으로 하는 만화를 같은 시간대에 방송했었다. 중학교 이후 내가 조금 더 커졌지만 어린 시절 연년생의 누나는 나보다 몸집도 크고 사나웠기 (지금도 사납다) 때문에 채널권은 나에게 없었고 덕분에 이 책에 나오는 소녀들을 전부 알고 있다. 딱히 재미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은하철도 999대신 캔디를 보는 건 꽤나 괴로운 일이었던 것은 틀림없다. 게다가 가끔 낮에 특별만화가 편성된 일요일에는 무슨 조화였었는지 늘 장정구, 유명우, 아니면 박종팔의 타이틀방어전이 중계되었고 덕분에 난 특별만화 또한 볼 수 없었다. 


거의 모든 만화들은 결국 제대로 본 것이 없고 대백과 시리즈로만 섭렵했기 때문에 상대적인 박탈감에 어른이 되고 한참 지난 지금도 옛날의 만화를 모아들이고 있다. 


모녀가 각각의 관점에서 collaboration한 점이 특이한 이 책의 포인트는 이해하겠지만 어지간하면 추억은 그 나름대로의 즐거움이니 그냥 남겨두어도 좋겠다는 생각, 하지만 female의 관점에서는 이런 시도를 아니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면이 더 많았지만 논리적으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 같다.


지금 열심히 읽고 있는 러브크래프트 전집의 다섯 번째와 윌리엄 샤이러의 20th Century Journey를 읽고 있다. 윌리엄 샤이러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지만 논픽션을 픽션보다도 더욱 픽션처럼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한국어로 번역된 것이 거의 없기에 아쉽지만 이곳에 머무는 장점을 활용하여 아마존에서 몇 년 전에 긁어모은 걸 이렇게 어쩌다 잡게 되면 끝까지 읽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내가 읽고 있는 건 하드커버지만 옆의 그림이 담긴 커버가 없는 library edition으로써 누가 훔쳐서 판 건지 library에서 재고를 정리할 때 나온 건지 알 수가 없다. 온라인에서 구매했고 amazon의 bookstore를 이용했으니 훔친 건 아닐 것 같다만...




이번 주를 완전히 업무에서 손떼고 쉴 수는 없는 형편이고 금요일에는 그간 stash해놓은 짐들도 조금 더 정리해야 한다. CPT TV가 두 개가 있는데 자리가 되면 방에 놓고 간만에 아날로그로 영화를 즐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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