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하겠다고 잠시 회사로 나왔으나 오늘로 사흘째 더위로 잠을 설친 끝에 몸이 내켜하지 않는다. 이런 날엔 그저 걷고 줄넘기를 하는 것이 좋은데 그것조차 여의치 않은 아침이다. 새벽 세 시부터 갑자가 돌풍이 한 시간 정도 불더니 네 시부터는 마른 번개가 치기 시작했고, 다섯 시부터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매우 이상한 기후의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아닌가 싶다. 이 일대는 여름에 비가 오는 날씨가 아니다. 여름은 늘 덥지만 dry해서 더위를 상대적으로 덜 느끼는 날씨라서 사실 이곳에 Silicon Valley가 생겼다고 할 정도로 여름에는 비가 오지 않는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8월에 비가 내린 적은 없는 것 같은데, 8월 중순까지 이어진 선선한 여름, 갑자기 닥친 더운 여름에 더해서 이젠 마른 하늘에 천둥번개가 치고 8월에 비가 내리는 지경이 된 것이다. 앞으로 더 어떻게 변해갈지 두렵지 않을 수가 없다. 


실증적인 과학을 신봉하던 의사출신의 작가 코난 도일이 말년에는 심령술에 빠져들어 이를 열렬히 지지하고 전파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것이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이 또한 그런 사례가 될 것이다. 마찬가지로 홈즈로 가장 큰 성공을 이뤘고 문학사에 길이 남은 존재가 된 저자가 실제로는 '장르'소설보다는 보다 더 진지한 문학을 추구했었다는 (그리고 사실 별로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사실 또한 재미있는 인생의 역설이 될 것이다. 홈즈로는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래서 더욱 벗어나고 싶었으나 어느새 작가나 소설보다도 더 큰 존재가 되어버린 홈즈는 작가의 의지를 벗어나 지금까지도 살아서 숨쉬는 하나의 독립적인 객체가 되어버렸으니 글을 쓰고 캐릭터를 창조하는 건 작가이지만 그 후의 모든 것이 반드시 작가가 의도한대로 흘러갈 수 없다는 걸 보여준다. 홈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고 홈즈를 창조한 배경이나 당시의 정황, 홈즈 외에도 코난 도일이 시도했던 다양한 창작에 더해, 덜 알려졌지만 상당히 성공한 제라르 준장이나 모 교수의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도 볼 수 있다. 이다혜 기자의 책에서 새끼를 친 여러 권의 책들 중 하나. 


빈 속에 몰트린을 삼킨 탓인지 팔다리가 지릿지릿하다. 의도는 운동을 하고자 한 것인데 잘못하면 이렇게 책을 정리하는 것으로 일요일에서의 사무실 일정이 끝날 수도 있겠다. 당대의 화두이자 유행이자 감옥처럼 다가오는 '집콕'이라는 단어가 제목에서부터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COVID-19에서 야기된 격리생활의 유행을 타고 급조된 고만고만한 책이 아니다.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선생의 독서를 통해 책과 일상에서 발생하는 에피소드, 그리고 깨달음(?)이 버무려진 생활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되겠다. 초기작에서 소개(?)된 어린 따님이 이젠 대학생이 되었고 어쩌면 조금 더 아빠를 이해하고 지지(?)하는 것을 볼 수 있으니 따님을 통해 사모님과의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인 자신의 지위를 가끔 뒤엎으려는 시도가 조금 더 본격화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어쩌면 이런 이이제이 (비유에 대해 미리 사과를 드리지만)를 통한 쿠데타가 다음 번 책의 주 이야기가 될런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키워보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런 뻔한 꼼수보다는 계속 읍소를 통해 늙어가는 아버지의 불쌍함을 피력하는 것이 더 효과가 좋을 것 같지만 부부와 가족의 dynamic은 그야말로 case-by-case라서. 얼마전에 읽은 '생활'속의 독서를 표방하면서 별로였던 책이나 그 전의 비슷한 몇 권에서 얻은 실망을 만회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전편에서 지금까지 꽤 오래 gap이 있었던 덕분에 아예 작정하고 두 권으로 나뉘는 방대한 스토리를 구성한 듯, 이 책은 사건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려는 시점에서 끝난다. 세상의 모든 걸 찾을 수 있는 아마존에서 뒤져보니 9월 말이면 다음 권이 나온다고 하니 내 추측이 맞을 것이다. 이번에 러브크래프트 전작의 외전에서 소개된 앨저넌 블랙우드의 존 사일런스라는 탐정이 궁금해져서 주문한 책과 함께 미리 주문을 넣어두었다. 


원래도 사고뭉치에 온갖 일에 손가락을 담구게 되는 해리 데이빗 카퍼필드 블랙스톤 드레스덴은 복수를 위해 힘을 얻고자 Winter Court의 여왕과의 거래를 통해 Winter Knight이 되어 많은 세력들의 적일 수도 있고 동지가 될 수도 있는 존재로서 의심을 받고 있다. 거기에 그의 half brother이 하필이면 White Court의 벰파이어라는 점, 그가 이번에 엄청난 사건을 저질러버렸다는 점, 이런 모든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하면서 판을 키워가는 물고기종족, 그리고 거듭되는 침공을 통해 우리가 아는 현실세계 그 자체를 흔들어버릴 Outsider까지. 늘 버킷 가득한 사건을 끌고 다니지만 이번에는 어떻게 수습을 해야할지. 


주인공이 계속 강해지고 적들은 더 복잡하고 더 강해지는 걸 보면 마치 드레곤 볼 처럼 이 시리즈도 언젠가는 끝을 맞이해야 할 것 같다. 


분석과 현학이 가득하여 '과학'적인건 맞지만 '지적'인지는 모르는 음주탐구생활. 내가 정의하는 좋은 강의의 조건은 어려운 걸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것으로 이치를 깨우쳐주고, 이를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지식을 넓혀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 기준에 따라서 이야기하자면 이 책에서 제공하는 지식은 그저 지식의 나열에 가깝다고 하겠다. 사람마다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만, 문과형 인간이 나에게는 정보의 나열이라는 점 외에 저자가 어떤 original한 자신의 이야기를 한 기억은 없다. 교양을 위해 읽어둘 수도 있고 의외로 즐겁게 다가올 수도 있는 주요주종에 대한 구체적인 과학적 배경이지만 그런 이유로 그다지 흥미를 갖고 engage하지는 못했음이다. 와인도 그렇고 맥주나 위스키의 세계도 무궁무진한 탐구의 영역이지만 역시 술은 일단 마시고 볼 일이지 읽어야만 하는 건 아니니까. 오히려 술의 유행에 대한 이야기를 어딘가에서 보고 싶다. 맥주만 해도 유행에 따라 마트의 물건이 달라지는데 한참 두꺼운 맥주가 선호되다가 요 근래 몇 년의 패턴을 보면 IPA와 라거, 그리고 더욱 엷은 맛의 발포주로 선호도가 옮겨진 것 같다. 덕분에 내가 즐기던 슈파텐이나 amber계열의 맥주는 일반마트에서는 거의 빠졌고 liquor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가게에서나 찾을 수 있다. 이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싶다. 내가 만들 것도 아니고 현학적으로 술자리에서 시시콜콜한 술의 구성원리를 이야기하고 싶지도 않기에.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만. 운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에너지 드링크와 몰트린이 춤추는 내 머릿속과 몸의 멍함이 심해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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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0-08-17 15: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기상이변입니다.
여기 한국은 들으셔서 알겠지만 어마어마한 비가 내렸지요.
여름 중반까지 그런대로 잘 보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코로나에 업친데 덥친격입니다.
장마 끝나고나니 더위기승. 그나마 그동안 안 더웠다는 게 그냥저냥
위로가 됩니다. 이번 한 주 정도만 넘기면 밤엔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미국은 토네이도로 기억되는 나라입니다.ㅋ

transient-guest 2020-08-17 21:12   좋아요 1 | URL
여기도 계속 시원하다가 갑자기 더워지더니 정신이 없네요. 게다가 이 건기에 비가 온 걸 보면 정말 앞으로가 걱정됩니다. 이곳에는 토네이도는 없지만 지진이 늘 risk가 있네요. 아래 위로는 주말부터 산불이 나서 난리라는데 가끔 이게 바람이랑 붙으면 firenado가 옵니다.

얄라알라 2020-08-21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 소중했던 전집 중 하나가 코난 도일 전집이었는데
정작 그의 생애는 전혀 모르고 있었네요. 말년의 급반전이 놀랍습니다

transient-guest 2020-08-21 02:27   좋아요 0 | URL
그 급반전이 어떻게 보면 무척 과학적(?)인 접근 때문이라는 건 더더욱 놀랍습니다. 즉 당시 강령술을 신봉하던 사람들 주류와 다르게 코난 도일은 과학적인 절차로 검증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에 따라 강령술은 진짜라고 믿었다고 하네요.

2020-08-21 11: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8-22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