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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 여행자 - 신경과 의사, 예술의 도시에서 뇌를 보다
김종성 지음, 경연미 그림 / 사이언스북스 / 2011년 5월
평점 :
'뇌과학 여행자'라는 제목과 귀여운 그림이 그려져 있는 표지가 눈길을 확 잡아 끈다. 저자는 국내 유수의 신경과 전문의. 그에 걸맞게 저자의 기행은 여행이나 휴가가 아닌, 학회참석의 이유다. 하지만 (올리버 색스의 책처럼) 나와 같은 일반인 눈에 신기해 보이는 신경과 질환의 증상이나 사례를 따라가는 내용이나, 혹은 흥미진진한 의학의 뒷골목을 탐험하는 내용이 아니다. '뇌과학' 만큼이나 이 책을 단단하게 받히고 있는 것은, 예술과 문학에 대한 저자의 소양이다. 그리고 그 위에 신경과 질환에 관한 이야기들을 살짝 끼얹는다.
저자는 미라보 다리를 거닐며 아폴리네르의 시와 인생 그리고 그의 뇌손상을 생각한다. 루브르에서는 퐁파르드 부인의 편두통 이야기를 꺼내고, 위그모어 홀에서 다발성 경화증으로 저주받은 천재의 대열에 오르게 된 재클린 뒤프레의 비극을 떠올린다. 아프르카에서는 블릭센의 척수매독을, 천안문에서는 중국현대사에서 가장 할 말이 많은 인물인 마오쩌둥의 치매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 외에도 그의 여행길을 따라 베토벤, 슈만, 플로베르, 모파상, 엘가, 고흐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외래 진료를 하는 선생님처럼 알아듣기 쉬운 말로 그들의 증세를 분석, 설명하고 진단을 내린다. 그리고 한숨을 돌리며 기행문 특유의 여유로운 시선으로 꽃밭과 연못, 오래된 극장건물, 사람들에 대해 아주 상투적인 투로 이야기한다.
이처럼 신경과 질환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으면서도, 기행문의 형식을 띄고 있기 때문에 책은 상당히 말랑말랑하다. 비슷하게 역사적 인물들의 병증에 대한 책인 '매독'에도 '뇌과학 여행자'와 마찬가지로 베토벤, 플로베르, 모파상, 블릭센 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뇌매독과 척수매독이 과거 흔한 질병이었기에 그런 듯 싶다) 두 책이 주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다. '매독'의 내용이나 분위기는 매우 논쟁적이고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삶은 상당히 무시무시한 병증으로 얼룩져 있다. 반면 '뇌과학 여행자'의 분위기는 관조적이랄까, 심지어는 뇌매독 증상으로 정신병원에서 말년을 보낸 모파상 같은 경우도 저주받은 천재의 이야기처럼 쓸쓸하고 극적이다. (물론 증상 자체는 좀 무시무시하다...)
한 마디로, 조금 독특한 기행문을 읽고 싶은 이들에겐 상당히 재미있는 독서가 될 수 있을 것이고, 반대로 뇌과학이나 신경과 질환에 관심있는 이들에겐 쉬어가는 의미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될 것이다. 반면 기행문 치고는 조금 전문적인 내용이 많은 편이고, 뇌과학이나 신경과 질환 관련 저서로 보기엔 너무 가벼울 수도 있다. 독특함은 언제나 이렇게 장점과 단점을 마치 동면의 양면처럼 함께 가지고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저자의 뛰어난 문화적 소양을 감탄하며 보았다. 신경과 전문의라는 직업에서 얼핏 떠오르는 냉철한 이미지와 달리, 저자는 (다른 책에서 본) 외모 만큼이나 부드럽고 사려가 깊다. 글에서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엄청난 독서량과 미술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까지, 한 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면서도 사적인 생활까지도 풍요로운 그의 삶이 부럽기까지 하다. '춤추는 뇌'에서도 엿볼 수 있는 저자의 다방면에 걸쳐 풍부한 소양은 책을 읽는 동안, 내게는 가장 강렬한 페로몬으로 작용했다.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는 듣고 보는 것만으로도 청량제가 되어줄 한적한 프랑스의 시골 풍경이나 나 역시 아주 좋아하는 뒤프레의 드라마틱한 비극보다도 더 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