냠냠쩝쩝 꾸륵꾸륵 속 보이는 뱃속 탐험 - 소화 과정을 따라가는 인체 팝업북 아이즐북스 인체 팝업북 시리즈
스티브 알톤 지음, 윤소영 옮김, 닉 샤랫 그림 / 아이즐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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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표지의 혀가 완전 리얼하다. 열에 아홉명 이상의 어른들은 징그럽다고 하는 정도. 물론 애들은 좋아한다. 우리 딸의 경우 책을 보지는 않고 혓바닥을 쥐고 질질 끌고 다니는게 일이었다. 근데 이 혀가 오염에 취약하다. 현재 우리집 책의 혓바닥은 살짝 늘어난데다 먼지가 뭍어 흉물스럽다. 팝업 페이지들도 하나둘 뜯어졌지만 그래도 용케 오래 버텼다 싶다. 책은 백과사전식이다. 초등 저학년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도 팝업이 다양하고 꼼꼼하게 되어 있어서 네살짜리도 즐겁게 펴보긴 한다. 다만 질문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므로 책을 읽어 주는 부모는 미리 내용을 정독하고 공부를 해 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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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
데이비드 에드먼즈 & 존 에이디노 지음, 김태환 옮김 / 옥당(북커스베르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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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비트겐슈타인과 포퍼의 기막힌 10분' 이란 조금 기막힌 제목을 달고 있는 재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Wittgenstein's Poker'이다. Poker는 포퍼의 이름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포커가 '놀이'의 일종임을 생각해볼때 비트겐슈타인을 떠올리게도 한다. 또한 포커라는 게임을 떠올려보자. 상대에게 보여준 패, 내 손 안에 감춘 패, 그리고 내게 보여진 상대의 패, 상대의 손 안에 감춘 패, 그리고 중도에 카드를 던지지 않는다면 주어질 마지막 '숨겨진' 패. 이 책의 두 저자는, 1946년 10월 25일 저녁 8시 30분 케임브릿지 킹스칼리지 깁스 빌딩 회의실 H3에서 있었던 작은 에피소드를 포커패를 분석하듯 독자에게 풀어놓는다. 우리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비트겐슈타인, 그리고 우리 모두가 몰이해하거나 오해하고 있는 비트겐슈타인, 우리가 알고 있는 포퍼,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포퍼, 그리고 논리실증주의를 위시하여 당시 2차 대전후의 유럽에 떠돌고 있던 거대한 생각의 흐름들. 그리고 히든 카드는 바로 그 모든 생각의 흐름들이 허깨비처럼 흩어져버리고 있는 현대에 있어 두 위대한 철학자의 의미이다.

 

사실 원제나 우리나라에서 첫출간 되었을 때의 제목인 '비트겐슈타인은 왜?'를 생각해보면 비트겐슈타인에게 촛점이 맞춰진 느낌이고, 책 역시도 분량이나 밀도를 공평하게 맞추려고 노력한 점은 엿보이나 비트겐슈타인에게 살짝 기울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책에 나온 성격대로의 포퍼라면, 노발대발 했을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비트겐슈타인의 이란 인물의 인상이 강력해서일 것이다. 생전에 낸 책 한권 사후에 출간된 책 한 권 이렇게 겨우 두 권의 책으로 이후 철학의 방향을 바꾸어 버렸으며, 심지어 두번째 책이 첫번째 책을 부정하고 있으며, 그럼에도 두 책 모두 아직까지도 연구의 대상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치된 해석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만 봐도 비트겐슈타인이란 인물은 뭐지, 이사람? 싶다. 거기에 세기말의 빈에서 태어나 2차 대전을 겪은 유대인 지식인이라는 점과 동성애적 성향까지 하면 가쉽거리로 삼기에도 딱 좋다. 그에 반해 포퍼는 그 역시 오늘날까지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로 유명하나, 살짝 밀리는 듯한 느낌이다. 사실 포퍼가 논리실증주의의 난점을 극복하고자 했던 논리학자였다는 점은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이 두 학자는 사실 당대를 풍미했던 모두 논리실증주의와 나름의 교집합을 이루는 학자로,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부지깽이 스캔들' 역시 일단은 논리실증주의와 궤를 같이 할 수 있는 사건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비트겐슈타인은 1946년 당시 논리실증주의의 난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명감 같은 건 없었고 포퍼가 공격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이론 역시 당시 포퍼의 이해하고는 다른 것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내심이야 어떻든 (그의 내심의 철학을 그 누가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포퍼가 비트겐슈타인에게 들이댄 공격은, 논리실증주의를 넘어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의도와 얼마나 일치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몰고올 철학의 '전회'와 그 흐름이 도착하기 직전의 철학의 전통 사이의 충돌이라는 점에서 (당시 인간 비트겐슈타인의 상태나 생각과는 상관없이) 시사하는 점이 많다. 그리고 놀랍게도 비트겐슈타인이 폭발시킨 철학의 새로운 흐름과 그의 철학으로 인해서 부정당할 위기에 처했던 (과연 이 해석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전통적인 흐름 모두 살아남아 현대의 사상사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으며 여전히 분석과 숭상의 대상이 되고 있어, 이 날의 스캔들은 여전히 진화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논리실증주의 자체가 이해하기 쉽지 않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말할 것도 없기 때문에 살짝 정신을 놓으면 그 시사점이나 의미보다는 오해나 스캔들에 퐁당 빠져버리기 십상인 것 같다.

 

역시 이 책에서 또한 가장 재미있고 페이지가 술술 잘 넘어가는 부분은 '사상'보다는 '사건'들을 나열한 부분들이다. 심지어 그 부분이 상당히 잘 쓰여졌기 때문에 퐁당 빠져버릴 위험이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이건 이 책이 택한 형식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책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두 거장의 사상과 당시 사상의 흐름을 재구성하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는데, 그런 꿈을 실현시기키에 사건은 너무 재미있고, 두 철학자의 개성은 너무 뚜렷한 반면, 두 사람의 사상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사상은 너무 난해하고 그들이 두고 싸웠던 문제 역시 근원적인 문제가 그렇듯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괴상한 천재 비트겐슈타인과 성질 더러운 수재 포퍼' 그리고 '능구렁이 같은 러셀'만 남을 수도 있다.

 

그런 난점을 이 책의 두 저자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논리실증주의와 두 철학자의 사상에 대해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것으로 여겨지는 해석을 충실히 요약 설명함으로서 그런 위험을 최대한 피하고자 한다. 사실 이 책의 논리실증주의에 대한 설명은 구경꾼인 내가 읽기엔 상당히 적당해 보인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 대해서도 그 해석의 난장판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일치되고 있는 해석을 충실히 적어 놓았다. 입문이라면 입문일테지만, 그냥 두 철학자의 싸움이 어디서 연원했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밑밥이라고 해 두자. 감히 말하자면, 밑밥은 상당히 적절하게 잘 깔린 거 같다. 그러나 그 10분이 너무 기가 막히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

 

그래서 마지막 파트 '최후의 승자'는 꽤 중요하다. 이 파트는 이 책이 단순 스캔들을 복기하는 것이나 스캔들에 철학 입문의 양념을 얹는 것이 아니라면, 왜 그 당시의 일을 꺼내와서 책을 쓰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들의 답과 같다. 사실 우리는 가장 최근의 천재로서 비트겐슈타인을 꼽기에 주저하지 않고, '열린사회와 그 적들'을 통해 드러난 포퍼의 혜안에 찬사를 아끼지 않지만, 그들이 진정 닿고자 했던 그 무엇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철학의 문제는 무엇인가, 진리를 무엇인가를 두고 벌였던 두 위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는 우리에겐 가쉽거리로만 남을 위기에 처해 있다. 역자서문에서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 파트에서 밝히고 있듯이 두 사람의 사상은 살아남아 여전히 이야기되고 있지만 그 반짝이는 빛은 바래져가고 있고 그건 역자가 이야기하듯 아마 우리 누구도 더 이상 진리를 중요하다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한숨을 쉬고 싶지는 않다. 저자들이 말하듯이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주의자, 포퍼주의자 같은 말을 여전히 사용하며 그들의 빛나는 개성과 뛰어난 논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다. 더 이상 치열한 논쟁을 기대하기 어렵다 해도 말이다. 이는 한편으론, 마치 진리는 말해질 수 없고 보여져야만 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그렇기에 누군가에 의해서든 계속 말해져야 한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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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여행자 - 신경과 의사, 예술의 도시에서 뇌를 보다
김종성 지음, 경연미 그림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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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여행자'라는 제목과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표지가 눈길을 확 잡아 끈다. 저자는 국내 유수의 신경과 전문의. 그에 걸맞게 저자의 기행은 여행이나 휴가가 아닌, 학회참석의 이유다. 하지만 (올리버 색스의 책처럼) 나와 같은 일반인 눈에 신기해 보이는 신경과 질환의 증상이나 사례를 따라가는 내용이나, 혹은 흥미진진한 의학의 뒷골목을 탐험하는 내용이 아니다. '뇌과학' 만큼이나 이 책을 단단하게 받히고 있는 것은, 예술과 문학에 대한 저자의 소양이다. 그리고 그 위에 신경과 질환에 관한 이야기들을 살짝 끼얹는다.

 

저자는 미라보 다리를 거닐며 아폴리네르의 시와 인생 그리고 그의 뇌손상을 생각한다. 루브르에서는 퐁파르드 부인의 편두통 이야기를 꺼내고, 위그모어 홀에서 다발성 경화증으로 저주받은 천재의 대열에 오르게 된 재클린 뒤프레의 비극을 떠올린다. 아프르카에서는 블릭센의 척수매독을, 천안문에서는 중국현대사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인물인 마오쩌둥의 치매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 외에도 그의 여행길을 따라 베토벤, 슈만, 플로베르, 모파상, 엘가, 고흐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외래 진료를 하는 선생님처럼 알아듣기 쉬운 말로 그들의 증세를 분석, 설명하고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한숨을 돌리며 기행문 특유의 여유로운 시선으로 꽃밭과 연못, 오래된 극장건물, 사람들에 대해 아주 상투적인 투로 이야기한다.

 

이처럼 신경과 질환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으면서도, 기행문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책은 상당히 말랑말랑하다. 비슷하게 역사적 인물들의 병증에 대한 책인 '매독'에도 '뇌과학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베토벤, 플로베르, 모파상, 블릭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뇌매독과 척수매독이 과거 흔한 질병이었기에 그런 듯 싶다) 두 책이 주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매독'의 내용이나 분위기는 매우 논쟁적이고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삶은 상당히 무시무시한 병증으로 얼룩져 있다. 반면 '뇌과학 여행자'의 분위기는 관조적이랄까, 심지어는 뇌매독 증상으로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낸 모파상 같은 경우도 저주받은 천재의 이야기처럼 쓸쓸하고 극적이다. (물론 증상 자체는 좀 무시무시하다...)

 

한 마디로, 조금 독특한 기행문을 읽고 싶은 이들에겐 상당히 재미있는 독서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뇌과학이나 신경과 질환에 관심있는 이들에겐 쉬어가는 의미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반면 기행문 치고는 조금 전문적인 내용이 많은 편이고, 뇌과학이나 신경과 질환 관련 저서로 보기엔 너무 가벼울 수도 있다. 독특함은 언제나 이렇게 장점과 단점을 마치 동면의 양면처럼 함께 가지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의 뛰어난 문화적 소양을 감탄하며 보았다. 신경과 전문의라는 직업에서 얼핏 떠오르는 냉철한 이미지와 달리, 저자는 (다른 책에서 본) 외모 만큼이나 부드럽고 사려가 깊다. 글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엄청난 독서량과 미술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까지, 한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면서도 사적인 생활까지도 풍요로운 그의 삶이 부럽기까지 하다. '춤추는 뇌'에서도 엿볼 수 있는 저자의 다방면에 걸쳐 풍부한 소양은 책을 읽는 동안, 내게는 가장 강렬한 페로몬으로 작용했다.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제가 되어줄 한적한 프랑스의 시골 풍경이나 나 역시 아주 좋아하는 뒤프레의 드라마틱한 비극보다도 더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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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개념정원 개념어 시리즈 (문학동네) 1
서영채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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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점은 전문적인 입장에서 쓴 개론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대학강의 교재같지 않다는 점이다. 어떤 분야의 이론을 접하기에 대학강의 교재만한 것이 없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대학강의 교재는 계속 그 분야의 이론을 접할 사람들, 그 분야이론을 업으로 공부할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였기 때문에 종종 다음 코스를 더 배워야 함을 전제로 해서 쓰인 단락들과 강사나 교수의 설명으로 해설이 반드시 되어야 하는 부분들이 있다. 굳이 말하자면 대학교재에서 개론이란 기초를 쌓는닫는 의미라, 입문이나 교양으로 이론을 접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대학교재는 상당히 난도가있는 입문서인 셈이다. 물론 입문이나 교양이라 할지라도 '인문학 개념강의' 정도에서 다뤄지는 개념을 더 심도깊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독서가 필요하겠지만, 필요에 의해 대학학부전공과는 다른 이론을 독학으로 접해야 되는 입장이 되니 대학교재의 높은 벽이 느껴지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에서 다루는 개념들이 얄팍하지는 않다. 사실 이 책 정도는 가볍게 읽어 대충 느낌만 잡고, 원전이나 독학이든 강의를 듣던 더 공부를 해야 하는 개념들이 대부분이다. 사실 저자의 개념해석이 얼마나 옳은지에 대해서도 충분히 논쟁을 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굳이 이 책의 성격을 말하자면 교양과 기초쌓기의 중간에 위치해 있지만 '교양'쪽이 조금 치우쳐 있다는 느낌? 교양인문학으로 추천되는 책들과는 그런 점에서 조금 궤를 달리 한다.

 

이 책의 장점과 단점은 그런 면에서 동전의 양면 같다. 이해가기 용이하고, 폭넓은 개념을 접할 수 있다는 건 장점이지만 이 책에 담긴 개념의 깊이가 만만치 않는 고로 논쟁이나 수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높다는 게 단점. '개념정원'이라는 제목은 그래서 상당히 의미가 있다. 정원이란 집에 속한 부분이되, 집 안에 존재하진 않는다. 대문을 통과해야 하지만, 현관문을 들어설 필요는 없다. 딱 그 정도의 책이다. 아주 사려깊고, 저자의 신중함이 엿보이는 제목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 아쉬움이라면, 이 책이 특히 뒷부분에서 각 소제목간의 연결이 부실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다. 앞부분이 개념정원다운, 인문학 개념들을 소개 정리하는 일종의 교양 입문서 같은 느낌이라면 뒷부분은 저자의 진짜 흥미가 드러나는 충실한 그러나 사적인 내용이다. 뒷부분은 자유로운 추론과 저자의 깊은 이해가 흥미롭게 날아다니고, 전자는 역시 접하는 입장의 저자가 꼼꼼히 정리한 필기 노트 같다. 그래서 앞부분에 대해서는 보충을, 뒷부분에 대해서는 논쟁을 하고 싶은 기분이다. 물론 내가 필요했던 부분은 앞부분이라 그리 느끼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의 글솜씨는 아주 좋다. 역시 올해 읽은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 쉽게 읽기'와 비교한다면 물흐르듯 읽히는 것은 '푸코...'지만 정리가 잘 되는 것은 '인문학 개념정원'이다. (강의록을 정리해놓은 책과 처음부터 읽히기 위해 쓰인 책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두 책 모두 매우 추천할 만하며 - 물론 전공자나 전문가 입장에서는 충분히 반론이 있을 만하다 - 전문가나 전공자가 아닌데 해당 분야를 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읽고 이해하기에는 아주 편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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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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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누마타 마호카루는 '이야미스'라는 일본 추리소설의 한 하위 장르 혹은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즐기지 않는 부분이라 정확한 설명은 어렵지만, 무언가 찝찝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을 보통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게임으로서의 추리소설, 즉 치밀한 두뇌싸움 끝에 한 쪽 편의 손이 들리는-보통 정의가 승리하는-그런 추리소설이 보통이라면 이 '이야미스'라 불리는 작품들은 범죄행위나 사건을 통해 인간이나 인간 사회의 저열하고 추잡한 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 이들 작품은 추리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의 모순이나 문제점을 드러내는 사회파 추리소설과는 달리 어떠한 시사점이 있어 그러한 분위기를 택한 것도 아닌 듯 싶다. 그저 인간이라는 존재의 마음 밑바닥에 존재하는 추함을 소재로 삼는다고 하면 될까. 감정이입하는 것을 원치 않아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편이긴 한데, 이런 분위기의 소설은 나의 도피욕구를 물고 늘어지는 느낌이다. 차라리 모순된 사회현실이라면 분노라던가 소설에의 감상을 기반으로 생각이라도 할 텐데, 인간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이 분야의 소설들의 뒷맛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유리 고코로는 누마타 마호카루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상당히 로맨틱한 편이다. 말 그대로 이 소설은 '로맨틱' 하다. 살인충동을 가지고 태어난 한 비정상적 인간의 수기를 기둥줄거리로 하고 있는 소설에 대해 쓰기 어려운 말 같지만, 누마타 마호카루의 솜씨는 이 둘을 미묘하게 버무려 놓는다. 독자들은 수기의 화자가 풀어놓는 내용들에 도망갈 도리도 없는 역겨움을 먼저 느끼게 되지만, 수기가 진행 될수록 당치않게도 화자의 마음에 빨려들게 된다. 그리고 결론은 추리소설을 즐기는 사람들 중의 일부는 불만족스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로맨틱하다. 그래서 미스테리가 풀려가는 과정, 인물의 성격이 구축되어가는 과정 등에서 논리적으로는 분명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게임 한 판 해볼까나, 하는 마음으로 이 책에 덤벼들면 조금 많이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그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수기의 화자를 따라 생각을 조금 놓고 읽어나가면 제법 만족스럽다. 결론의 로맨틱함은 개인적으로는 좀 당황스럽지만, 이 부분에서 만족을 경험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로서의 평가와는 다르게, 이 작가의 글솜씨만은 근래 가장 만족스러웠다. 물론 나는 번역본을 읽었고 일어를 전혀 하지 못하므로 문장력이라던가 문학적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소설의 흡인력과 줄거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흥미진진함에는 상당히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단적으로, 손에 잡자 마자 한 달음에 읽어내려갔으니까. 기분 나쁜 인간의 괴상한데다가 심지어 로맨틱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독서의 목적 같은 걸 쓸데없이 생각하게도 되지만, 몇 시간 분량의 즐거움 역시 독서의 맛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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