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은 간신히 20권 정도를 읽은 것이 될 터. 오늘과 내일까지 지금 읽고 있는 책들 중 한 권이라도 더 끝내면 딱 그 정도까지. 요즘 같이 볼 것도 없고 일도 그렇고 운동도 못하고 갈 곳도 없는 시기에는 그나마 책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 문제는 몸의 에너지가 남아돌다 보니 뭐 하나에 집중하는 것도 힘들고 잠도 엉망이라서 제대로 끝까지 읽지 못하고 여러 권의 책을 다 열어서 조금씩 읽다말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  


게임은 갖고 있지만 아직 제대로 돌려보지 못했고 넷플릭스 드라마로 극화된 것을 봤다. 소설은 꽤 오래 전에 나온 것이 게임이 유명세를 타면서 일종의 역주행을 하고 다시 넷플릭스로 제대로 대박은 맞은 것 같다. 내용은 상당히 탄탄한데, 폴란드라는, 문화적으로는 이곳에서 볼 때 변방에 가깝다는 이유로 이런 저런 기연을 만난 끝에 유명해진 듯.  이제까지 본 것들과는 또다른 멋진 세계관에서, Witcher라는 직업을 가진 게랄트가 주인공. 그를 중심으로 마법과 괴물, 엘프, 왕국이 어우러져 좋은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이제 겨우 첫 권, 나온 시기로는 첫 번째가 아니지만 이미 순서로는 The Last Wish를 먼저 읽어야 한다고 할 정도로 시간/사건의 재배치를 통해 정해진 순서에 따라 읽었다. 드라마의 반 정도가 이번 책에 포함된 것 같고, 드라마보다는 좀더 정돈된 느낌으로 flashback의 정도가 낮다. 다음 이야기를 읽어야 하는데 서점도 문을 닫았고, 가능하면 아마존이 아닌 서점에서 구하고 싶어서 고민하고 있다.


길라잡이 삼아서 한 권씩 따로 읽고 있는 가이드북. 자계서라고 할 정도로 이것 저것을 다루거나 방법론을 내세우지는 않고, 무엇보다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책이라는 점이 좋다.  뭔가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것의 시작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그리고 제대로 커리어의 일을 하기 시작한 건 벌써 14년 정도 됐는데, 확실히 이런 계통의 책을 읽을 때 보다 더 이해가 빠르고 금방 머리에서 구체화가 된다. 경험에서 나오는 나름의 비평적인 독서 또한 가능하다는 건 이번에 이런 책들을 다시 잡으면서 알게 되었다. 예전에 한창 이런 책들을 읽을 때에는 옥석을 가리지 않고 제목에 따라 마구잡이로 읽었었는데, 방법보다는 일종의 자기위로에 가까운 행위였던 것 같다. 도대체 경험이 없었던 시절이라서 읽으면 좋고, 읽고 나서는 별다른 적용이 없이 다른 책으로 넘어가기를 반복했던 것이 이제는 제법 내용을 음미하고 실제로 어떻게 적용할지를 생각해보면서 읽고 있다.  일에 대한 개념, 일 그 자체, 사업과 일의 구분이 없이, 점점 더 전통적인 직장과 일자리라는 것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기름기를 제거하고 일/사업에 임하고 무엇을 할지 이야기하고 생각해보는 시간.


영 별로였던 책. 나로써는 드물게 아주 낮게 별점을 매긴 책. 난이도는 아주 낮은데 속이 그냥 그래서 초심자에게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책이 싫어질 수 있으니까. 도대체 대화형식으로 구성한 역사인물들의 이야기도 많이 유치하게 보였고,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에. 좀더 다른 방식으로 구성을 했더라면 괜찮았을지도 모를, 내용은 유익한 것들도 있었던, 그러나 그 외의 여러 면에서는 그다지. 애써 만든 책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혹평은 많이 미안하지만.



 













여행도 가고 싶고, 칵테일도 마시고 싶고, 영화관에도 가고 싶고, 무엇보다 gym에 가서 빡세게 쇠질을 하고 달리기를 하고 싶은 요즘. 덕분에 소소하게 읽은 책들. 소소하게 감동하고 지루해하기도 하고, 다른 도시를 엿보며 맥주를 마시고 싶어하기도 한 책들.


글도 갈수록 엉망이다. 이 상태가 언제까지 이어질건지.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지. 애초에 가졌던 무협지 같은 시작을 보내겠다는 포부(?)도 흐물흐물해지고 있다.  빨리 다시 나의 패턴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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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일단은 회사에 나와서 일을 하니 뭔가 조금씩 진행을 하게 된다. 바깥에서 일하는 것도 괜찮기는 한데 요즘같은 분위기에서는 계속 늘어지기 쉽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어차피 빌딩이 텅텅 빈 상태라서 마주치는 사람도 거의 없으니 사실상 격리상태는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넉넉하게 마음을 먹고 천천히 하나씩 일을 하면서 적당히 게으름을 부리다 보면 어느새 퇴근시간이 온다. 


나와서 있는 덕분에 짧으면 2주, 길어지면 3주,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는 지금의 Shelter-in-Place 중에도 원래의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 정확하게는 화요일 새벽 12시부터 효력이 발생했던 이 시행령 때문에 부랴부랴 월요일에는 gym으로 가서 달리기를 했고 화요일 하루, 잠깐 사무실에 나왔다가 집으로 돌아갔었는데, 결론적으로 생활이 자꾸 엉망이 되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고 어제부터는 9-5 정상근무(?)를 하고 있다.  앞으로도 상황이 더 나빠지거나 하지 않는다면 그냥 이대로 매일 사무실에 나와서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다른 책이 최근에 나온 것 같은데 아직 주문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공이 깊어지는 듯한 선생의 신간. 한국의 현대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깔끔하고 과감하게 잘 정리했다고 본다. 덕분에 거론된 작품들에 대한 흥미도 덩달아 다시 갖게 되었는데, 이병주, 이청준 작가의 전집은 그 무시무시한 양과 가격에도 불구하고 얼른 주문하고 싶어 미칠 지경이다.  비평적인 읽기에 아주 약한 내 관점으로 보면 이렇게 읽을 수도 있구나 싶을 정도로 세밀한 시대적인 분석이 눈에 쏙 들어온다.  언급된 배경을 보건데, 단순히 이야기를 읽고 이해하는 지점을 넘어서 작품이 쓰여진 시기, 연대, 당시의 시대상, 주요사건, 여기에 작가 개인의 배경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분석이 있어야 이런 정도의 비평적인 읽기가 가능한 것 같다.  이문열에 대한 평가는 특히 냉정한데 그가 성공한 지점이 결국 그가 망한(?) 지점으로 보여 흥미롭다.  비단 그 뿐이 아니라 많은 작가들이 그렇게 그들을 흥하게 한 그 지점에서 더 나아가기 보다는 다른 길로 빠진 탓에 연재소설로 탄생한 여러 권수를 자랑하는 소설시리즈가 아닌 깔끔한 장편으로의 도약이 지금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한국문학의 한계에 대해서는 늘 의문을 갖고 있던 부분이라서 더욱 많이 공감했다.  즉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장편소설을 쓴 작가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  거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단편에서 중편에 머무는 것이 한국문학의 모습인데, 활자가 두 배로 커지고 단락의 간격이 넓어진 덕분에 예전의 단편분량이면 지금은 중편 혹은 그 이상이 나오기 때문에 기실 책 한 권으로 만들어진 한 편의 이야기라고 해도 그 양을 보면 중편 이상은 나오지 못하는 것이 한국문단이 가진 숙제라고 생각한다.  그 부분에 대해서 좀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일본소설에서 전전에서 전후세대를 묘사할 때 종종 보는 불편함은 그들이 주장하는 '남자다움'이나 '정정당당히 싸웠다', '어려운 시기를 함께 이겨냈다'는 그야말로 반성도 후회도 없이 미화된 과거로의 회상만 남은 그들의 전후인식이 자주 보이기 때문이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작품은 상당히 괜찮은데 유독 이런 면이 눈에 거슬린다.  앞으로 일어난, 정확히는 이미 다른 작품의 prequel인 이 작품에서 주인공으로 설정된 할아범이 딱 그런 모양새다. 그런 면을 빼고 생각하면 소설의 재미는 괜찮다.  안락의자탐정을 그대로 차용한 휠체어탐정에 가까운 할아범이 소소한 사건들을 해결하는 에피소드는 마지막으로 가면 미사키 요스케 선생의 등장으로 단숨에 RPM이 올라가면서 끝을 맺는다.  사회파의 형식으로,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나름 어느 한 시절 일본의 사회문제를 보여준다.















초한지를 스팀펑크의 세계관으로 가져온 듯한 이야기. 켄 리우의 스토리텔링도 훌륭하고 비록 고전을 차용한 것이지만 적절한 부분에서 twist를 주는 실력도 좋다.  읽으면서 금방 초한지를 모티브로 했음을 알 수 있었는데 약간 자랑하자면 역자의 글에서 읽은 바, 역자가 알아차린 부분부다 훨씬 전이다 (데헷~~).  내가 초한지를 처음 읽은 것은 정비석선생의 소설초한지를 통해서였는데 1985/1986년 정도에 구한 것으로 기억하는 예전의 책을 아직도 갖고 있다. 전에 한번 말했지만 이때 고려원의 소설책 한 권이 대략 1500원 정도였으니 지금은 딱 열 배가 오른 것 같다.  우리가 버는 건 열 배가 오른 것 같지 않고 부동산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이 올랐으니 사람들이 사는 것이 팍팍한 이유가 아닌가 싶다.  


사실 초한지의 주요 부분인 초한쟁패는 오히려 식상하다면 식상한 평이한 영웅담이다. 그러나 한나라가 패권을 차지한 후의 이야기는 대략 유방의 치세, 공신제거, 이후 여태후의 전횡으로 비교적 간략하게 묘사되는 바, 이 지점에 켄 리우가 노린 창작의 한 수가 들어있을 것 같다.  어떻게 펼쳐질지, 척비와는 달리 척비를 차용한 인물은 조금 더 센 수를 보여줄 수 있을지, 허무하게 당한 한신보다는 한신을 차용해 만든 명장은 다른 길을 택할 수는 없는 건지 궁금하다. 


이 두 권은 빌려온 것으로 둘 다 잘 읽었다. '클래식 오디세이'의 경우 QR코드가 첨부되어 다뤄지는 음악을 바로 찾아볼 수 있게 한 점이 괜찮았고, '나는 언제나 옳다'는 작가에게 새삼 흥미를 갖고 갑자기 여러 권의 책을 주문하게 했으니 책의 숲에 일단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계속 숲속을 헤매이다 말다를 반복할 뿐이다.  책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물론 다른 의미로 쓰이는 말이지만, 그 끝없음에 빗대어 생각해보면 책속에 과연 길이 있기는 한건지 문득 의문이 든다.



때로는 천천히, 때로는 아주 빠르게 그렇게 읽어갈 뿐이다. 은퇴하면 읽겠다고 책을 모아드리는 건 안 그러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개인적으로 좀 어리석게 생각된다. 지금 읽지 않던 걸, 은퇴하면 읽으리라는 보장이 없이 때문이고 독서란 일종의 acquired taste인 면이 있어서 입문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지점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은퇴하면 즐겁게 시간을 보낼 프로젝트는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지금 나름대로의 시간을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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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부 차원에서, 그리고 카운티 차원에서의 lockdown이 전격적으로 실시된다. 이에 따라 gym도 오늘 자정을 끝으로 3/31까지 문을 닫고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들은 대체로 4/6까지는 문을 닫게 될 예정이다. 


덕분에 gym에 못 가는 것이 가장 아쉬운데, 부족한 대로 사무실빌딩에 있는 작은 시설을 사용해보기로 했다. 작지만 꽤 알차서 industry grade 런닝머신도 있고 케이블기계도 있고 덤벨도 꽤 갖춰져 있어서 나 정도 수준으로 하는 사람은 어지간한 건 다 할 수 있다.  빌딩도 닫게 되어 자기 사무실만 들락거릴 수 있게 되면 그야말로 natural weight workout만 하고 달리기도 밖에서 하는 수 밖에 없겠다. 이 기회에 다른 방향으로 근육을 사용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일이 가장 큰 골치인데, 주로 쓰고 전화하는 것이 일이라서 다른 건 문제가 덜하지만 우편물을 주고 받는 것, 그리고 전체적으로 주춤하게 되는 심리가 가장 큰 문제가 되겠다.  


지난 석 달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트럼프정부의 무능함이 초래한 일이다. 중국에서 숨기다 못해 뉴스가 튀어나온 것이 지난 1월인데 이제와서 뭔가를 하겠다는 거다.  당연히 이미 지역사회로 퍼질만큼 퍼졌을 것이고 이건 막는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라 빨리 testing을 하고 최대한 병상을 확보해서 환자를 격리하고 치료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트럼프가 오늘 한 일이라곤 코로나 19이 문제라는 것, 경기침체가 올 수도 있다는 말, 그리고 주마다 알아서 필요한 자료와 재원을 확보하라는 거다.  박근혜가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저 열심히 일하고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깨끗하게 몸과 환경을 유지하고, 이 시기를 기회로 삼아서 더더욱 virtual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서 미래를 위해 고객들과 마켓을 유비쿼터스로 유도하고, 마침 도착한 두 박스의 책을 읽는 것. 어쩌면 다가오는 2주간 더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침 계속 비가 온다고 하니 적당한 수준의 풍류를 즐기면서 일을 할 수도 있음이다.  무와 문에 충실한, 그야말로 무협지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으로 이 시기를 이겨내려 한다.


50이 되면 그리고 준비가 된다면 문과 무에 좀더 충실한 삶을 살고자 다짐하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고 버는 걸 잘 관리하고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서부와 비교할 때 세 시간이 느리게 시작되는 하와이에서의 삶이 간절하다.  새벽에 일어나서 가볍게 운동을 하고 여섯 시에 사무실에 나가면 서부시간으로 오전 아홉 시. 이후 현지시간으로 오후 두 시면 서부시간으로 오후 다섯 시가 되어 퇴근을 하고, 남은 하루를 자신에게 오롯히 투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더욱 더 성실하게 업무시간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그저 할 수 있는 걸 하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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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0-03-17 13: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무와 문에 충실한, 그야말로 무협지 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으로 이 시기를 이겨내려 한다.˝니 정말 멋진 계획이십니다!!^^

transient-guest 2020-03-17 23:00   좋아요 0 | URL
그렇게라도 해야 버틸 것 같습니다.ㅎ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적추적 비가 하루 종일 오는 주말이면 근처의 BN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3-5년 후의 삶을 준비하는 거시적인 계획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모종의 음모(?)로 인해 서점에 나온 오늘은 근 한 달 만의 외출이 되는 것 같다. 그간 이런 저런 리모델링으로 공간을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제 갓 시작되는 이곳의 코로나 사태를 보여주는 듯 오늘은 사람이 거의 없다. 기실 나도 주차장에 차가 많았더라면 아마 그대로 차를 돌려서 집으로 갈 마음으로 나왔는데, 전국적으로 비상사태가 선포되고 머저리가 아니고서야 현재 3000명이 조금 안되는 확진자 숫자가 미국 전체의 확진자라고 믿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서점은 한산하다.  이런 대규모 사태를 겪어본 적이 없는 것이 대다수의 이곳 사람들인데 아마 이번의 기억이 남아서 앞으로는 뭔가 우려되는 사태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이런 식의 사재기가, 특히 아시아권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 이곳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현상이 될 것 같다. 


가뜩이나 운영이 어려운 BN인데 책을 읽는 자들에게 소중한, 몇 개 되지도 않는 서점들 중에서 사실상 유일한 대형서점인 이곳이 문을 닫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밀려온다. 코로나 예방을 위해서 카페의 테이블을 1/5 정도로 줄이고 바의 의자는 딱 2미터씩 떨어져 앉을 수 있도록 세 개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이곳을 처음 와본 것이 벌써 25년이 넘었는데 이런 모습은 처음이다.  


덕분에 쾌적한 환경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그런 생각은 들지 않고 그저 텅 빈 듯한 서점의 내부가 익숙하지 않아서 기분이 뭐라 말할 수 없을 만큼 이상하다.


책이라도 몇 권 사야 할 듯 싶다. 내가 사랑하는 공간, 한 시절, Borders와 함께 대형서점시대를 열고 시장을 양분하던 BN. 이젠 이곳은 그야말로 바깥에서 책을 구하고 읽고 싶은 사람들의 final outpost가 되어 버린 것이다.  


오래 있을 곳은 아니라고 생각해서 대충 짐을 챙겨서 책을 몇 권 고르고 계산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직원들은 좀 긴장이 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한 달만 지나가도 자영업자들이나 장사사 신통치 못한 곳은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달 렌트는 꼬박꼬박 나가야 하고, 월급도 안 줄 수 없기 때문에.  


여러 모로 우울한 주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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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모든 것이 멈춘 듯한 생활이 점차 모두의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이나 중국보다 훨씬 늦게 시작됐고, 무능한 트럼프의 안일한 대처로 인해 사실상 전국적으로 퍼진, 그러나 전혀 상황파악이 되고 있지 못한 미국의 코로나바이러스 상황으로 인해 대중의 패닉만 점차 늘어갈 뿐이다.  성당도 가지 못하고 가급적 사람을 피하면서 그저 운동만 겨우 하는 것으로 활동의 모든 것을 갈음하고 있다. 다행히 이곳의 gym은 넓고, 큰 장소로써 뺵빽하게 사람으로 꽉 찬 공간이 아니라서 그저 사용하는 기구를 닦고 또 닦는 것으로 모두들 조심하면서 운동을 하고 있다.  그래도 건강한 사람들이고 건강에 늘 신경쓰는 사람들로 가득한 공간이고 대부분 잘 씻고 다니는 사람들이라서 mall 같은 곳에 가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내일부터 또 한 주가 시작될 것인데 여러 모로 갑갑하다.


TV를 보거나 책을 읽는 것 말고는 달리 할 것도 없어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면서 혹시나 하는 맘에 다시 한국어 책장을 뒤지니 또 읽을 것들이 좀 나온다. 내가 가진 책도 못 읽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재미로써의 책읽기, 여가선용으로써, 또 학습을 위한 책읽기 등 다양한 이유로 책읽기를 하게 된다.  갈 곳도 달리 없고, 운동은 오늘의 경우 오후로 미루다 보니 조금 게으른 마음에 어찌할지 모르고 있다.  


이런 류의 책들은 잘 살펴서 구해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최소한 50%이상은 그냥 마구 나오는 책이고 그나마 괜찮은 50% 중에도 강약을 따져봐야 하는 것 같다. 과학이라기 보다는 경험에서 온 hunch같은 건데 이번에 읽은 이 책은 상당히 탄탄한 스터디와 분석을 통해 충분한 논증을 보여준다.  애초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란 건 definite하게 정해진 것이 아닌 학습과 반복, 실력쌓기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테제를 잡고, 실제 사례들을 분석하여 step by step으로 방법론을 설파한 후 자신의 커리어를 분석하여 현재의 시점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이 방법론이 우연과 자의로 적용됐는지 보여준다.  이론을 세우고 논증을 하여 법칙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자칫하면 일어날 수 있는 일반화의 오류는 없는 것 같은데 이미 저자는 그런 일반화의 오류 - 많은 케이스에서 극히 일부에만 적용될 특이한 경우를 전체의 케이스로 확대해서 적용하는 것에 대한 인지와 경계를 하고 있다.  


열정이 아닌 실력을 쌓고 이를 토대로 커리어의 세부적인 흐름이나 feature를 control하고 mission을 세워 이뤄나가는 것. 실력을 쌓기 위해서는 꾸준히 comfort zone을 벗어날 수 있는 도전으로 경계를 넓혀서 발전할 수 있는 토대와 상황을 만들어 주고, 자신의 skill이 rare하고 valuable해지는 걸 재화적인 가치로 평가하여 객관적으로 따져서 일을 추진하고 커리어를 쌓다가 보면 일을 잘하면서 좋아하는 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는 걸 잘 정리한 책. 요즘 내가 일을 대하는 자세 등 여러 모로 삶에 대한 고민이 많은데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다.  일단 6월까지는 그저 많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투자해서 (1) 업무를 모두 정상적이고 시스템적인 궤도에 올려놓고, (2) 이 과정에서 꾸준히 자신을 push하여 일근육을 다시 만들어가는 것을 목표로 잡는 것이 loose하게 이 책을 읽고 얻은 결과. 아는 만큼 보인다고 커리어를 여기까지 이어온 덕분에 잘 쓰인 책을 보면 얻는 것이 많다. abstract하지 않고 상당히 현실적인 나의 상황에 대비해보게 되는 것.


읽는 내내 '일 (직업)은 좋아하는 걸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잘하는 걸 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김영하 작가가 '알쓸신잡' 에피소드 중 했던 말을 떠올렸는데, 들은 이래 촌철살인의 진리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던 말이다.  뭐가 뭔지 모르고 '열정'을 살릴 수 있는 커리어, 영혼에 충실한 삶 같은 말들을 해대지만 실상 그게 뭔지 제대로 알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나의 경우도 그랬는데, 상당히 막연하게 시작해서 여기까지 온 나의 이야기는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책에 빗대서 정리해볼 생각이다.


뭔가 inspirational하거나 대리만족을 위해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 두 권. 내리 읽었으나 참으로 empty calorie만 가득한 종이를 씹은 듯한 기분. 하나는 겉만 있는 것 같고 다른 하나는 추상적인 모호함 속에 아주 common한 이야기를 버무린 느낌을 받았을 뿐이다.  한창 여행기가 유행한 적이 있고 뭔가 soul searching에 관한 책이 유행한 시기가 있었는데 둘 다 그 때 읽었더라면 좀 더 낫게 봤을까?  사진으로 가득한 화보집 같은 여행기도 별로, 쓸데없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로 가득한 모호한 이야기도 별로.  개인의 책읽기라고 해도 그리 보면 대중적인 유행을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절을 돌아다니는 참배순례는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너무 멀게만 보이고, Gnostic해보이는 듯한 '나그함마디'문서에서 뭔가 나온 듯한 냄새를 풍긴 후 유럽에서 쳐들어온 십자군에 의한 함락을 목전에 둔 예루살렘의 사람들이 나누는 듯한 '진리'에 대한 설파는 그냥 저 멀리, 세상을 제대로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인 양 아무런 현실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매우 주관적인 느낌으로 지금 내가 받은 건 딱 이 정도.


다자이 오사무는 참 흥미로운 작가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관심을 갖고 꾸준히 작품을 읽고 있는 걸로 안다. 이토 준지에 의해 태어난 '인간 실격'을 가장 먼저 읽어도 좋겠고, 이후 본격적인 작품으로 옮겨가면 작품에 대한 배경이나 행간의 탄탄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탐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몰락한 귀족이 전쟁 후 더욱 더 쇠락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전혀 나아질 수 없이 계속 bottom으로 가는 '사양'의 뜻이 그 내용에 걸맞게도 '태양의 몰락'이라는 건 이번에 처음 알았다. 못해도 세 번, 아니면 네 번은 읽는 '사양'인데.  


사람의 정신이라는 것이 강하다면 무척 강하지만 약하다면 그렇게 약한 것이 없을만큼 무너지기 쉬운 것 같다. 데카당한 라이프를 즐기는 건 본격적인 염세주의, 그것도 파괴와 멸에 대한 유미주의가 깔린 깊은 염세주의 보다는, 설사 같은 의미로 결국의 파국을 향해 가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해도, 더 나은 길이 아닐까?  다자이 오사무의 책은 다양한 판본을 모두 갖고 있을 정도로 뭔가 무시무시한 매력이 있다.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더라도 사놓고 읽으면 그만.


구한말, 녹두장군 전봉준이 일으킨 동학군의 거사는 여러 모로 연구와 흥미의 대상이다. 현대의 반독재/민주화항쟁의 이데올로기의 접근에서는 '민중'에 의한 '혁명'성에 많은 비중을 둔 해석을 적용한다면 이에 반해 좀더 reactionary로의 접근의 경우 민중봉기에 큰 점수를 주면서도 정보와 인식의 한계로 인한 vision의 부재로 결국 시작부터 실패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의견을 낸다. 혹은 그 모든 걸 넘어서서 어쩌면 왕조교체기의 상황을 맞이했을 수도 있었던 수준의 규모와 호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부의 난을 진압하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세를 개입시킨 구한말 조선왕실과 민씨척족으로 인한 실패로 보는 눈도 있다.  이것 말고도 다양한 해석과 의의를 이야기할 만큼 소설적으로도 상당히 괜찮은 주제라고 보는데 아쉽게도 이 소설에서는 그런 것들이 제대로 다뤄지지는 못한 것 같다.  특정한 기승전결 혹은 테제에 중점을 두고 과감하게 사건사실을 누락시키는 것으로 빠른 진행을 보여주는 건 나쁘지 않지만 자칫하면 소설의 timeline이 모두 엉망이 될 수도 있음이다. 게다가 결말은 어찌 그리도 허무하고 갑작스러운건지.  나의 주관적인 의견으로는 마치 소설이 써지다 만 듯한 느낌을 받은 종장이었다.  여러 모로 아쉬운 면이 있다.


아무리 봐도 같은 책인데 한 동안 절판되었던 츠바이크의 책이 비슷한 시기에 나온 걸 잘 모르고 둘 다 주문한 듯. 책이 오면 알겠지만 일단은 그렇게 의심하고 있다.  조제프 푸셰는 왕당파에 가까운 수도사/학승에서 혁명세력으로 변신 후 온건파와 급진파의 사이를 가늠하다가 총재정부를 거쳐 나폴레옹을 위해서 일하고, 이후 그의 몰락에도 일조하고, 다시 왕당파로 돌아가는 등 꾸준한 변신을 통해 권력의 자리를 이어가고 큰 돈을 번 사람이다.  즉 현대판 매판자본정치가의 원형과도 같은 사람이 아닌가 싶은 그의 일대기를 본질을 정확하게 본 발자크를 인용하면서 츠바이크의 눈으로 다시 그려낸다.  어쩌면 그 시대에는 보기 드물게 pragmatist 였을지도 모를 이 인간은 여러 모로 가카를 떠올리게 한다.  지극히 두터운 신앙심으로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 가카, 지독하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을 딛고 현대에서 노복으로, 관리직으로, 자본가로 성장한 가카, 꼼수를 쓰다가 정치판에서 밀려난 후 골프라운딩 fee를 아끼려 (즉 일행에게 빌붙으려) 현금을 안 갖고 다녔다는 미국에서의 유수시절의 가카, 화려하게 복귀해서 무려 7-4-7 비전과 4대강 운하를 파는 것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막대한 수익을 올린 물신숭배의 가카, 지금은 뺑끼통에 계시는 가카.  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까지 정말로 많이 닮은 이 두 사람. 


여전히 익숙해지려고 노력하는 핀란드의 문체. 아직은 오다 말다를 반복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낀 책읽기.  내용이 별로 남은 것이 없을 정도로 마구 읽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읽는 동안 깊이 책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 같다. 쏜살문고의 의의랄까 굳이 찾자면 이렇게 obscure한 작품들을 잘 가져다가 책으로 만들어주는 것인지 모르겠다. 한국이나 중국, 일본, 영국, 미국, 중남미 일부, 프랑스, 독일, 그리고 러시아 정도가 내가 속한 책의 세계의 지평이라면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인도, 아프리가, 터키, 폴란드, 등등 이루 말할 수 없을만큼 많은 곳의 책이 아직 미지의 frontier로 남아 있다.  


차라리 의역을 하는 편이 더 낫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한국어번역의 제목은 그 욕망이 너무 raw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나는 뭐뭐 한다'가 유행하던 시절을 기억하는데, 혹시 이 무렵에 번역된 건지? 원제는 그보다는 훨씬 덜 자극적으로, 여기서 말하는 백만불은 저자의 포인트를 말하기 위한 오브제로 쓰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혼자서 운영하는 business를 백만불짜리로 만드는 걸 어떤 스탠다드로 봐야 한다는 것. 이에 비해 한국어는 직원이 없이 (one person) 10억을 번다는 취지로 해석되는 바, 이는 the million dollar one person business보다 훨씬 더 자극적이고 현혹적이다. 백만불 비즈니스에서 순수한 이익을 나누지 않고 무작정 혼자 해서 10억을 번다니.  


이 책 역시 method를 배우고 가이드를 찾는 과정에서 추천을 받아서 읽었는데 다소 agree하지 못하는 지점도 있고, 일부 나의 철학과도 상충되는 부분이 있었던 걸 기억한다.  다만 전체적인 자세로 볼 때, 큰 규모가 아니더라도 좋은 niche market을 찾고, 자신의 skill과 역량을 극대화하며, 필요한 도움은 다른 전문가를 섭외해서 계약 base로 일하면 얼마든지 career에서의 자유도를 높이고 sustainable한, 아니 thriving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오늘 끝낸 맨 위의 책을 보면서 이 책의 포인트에서 어느 것들은 기본적인 테제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럿이 권하는 괜찮은 책이지만 이 책을 읽기 전에 저 맨 위의 책을 읽는 편이 더 낫겠다.  종종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거나 correlation을 causation으로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


3월 8일, 여덟 권의 책을 이번 달에 읽은 것이 됐다. 권수도 독서의 질도 무엇도 다 중요한 나의 마구잡이 독서지만 언제나 '완독'은 중요하다. 불편한 걸 해내는 과정에서의 성장을 노린다면 제발 독서를 cheat하지 말기를.  발췌독을 해도 괜찮은 건 이론서나 공부를 위한 책, 가이드 같은 것들이고 대다수의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발췌독을 하고서 '한 권'을 다 읽었다고 하면서 일년에 천 권이니, 삼년에 만 권이니 좀 하지 말자.  


오늘은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 abs/core 몇 가지를 하면서 쉴 예정이다.  맘이 내키지 않으면 너무 무리하지는 말자는 것이 운동에 있어서 나의 지론이다.  나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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