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고코로
누마타 마호카루 지음, 민경욱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누마타 마호카루는 '이야미스'라는 일본 추리소설의 한 하위 장르 혹은 경향의 대표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즐기지 않는 부분이라 정확한 설명은 어렵지만, 무언가 찝찝하고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작품을 보통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게임으로서의 추리소설, 즉 치밀한 두뇌싸움 끝에 한 쪽 편의 손이 들리는-보통 정의가 승리하는-그런 추리소설이 보통이라면 이 '이야미스'라 불리는 작품들은 범죄행위나 사건을 통해 인간이나 인간 사회의 저열하고 추잡한 면을 그대로 드러낸다. 또 이들 작품은 추리라는 형식을 통해 사회의 모순이나 문제점을 드러내는 사회파 추리소설과는 달리 어떠한 시사점이 있어 그러한 분위기를 택한 것도 아닌 듯 싶다. 그저 인간이라는 존재의 마음 밑바닥에 존재하는 추함을 소재로 삼는다고 하면 될까. 감정이입하는 것을 원치 않아 추리소설을 선호하는 편이긴 한데, 이런 분위기의 소설은 나의 도피욕구를 물고 늘어지는 느낌이다. 차라리 모순된 사회현실이라면 분노라던가 소설에의 감상을 기반으로 생각이라도 할 텐데, 인간 자체가 글러먹었다는 이 분야의 소설들의 뒷맛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유리 고코로는 누마타 마호카루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는 상당히 로맨틱한 편이다. 말 그대로 이 소설은 '로맨틱' 하다. 살인충동을 가지고 태어난 한 비정상적 인간의 수기를 기둥줄거리로 하고 있는 소설에 대해 쓰기 어려운 말 같지만, 누마타 마호카루의 솜씨는 이 둘을 미묘하게 버무려 놓는다. 독자들은 수기의 화자가 풀어놓는 내용들에 도망갈 도리도 없는 역겨움을 먼저 느끼게 되지만, 수기가 진행 될수록 당치않게도 화자의 마음에 빨려들게 된다. 그리고 결론은 추리소설을 즐기는 사람들 중의 일부는 불만족스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로맨틱하다. 그래서 미스테리가 풀려가는 과정, 인물의 성격이 구축되어가는 과정 등에서 논리적으로는 분명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게임 한 판 해볼까나, 하는 마음으로 이 책에 덤벼들면 조금 많이 불만족스러울 것이다. 그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수기의 화자를 따라 생각을 조금 놓고 읽어나가면 제법 만족스럽다. 결론의 로맨틱함은 개인적으로는 좀 당황스럽지만, 이 부분에서 만족을 경험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추리소설로서의 평가와는 다르게, 이 작가의 글솜씨만은 근래 가장 만족스러웠다. 물론 나는 번역본을 읽었고 일어를 전혀 하지 못하므로 문장력이라던가 문학적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다. 하지만 소설의 흡인력과 줄거리가 전개되는 과정에서의 흥미진진함에는 상당히 높은 평가를 주고 싶다. 단적으로, 손에 잡자 마자 한 달음에 읽어내려갔으니까. 기분 나쁜 인간의 괴상한데다가 심지어 로맨틱한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독서의 목적 같은 걸 쓸데없이 생각하게도 되지만, 몇 시간 분량의 즐거움 역시 독서의 맛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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