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모차르트 : 네 손을 위한 소나타와 소곡 [Digipak]
모차르트 (Wolfgang Amadeus Mozart) 작곡, 슈타이어 (Andreas S / Harmonia Mundi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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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타이어와 쇼른스하임. 두 사람 보두 개량되지 않은 하프시코드, 클라비코드, 포르테피아노 같은 옛 건반악기의 대표적인 연주자들이다. 슈타이어야 재기넘치고 귀가 즐거운 용감한(?)연주로 유명한 사람이고, 쇼른스하임도 나름 히트를 친 하이든 피아나 소나타 전곡집에서 깔끔하고 (내가 특히 좋아하는) 야단스럽지 않은 해석으로 매우 깊은 인상을 남긴 바가 있다. 이 두 사람이 모차르트의 네 손을 위한 피아노 곡들을 함께 녹음했다.

하지만, 이 음반에서 진짜 주인공은 이 두 연주가가 아니다. 바로 그들이 사용한 악기인 stein vis-a-vis다. 이 악기는 유명한 건반악기 제작자인 요한 안드레아스 스타인이 만든 악기 중 현재 남아있는 것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 악기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두 대의 건반악기를 하나도 합쳐놓은 것이다. 악기의 모양은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긴 직사각형이고, 한 쪽에는 포르테 피아노 건반이 그리고 다른 쪽에는 더블 하프시코드의 건반이 있다. 더블 하프시코드 건반이 있는 쪽에는 그 외에도 반대편 포르테 피아노의 액션을 작동시킬 수 있는 건반이 하나 더 달려 있다. 즉 두 건반악기를 단순히 붙여놓은 것이 아니라, 양쪽의 건반으로 연주되는 하나의 악기인 셈이다. 눈으로 보기 전에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악기인데, 그래서인지 나는 아직도 이 악기의 신비를 탐구중이다. 저 설명도 옛 건반악기에 관해서라면 언제든 의지할 수 있는 전상헌님의 설명을 대충 옮긴 것이다. (좋은 글과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어쨌든, 악기의 신기한 형태 만큼이나, 그 소리가 기대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옛 악기들의 신묘한 소리들을 무척 좋아하는 편이고 말이다.

역시 나의 기대처럼, stein vis-a-vis는(a위에는 악상이 붙어야 하는데, 찾는 방법을 모른다...) 굉장히 다채롭고 풍부한 소리를 들려준다. 곡마다, 때마다 달라지는 음색은 호기심 강한 나 같은 사람의 귀를 자극시키기에 적당하다. 첫 트랙에서 슈타이어와 쇼른스하임은 약간은 과격한, 몰아치는 듯이 연주하는 데 그것이 소리에 굉장히 잘 어울린다. 한 마디로 소리가 폭포처럼 내 위로 쏟아지는 느낌이랄까? (여담이지만, 이 음반을 틀어놓고는 정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그 정도로 소리는 압도적이다) 말 그대로 '소리의 향연'이 소나타와 소곡, 무곡, 변주곡을 넘나들며 약 60분의 시간동안 펼쳐진다. 이 곡들 모두가 원래 네 손을 위한 곡들은 아닌 것 같고, stein vis-a-vis를 위해 편곡된 것도 있는 것 같다. 어쨌든, 어느 곡도 모차르트를 훼손하지는 않았고 모든 곡들이 매 순간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아쉽게도 같은 연주를 모던 피아노로는 들어본 적이 없고, 다만 역시 시대악기 연주자인 판 오르트의 모차르트 전집에 포르테피아노 연주로 들어 본적 있다. 그에 비하면 슈타이어와 쇼른스하임의 연주는 템포 변화가 무척 다채롭고, 장식음같은 효과들도 좀 더 풍부하다. 나는 아무래도 오르트의 좀 더 단정한 해석을 좋아하지만, 이 악기에는 이런 연주가 더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그런 다채로운 변화들이 연주를 더욱 풍성한 음색으로 채워주고 있는 것 같고. 그리고 아무래도 이 신기한 악기가 가져다 준 소리의 새로움이라는 것에 폭 빠져있는 상태이므로 당분간은 이 음반을 끼고 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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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모자의 비밀 동서 미스터리 북스 66
엘러리 퀸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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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모자의 비밀]은 탐정 앨러리 퀸과 작가 앨러리 퀸이 첫등장하는 소설이다. '사람들이 탐정 이름은 기억하는 데 아무도 작가 이름을 기억해 주지 않기 때문에' 탐정 이름과 작가 이름을 똑같이 만들어버린 놀라운 정신세계의 사촌형제는 이 이후에도 탐정 앨러리를 [프랑스 파우더의 비밀] [이집트 십자가의 비밀] 같은 소위 국명시리즈와, 잠깐의 헐리우드 시대의 작품들과, 라이츠빌시리즈에 등장시킨다. 그리고 그 외에도 버나비 로스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탐정 드루리 레인 시리즈가 있는데 그 중 한권이 그 유명한 'y의 비극'이다.

이 독특한 사촌형제는 고전추리소설(만약 그 표현이 허용된다면) 중에서도 특히 게임의 규칙과 공정성을 강조한 타입에 속한다. 그들은 책 속에 모든 증거와 단서를, 가짜정보를 섞긴 하지만, 제시하려고 노력하며, 독자를 스토리 속에 함몰시키는 대신 정신을 바짝 차리고 따라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믿었고,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게으른 자세로 책을 읽는 나와같은 이들을 위하여 '독자에게 보내는 도전장'을 삽입하기까지 한다. 독자는 드러난 정보와, 드러난 정보 중에 암시된 정보들을 가지고 게임에 참여하기를 요구받는다. 그래서 앨러리 퀸의 특히 초기작들은 좋게 말하면 정직하고 나쁘게 말하면 건조한 인상을 준다. 범인의 심리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살인이 일어나는 와중에 꽃피는 사랑, 변장이나 미행, 비밀 문이나 비밀 통로도 없다. 앨러리 퀸은 매력이 있다고 묘사되는 무척 유머스러운 남자긴 하지만, 이름부터 괴상한 포와로나 잘난척 대마왕 반다인이나 탐정의 대명사 셜록 홈즈에 비하면 역시 심심한 남정네에 가깝다. 심지어는 형제가 만들어 낸 다른 탐정 드루리 레인에 비해서도 심심하다. 이런 심심한 인물은 탐정 뿐만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고 특히 여성 캐릭터 묘사는 평면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지적이고 얌전하지만 가슴속에 욕망을 품은 여성과 전형적인 1920년대 헐리우드식 팜므파탈. 앨러리가 여자에 관심이 없어 다행이지, 관심이 있었다면 크리스티처럼 읽기에 즐거운 관계들이 펼쳐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멜로드라마적인 진행 혹은 마술적인 깜짝쇼가 없어도 앨러리 퀸의 작품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아 고전 미스테리의 중요한 작품들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들의 처녀작 [로마 모자의 비밀] 은 그 이유를 알려주는 듯한 작품이다. 끝임없이 제시되지만 무척 사소해보이는 증거 하나가 결국 기막힌 결말을 이끌어내는 재주는 찬탄을 이끌어낸다. 살인이 계속되지도 않고 자극이 계속되지도 않으며 긴장을 주었다 풀었다 하지도 않지만 야구에서 스트라이크 존으로 던진 패스트 볼처럼 정직한 태도는 확실히 매력적이다. 라이츠빌 시리즈에서처럼 인간과 인생에 대한 깊이있는 태도는 아직 발견되지 않지만, 젊은 앨러리의 약간은 오만한 듯한 태도 또한 재미있다.

그러나 [로마 모자의 비밀]에서 내게 가장 재미있게 그리고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앨러리가 아닌 그의 아버지인 리처드 퀸 경감이었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아들에 대한 애정과 믿음을 숨기지 않는 이 팔불출 아버지는 어떤 추리소설의 조수들 보다도 포근하며 믿음직하다. 특히 소설에서는아버지가 수사 책임자이고 앨러리는 부외자로서 활약하기 때문에, 다른 조수들처럼 탐정들의 말에 '아하, 그렇군'이라 맞장구쳐주고 멍청한 말로 단서를 제공하는 수동적인 위치에서 벗어나 그 자신도 무척 뛰어난 탐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아버지의 빈번하고 적극적인 등장은 굳이 말하자면 조수로 활약하는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경찰소설에서나 느낄 수 있는 어떤 현실감의 조각이라도 맛보게 해 준다. 그는 탐정에게 수사권한을 넘겨주고 범인에게 '탐정의 말을 들어보라!'고 윽박지르는 탐정의 배경 경찰을 넘어서 어떨 땐 거의 투톱처럼 보이는 것이다! 라이츠빌 시리즈를 먼저 접했던 나로서는, 아들 앨러리가 귀여워 어쩔 줄 모르는 리처드 퀸 경감이란 인물은 깜짝 선물이나 시리즈의 숨겨진 보물에 가까웠다.

별은 세개 반이다. 세개는 작품에, 그리고 반 개는 리처드 퀸 경감에. 추리소설에서 이 만큼 귀여운 노인장 만나기가 어디 쉽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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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커크비의 청아한 음성
Decca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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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마 커크비의 청아한 음성이라고 되어 있지만, 이 앨범의 영어 제목은 the pure voice of Emma Kirkby 이다. 한국어 제목보다는 영어 제목이 좀 더 핵심을 찌르는 것 같다. 'pure' 맑다, 청아하다를 넘어서 우리가 보통 소프라노의 목소리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와 커크비는 완벽히 들어맞지 않는다. 그녀의 목소리는 성인 여성 소프라노라기 보다는 차라리 소년합창단의 보이소프라노처럼 들릴 때가 더 많다. 그렇기에 엠마 커크비의 음성을 처음 들었을 때, 누군가는 '깨끗하고 맑다'고 하고 누군가는 '빈약하다' 때론 '뱀 나온다'고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리고 그런 음성을 가진 그녀가 고음악 운동에서 가장 뛰어난, 아니 그것을 넘어 상징적인 소프라노가 된 것도 역시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엠마 커크비의 청아한 음성'은 메이저 레이블 데카가 고음악 전문 레이블 르와조리르를 합병한 후, 그 레이블에서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와 함께 냈던 엠마 커크비의 음반들을 가지고 만든 베스트 앨범이다. 데카가 르와조리르 인수 후에 그 레이블과 함께 했던 시대연주가들에게 보인 태도는 그다지 훌륭한 것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이런 앨범이 라이센스로까지 나오게 된 건 데카 레이블의 힘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것이 데카에서 나왔기 때문에 수록된 레퍼토리 면에서 분명 아쉬운 점도 많다.

이 앨범에는 저녁기도, 엑슐라테 유빌라테같은 모차르트의 종교곡, 모차르트, 헨델등의 오페라, 르네상스 가곡이나 세속가요 등이 실려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 오페라는 커크비의 주종목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녀의 음색이나 섬세한 표현력등은 성당이나 교회에서 연주되는 종교곡들에 정말 제격이다. 물론 오페라에서도 그녀만의 섬세하고도 부드러운 표현을 즐길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모차르트의 자이데나 헨델의 알치나 보다는 퍼셀의 디도나 에네아스 에서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베스트 앨범으로도 커크비를 소개하는 음반으로도 고음악이 아닌 오페라를 비롯한 대규모의 곡들이 많이 실린 건 유감이다. 특히 모차르트 곡이 네 곡이나 되는데, 이것이 단순히 모차르트가 잘 알려진 작곡가라서 선택된 것이 아니길 빌자. 

대신 커크비의 매력은 다울랜드의 세속가요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페르골레지의 '살베 레지나'는 북독일 칸타타가 한 곡도 실리지 않은 아쉬움을 그나마 보상해 준다. 그녀가 제임스 보우만과 함께 녹음한 페르골레지의 '스타바트 마테르' 역시 데카에서 다시 발매 되었는데, 두 위대한 성악가의 조화가 참 멋지다. 듀엣이라 그런가, 이 앨범에 소개되지 않은 것이 좀 아쉽다. (하지만 같은 데카 레이블의 바바라 보니의 베스트 음반에서는 숄과 듀엣으로 한 '스타바트 마테르'의 첫 곡이 실렸다!) 커크비의 아름답고 '순결한' 음색과 꾸밈없는 창법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힐데가르트 폰 빙엔의 '신의 숨결위의 깃털'은 하이페리온 레이블이라 실리지 않았을 테지만, 웬지 언급하고 싶다. 그 앨범에서 느꼈던 커크비의 매력을 이 앨범에서 찾아보기는 쉽지 않은데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트랙인 모차르트의 '라우다테 도미눔'이나 영화 '샤인'에서 삽입되어 유명해진 (그건 커크비의 노래는 아니었다;) 비발디의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같은 노래들은 너무나 아름답다. 특히 비발디는! 또한 영국인 커크비야말로 퍼셀의 노래를 부르기에 적절한 예술가일 것이다. 많은 성악가들이 모국어로 노래부를 때 보통 훌륭한 결과를 냈던 것은 사실이므로. (물론 모국어가 아니더라도 훌륭한 연주는 할 수 있다. 저 명제의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 ^^) 커크비가 모차르트가 카스트라토를 위해 작곡한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엑슐라테 유빌라테'를 부르기에 적당한 목소리라고 생각되지 않지만 꾸밈음이나 잇단음 처리는 훌륭하다. 그녀의 목소리가 언뜻 연약해 보여도 전혀 그렇지 않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음반에도 맥락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주자들의 맥락을 우선 무시하고 편집된 성악가들의 컴필레이션 음반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근데 꽤 가지고 있잖아 -_-;;) 그래도 그 성악가의 장기를 잘 살려 편집된 컴필레이션 음반이라면 괜찮다고 본다. 그건 편집자의 능력, 아니 그 보다는 세심함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엠마 커크비의 이 음반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녀가 르와조리르와 함께 어떤 레퍼토리들을 주로 녹음했는지는 잘 모른다. (생각해보니 주로 인상적으로 생각되었던 레퍼토리는 하이페리온과 함께 한 것이었고, 내가 음악을 듣기 시작하기 전에 르와조리르는 망했다) 하지만 이 레퍼토리로는 커크비의 고음악 운동의 여왕으로서의 이미지와, 그 이미지 아래 쌓인 연주가이자 연구자로서의 정신, 그리고 그녀와 함께 고음악 운동을 함께 이끌었던 수 많은 연주자들의 역사를 맛보기엔 다소 부족한 점들이 있다. 그녀는 방대한 디스코그래피를 자랑하는 부지런한 음악가이기도 하므로, 한 장의 음반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한 레이블과 함께한 그녀의 역사라는 점을 생각해 봐도,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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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7-30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음반 있는데 저는 교보문고 에서 직접 구입했던 걸로 기억해요..
너무 좋아서 친구들 올때 틀어놓는데 다들 "누구꺼야 "해요.. 정말 좋죠!! 모짜르트 곡을 너무나 잘 소화시키는 .. 여인 .. !!

고냥이님은 좀 아쉬운점도 있으셨군요 .. !! ~

투명고냥이 2007-07-30 11:48   좋아요 0 | URL
목소리가 너무 아름답죠. 저는 첫 곡부터 압도당했는데 제 주위에선 하도 "뱀 나온다"해서리...
첩보에 의하면 근년에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다는데 드디어 여왕님을 뵙다니, 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7-07-30 15:5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저도 가야겠어요... 기대 되네요 ^ ^ 혹시 그 날짜 알게되시면 저에게도 슬쩍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부탁드려요.. 고냥이님!!

투명고냥이 2007-07-30 23:41   좋아요 0 | URL
예, 당연하죠. ^^
 
무게 - 아틀라스와 헤라클레스 세계신화총서 3
재닛 윈터슨 지음, 송경아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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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 신화를 재해석한 재닛 윈터슨의 <무게>는 영웅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영웅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 최고의 강한 남자이자 가장 드라마틱한 면모를 지니고 있는 헤라클레스는 이 신화를 재해석한 어떤 버전의 창작물들보다도 여기에서 가장 가차없이 다뤄진다. 헤라클레스는 마초적이고, 제 멋대로이고, 영악하고, 폭력적이며 불경하며 뒤틀린 욕망을 가지고 있는 사내이다. 헤라클레스 뿐만이 아니다. 그의 적도, 그의 경쟁자도, 그리고 그를 눈엣가시처럼 미워했던 헤라여신도 마찬가지로 제 욕망을 위해 달려가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마치 이탈을 막기 위해 눈가리개를 씌워놓은 말들과 같다. 그것은 어쩌면 우리 인류의 역사와도 닮았다.

윈터슨은 그의 굴곡많은 인생과 종말을 비극적 영웅서사시가 아니라 일종의 아이러니한 인생 이야기 쯤으로 위치시킨다. 우리의 역사가 영웅의 역사가 아니라 사실은 끝없는 아이러니로 된 긴 이야기듯이. 그리고 그것은 지구 전체의 역사에 비하면 참 사소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 중에, 한 '거인'이 위치해있다. 아틀라스. 신화에서는 단지 헤라클레스에게 이용당한 어리석은 거인일 뿐이지만, 여기에서 그는 고뇌하며 사유하는 인물이다. '무게'에 대하여. 그가 벌로서 지고 있는 지구의 무게는 너무나 오랜시간 견뎌왔던 것이라 마치 그 자신이다 다름 없을 것이다. 무게가 존재가 되고, 존재가 무게가 되는 삶.

이 소설이 정말로 시작되는 부분은 그 뒤에 위치한다. 헤라클레스도, 신도 죽고, 그들이 더 이상은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서. 현대 문명이 시작되고 우주선에 실려온 작은 개 한마리가 그의 친구가 되어주어도 아틀라스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지구의 무게를 버티고 있다. 그 순간 어떠한 영감같은 질문이 그에게 떠오른다. 이것을 내려놓으면 안 될까, 하는.

그 옛날, 헤라클레스가 그 앞에 도착해 그의 무게를 대신 져 준다 했을 때 그 잠깐 동안 거인이 느꼈던 것은 자유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무게였고, 그는 돌려받아야 했고, 남에게 떠넘기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절망하고 분노한다. 잠시 벗어났던 그 때의 기억은 거인에게는 더 골 깊은 절망으로 남았을 것이다. 우리가 삶의 무게를 직감하는 순간 그러하듯이. 우리는 당연하다는 듯 그 무게를 짊어지고 있으면서 불안해하고 분노하고 답답해한다. 우리 어깨 위에 놓인 그 무게는 아틀라스가 진 지구처럼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어떠한 숙명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내려놓는 순간 모든 것이, 내 존재까지도 끝날 것이다. 아틀라스에게도 우리에게도 무게는 그런 의미였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할까. 과연 무게가 곧 존재이고, 존재가 곧 무게인 것일까. 이 책을 읽고 저자가 나름대로 내린 답에, 독자 모두가 공감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달콤한 위안정도는 누구나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속도, 깊이, 진정성, 유머 어느 것도 놓치지 않는 작가의 글솜씨와 좋은 번역을 따라가는 순간만큼이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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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형사, 탐정클럽 - 살인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들
외르크 폰 우트만 지음, 김수은 옮김 / 열대림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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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제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킬러, 형사, 탐정클럽'이라니. 뭔가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이었다. 또 표지에 쓰인 사진이 무성영화의 고전 'M'이다 보니 범죄실화를 다룬 책들이 가끔 그렇듯 좀 게으른 책이 아닐까 싶기도 했고. 목차을 보니 역시 생각대로 너무 넓은 분야들을 다루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대강 펼쳐볼 기회가 있었는데, 새롭게 접하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살 결심을 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나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이 책이 너무 넓은 부분에 걸친 이야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많은 사건들이 쓱-훑고 지나가는 식으로 간단히 묘사되어 있어 범죄의 뒷이야기라던가 자세한 분석, 작가 개인의 평가 같은 것을 얻기엔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킬러, 형사, 탐정클럽'이라는 제목만은 꽤 잘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범죄실화를 다룬 책이나 수사방법에 대해 쓰인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범죄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들을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다. 형사의 시각-법의학이나 수사 방법에 관하여-, 예술가의 시각-문학, 드라마, 영화등- 배심원의 시각-엇갈린 판결들- 대중의 시각 등등. 즉, 범죄자체 보다는 그것으로 인한 2차적 행위들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범죄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들에 대한 일종의 문화사적 접근인 셈이다.

새롭게 접하는 이야기가 많은 것이나 위에서 말했듯 문화사적 이미지가 강하게 풍기는 것은 아마도 저자가 유럽인이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범죄를 다룬 책을을 많이 읽어 본 것은 아니지만, 범죄수사에 있어서는 어쩐지 최고, 첨단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듯한 미국쪽의 저자들이 대개는 실제 일어났던 범죄와 수사과정에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거나 과학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쉽게 풀이하는 식으로 책을 많이 쓴다면, 유럽은 콜린 윌슨의 '살인의 심리'나 이 책처럼 좀 더 유연한 시각에서 문화사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다. 서로 환경이 다르고 가지고 있고 자신있게 내세울 수 있는 자료들이 달라서 그렇지 않나 싶다.

그러므로 흥미진진한 범죄실화나, 법과학이나 수사기법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싶어하는 분들꼐 이 책은 그다지 흥미로운 책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쪽으로 접근하기에 너무나도 많은 부분이 추리소설, 범죄 드라마, 영화 등에 할애되어 있기 때문이며 수사 기법에 대한 이야기도 역사적 발전과정 소개에 가깝기 때문이다. 전문적인 분석을 원하시는 분들에게도 다소 미진한 느낌으로 다가올 법하다. 적어도 '즐거운 살인'같은 깊이있는 학문적 분석은 이 책에서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한 문화가 범죄를 다루는 여러 방법들에 대하여 폭넓게 접근하고 싶다면, 꽤 괜찮은 책인 것 같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한정된 페이지에 담기 어려워 보일 정도로 여러 분야들을 그것도 드넓게 살펴보고 있으므로 서술은 세밀하거나 드라마틱하지 않고 단편적인 편이다. 그래도 내용은 제법 충실하고, 건조한 문투는 안정감을 주며, 정리도 무척 잘 되어 있는 편이어서 생각만큼 중구난방이라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일종의 개론서 정도의 느낌이랄까. 책은 쉽게 잘 넘어가는 편이다.

별은 세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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